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 그 너머에는
우 승 순
세상을 지배하는 이론은 수학이 될 것이다. 고대 동굴벽화에는 물 항아리 3개나 물결그림 3개가 발견되곤 하는데 고고학자들은 이 그림이 홍수를 표현한 것이라 추측한다. 원시시대의 수학은 아마도 ‘있다, 없다, 많다’ 정도였을 것이다. 수 천 년 동안 숫자 없이 살아오던 인류는 그 정학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인도에서 숫자를 발명했고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아라비아숫자’로 불리게 되었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사람이나 양의 숫자, 거래수단, 건축이나 예술의 기하학 등 계산이 필요했을 것이고 과학과 접목되면서 숫자는 복잡하고 난해한 수학으로 발전했다. 숫자와 기호로 표시되는 수학은 매우 추상적이지만 한편으론 가장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학문이며 세계 공통어다. 세상은 이제 볼펜 한 자루부터 인공위성까지 수학 없이 불가능하고 과학은 물론 경제, 예술, 인문학 등 모든 분야에서 수학이 응용되고 있다.
자연과 생활 속에도 수학이 숨어있다. 지금은 초등학생도 쉽게 하는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 같은 간단한 사칙연산도 옛날 사람들은 수 백 년 동안이나 몰랐던 어려운 산수(算數)였다. 셈법에서 진화된 수학은 대수학, 기하학, 해석학으로 발전했고 다시 각 분야별로 다양하게 세분화되었는데 고등학교 때 어렵게 배웠던 미적분학은 해석학의 일종이다. 영국의 물리학자 뉴턴이 “사과는 왜 땅으로 떨어질까?”라는 물음에 매달려 만유인력을 발견했듯, 어려운 수학이론도 처음엔 간단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의 수학자 피보나치는 토끼 1쌍이 자연 상태에서 1년 후 몇 마리로 늘어나는지 궁금했다. 관찰한 숫자를 나열해 보니 1, 1, 2, 3, 5, 8, 13.....의 순서로 불어났는데 이것이 소위 ‘피보나치의 수열’이다. 앞의 두 수 합이 그 다음 수가 되는 형태로 자연에서도 많이 관찰된다. 해바라기 씨나 솔방울의 나선배열, 식물의 꽃잎 배열과 피아노의 검은 건반과 흰건반의 배열 등이 대략 이 규칙을 닮는다. 자연 속에 숨어있는 신비한 수학이다. 또, 피보나치의 수열에서 앞의 수로 뒤의 수를 계속 나누면 1/1, 2/1, 3/2, 5/3, 8/5,.....그 값이 1, 2, 1.5, 1.666.....로 진행하다가 1.618로 수렴한다. 한 선분을 둘로 나눌 때 가장 아름다운 비율을 이른 바 ‘황금비’라고 하는데 그 비율이 대략 1대 1.618이다.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명함, 신용카드, TV나 컴퓨터모니터 등 대부분이 가로와 세로가 황금비로 만들어진 소위 ‘황금사각형’이다. 생활 속에 숨어있는 수학의 아름다움이다.
수학은 때로 철학에서 출발한다. 집합론으로 유명한 독일의 수학자 칸토어는 자연수 1, 2, 3, 4, 5, .....n, n+1...를 생각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수는 뭘까?”라는 물음에 매달렸다. 그는 집합론을 통해 ‘무한’이란 개념을 생각해냈고 이후 널리 응용되고 있으며 기호로는 팔자를 옆으로 눕힌 ‘∞’로 표기한다. 1초라는 짧은 시간도 그 속에 무한의 찰나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우주는 얼마나 크고 그 끝은 어디일까? 의상대사의 법성게에 나오는 한 구절 ‘티끌 속에 우주가 있고 일체 우주도 하나의 티끌(一微塵中含十方 一切塵中亦如是)’이라는 촌철살인에서 번뜩 깨우치듯, 무한의 개념에서 보면 하루 속에도 천년이 있고 천년도 한 생각일 뿐이다. 100년을 사는 인생은 찰나일까? 영원일까?
온 세상이 숫자와 수학의 범벅이다. 눈만 뜨면 코로나감염 숫자, 여론조사 지지율, 부동산과 주식가격 등이 뉴스를 장식하고 주민번호, 비밀번호, 전화번호, 계좌번호 등이 수시로 쓰인다. 게다가 요즘은 어디를 가든 정상체온 36.5도까지 증명해야 한다. 자동차나 전자제품 같은 기계의 자동조절기능은 수학의 퍼지(fuzzy)이론을 응용한 것이고, 최근에 핫이슈가 되고 있는 온라인 가상화폐(bitcoin)도 암호학이라는 이산수학(離散數學)의 한 분야다. 슈퍼마켓의 계산대에서 스캐너를 갖다 대면 상품정보가 순식간에 읽히는 바코드도 2진수와 10진수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수학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개인정보가 입력된 바코드를 코걸이나 귀걸이로 부착하고 다닐지도 모르겠다. 이미 바코드의 일종인 ‘QR(Quick Response)코드'를 휴대폰에 가지고 다니지 않는가.
2016년 3월 9일은 수학이 선전포고를 한 날이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하고 상대에 따라서도 임의적으로 응수해야 하는 비정형의 창의적인 두뇌게임이다. 감히 기계두뇌인 ‘알파고’가 어떻게 인간 바둑천재인 이세돌을 186수만에 불계승할 수 있을까? 알고리즘을 이용한 기계학습(deep learning)을 통해 인공지능이 스스로 진화해가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세계는 충격에 빠졌었다. ‘있다, 없다’로 시작했던 원시 수학이 첨단과학의 인공지능(AI)으로 변태되면서 이제 소설도 창작하고 그림도 그리며 인간을 흉내 내고 있다. 언젠가는 전지전능한 AI 신(神)이 자신을 창조한 인간을 지배할지도 모른다. 수학, 그 너머에는 어떤 세상이 오게 될지 궁금하고 두렵다.
〈약력〉 월간 「수필문학」등단 (2017) 저서: 「물을 닮고 싶은 물고기」(2020) 강원문협, 춘천문협, 춘천수필 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