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 위치한 메트로폴리스 부산과 울산은 지명 그 자체가 산이다. 같은 바닷가의 땅 해남이나 남해라는 지명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우리 국토를 그려놓은 전체 지도를 펴놓고 백두대간과 장백정간, 그리고 13개로 갈라지는 정맥의 흐름을 살펴보면 부산과 울산, 양산이라는 지명에 `산`이 들어가게 된 사연이 쉽게 이해된다. 국토의 등뼈 백두대간은 민족의 영산 백두산에서 뻗어내려 동해안을 따라 남으로 남으로 내려온다. 그러다가 태백산에서 한 차례 숨을 돌리고는 서남 방향으로 지리산까지 치닫는다.
태백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계속 남하하는 낙동정맥은 울산의 서쪽에서 가지산을 위시한 1,000m급의 여러 개 산으로 큰 산군을 이루게 되는데 이곳을 오늘날 우리는 통상 `영남알프스`라고 부른다. 그리고 낙동정맥은 여기까지 내려온 여세를 몰아 부산의 금정산을 거쳐 다대포 바닷가 몰운대에서 멈추게된다.
경부선 열차 청도에서 물금 사이, 경부고속도로상에서 인포에서 양산 사이의 좌우 차창 바깥으로 보이는 광활한 산군을 하나로 묶어 `영남알프스`로 명명한 부산 산꾼들의 큰 통이 놀랍다.
영남알프스는 광활한 산군인 만큼 그 들머리도 수없이 많다. 청도에서는 운문산 운문사이고, 울산에서는 가지산 석남사가 그 들머리다. 밀양에서는 재약산의 표충사요, 양산에서는 취서산 통도사를 들머리로 잡고 있다.
이렇듯 광활한 산군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원동에서 석남사에 이르는 신록의 70리 길, 배내골로 먹거리 산행길에 나서본다.
[베네치아산장]
신비스러운 물빛을 아직까지는 간직하고 있는 배내골의 삼소는 배내골의 백미이자 신성한 천기가 서려있는 절경 중의 절경이다. 시원한 물줄기의 수려한 파래소폭포, 수줍은 듯 감추어진 가마소와 지금까지도 원시상태로 남아있는 철구소, 이 일대를 영남알프스 샤모니계곡이라 부르는 것은 어떨까.
배내골 최고의 명소로 자부하고 있는 `베네치아산장`(052-264-8183)은 영남알프스의 간월산, 신불산, 영취산, 천황산, 재약산, 사자평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오를 수 있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계절 따라 변하는 물빛 위로 피어 오르는 물안개 건너편으로 길게 늘어선 이 산장에서는 별장식 방갈로의 편안한 잠자리와 맛깔스러운 음식들을 제공받을 수 있다. 부대시설로는 잘 꾸며진 찻집과 노래방까지 있다.
이 집을 조성한 박정부씨는 부산 사하구의 열성 산꾼이기도 하며 노래 솜씨가 수준급이다.
[배내산장]
배내골은 오지 중의 오지다. 오지이기 때문에 오지만이 풍기는 독특한 맛이 있고 70리 긴 계곡이라 길 따라 양쪽에는 특색 있는 분위기의 많은 먹거리집들이 산재해 있기도 하다.
원동면 선리 태봉마을에 있는 `배내산장`(055-387-3292)은 꼭 하룻밤 머물고 싶은 곳이다. 아름다운 주변 경관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는 산장의 분위기나 자신의 산장을 정서와 문화를 전달하는 공간이라고 소개하는 젊은 주인 내외가 자리를 뜨는 데는 아쉬움을 남도록 한다.
대학에서 관광경영학을 공부한 산장 주인 김성달씨는 그가 11년 전 이곳으로 산행을 했다가 직감적으로 이곳을 자신이 평생토록 머물 곳으로 낙점했다고 한다. 등산을 함께 즐겼던 부인 황점생씨도 남편의 뜻을 따랐다. 아들 둘을 튼튼하게 키우며 한 쌍의 잉꼬처럼 살아온 세월이 금방 10년도 더 지났다고 한다. 시와 그림이 있는 공간에는 은은한 고전음악이 흐른다. 계절 따라 찾아오는 손님들의 성격이 분명하게 다른 것이 무엇보다도 즐겁다고 했다.
솔잎차를 마실 수 있고, 버섯전골이나 닭고기, 오리고기요리를 곁들인 멋진 술상을 받을 수 있다.
[다정원]
배내골 부근에 이르렀을 때면 꼭 한번 들러 차 한잔 마시고 올 만한 집이 있다. 배내골의 목련아씨 정정엽씨가 운영하는 `다정원`(055-388-7071)이 바로 그 집이다.
`다정원`은 부산에서 조그마한 사업을 하던 정정엽씨가 이곳으로 드라이브를 했던 게 인연이 되었다고 한다.
지리산 자락에서 자라나 산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그녀가 굳이 부산에서 살아야 할 큰 이유를 느끼지 않아 산속에다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정착했다고 한다.
`목련아씨`라는 별명의 여인이 내놓는 전통차 한잔의 맛은 무엇에 비유해야 할까. 이름 그대로 다정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양산에는 `양산박`이라는 농림부 지정 전통식품업체가 있다. 여기서 제조하는 제품은 국내보다 오히려 유럽 쪽에 더 알려져 있다고 한다. 국제식품박람회에 여러 차례 참가해 국제식품상과 유럽품질 금상 등을 수상한 바 있는데, 양산박의 `박냉면`이나 `박수제비`도 `다정원`에서 시식할 수 있다.
박냉면은 고유의 냉면에 박을 첨가하여 만든 음식으로 영양가가 높으며 쫄깃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장독대산장]
영남알프스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계곡이 배내골이다. 한자로 배 리자, 내 천자를 쓴다. 그래서 배내골과 이천리는 같은 이름이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이 계곡의 진입로는 양산시 원동 쪽이었는데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어림잡아 열 사람 중 아홉 사람은 울산 쪽 `울산 배내골`로 들어와 울산 땅에서 쉬다가 울산 쪽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추산이다. 그래서 `울산 배내골`은 붐비는 곳이 되었고 `양산 배내골`은 한산하다고 한다.
양산 배내골 가는 길 들머리가 원동인데 우리나라 629개 기차역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역 중의 하나라는 원동역이 있다. 철길 따라 낙동강이 흘러내리고 높고 낮은 산들로 둘러싸인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 때문에 영남 알프스의 진입로로 이 코스를 선택하는 부산이나 대구의 산꾼들이 많다는 것이 원동역 직원들의 말이다.
주중에는 노년층 꾼들이 영남알프스의 남쪽에 있는 천태산을 즐겨 오르기도 한다. 양산 배내골의 들머리 원동면 대리에는 지난 1998년 가을 부산의 여류산악인 한 사람이 산사람들의 사랑방이자 베이스캠프가 될 만한 민박을 겸한 식당을 차렸다. `장독대산장`(055-388-8495)이 바로 그 집이다.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이곳으로 들어온 류정자씨는 설악산과 지리산의 어려운 코스만 골라 섭렵했으며 백두대간도 끝낸 골수다.
된장을 직접 담그며 음식에 관한 한 류씨의 극성은 산에 대한 열정 못지않게 대단하다.
궁중요리를 공부하기 위해 한때는 인간문화재 황혜성 선생을 찾아 서울 나들이를 계속했을 정도였다니 말이다. 큰 방 3개와 작은 방 5개로 80명까지 동시에 민박이 가능한 이 산장에서는 류씨가 차려 내놓는 산중정식을 비롯해 토종닭요리와 청둥오리요리도 즐길 수 있다.
밀양 땅에서 계약재배한 콩으로 메주를 만들고 장을 담가 산사람들에게 회원제로 자신이 담근 된장과 간장을 공급하고 있다.
[할매집]
울산시 남구 장생포동에 들어서니 실로 상전벽해를 절검케 했다. 고래잡이로 한때는 울산 최고의 부촌이었던 곳. 스무 집도 더 되던 고래고기 전문 음식점들 대부분이 문을 닫은 지 오래. 이제는 겨우 고래고기집 4곳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진짜 원조집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큰 다행으로 여겨졌다. 장생포 동사무소 한 집 건너에 있는 `원조할매집`(052-67-2572)이 진짜 원조집이다. 40여 년 전에 고래고기 전문점으로 문을 연 최말선 할머니는 이제 그 솜씨를 며느리 박숙자씨에게 인계하고 2선으로 물러앉은 상태이다.
2세 경영주 박숙자씨도 고래고기요리를 익힌 것이 어언 30년으로 참으로 소중하게 보존해야 할 솜씨로 믿어졌다. 고래란 그 몸무게가 보통 1~2톤이나 되는 큰 동물이고 부위별로 해체한 다음에 조리하게 마련인데 12가지나 되는 전연 다른 향과 맛을 내고 있다.
살코기를 그대로 `생고기회`를 만들어 맛장이나 고추장에 찍어먹기도 하고, `육회`로 만들어 술안주로 삼기도 하는데 술꾼들에게 대단한 인기였다. 내장 각 부위로 `수육`으로 삶아 젓갈이나 소금을 찍어먹기도 하고 가슴 부위로 `우내`를 만들어 겨자에 찍어먹는 맛은 정말 고래만이 갖고 있는 별난 고기 맛이다.
특히 고래의 꼬리와 상하 각 2개의 지느러미에서 추출해낸 흰 색깔의 `오배기`는 고래고기 맛의 최상으로 꼽힌다고 했다. 아무리 잘 차린 잔칫상이라도 오배기가 빠지면 이 지역에서는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한다. 초장에 찍어먹는 오배기는 전라도 광주의 잔칫상에 올라오는 `삼합`과 대칭을 이루는 것 같았다. `전라도 광주의 삼합이요, 경상도 울산의 오배기라.`
장생포에는 `원조할매집` 말고 `할매고래집` `골목할매고래집`, `왕고래집`이 있다.
고래가 울산의 명물이자 장생포의 특산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탓으로 울산을 찾아오는 많은 외지인들이 고래고기 맛을 보겠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고래와 함께 육십 평생을 살아왔다는 장생포 출신의 김진고씨가 울산 시내중심가에 `천수고래집`을 차렸다.
[언양불고기집]
가지산 들목인 언양은 경부고속도로와 언양 ~ 울산고속도로, 그리고 국도가 교차하는 교통요지다. 행정구역상으로 울산광역시에 속한다. 인구 2만5천명의 고장에 한우불고기집이 40여개소나 있어 신기한 느낌이 든다.
인구 600여 명에 불고기집이 한 집꼴이라. 언양 사람들은 한우불고기 외식을 주식으로 한다.
언양읍의 향토음식 첫번째가 한우불고기이고 두번째가 언양 청정 미나리로 외지 사람들이 주된 고객이다.
양념불고기, 양념갈비, 로스구이 등 서울이나 부산, 대구 등지의 대도시 사람들이 이곳에 불고기를 먹고 싼값에 놀란다.
이곳 식당들 식탁에는 약방의 감초 격으로 곱게 다듬은 미나리가 푸짐하게 올라온다. 이곳 미나리는 이 지역 특산물로 옛날에는 임금님께 진상하던 것 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언양 만이 갖고 있는 특이한 토질에서 재배한 언양 미나리가 전국 제일로 꼽히고 있다는 것이 이곳 사람들의 큰 자랑이다. 작은 고장에서 40여 농가가 미나리 재배에 종사하며 연간 200톤 정도를 생산해낸다고 했다. 조상들이 수렁이나 응달에서도 싱싱하게 잘 자라나는 미나리를 야채 중 으뜸으로 쳤는데 이곳 미나리는 수렁도 아닌 석남계곡의 맑은 물이 담긴 논에서 재배한 것이라 자랑할 만하기도 했다.
또한 미나리는 가뭄을 타지 않는 강인한 식물이다. 그래서 높은 덕을 지닌 채소로 사랑을 받는다. 비타민이 풍부하고 칼슘 등 무기질이 많은 알카리성 식품이라 해독, 해열, 심장열병, 간질환 치료와 해독제로 좋으며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가지산의 음식점]
배가 산으로 올라간다는 말은 흔히 하고 있지만 음식점이 산으로 올라간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다. 그런데 가지산을 오르면서 `음식점들이 산으로 올라왔구나`하는 느낌이 들었다.
가지산 아래에 있는 석남사 입구 600m 지점 `상회`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30년을 넘긴 먹거리 집들에서는 도토리묵이나 미나리전을 먹을 수 있다. 전에는 이곳이 산행 중 최종 먹거리 보급처 이었는데 이제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1985년 486m 석남터널이 개통되면서 언양 쪽 터널 입구에도 역시 20여 개의 먹거리 집 `상회`가 문을 열었다.
해발 700m 지점에 있는 터널이라 이곳까지 올라온 먹거리 집들은 `산을 올랐다`는 표현을 해도 틀리지는 않겠다. 무등산에 있는 먹거리 집들은 거개가 `산장`이 붙어 있고 팔공산에서는 `식당`으로 되어 있는데, 이곳 가지산에서는 `상회`로 되어있다.
이곳 `상회`에서는 국수, 라면, 더덕구이, 미나리전, 파전, 도토리묵, 칡생즙, 커피, 약술 등을 먹을 수 있고, 이름은 대부분 지명을 따온 것들인데, 이것을 보면 여러 지방에서 가지산으로 올라왔음을 금방 알게 된다. 청도, 마산, 부산, 대구, 창원, 울산 등등 이 있다.
이곳 상회들은 그 차림표가 모두 통일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고 청정 미나리전을 큰 자랑으로 내세우고 있다.
천황산이나 재약산을 오리기 위해서는 석남사 입구에서 석남터널 쪽으로 올라가는 길 3Km쯤 되는 지점의 갈림길에서 원동으로 가는 길을 타면 된다. 이 길도 포장이 되어 있는 길이라 승용차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산 아래까지 편안하게 닿을 수 있다.
음식점 큰 안내판이 있는 갈림길에서 1.5Km쯤 달리면 이화령(속칭 배내고개)에 닿게 되고 거기서 오른쪽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상공회의소 연수원, 울산대 연수원, 원불교 청소년훈련원 등이 나온다. `산장`이나 `가든` 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20여 개의 먹거리집들이 깊은 산속에 `먹자촌`을 형성해놓고 있다. 깊은 산속답게 멧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집들이 여럿이다.
[영남알프스]
영남알프스의 산들은 천년 만년 그 이전부터 있어 왔다. 그렇지만 `영남알프스`라는 이름은 30년 전까지만 해도 없었다. 이 기회에 영남알프스의 작명에 얽힌 이야기를 밝혀둔다.
해외여행이 무척이나 어렵던 시절, 1971년 부산 대륙산악회 산악인 몇 사람이 일본 북알프스 원정을 다녀왔다. 이들은 일본에서 활동한 영국인 선교사 웨스턴이 일본에서는 가장 수려하다는 산군 에다가 `알프스`라는 이름을 붙여 세계에 널리 알린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귀국 후 성산씨와 곽수웅씨는 그들이 즐겨 오르던 지금의 영남알프스 일대의 산군을 묶어 `영남알프스`로 부르자고 굳게 약속했다고 한다. 이들 두 사람은 지금도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역 산악인이라 그 명명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재미있는 뒷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
지금의 영남알프스 심장부가 될 만한 곳인 울산과 양산의 경계 지점에서 울산 쪽으로 `영남알프스`(052-262-8700)라는 이름의 멋진 휴양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천혜의 휴양지에 대형 휴양시설을 조성한 김재환씨는 사업보다도 환경보전이 더 중요하다는 지론으로 주변 경관과 어울리게 꾸미느라 조경에 많은 신경을 쏟았다고 한다.
단순한 위락시설 차원을 뛰어넘어 국제회의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연수교육장과 체육시설, 한식당과 커피숍, 매점, 노래방 등이 갖추어져 있고 콘도식과 모텔식, 그리고 방갈로 등 여러 형태의 다양한 평수의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며 24시간 문을 열고 있는 황토찜질방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