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602년, 늦은여름 첫날밤 선조 임금은 딸보다 어린 새 중전에게 어리광을 부리듯 빠저들고 있었다.
"중전의 꽃같은 자태를 보고 있으니 나 까지 젊어지지를 않나...... 허허허"
"아니 꽃인들 어찌 이리도 고울수 있으리 그야말로 解語花가 아닌가"
중전 김씨는 파르르 몸을 떨면서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그러나 그녀는 몰랐으리라 바로 이 순간 중전 김씨는 엄청난 비극을 향한 첫 발자국을 내 딛고 있다는 사실을.......,
후일 전실의 아들이자 임금이 된 광해군에게 혹독한 박해를 받으면서 아들 영창대군이 蒸殺되는 파란과 굴욕으로 점철되는 구렁텅이를 헤매야했던 仁穆大妃가 바로 지금의 꽃같은 중전 김씨임에라.......!!
새 중전은 연안김씨 金悌男의 따님으로 19살, 이때 선조의 나이는 51살, 후궁인 공빈 김씨 소생의 광해군보다 9년,광해군비(세자비)박씨보다 8살 연하였다.
비극이 시작되다. 선조는 41년 (1608년) 2월 1일 57세로 죽고 34살의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니 이 때 인목대비의 소생으로 정명공주가 5살, 영창대군이 3살이였다. 부왕인 선조가 오래 살았더라면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적자였지만 강보에 쌓인 피덩어리같은 어린것이 왕위는 커넝 죽음의 운명만이 기다리고 있음에야 누가 알았으리랴!!
그래도 영의정 柳永慶(젼주류씨)을 비롯한 몇몇 중신들은 적자인 영창대군 편이 였는데 정인홍을 비롯한 세자빈의 외조부 이이첨,세자빈의 조부 박승종, 광해군의 처남 류희분,류희발등은 광해군을 적극 옹립하고 있으니
이 때 영의정 류영경을 비롯한 영창대군을 왕으로 옹립하는 편을 小北파, 광해군편을 大北派라고 부른다.
광해군의 친형인 임해군이 있었는데 형을 제치고 왕이 되면 명나라에서 이의를 제기할까봐 임해군을 죽인다. 그 뿐 아니라 허균을 스승으로 모신 서얼 출신들의 이상향 건립을 위한 모임을 영창대군을 옹립하는 역모로 몰아 결국 영창대군을 광화도로 귀양보내 蒸殺(방에 가두고 불을지펴 쩌서 죽인 사건)하고 인목대비는 서궁(경희궁)에 유폐시키고 친정집 일가는 몰살을 당한다.이를 반대하다가 귀양가는 이항복이 다음과 같은 시를 짓는다.
철령 높은재에 자고 가는 저 구름아
孤臣의 寃漏를 비삼아 띄워다가
님 께신 구중궁궐에 뿌려 본들 어떠리.
1623년 실정으로 서인들에의해 광해군이 쫓겨나는 인조반정이 일어나니 세상은 서인들의 천지가 되고 소북,대북 모두 역사의 무대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이들 모두 남명의 제자들로 남명학이 지금까지 퇴계학보다 빛을 보지 못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첫댓글 재미있게 엮어주어서 읽는 데 한 층 흥미를 돋구어 주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반갑네!1 재미있게 읽고 답글까지 보내주어 고맙네!!! 카페에서 자주 만나세
야천의 역사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치 야천이 역사 있던 그날, 그시대에 살아 그 현장을 목도한 듯한 분위기로 글을 써 보여 주어, 넓은 교양, 해박함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가 없어요!!! 오늘 또 감탄!!!
대머리님! 그대의 예절지식과 다방면의 지식정보야 말로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감탄을 하지! 좋은정보많이 써주시게. 글 읽고 댓글 감사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