이설 관동별곡( 6) - 5개의 달이 있는 경포호와 경포해변 -

[늙은山나그네]

(6)

멍게 술잔이 전부여야 하는 주문진 추억

정자가 없는 주문진에서 비올 것이라는 예보에도 노천에 천막을 칠 배짱이 내게는 없다.
버스에서 내려 찾아간 곳이 찜질방인 이유다.
속초 해수피아와 같은 값이지만 시설은 반값어치도 되지 못하겠다.
시설을 높이던가 값을 내리던가.

많이 들렀으나 남아있는 주문진의 추억은 멍게 술잔 뿐이다.
요절한 J와 속초의 1999년국제관광엑스포에 다녀오는 길에 들러 술을 마시던 때였다.
멍게의 꼭지부를 잘라내고  속을 빼낸 후 거기에 술을 따라서 마시고  꺼낸 속을 안주로
먹도록 가르쳐 준 난전횟집(亂廛?) 남자.
이후로 술잔이 필요없고 짙은 멍게향 술을 마시는 이 방법을 즐겨쓰고 있는데 주문진의
이미지를 그나마 유지하려면 다른 아무 거래도 하지 말아야겠다.
거래할 수록 고약한 인심만 확인하게 되니까.

밤 새 간간이 뿌렸을 뿐이지만 하늘이 많은 비를 내릴 채비를 하고 있는 듯한 아침.
오징어축제 첫날인데도 미련 없이 떠나 신리천(申理)의 신리하교를 건넜다.
신리천은 강릉시 주문진읍 삼교리와 연곡면 삼산리 사이,  장군이 철갑을 입고 서 있는
형국이라 하여 철갑령(鐵甲嶺)인 해발1.013m 고개에서 발원한 소하천이다.
신리하교의 조각상은 하늘을 향해 발을 뻗는 형상으로 비상을 뜻한다는데 글쎄.

바다에 밀착한 차로인 연곡해안로를 따라 교항리(橋項) 강원도립대학을 지나면 연곡면
영진리((連谷領津)다.
해안로는 강북공설운동장, 궁개교를 건너 영진해변, 영진항까지 거침 없이 이어진다.
나루를 거느린다는 뜻인 영진(領津) 이름이  어항과 마을, 어느 쪽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주장이 분분한 것 같으나 지방어항이다.

백두대간 동대산(오대산)과 노인봉에서 발원하여  동해의 영진 앞바다에 빠지며 연어의
고향이 되고 있는 연곡천 하구는 짧은 구간이지만 군 감시초소가 있고 군의 순찰로다.
해안을 지키는 젊은 군인들을 만날 때마다 미안한 생각이 든다.
반도국에서 해안은 국경에 다름 아니지만  첨단장비로 대체할 수 있는 시대에 현장에서
황금시기를 보내야 하는 젊은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벗어날 날이 언제쯤일까.

연곡천(영진교)을 건너면 울창한 송림으로 되어있는 동덕리(冬德) 연곡해수욕장이다.
옛날에는 역(驛)이 있었고 연곡장(連谷場)이 섰던 곳이란다.
율곡(栗谷 李珥/1536~1584)이 절경에 매료되어 아름다움을 극찬하고 청학산기를 남겼
다는 소금강(小金剛)이 인근 내륙에 있다.

해변을 지나면 '강원도수산자원연구원'과 '국립수산과학원동해수산연구소', ' 해양생물
연구교육센타' 등이 긴 숲의 해안을 점유하고 있다.
해안선 방위부대와 공장 때문에 얼씬도 못하다가  부대가 철수한 해안이 민초들의 자유
공간이 되면 나라가 망하기라도 하는가.
별별 기관과 단체들의 이름으로 그들만의 성지가 되어버리니...

연곡해변을 지나 아침 10시쯤 되는 때, 하늘이 수문을 열어 놓았나.
동이로 퍼붓듯 쏟아지는 빗줄기가 약해질 때까지  숲속에 피해 있다가 판초와 우산으로
무장하고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숲을 뒤흔드는 유난한 빗소리가 미당의 '가을비소리'를 불러왔다.
"단풍에 가을비 내리는 소리, 늙고 병든 가슴에 울리는구나"

늙은 길손을 스산하게 하는 비는 계절 따라 각기 다르게 역할한다.
봄비가 만물을 소생하게 한다면 가을비는 추수하고 겨울을 대비하게 한다.
여름비가 약동하게 한다면 겨울비는 새봄을 위해 겨울잠을 자게 하다.
그러므로,  이설 관동별곡 길에서 처음으로 맞는,  가을비답지 않게 거세게 내리는 비는
풍요에 재뿌리는 비에 틀림 없다.

사천해변과 생시효자정려

데크 보행교를 건너 얕은 비탈을 오르면 사천면(沙川) 하평해변 입구 삼거리다.
전각에 다름아닌 동다원(東茶園/전통찻집) 아래 판교리(板橋) 뒷불해변과 하평리(荷坪)
해변은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해변(해수욕장)이다.
하평해변 앞에는 일명 뗏장바위라는 해다리바위(물개/海狗)가 있다.
예전에 물개들이 많이 살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사장과 바위 사이에 석축로를
조성했고 물에 잠기는 구간에는 아치교를 가설했다.

하평리는 강릉 초당두부의 시원이 되었다는 이조중기의 문신, 성리학자인 초당 허엽(草
堂許曄)의 아들 허봉(許篈)이 살았다 해서 그의 호를 딴 이름이란다.
한데, 이조선조때 문신으로 요절(38세)한 허봉(1551~1588)의 호는 하곡(荷谷)이다.
호를 땄다면 하곡리가 되어야 하는데 반만 따왔는가.
坪(평)과 谷(곡) 사이는 극과 극인데.
허엽과 아들 허성, 허봉, 허균(우리나라 최초의 국문소설 홍길동전저자), 딸 허난설헌은
허씨 5문장가로 명성을 날린 집안이다.

빗줄기는 잦아들었으나 갯바위를 삼킬 듯이 거대한 파도가 포효하는 바다가 두려운가.
사천진리((沙川津) 해수욕장까지 사람은 그림자도 없다.
국가어항 사천항의 수문장처럼  장창 들고 상어 위에 서있는  머구리(전통 잠수부)의 철
조각상과 횟집단지를 지나면 사천천이다.
백두대간 매봉(1173m)의 동남쪽 무릉데미큰골에서 발원해 동해로 빠지는 하천이다.

사천진리와 건너편, 사방을 두르고 있는 산의 형세가 '方'(방)자 같다 해서 방골, 방동리
(方洞)인 마을 사이 사천천의 다리 하평교를 건넜다.
예전에는 군 주둔지역으로 민간인의 통행이 금지되어 멀리 7번국도로 돌아가야 했다.
금지가 풀린 후에는 다리가 부실한데다 교폭이 좁아서 차량의 왕래가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견고한 왕복차선의 다리로 거듭나 있다.

길손에게 시원한 생수가 된 것은  사천해수욕장 입구의 강릉 12향현(鄕賢) 중 하나라는
삼가당 박수량(三可堂朴遂良/1475∼1546)의 생시효자정려(生時孝子旌閭).
연산군의 단상법(短喪法)을 어기고 시묘(侍墓)한 효자란다.
존.비속의 살인이 충격적이지 않을 정도로 일어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상(賞)도 벌(罰)도 온통 조작하고 나눠가지는 위.변조공화국에서 진짜에 갈증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사천해수욕장은 1970년대 중반에 문을 연 것으로 기억된다.
한 세대가 넘었는데도 변한 것이 없다.
굳이, 있다면 군 초소와 철조망이 사라졌고 우거진 해송숲이 더욱 울창해졌다 할까.
편리해진 도로, 교량을 통해 지근인 사천진항으로 몰리기 때문인지 횟집 또는 편의시설
하나도 없다.

경포도립공원 구역에 들어서면 자전거길이 시작된다.
해파랑길, 낭만가도, 관동별곡 8백리길 등 여러 이름이 강릉바우길 텃세에 눌렸는가.
주문진 이후 바우길 화살표 외에는 보이지 않으니.
산대월리(山帶月)의 경계가 애매한 순포, 순긋 해변의 송림과 백사장을 지나면  강릉시
경포동 사근진(沙斤津) 해변이다.

여름휴양관을 개설했던 사근진해수욕장

사기그릇 장수가  여기 포구에 와서 작은 어선을 구입한 후  청명한 날에는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고 궂은 날에는 그릇을 팔며 살았다 하여 사근진이라 했다는 마을.
경포해수욕장 북쪽 해변마을의 해수욕장이 30여년 사이에 많이 변했다.
1970년대에 개장은 했으나 경포해수욕장에 눌렸기 때문인지 개점휴업 상태였는데.

1980년대 초여름에 나는 이 해변의 송림에 거대한 천막 2동을 지었다.
대학의 학생들과 교원, 직원, 재단의 직원 및 가족의 하계휴양관을 개설하고  여름방학
기간에 학교 버스를 투입했다.
워낙 한가로워서 대학 전용해변에 다름 아니었다.

서울의 대형버스 2대가 매일 왕복하며 분위기를 띄웠으므로 강릉지방 경찰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었으며 마을 이장을 비롯해 주민들의 편의제공이 대단했다.
5. 18광주민중항쟁과 국가적 비상시국에 학내외 여건도 긴장상태였으나 대학을 긴장의
수렁에 방치할 수는 없으며 환풍의 출구를 제공하는 것이 대학당국의 일이라 판단했다.
학생들의 호응이 의외로 컸으며 가을학기 준비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결산이 나왔다.

오늘날의 대학은 일종의 카르텔(Kartell)을 형성하여 부실한 상품으로 폭리를 하고 있는
반윤리적 기업집단으로 전락했다.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전국의 요지에 많은 부동산을 확보해 대학휴양관이라는 이름으로
수익을 올리면서도 등록금 감면은 커녕 가렴주구적 착취를 계속하고 있다.

대학재단은 많은 수익사업을 한다.
국가는  수익금으로 대학을 운영하라고 세제상의 특혜를 줌에도  재단은 대학에 전금의
의무를 이행하기는 커녕 등록금까지 갈취해 부당하게 착복하고 있다.
전쟁 특수를 입은 우골탑(牛骨塔)시대는 특수상황이었지만 지금은 거시적 인재를 양성
해야 하는데도 철저하게 미시적이다.
사학재단의 혁명적 개혁 없이는 우리나라 대학의 미래는 없다.

비가 그쳤고  파도도 적잖이 힘을 잃어가고 있지만  아직은 사근진해변의 멍게바위에의
접근을 주저하게 했다.
변함없이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위 앞에서 옛일을 생각하며 백사장을 걸었다.
30여년전 그 때, 내 계획에 대해 박수를 치고 있는 학내 분위기와 달리 신과대학의 목사
교수들만이 비판하고 나섰다.
낭비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는데 어이없게도 그들의 가족이 다투듯 먼저 이용했다.

다른 이유는  해안에서 익사사고라도 발생할까 겁을 먹고 있기 때문이었는데 말이 씨가
되는 듯 사고가 발생했다.
해안경비 군부대가 야간통행금지를 실시하는 구역인데 여학생 1명이 사라진 것.
현지 마을 이장집에 머물면서 운영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나는 난감했다.
비판이 두렵기 때문이 아니라 생명에 관계된 일이기 때문이었다.

직원과 경찰, 군 부대가 동원되어 수색한 결과는  길치가 되어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는
학생을 찾음으로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1956년 농활 하계봉사에 갔다가 잃은 친구(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호수에 뛰어들었다가
익사한)로 인해 물가에서는 각별히 조심하건만 하마터면 몰매를 맞을뻔 했던 일이다.

인무원려난성대업

음식을 차려놓고 빌며 절하기를 반복하는 해변의 여인에게 다가갔다.
사연이 궁금하여 빌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정축생(丁丑/76) 여인은 여기 사근진 해변에서 용왕님께 기도하여 불치병(암과 정신)을
극복한 이후 수시로 서울 정릉의 집에서 이 해변으로 달려온다는 것.

진명여고(종로구통인동) 출신인 그녀는 부(富)의 신을 받은 후로 굿 요청이 쇄도한다나.
자기가 굿을 해주면 부자가 된다는데 이 미신이 아직도 서울 한복판에서 통하고 있다니.
북한산자락 전통굿당(堂)들의 일정잡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정도로 굿에 매달리는
사람이 늘어간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정치는 속말로 개판이고 전방위적으로 절망뿐일 때  종교들이 어떤 역할을 하기는 커녕
더욱 혐오스러워가기 때문일 것이니까.

용왕님이 사근진 바다에만 계시는 것이 아닐텐데 왜 굳이 여기까지 와야 하는가.
다른 곳 용왕님과는 친하지 않아서 먼 길을 아랑곳없이 오는 것인가.
우리나라의 잡신 중에서 상왕신은 태백산신이란다.
일상에서는 부녀, 모녀간이지만 신의 세계에서는 서로 역전되는 경우가 허다하여  딸이
상전 대접을 받기도 한다.
금남정맥 종주때 계룡산 신들의 마을에서 내가 권위있는 신의 대접을 받으며 목격했다.

용왕님이 사절했나 고스란히 남은 음식을 반주를 곁둘여 나눠 먹은 후 그녀는 서울길에
오르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갔고 나는 걷기를 계속했다.
안현 소하천(안현교)을 건너 경포인공폭포, 해변데크를 통해 경포해변으로 갔다.
송림십리(松林十里), 명사오리(明沙五里)의 동해 제일, 최대로 인정받는 해수욕장이다.

해파랑길이 어디를 돌다 왔는지 바우길 표지와 함께 나타났다.
해송 숲속에는 '탄생의 돌'이라는 이름표를 단 두조각난 원형 돌이 사연을 말하고 있다.
경포를 새롭게 꾸미기 위해 공룡알 모양의 거대한 자연석을 해송 숲속으로 옮겨왔단다.
말짱했던 돌이 내려놓는 순간에 둘로 갈라졌는데 당국자들은 길조(吉兆)로 보았는가.
'탄생의 돌'이라 명명했으니.

"경포가 세계적인 체류형 관광지로 거듭날 것을 예견하고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온 것"?
그릇이 깨지면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이는 통념을 깨고 새로운 탄생을 의미한다니 역시
마음 먹기 달렸나 보다.
5개의 달을 상징한다는 경포호의 솔향입체포토존 조형물을 뒤로 하고 경포대로 향했다.
2006년 건설교통부에 의해 '한국의 아름다운길 100선'에 선정된 길이란다.
단풍이 예쁘게 물들어 호수까지 붉으레해지려 하는 듯 한 길이다.

화랑들이 심신을 단련한 사찰이었다는 신라고찰 인월사(印月寺) 터.  
여기에 이조말 청안현감, 통천군수를 지낸 산석거사 이봉구(山石居士李鳳九)가 1859년
(25대 철종10년)에 짓고 만년을 보낸 집이라는 방해정(放海亭).         
강원도유형문화재 제50호란다.
강릉지방에서 출사하여 크게 된 인물이 궁한가.
당하관 말석인 종4품무반외관직 벼슬이 큰 대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경포대(鏡浦臺)는 관동팔경의 하나다.
고려27대 충숙왕(忠肅王)13년(1326)에 인월사 터에 지은 후 이건과 중수는 거듭했으나
소실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화마에 시달린 낙산사와는 사뭇 다른 운을 타고났나.
들르기 여러번인 탓인지  이렇다할 감흥이 없고  오히려 경내에 세운  안중근 의사의 글
'인무원려난성대업(人無遠慮難成大業'/보물 제569-8호)이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큰 일을 이루기 어렵다." 는 이 글은  안중근 의사가 여순
감옥에서 남긴 여러 글들 중 하나다.
공자의 논어 '위령공(論語衛靈公)' 편의  '인무원려필유근우(人無遠慮必有近憂'/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곧 근심거리가 생긴다)의 개편일 것이다.
매사에 근시적이고 미시적인 이 시대에 경고의 메시지다.

5개의 달이 있는 경포호와 경포해변

경포호반을 걸을 때는 고소부금(苦笑不禁)이었다.
1980년대 중반의 5월 어느 날에 스위스의 한 신문기자와 걸었던 일이 생각나서 였다.
그 곳에 가있는 지인의 부탁으로 한국금융계 취재를 마친 기자에게 한국의 명소를 보여
주는 일을 1주일간 하던 때였다.

관동별곡에도 있는 예기 홍장과 박신의 사랑 얘기와  달밤에 경포호 월파정에서 시인과
기생이 나눴다는 달 이야기를 들려줄 때 5개의 달을 7개의 달이라고 말했다.
하늘의 달, 호수의 달, 바다의 달, 술잔의 달, 당신 눈동자의 달 등 5개의 달은 제대로 말
했으나 2개의 달은 없지 않은가.
수정해 말하기도 뭣해서  당신의 가슴 속( in your heart), 내 가슴 속(in my heart)이라
둘러댔는데 그는 한국인의 정서(feeling)가 독특하다(unique)고 화답했다.
얼마나 쑥스럽고 미안했던지 잊혀지지 않는다.

스위스는 호수의 나라다.
맑고 청결한 거대호수들에 비해 손바닥 만한 경포호가 눈에 차겠는가.
비교되지 못할 작은 호수를 자랑하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의 치기에 불과하겠기 때문에
감상적인 설화로 자극하려 했는데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이었다.
하나같이  탁발승과 인색하고 고약한 부자, 착한 며느리 3인의 이야기뿐인 동해안(강원
도) 석호들의 전설을 반복해서 들려줄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경포해변으로 다시 돌아와 데크와 백사잗, 송림숲 등 해변길을 이어갔다.
경포해변과 강문해변을 가르는 강문교를 건넜다.
지금은 화려하고 요란한 신설 솟대다리지만 옛 이조때도 있었던 다리인 듯 송강의 관동
별곡에도 나온다.
대동지지에도 경포호 동쪽 입구에 강문교가 있다고 했다(東口有江門橋)
경포호의 수문 역할을 하며 강물이 드나드는 어귀라는 뜻으로 마을도 강문동이다.

솟대' 는 마을 수호신 및 경계의 상징으로 마을 입구에 세운 장대를 말하며 장대 끝에는
새 3마리를 만들어 달아매는데 강문동 '진또배기'가 바로 솟대란다.
진또배기는 진(긴長) 대(막대)와 박이(붙박이)의 합성어로 박혀있는 긴막대라는 뜻이고.
경포호를 만든 홍수 때 몽골철새 3마리가 이 곳(현 진또배기의 위치)에 날아와서 재난을
면했다는데 "이 때부터 강문 주민은 이 곳에 새(오리) 3마리를 막대 위에 세우고 삼재(물,
불,바람)를 막아주기를 기원하며 정월 대보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는 것.

강문 솟대다리를 건너 강문리의 소규모어항 강문항과 아담한 강문해수욕장을 지났다.
한데, 경포호를 비롯해 이 일대가 과연 송강의 극에 달한 찬사에 걸맞는 경관지역인가.
초당취연(草堂炊煙/초당에서 밥짓는 연기), 강문어화(江門漁火/고기잡는 배의 불빛)가
아무리 아름답기로.

"석양무렵 현산(峴山)의 철쭉꽃을 잇달아서 밟고 우개(羽蓋/신선이탄다는) 수레를 타고
경포로 내려가니. . . . . . . . .
배 한 척을 띄워 정자 위에 오르니 강문교(江門橋) 넘어서 큰 바다(동해)로구나.
종용(從容)하기 비할 데 없는 기상(氣像)과 끝간 데 없는 경계,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경치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시인묵객들,  문장가라는 관원들의 글은 과장이 하도 심해서  액면대로 받아들였다가는
크게 실망하게 된다. 
송강의 관동별곡도 반 이상 접고 감상해야 할 것이다.
(송강은 청간정, 낙산사를 거쳐 경포대에 오는 길을 간략하게 소개한다.
'현산 철쭉'이라 했는데 현산은 특정산(고유명사)이 아니고 오봉산(낙산사)에서 경포대
까지 내려오는 동안의 고개에 다름 아닌 낮은 산들을 일괄해서 말하는 것이리라)

커피 단상 : 커피거리를 걸으며

초당동은 특별한 내력을 가진 마을이다.
이조중기, 명종과 선조 때 문신, 성리학자인 초당 허엽(草堂許曄)1517~1580)이 강릉의
처가에서 두부를 만들어 먹었는데 그 맛이 사람들을 매료시켰단다.
그래서 이 두부를 상품화 했는데 유명한 초당두부의 기원이 되었고 마을이름 초당 또한
그의 호를 딴 것이고.
선비가 장사를 한다는 소식이 조정에 알려짐으로서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지만.

무례한 신진 이율곡을 비판하고 극도로 혐오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강직한 성품 때문에
파직을 거듭 당했으나 종2품(同知中樞府事)까지 오른 그는 선조13년에 사망했다.
한데도,강릉시 관계자들은"광해군 때 초당 허엽이 당파싸움에 휘말려 화를 입어 산수가
수려하고 풍경이 좋은 현 안초당 지역에 기거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초당두부도 경포호를 일으킨 "신(神)이 맛있게 먹었다 하여 널리 홍보되고 있다"고 한다.

시대감각이 있는 사람들인지?
1580년에 사망한 동인(東人)의 종주(宗主)를  1608년에 왕이 된 광해군 때 인물로, 또는
경포호 탄생 때로 임의로 내리고 올리는, 소설을 쓰고 있는 한심하기 짝 없는 사람들.
아무튼, 인연이 깊은 초당동에 그의  아들(홍길동전을 지은 許筠)과 딸(許蘭雪軒/당대의
천재적인 시인, 작가, 화가) 남매의 기념공원, 기념관이 있다.
허난설헌은 이 곳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초당두부, 허씨 남매의 공원 등을 다시 들를 시간적 여유가 내게 없었다.
사근진에서 신(神) 내린 여인과 시간을 많이 보냈기 때문이다.
예전에 들렀던 것으로 가름하고 송정해변까지 전혀 한눈을 팔지 않았다.
강문해수욕장을 지나  해안선 경비가 여전한 해변의 철조망을 따르고  해송숲을 누비며
송정해수욕장 앞까지 갔으니까.

고려말, 송도(개성)에서 8그루 소나무를 옮겨 심었다 해서 팔송정(八松亭)이라는 마을.
송정(松亭)해변을 지나 안목(安木)해변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점등이 시작된 18시.
휘황한 커피거리를 걸으며 묘한 기분이었다.
주문진항에는 커피축제가 있고 안목항에는 커피거리가 있다.
시골 어딜 가나 남녀노청 불문하고 커피 마시는 것이 일상이다.
막걸리 힘으로 일한다던 시골 농사 일터에 커피배달 차량이 드나든다.
식사 후 밥값보다 비싼 커피를 마시는 경우도 많다.

'커피문화' 운운하며 유식을 자랑하는 커피전문가들이 개똥처럼 흔하다.
커피에 맛들이면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카페인효과 때문인데  카페인의 공과를 알면
우리에게 커피가 어떤 존재인가 정답이 명료하게 된다.
거두절미, 카페인(caffeine)을 과다복용하면 중독에 걸린다.
알코올(alcohol)과 모르핀(morphine), 니코틴(nicotine) 및 코카인(cocaine)등등처럼
과다복용이 필연적인 수순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중독현상이란 평상시의 반대반응으로 이해하면 된다.
내게는 40대초반에 걸린 카페인중독현상을 극복하느라 반년을 허우적댄 경력이 있다.
얼마나 어려웠던지 재발할까 두려워 40여년간 커피를 입에 대지 않고 살고 있다.
입에 물고 살던 시거와 파이프담배, 두주불사의 술이 없더라도 전혀 문제되지 않았지만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단지 살아있을 뿐이었던 시절이 두려워서.

전에는 젠주, 전주(全州), 안목으로도 불렸으며 남대천 하류에 물이 고여있는 것을 본다
하여 견소동(見召).
이 마을의 강릉항은 2008년에 안목항에서 개명되었다는 국가어항이다.
어항일 뿐 아니라 울릉도 운항 여객선부두와 요트마리나도 있다.
어두워가고 있지만  주문진에 이어 강릉항과 남항진 사이 남대천을 건너는  아라나비도
확인하며 남대천 따라 버스종점으로 갔다.                                               <계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