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한번
돌아가고픈 시간이 있다.
학창시절이라는 네 글자속에
숨어 있는 이름들.
그 이름들을 만나러
어쩌면 겨울바다로
향했는지도 모르겠다.
한발 다가가면 두발 멀어지던 아련한 첫사랑이었든, 다 덤벼보라고 고래고래 내질렀던 친구놈이었든, 곱다 못해 폭신폭신하던 상주 은모래의 바다. 그 바다를 다시 걸어본다. 걸음마다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파도소리에 뒤돌아본다. 그곳에 풋풋한 우리가 있다. 괜히 웃음이 나 걸음에 속력을 붙여본다. 그렇게 상주를 다시 만났다. <편집자 주>
#이 바다 이름이 상주입니까. 상주는 마치 첫사랑의 모습 같았다. 대부분의 기억속에 자리 잡고 있는 첫사랑은 언제나 왕년의 ‘화려한 시절’과 어마어마한 ‘추억’을 끄집어낸다.
이처럼 누구라도 한번쯤은, 어마어마했던 상주를 가봤을테다.
관광1번지라는 꼬리표와 함께 여름 해수욕의 천국이자 학창시절 밤바다의 자유를 만끽했던 그곳. 하지만 어쩌면 상주, 너는 화려했던 여름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한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었을까 내심 돌아본다.
여름의 상주가 풍요 속 빈곤이라면, 비교적 고즈넉함을 맛볼 수 있는 늦겨울과 이른 봄의 상주는 모래와 숲, 맑은 바다가 어우러진 은빛해안이다. 여기에 상주사람들이 찾아내어 이은 상주바래길까지 더해져 더욱 풍성해졌다. 상주바래길은 금산을 바라보며 해안을 끼고 돈다. 먼발치에 김만중의 유배지인 노도가 보이고, 주상절리 해안절벽과 손 내밀면 닿을듯한 삼여도에 상록수 숲까지, 그야말로 모든 것의 조화인 곳.
바래길 위에서 바라보는 금전 선착장과 반월형을 그리며 2km에 이르는 백사장의 모래풍경은 걷는 것과는 또 다른 감탄을 자아냈다.
#사랑은 유람선을 타고 마치 은가루를 뿌린 듯 부드러워 비단 위를 걷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은모래비치해변 한켠으로 걸어가면 ‘사랑의 유람선’이 보인다. 관광객이 비교적 적은 시기라 주중은 운행하지 않지만 주말에는 운행하고 있다.
한려수도 남해코스와 세존도 코스, 남해도 일주 등 3가지 코스로 나뉘는데 비성수기인 요맘때는 운행횟수가 제한적이라 사전 예약문의(☎862-0947)가 필요하다.
이곳은 3층으로 이뤄져 있는데 1층은 주로 가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장소로 활용되는 무대이고, 2층은 레스토랑 분위기이며, 3층은 확 트인 선상으로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다.
몰랐던 남해의 섬 이야기를 들으면서 파도를 원 없이 볼 수 있는 곳, 유람선 속에는 사연 있는 사랑이 있다. 굳이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지 않아도 된다. 물살 사이를 가로지르는 유람선이 추억에 잠겨 잠깐이나마 흔들고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타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알싸한 맥주맛처럼 내린 뒤에는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어쩌면 사랑이란 게 일종의 ‘유람선 타기’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본다. 낯선 바다로 나아가는 설렘을 안고 용기 내 발걸음을 둬 보는 것, 그리고 흔들림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정하는 것.
이런 상념을 다 아는 듯 탁 트인 바다가 날 불렀다.
#민박집 마당, 쏟아지던 별빛 바다를 보고, 추억을 보니 배가 고팠다.
유람선을 내리니 횟집촌이 나란히 있었다. 상주의 대표적 먹거리인 물메기탕과 멸치쌈밥 등 싱싱한 메뉴들을 고민하다 보니 문득, 대학교시절 여름방학때 친구들과 묵었던 민박집이 떠올랐다. 할머니와 흥정하는 재미가 있었던 민박집. 코펠과 뭔가 부족한 재료들로 대강 지어먹었던 저녁밥과 그 마당에 쏟아지던 별빛들로 괜시리 감상에 젖어 바닷가로 후닥닥 뛰어나갔던 그 시절. 지금 생각해도 참 싫지 않았던 고생이었다.
물론 지금은 카누ㆍ카약 체험을 할 수 있는 두모마을이나 벽련ㆍ대량마을 즈음에는 편의성과 안락함을 갖춘 펜션들이 꽤 있다. 하지만 10년전만 해도 상주하면 민박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현재도 민박집들은 건재하다. 또 당일이나 1박2일로 비교적 짧은 일정을 남해에서 머무는 사람들은 민박집외에도 찜질방을 이용하기도 한다.
특히 금산 산행이나 상주바래길 걷기를 한 사람들은 여독의 노곤함 해소를 위해 삼투압이 높아 몸속 노폐물을 쉽게 배출시키고 염증성 붓기를 빼주는 심층 해수목욕을 즐기고자 유자해수랜드를 찾기도 한다.
그 어떤 곳에서 하루를 묵어가든, 그 나름의 멋과 새로운 추억을 안겨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곳, 겨울바다 상주다.
삶의 무게에 지친 수많은 사람들이 ‘행복’이라는 버스를 기다리며 거리 한구석에 버려진 채 서 있을 때, 들르는 곳이 ‘추억’이라는 간이역이 아닐까. 그렇다면 추억역시 행복의 또 다른 얼굴은 아닐런지. 그 많던 싱아처럼 상큼하고 싱싱한 청춘을 만나러 가는 길, 상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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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여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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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유람선에서 바라본 일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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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의 유일한 찜질방, 상주해수유자랜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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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피서객으로 가득한 상주은모래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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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바래길에서 본 상주해수욕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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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캬~ 이곳 남해 상주 해수욕장에는 고2때 친구들이랑 무전 여행 간 곳인데
차비가 모자라 상주에서 금산을 넘어 읍내까지 비포장 도로를 따라 걸어온 생각하니 새롭네요
ㅋㅋㅋㅋㅋㅋ그런일이~~감회가 새롭겠습니다~~
위의 기사를 쓴 남해시대 강영자 기자입니다^^ 저도 잊고 있던 기사를 우연히 검색하다가 이렇게 다시 보게 되니 저또한 감회가 새롭네요. 이렇게 소중히 올려주셔서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