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의 탄생, 윤수일의 아파트
강남 개발로 지어진 대단지 아파트와 함께 사라진 우리들 마음속의 집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그리운 마음에 전화를 하면
아름다운 너의 목소리
언제나 내게 언제나 내게
속삭이던 너의 목소리
흘러가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구름처럼 머물지 못해
떠나가 버린 너를 못 잊어
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
다시 또 찾아왔지만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윤수일이 아파트를 만든 것은 1982년이었다. 1978년 "사랑만은 않겠어요"라는 트로트곡을 히트시키며 그 해 10대 가수상의 신인상을 차지한 윤수일은 혼혈이라는 특이한 출생 과정과 잘 생긴 외모로 스타로 발돋움하였다. 인기가 잦아들 무렵 윤수일밴드라는 록밴드를 결성하고 아파트를 히트시키게 된다. 이후 제2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윤수일이라는 이름을 전 국민의 가슴에 새기며 불멸의 스타가 되는 것이다.
지금 아파트는 스포츠 경기장의 응원곡과 노래방에서 분위기를 업시키는 떼창 곡으로 알려줬지만 윤수일이 이 곡을 만들 때 그는 실연당한 친구의 쓸쓸함을 달래주는 위로의 발라드를 의도하였다. 하지만 창작자의 의도와 대중들의 수용태도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는 대표적 사례가 되며 아파트는 오늘도 이곳저곳에서 신나는 단체곡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딩동 딩동 하는 아파트의 차임벨 소리를 시작으로 신시사이저와 전기기타의 반주로 아파트라는 특정 공간을 상징화하는 데 성공한 이 노래의 전주 부분은 윤수일이 요구르트 아줌마가 아침에 울리는 초인종 소리를 듣고 영감을 얻어 삽입하였다고 한다. 강남 개발이 한창 이루어지던 잠실의 아파트 단지 한편을 지키고 있던 갈대밭을 보며 작사한 가사들은 대중들에게 묘한 상상력을 일으키면서 더욱더 관심을 받게 한다.
그가 보았던 갈대밭들은 모두 아파트가 되어 그 속에서 느껴지던 쓸쓸하고 애잔한 감성은 사라지고 고층아파트와 펜트하우스의 부를 과시하는 강남의 모습을 보면 지금은 윤수일이 다시 아파트 같은 곡을 만들 생각을 하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들기도 한다. 아파트라는 곡이 히트하면서 아파트는 한국인들이 거주하는 삶의 표준적인 형태로 자리 잡았지만 그 과정에서 전통적으로 가족이 주던 보편적 가치들은 많이 퇴색한 느낌이다. 아파트는 집이라기보다는 표준적인 거주의 단위로 부의 교환수단이 되었고 우리 마음속의 집들은 안드로메다로 사라진 기분이다.
윤수일은 이후에도 제2의 고향, 환상의 섬, 황홀한 고백, 아름다워 같은 주옥같은 곡들을 히트시키며 한국 트로트와 록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가수로서 후배와 대중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울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한 윤수일은 함중아와 함께 부산 출신 대중가수의 전설이 되었다. 윤수일 밴드를 결성하여 솔로 가수로서의 한계를 극복하고 록밴드를 만들었던 그의 노력들이 오늘날 재조명되며 그의 현재는 바쁜 콘서트 일정 속에서 제3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모습이다. 미국인 아버지로부터 외면받고 혼혈아라는 편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가수의 길, 그런 시련을 모두 극복해 내고 만들어 낸 그의 노래 아파트는 시대와 대중들의 선택을 받아 명곡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s9e2UFCJeUo (윤수일의 아파트 감상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