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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10
1. 흥삼의 옛집 / 정원 ( 과거, 낮 )
‘들장미’ 음악이 흐르며... 정원이 있는, 아담한 단독 주택.
흥삼(17세)과 흥수(10세)가 캐치볼하고 있다. 동생의 눈높이에 맞춰 적당하게 던지고, 받아주는 흥삼. 사이좋은 형제다.
2. 흥삼의 옛집 / 서재 ( 과거, 낮 )
턴테이블에서 LP가 돌아간다. (흥삼이 애지중지하던 그 LP)
부르르... 떨며 서류를 들여다보는 흥삼父(40대). 맞은 편에 윤일중 회장(40대)이 무표정하게 앉아있다.
흥삼부 : 이... 이건 말도 안돼... 사기야!
윤회장 : 사기라니... 거기 이사회 결의사항이 안보이나? 주식회사는 주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 대표 이사가 되는 걸세.
흥삼부 : (윤회장 얼굴에 서류를 뿌리는) 닥쳐!!
윤회장 : (차분히 응시하는) ...
흥삼부 : 20년을 하루같이... 맨주먹으로 키운 회사야! 이깟 서류 몇 장으로 뺏어갈 순 없어!
윤회장 : (낮게 한숨 쉬고 일어나는) 그 20년 동안, 자네 친구이자 동업자로서... 나도 할 만큼 했어.
마지막 우정으로 충고하겠네. 추한 꼴 보이지말고 조용히 물러나.
흥삼부 : (벌떡 일어나며) 윤일중!!
순간, 가슴을 움켜쥐며 책상을 짚는 흥삼부! 협심증이 발작했다.
흥삼부 : (쥐어짜듯) 니 놈이 빼돌린 비자금... 다... 알고 있어...
윤회장 : (멈칫! 당황하는) 뭐?
흥삼부 : (더듬거려 서랍을 열며) 전부 폭로하겠어... 넌... 끝장이야.
안색이 변하는 윤회장.
흥삼부, 약병의 뚜껑을 열려다 떨어뜨린다. 주우려고 허리 굽히다가 다시 쥐어짜는 고통! 쿵! 쓰러지는 흥삼부.
3. 흥삼의 옛집 / 정원 ( 과거, 낮 )
데굴데굴 창틀 아래로 굴러오는 야구공. 다가와서 공을 집던 흥삼, 문득 실내를 보다가 멈칫 굳는다.
쓰러져 있는 아버지, 그 앞에 미동없이 서 있는 아버지의 친구!
4. 흥삼의 옛집 / 서재 ( 과거, 낮 )
꿈틀거리는 흥삼부, 약병을 향해 손을 뻗는데 닿지 않는다.
흥삼부 : (고통스러운) 야... 약.... 일중아... 약...
윤회장, 그쪽으로 다가가더니, 흘끔 흥삼부를 본다. 필사적인 눈빛으로 바라보는 흥삼부.
윤회장, 다시 약병을 내려다본다. 그러더니 툭, 발로 찬다. 진열장 아래로 굴러가는 약병.
충격과 분노, 절망으로 일그러지는 흥삼부, 신음만 새어 나올 뿐...
돌아서는 윤회장, 서재를 나간다.
진열장으로 기어가려고 버둥거리는 흥삼부, 한계점에 다다른다.
흥삼 : (뛰어들며) 아버지!! (다가와 부축) 정신 차리세요! 아버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진열장 가리키는 흥삼부.
흥삼, 자세 낮추고 보면 약병이 보인다. 바닥에 엎드린 흥삼, 진열장 아래로 손을 휘젓는.
흥삼 : (다급하고, 초조하고) 잠깐만요! 잠깐만 참으세요...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손 끝. 흥삼, 어깨가 빠져라 팔을 뻗어 더듬거린다. 이가 덜덜 떨리고 눈은 충혈되고...
악착같이 버둥대는 흥삼, 마침내 약병을 손에 쥔다.
흥삼 : (황급히 약병을 열며) 됐어요! (하다가 흠칫 굳는) ...!!
흥삼부 : (이미 숨을 거둔) ...
흥삼 : (아버지를 부둥켜 안고 멍한) 아버지? 약부터 드셔야죠... 눈 떠보세요, 네?
흥수 : (야구 글러브 낀 채 문가에 다가서는, 겁먹은) ...형?
흥삼 : (계속 흔들며) 아버지... 제발... 정신 차리세요! 네? (싸늘해진 시신에 울먹이며) 아버지!!
아버지를 부둥켜 안고 오열하는 흥삼. 영문 모른 채 울먹이며 쳐다보는 흥수.
턴테이블 바늘이 LP 위에서 직직... 잡음을 낸다.
짐승처럼 흐느끼는 흥삼의 울음 소리가 길게 들리며...
5. 흥삼의 옛집 / 정원 ( 과거, 다른 날 낮 )
장례식이 끝난 뒤... 검은 상복에 두건, 완장을 한 흥삼과 흥수가 벤치에 앉아 있다.
훌쩍거리는 동생을 다독이는 흥삼. 끝까지 남아있던 문상객 몇이 돌아가는데...
윤회장이 벤치로 다가온다.
윤회장 : (담담하게) 이럴 때 일수록... 흥삼이 네가 장남 역할을 해야 한다.
흥삼 : (굳은 표정으로 보는) ...
윤회장 : 병석에 누워 계신 어머니도 보살펴 드리고, 동생도 챙겨줘야 하고... 네 어깨가 무겁다.
(명함을 건네며)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 찾아와라.
가만히 명함을 받는 흥삼. 윤회장, 흥삼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돌아선다.
갑자기 명함을 입에 넣고 씹는 흥삼. 놀라서 쳐다보는 흥수.
흥수 : 형... 배고파?
흥삼 : (명함을 질겅질겅 씹는) 흥수야... (윤회장 뒷모습을 노려보며) 저 뒤통수... 똑똑히 봐둬라.
흥수 : (의아해서 보는) 응?
흥삼 : 아버지... 저 놈이 죽였다.
흥수 : ...!
흥삼 : (명함 조각을 퉤! 뱉는, 분노로 타오르는 눈빛) ...
6. 흥삼의 차 안 ( 현재, 낮 )
앞 씬에 이어지며...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어딘가를 바라보는 흥삼.
저만치 선포식을 마친 윤회장이 투자자들과 악수하거나, 배웅을 받으며 건물을 나서고 있다.
그 옆을 따르는 세훈과 정민, 재성과 임원들.
7. 한중 컨벤션 홀 / 건물 앞 ( 낮 )
세훈, 무심코 시선 돌리다 멈칫, 굳는다. 흥삼이 이쪽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온다.
긴장한 세훈, 돌아보는데 윤회장은 아직 다가오는 흥삼을 모르고 있다.
극도로 초조해지는 세훈, 흥삼을 향해 눈짓으로 만류하지만 흥삼은 오직 윤회장만을 응시하며 다가온다.
뒤늦게 흥삼을 눈치채고 가로막는 경호원들. 무리하지 않고 멈추는 흥삼.
흥삼 : (우렁차게) 회장님, 오랜 만에 뵙습니다.
차에 오르려던 윤회장, 건너편의 흥삼을 갸웃해서 본다.
세훈은 입술이 바짝 타고, 정민이나 재성, 임원들은 누구지 싶은...
흥삼 : 저... 기억하시겠습니까?
윤회장 : (어디서 본 듯, 기억을 더듬는) ...?
흥삼 : 곽흥삼이라구 합니다. 재자, 명자 쓰시는 분이 제 아버님 되시구요.
윤회장 : (놀라는) 재명이? 자네가 재명이 아들이란 말인가?
흥삼 : (깊숙이 허리 숙여 인사) 진작에 찾아 뵈었어야 하는데, 인사가 늦었습니다, 회장님.
윤회장 : (당혹스러운) ...
8. 한중 컨벤션 홀 / 접견실 ( 낮 )
마주 앉아 있는 흥삼과 윤회장. 흥삼, 예의바른 태도 속에 자신감이 넘치는 눈빛으로 윤회장을 바라본다.
윤회장 : 우리 회사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걸 알았으면, 내가 따로 신경써 줬을 텐데... 미리 연락하지 그랬나?
흥삼 : 수 십년 만에 불쑥 나타나서 회장님께 폐를 끼칠 순 없잖습니까?
세상에서 공짜가 가장 비싼 법이다... 생전에 아버님께서 그렇게 가르치셨구요.
윤회장 : (흥삼부 얘기에 얼핏 표정) ...
흥삼 : (태연하고 담담한) ...
윤회장 : 자네 모친도 갑자기 돌아가시고... 형제가 보육원에 갔다는 얘기 듣고 내 마음이 참 무거웠네.
죽어서 재명이 그 친구를 무슨 낯으로 보나 싶었지.
흥삼 : 구멍가게나 다름없던 회사를 국내 굴지의 대기업으로 키우셨으니... 아버님도 무척 흡족해하실 겁니다.
윤회장 : 피는 못속인다고, 이렇게 자수성가한 자네 모습을 봤으면 아버님도 대견해하실 걸세.
(문득) 동생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어릴 때부터 꽤 영특해서 재명이 그 친구한테 큰 자랑거리였는데.
흥삼 : (무거워지며) 미국에 유학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윤회장 : ...!!
흥삼 : 제 대신, 부모님을 잘 모시고 있을 겁니다.
윤회장 : (눈을 지긋이 감는) 허어... 어떻게 그런 일이... 유감일세.
9. 한중 컨벤션 홀 / 접견실 앞 ( 낮 )
문 앞에 수행원들이 대기 중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리는 세훈과 정민. 세훈은 접견실 쪽을 바라보며 초조하다.
정민 : 실장님?
세훈 : (돌아보는) ...?
정민 : 어디 불편하세요? 안색이...
세훈 : (표정 고치고 느긋하게 웃는) 정민씨가 걱정해주니까 좋은데요? 화 풀린 거에요?
정민 : (냉랭해지는) 항상 이런 식이죠.
세훈 : 네?
정민 : 자기 감정, 자기 얘기 나올 때마다 빙빙 돌리고, 농담으로 받고...
세훈 : (미소 엷어지며) 뭐가 알구 싶은데요?
정민 : (날이 선) 내가 모르는 건, 뭔데요?
세훈 : 정민씨...
정민 : (입 굳게 다물고, 시선 돌리는) ...
세훈 : (표정 무거워지고) ...
10. 한중 컨벤션 홀 / 접견실 ( 낮 )
진지한 표정으로 목소리를 낮추는 흥삼.
흥삼 : 아버님 돌아가시던 날, 마지막으로 회장님께서 찾아오셨잖습니까?
윤회장 : (내심 긴장) ...그랬던가?
흥삼 : 혹시... 별다른 말씀은 못들으셨습니까? 임종하실 때 제가 옆에 있었는데, 유언 한마디 없이 돌아가셨습니다.
(짐짓 침통한) 자식된 입장에서 그 일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립니다.
윤회장 : (흥삼이 그때 목격한 걸 모르고, 여기서도 확신하는) 글쎄... 당시에 자금 압박이 조금 있었는데...
그게 심장에 무리를 준 게 아닐까 싶네. 그 얘기 말고 특별히 다른 일은 기억나는 게 없구먼.
흥삼 : (아쉬운 표정) ...그랬군요.
윤회장 : (슬그머니 불편한, 흘끔 벽시계를 본다)
흥삼 : (눈치채고, 일어나는) 바쁘신데... 너무 시간을 뺏었습니다.
윤회장 : (일어나고) 앞으로 자주 보세. (손 내밀고) 뭐든 상의할 일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찾아오게.
흥삼 : (형형하게 응시하며) 꼭...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회장님.
윤회장 : (웃고 있지만 속은 꺼림칙한) ...
11. 달리는 차 안 ( 낮 )
행사장에서 돌아가는 길. 뒷자리에 윤회장, 세훈이 앉았고 조수석에는 정민이 앉아 있다.
윤회장 :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강실장.
세훈 : (돌아보는) 네, 회장님.
윤회장 : 그 곽흥삼이라는 친구 말야, 회사는 어떤가?
세훈 : 투자 요건도 이상없고, 자금 사정도 원활합니다. (넌지시) 무슨... 다른 문제라도 있습니까?
윤회장 : (혼자 말로) 어쩐지... 개운치가 않아.
세훈 : (속으로 초조한) ...
윤회장 : 계속 주시하다가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즉시 보고하게. 아무리 사소한 거라도 놓치지 말고.
세훈 : ...알겠습니다.
룸미러로 세훈의 표정을 살피는 정민. 세훈, 무거운 표정으로 다른 생각에 잠겨 있다.
그 표정이 마음에 걸리는 정민.
12. 호텔 외경 ( 저녁 )
펜트 하우스가 있는 호텔 외경.
13. 펜트 하우스 / 엘리베이터 안 ( 저녁 )
꼭대기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태호, 작두가 남긴 편지 봉투를 들고 복잡한 표정이다. 땡, 알람이 울리자 봉투를 품 안에 넣는 태호.
14. 펜트 하우스 / 복도 ( 저녁 )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태호, 사마귀가 지키고 서 있는 문으로 다가간다.
무표정하게 쳐다보는 사마귀.
태호 : 회장님 뵈러 왔어.
사마귀 : 손님이 와 계십니다. 내일 오시죠.
태호 : 중요한 용건이 있어.
사마귀 : 오늘은 아무도 들이지 말라십니다.
태호 : 일단 잠깐 뵙고...
사마귀 : (자르는) 회장님이 지시하면... 그 말씀에 따르는 겁니다. 장태호씨라고 예외는 없습니다.
태호 : 어이, 삐진 거야? 나 때문에 작두 형님 처리 못해서?
사마귀 : (표정 관리하며) 용건은 저한테 말씀하시죠.
태호 : 문지기는 문만 잘 지키면 돼. 용건은 내가 알아서 할 일이구.
사마귀 : (차갑게 노려보는) ...
15. 펜트 하우스 ( 저녁 )
술을 따라주는 흥삼. 잔을 받으면서 내내 형을 응시하는 세훈.
흥삼, 자기 술도 따르고 잔을 든다.
흥삼 : 우리끼리 자축하자. 미래도시 사업으로 첫번째 빗장은 열었으니까, 이제 슬슬 다음 단계로 움직여야지.
세훈 : 왜 그랬어요?
흥삼 : (쓰윽 보는) ...?
세훈 : 무슨 생각으로 윤회장 앞에 나타났냐구요? 전부 망칠 생각이에요?
흥삼 : (웃더니 술 한모금 삼키는) ...
세훈 : 웃을 일 아니에요. 윤회장이 형을 조사해보래요. 아무래도 꺼림칙하다 싶은 거죠.
흥삼 : ...잘됐구나.
세훈 : 뭐라구요?
흥삼 :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한테 맡겼으니 그 뒷조사는 하나마나지. 더 잘 된 일은... 그 인간도 악몽을 꾸게 됐다는 거야.
(서슬 퍼런 눈빛으로) 이제는 꿈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지옥을 맛보게 될 거다.
세훈 : (표정) ...!
16. 펜트 하우스 / 지하 주차장 ( 저녁 )
자기 차로 걸어가는 세훈. 기둥 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시선... 태호다.
세훈의 차가 출발한다. 기둥 뒤에서 걸어나오는 태호, 멀어지는 차를 유심히 바라본다.
영칠 : (소리) 강세훈이란 남자... 3살 때 캐나다로 입양됐어요.
17. 상가 사무실 ( 낮 )
영칠, 모니터 보며 설명하고, 태호는 출력물의 내용을 살핀다.
영칠 : 양부모가 사업에 실패해서 이혼하고, 강세훈은 17살 때 가출한 걸루 나와 있네요.
태호 : (영문 서류 보다가 의아한) 이건 뭐야? 마약 소지랑 차량 절도 전과도 있는데? 이러고도 아이비리그 장학생이 됐단 말이야?
영칠 : 벼락이라도 맞았나부죠.
태호 : 뭐?
영칠 : 거 왜, 어떤 남자가 벼락 맞고 천재되는 영화 있잖아요. 못봤어요?
태호 : (어이없는, 화제 돌리며) 스티븐 김은 알아봤어? 킴스 무역은?
영칠 : (뜨악하게 보는) 형은 내가 자판기로 보여요? 버튼만 누른다고 세상의 모든 정보가 덜커덕! 튀어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태호 : (귓등으로 흘리며) 곽회장 가족하고 친인척도 조사해 봐. 될 수 있는 대로 자세히... (시계 보고) 2시까지 부탁해.
영칠 : (짜증나는) 태호형!
태호 : (무시한 채 서둘러 문으로 가는)
해진 : (마침 들어서는) 어! 태호씨, 저녁때 별 일 없지?
태호 : 왜?
해진 : 오늘 오십장 귀빠진 날이야. 이따 할매 식당에서 삼겹살 파티할 건데.
태호 : 미안... 자기들이 축하해줘. (생각난 듯, 지갑에서 돈 꺼내주는) 케익도 사고, 선물도 알아서 부탁해.
해진 : (분주히 나가는 태호를 보고, 김샌 표정) 뭐냐, 쟤? 무슨 용무가 저렇게 바뻐?
영칠 : (신경질적으로 키보드 두드리며) 형이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요?
해진 : (손에 쥔 지폐를 본다, 입맛이 쓰고) 아놔... 공돈 생겼네.
18. 폐차장 ( 낮 )
걸어오는 나라, 의아해서 본다. 폐버스 앞 빈 터에 노숙자 몇 명이 박스를 깔고 누워 있다.
하품하던 양씨가 나라를 보자 반색한다.
양씨 : 나라양이 여까정 웬일이래?
나라 : (둘러보며) 어떻게 된 거에요? 왜 여기서들...
양씨 : (배를 긁으며) 남들은 겨울이 노숙하기 힘든 줄 알지만, 실은 정반대야. 날 더워지면 위생에 안좋다, 냄새난다 그러믄서
공원에서두 쫓아내구 지하도에서 자기두 어렵거던.
나라 : 아저씨가... 여기서 자라구 했다구요?
양씨 : 대신에 술은 마시지 말래. 그래두 지붕 있는 데서 자는 게 어디야?
종구 : (그때 버스에서 내려서며, 버럭) 하루 종일 퍼질러 잘 거야? 나가서 구걸을 하든, 해바라기를 하든 눈꼽 떼고 움직여!!
주섬주섬 일어나는 노숙자들.
돌아보던 종구, 나라와 시선 마주친다.
19. 폐버스 안 ( 낮 )
나라, 스카치 테이프로 붙인 메모지를 내민다. 멀뚱히 쳐다보는 종구.
나라 : 응급처치 겨우 했어요.
종구 : 시간이 남아돌면 주사 놓는 거나 연습해. 니 주사, 아프더라.
나라 : 미주씨라는 분,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따님도 만나구, 미주씨한테도 사과하세요. 안그럼 저두 아저씨한테 실망할 거에요.
종구 : (물끄러미 보는) ...
나라 : (재촉하는) 네? 아저씨...
종구 : 태호 녀석하구 잘 안되냐?
나라 : (표정) 지금 아저씨 얘기하구 있거든요.
종구 : 그 녀석, 똘똘한 척 굴어두 미련 곰탱이다. 봉사 차원에서 곰 한마리 키운다, 생각해.
나라 : (당황하며 발끈) 미련한 걸루 치면 아저씨가 갑오브갑이죠! 한 여자를 그렇게 오랫 동안 기다리게 하구, 힘들게 만들구...
그거 정말 빵점이에요!
종구 : ...알어. 나두 내가 빵점인 거 아니까 화내지 마라. 정 퍼붓고 싶으면 태호를 들볶든가.
나라 : 몰라요! 아저씨두, 태호씨두... 다 밥맛이야!
메모지를 나꿔채는 나라, 쿵쾅대며 버스를 내려간다.
침상에 드러눕는 종구, 멍한 시선으로 천장을 본다.
20. 달리는 차 안 - 펜트 하우스 ( 낮 )
골프 웨어를 입은 미주, 운전하고 있다. 낯빛이 어두운 표정에서...
/ 9부 42씬. 할매 식당.
미주 : (불안한) 회장님하구... 맞서지 말아요.
종구 : (굳은 채, 미소) 싸우려는 게 아냐. 살아야겠다는 거지.
(일어나는) 언젠가 은지를 찾을 준비가 됐을 때... 고맙다는 말은 그때 하마.
/ 낮게 한숨 쉬는 미주. 핸드폰이 울리자 핸즈프리 켜는.
미주 : (목소리 가다듬고) ...가고 있어요.
/ 들장미 LP를 틀어놓은 실내. 흥삼, 소파에 앉아 통화 중.
흥삼 : 이리 올 거 없이, 바로 그쪽으로 가. 주소는 알지?
미주 : ...네.
사마귀 안내 받으며 태호가 들어선다. 통화하면서 앉으라고 손짓하는.
흥삼 : 오늘은 간만 살짝 보는 거다.
미주 : ...끊을께요.
전화를 끊는 미주, 입술을 깨문다. 속도를 올리는.
21. 펜트 하우스 ( 낮 )
테이블에 찻잔 놓아주는 사마귀, 흘끔 태호를 본다. 전날 일은 모른 척, 히죽 웃어 보이는 태호.
사마귀, 표정없이 돌아서고.
흥삼 : 어제 밤에 왔었다면서?
태호 : (둘러대는) 별 거 아닙니다. 그동안 미래도시 프로젝트에 쓴 경비를 뽑았는데, 그거 검토해보시라고 들렀습니다.
흥삼 : (난 또 뭐라고... 웃음) 앞으로 그런 비용은 니 선에서 처리해. (생각 난 듯,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는) 받아라.
태호 : (의아해서 보는) ...?
흥삼 : 보너스야. 그리구, 한 사나흘 푹 쉬어라. 정사장 처리하고 곧장 미래도시 업무까지... 내가 좀 심하게 부려먹었다 싶더라.
한중그룹 계약은 일단락 됐으니까 아무 생각 말구, 며칠 머리나 식혀.
태호 : 괜찮습니다.
흥삼 : 너 좋으라고 쉬라는 거 아니다. 앞으론 코피 터지게 일만 하게 될 거야. 휴가도 명령이니까 쉬라고 할 때 쉬어.
태호 : (봉투 넣으며) ...알겠습니다.
흥삼 : (흡족하게 보는) 그래야지.
편안하게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 흥삼. 일어나는 태호, 돌아가는 LP를 봤다가, 흥삼의 표정을 살피는.
태호 : ...회장님.
흥삼 : (눈 감은 채) ...음.
태호 : (조심스레) 이 음악, 베르너의 들장미... 맞죠?
흥삼 : (눈을 뜨고 보는) ...?
태호 : 유난히 즐겨 들으시던데... 그럴 만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흥삼 : (미소 속에 날카로운) 이유라니... 음악을 꼭 이유가 있어야 듣나?
태호 : (표정 관리하며) 저도 좋아하는 곡이거든요.
흥삼 : 그래? ...좋은 곡이지. 생전에 우리 아버님이 즐겨 들으셨다.
태호 : (스치는 눈빛) ...!
흥삼 : (읊조리듯, 멜로디를 실어) 웬 아이가 보았네... 들에 핀 장미화...
기분 좋은 흥삼, 흥얼거리면서 눈을 감는다.
태호, 가만히 지켜보는...
22. 골프 연습장 / 주차장 ( 낮 )
연습장으로 향하는 재성. 골프백 멘 비서가 뒤따르고...
무심코 시선 돌리던 재성, 눈빛이 반짝! 섹시한 골프 웨어를 입은 미주, 트렁크에서 골프백 꺼내느라 씨름 중이다.
재성 : (어느새 다가선) 도와 드릴까요?
미주 : (한숨 돌리며) 그래 주시면 고맙죠.
재성 : (골프백 꺼내주며) 단골이세요? 이 연습장에선 처음 뵙는데...
미주 : 가끔 와요.
재성 : (씨익 웃는) 저는 매일 와야겠는데요? 다음에 또 뵈려면...
미주 : (적당히 흘리는 미소) ...
23. 상가 사무실 / 계단 ( 낮 )
생각에 잠긴 채 계단 올라오는 태호. 갑자기 우당탕 소리나며...
해진 : (소리) 죽을라구 환장했냐!!
태호 : (흠칫) ...?
24. 상가 사무실 ( 낮 )
씩씩거리는 해진을 오십장이 뜯어말리고, 한쪽에 선 영칠은 거친 손길로 백팩에 짐을 처넣고 있다.
오십장 : (해진을 뒤로 끌어 당기며) 어허! 워째 이려, 한식구끼리!
해진 : 저 새낀 식구도 아냐! 싸가지라군 밥 말아처먹은 놈!
영칠 : 그럼 뭐, 형이 잘했어요!
태호 : (들어서는) 뭐야! 왜들 그래!
해진 : (오십장 뿌리치고 옷을 털며) ...됐어. 몰라두 돼.
태호 : (영칠을 보는) 무슨 일이야?
영칠 : (억울한) 나보구 자꾸 해킹하라잖아요! 도박 사이트에서 배팅했다 깨졌다구!
태호 : (멈칫, 해진을 보는) 뭐?
해진 : (짜증스러운) 그냥, 그렇게 됐어. 큰 돈은 아닌데... 좀 손해를 봐서...
영칠 : 그런 불법 사이트는 무조건 당하게 돼 있다, 내가 그랬죠?
해진 : (순간 불끈) 야 이 자식아! 그렇다구 남은 캐쉬 다 뿌리고, 계정까지 폭파해? 컴퓨터 좀 만진다고 오냐오냐했더니...
영칠 : 형 노름하는데 밑 닦아줄라고 컴퓨터 배운 거 아니거든요?
해진 : 뭐야 임마!
태호 : 조용히 해! (골치아프다, 머리를 북북 긁고) 어디 가려구?
영칠 : 몰라요. 다 꼴보기 싫어.
해진 : (소파에 앉아 코웃음) 맘대루 하라 그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태호 : (버럭) 입 다물라니까!
해진 : (태호를 노려보는) ...
태호 : (영칠을 돌아보는, 신경이 곤두선) 진짜 갈 거야?
영칠 : (원망 섞인) 다들 그러는 거 아니에요. 말로는 형님 동생이라면서 사람을 호구 취급하고 실컷 부려먹고...
오십장 : 음마? 야가 생사람 잡네? 우덜이 언제 널 무시했다고?
영칠 : 됐어요! (백팩 둘러매고 문으로 향하는)
태호 : (굳은) 영칠아!
영칠 : (돌아보는, 부루퉁) 태호형이 그동안 등 따시고 배 부르게 해준 건 고마운데, 나두 내 밥값은 했어요.
(쾅! 소리나게 문 열고 나가는)
오십장 : (따라나가며) 영칠아! 우짤라고 그려! 어이!
찌푸리며 해진을 돌아보는 태호. 해진, 심드렁히 신문을 뒤적거리는.
태호 : 이제 숨 돌리게 됐다 싶으니까 손이 근질거려? 다음엔 카지노에 출근 하려구?
해진 : (이죽거리며) 돈이 없지, 카지노가 없나? 널린 게 카드 테이블인데.
태호 : 도대체 언제 정신 차릴 거야?
해진 : 거기서 스돕! (신문을 척척 접으며) 교훈, 충고, 간섭... 이런 거 딱 질색이거든?
(일어나며) 내가 태호씨 쫄따구도 아니고, 나도 영칠이만큼 내 밥값은 했어. 그러니까 여기까지.
딱딱하게 못박고, 사무실 나가는 해진.
짜증이 치미는 태호, 소파에 털썩 몸을 묻는다.
25. 지하도 일각 ( 낮 )
구석에 박스를 까는 영칠, 그러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무표정하고, 낯선 얼굴들.
옆에서 병나발 부는 최군을 돌아보는 영칠.
영칠 : 못보던 사람이 많네? 다들 어디 갔어요?
최군 : (남은 술 털어 마시며) 요새 단속이 심해. 흩어져서 영등포에두 가고, 종각도 가고...
양씨 아저씬 종구 형님네 폐차장에서 지내구.
영칠 : ...폐차장?
그때 지하도 저쪽에서 악어가 부하 몇 거느리고 거들먹대며 온다.
긴장하는 영칠, 모른 척 등지고 돌아눕는다.
악어 : 어이, 거기 신삥이들. 뭐하구 자빠진겨? 손에 손잡고 등본 떼러 가야 쥐.
(둘러보며) 지난 번에 건너 뛴 넘들도 궁뎅이 들어라... (하다가 영칠을 발견하고) 월래?
(씨익 웃더니 다가가서 발로 툭툭) 아그야. 너 시방 여서 뭣허냐?
영칠 : (시선 피하며 일어나 앉는) ...
악어 : 장태호 똘마니 하다가 짤렸냐?
영칠 : (부투룽) 아니거든요?
악어 : 기든 아니든 알 바 아니고, 어여 인나라.
영칠 : ...?
악어 : 뭘 땡글땡글 쳐다보는겨? 주민센타 가서 등본 떼자니께.
영칠 : (머뭇머뭇) ...싫은데요.
악어 : ...싫어? (부하들 돌아보며 웃는) 야가 싫단다.
(돌아서더니 영칠 앞에 쪼그려 앉는, 뺨을 툭툭 치며) 뒤지게 맞구 갈텨? 곱게 갈텨?
영칠 : (붉으락 푸르락, 참는) ....
26. 상가 사무실 ( 낮 )
컴퓨터 작업 중인 태호. 옆에는 영칠이 조사했던 세훈 관련한 영문 자료가 펼쳐져 있다.
검색창에 ‘Steven Kim'을 넣고, 다른 창을 열어서 ’Kim's Trade'를 쳐보고... 결과가 신통치 않다.
피로한 듯 마른 세수를 하는 태호, 일어나서 서성거린다. 그러다 문득 실내를 둘러본다. 텅 빈 사무실이 유독 휑하게 느껴지는...
태호, 자켓을 들고 나간다.
27. 폐차장 ( 낮 )
걸어오는 종구. 자리 펴고 쉬던 노숙자 몇이 인사한다.
구석 자리에 영칠, 눈두덩이 멍들고, 입술이 터졌다. 혀를 끌끌 차는 양씨, 밴드를 붙여주는데...
영칠 발견하고 의아한 종구, 다가선다.
종구 : 뭐야, 너? (얼굴의 상처를 보더니) 싸웠냐?
영칠 : (멋적게 보는) ...
종구 : 싸움질 할 거면 여기서 나가.
양씨 : 아니, 그게 아니구... 악어가 행패를 부린 모양이여. 등본 떼는 거 땜에... (영칠을 돌아보며) 맞지?
영칠 : (억울하고 서러운) 우리 아부지가... 이름 석자는 귀하게 쓰라구 했는데... (주르륵 눈물 흐르고)
종구 : (무표정하게 보다가) ...일어나.
영칠 : (소매 눈물 훔치고 보는) ...
종구 : 여기서 울고 자빠져 있으면 악어가 콧방귀나 뀌겠냐? (어슬렁거리며 앞장 서는) ...따라와.
영칠 : (당황스럽고) ...
28. 다방 안 ( 낮 )
여종업원을 끼고 히히덕거리는 악어. 옆에서 부하가 등본서류와 주민증을 추리고 있다.
문이 열리고 종구와 영칠이 들어선다. 뜨악한 눈빛으로 노려보는 악어와 부하들.
종구, 입구쪽 자리에 걸터 앉고.
종구 : 가서 말해. 니 꺼 돌려 달라구.
영칠 : (긴장) 제... 제가요?
종구 : 니 물건 찾으러 왔잖아. 두들겨 맞든, 발로 밟히든 니가 직접 받아내. (팔짱 끼고 눈 감으며) 난 한숨 잘 테니까...
망설이는 영칠, 하는 수 없이 쭈볏거리며 악어쪽으로 간다.
악어 : (비릿하게 보는) 쌈박질 쫌 하는 동네 성님 모시구 왔어유?
(저만치 종구를 흘끔 보고) 근데 워쩔겨? 느그 성님 주무시나 본데?
영칠 : (겁나지만 겨우 내뱉는) 도... 돌려줘요. 내 주민증하고 등본.
악어 : (웃으며) 워메... 삶은 호박에 이빨도 안들어가는 소리허구 있네.
(영칠의 배를 쿡쿡 찌르는) 니가 달라구 허믄, 나가 주는 것이여? 엉?
영칠 : 주세요...
하는데 퍽! 앉은 자세에서 걷어차는 악어. 우당탕, 나가 떨어지는 영칠.
종구는 눈 감은 채 관심도 없다.
비틀비틀 일어나는 영칠.
악어 : 워치케 허까? 종구 성님 체면 봐서 줄 수도 있는디...
영칠 : 형님하군 상관없어요. 내 명의니까... 내가 받으러 온 거에요.
악어 : 너 하나 돌려 받았다구 소문나믄 이 눔, 저 눔 다 나설 거 아녀? 고것은 사업상 곤란허지야.
영칠 : (용기내서) 사업같은 거 몰라요. 돌려줘요, 내 꺼.
악어 : (미소가 사라지며) 오늘 푸닥거리 한판 해야 쓰것네...
29. 거리 일각 ( 낮 )
초조한 표정으로 뛰어오는 해진, 두리번거린다. 저만치 다방 간판이 보이자 서두르는.
30. 다방 안 ( 낮 )
쿵! 박차듯 들어서는 해진. 흠씬 두들겨 맞은 영칠이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악어가 가쁜 숨을 씩씩대고 있다.
가만히 눈을 뜨는 종구.
해진 : (다가가서 영칠을 부축하는) 영칠아!
악어 : 넌 또 뭐여? 세트로 작살나구 싶어서 온 겨?
해진 : (흠칫! 노려보는데) ...
종구 : (일어나서 다가오는) 그만하면 됐다.
악어 : (쳐다보면) ...?
종구 : 얘 껀 돌려 줘. 매값은 했잖아.
악어 : 성님!
종구 : 작두가 은퇴했다구 너무 설쳐대지 마라. 나... 서울역 넘버 투다.
악어 : (종구 눈빛에 한풀 꺾이는) ...
종구 : (영칠에게) 일어나. 니 손으로 받아 가야지.
해진 부축 받아 겨우 일어나는 영칠, 떨리는 손을 내민다.
인상 찌푸리는 악어, 부하에게 턱짓. 영칠의 신분증과 등본 찾아서 건네는 부하.
영칠, 신분증에 박힌 자기 얼굴과 이름을 보자 가슴이 짠해지는.
31. 무료 병원 / 진료실 ( 낮 )
나라가 영칠의 상처를 소독한다. 나라 손길이 황송하지만 쓰라릴 때마다 아아! 엄살 피우는 영칠.
한심하게 보는 종구와 해진.
나라 : (쯔쯔, 혀를 차며 영칠에게) 안하던 싸움을 하구 그래요?
해진 : 싸움은 개뿔... 그냥 두들겨 맞은 거지. 나라짱! 더 쓰라린 걸루 확 문 질러버려!
영칠 : (나라 앞이라 허세) 끄덕 없어요. 악어 그 자식, 순 물주먹이야.
해진 : 에라이 삼식아! 싸움도 젬병인 게 무슨 똥배짱으로 거길 가?
영칠 : 형은 어떻게 알구 왔어요?
해진 : 양씨가 가르쳐주더라. 너, 종구 형님한테 등 떠밀려 갔다구.
영칠 : (종구를 쳐다보면) ...
종구 : (하품하며 일어나는) ...
영칠 : 형님.
종구 : (나가려다 돌아보는) ...?
영칠 : 저는 해진이형하구 쪽방으로 갈께요.
종구 : (심드렁히) 그러든가.
영칠 : (꾸벅 인사) 오늘... 고맙습니다.
종구 : (흐흥 코웃음으로 대꾸하고 나가려는데)
해진 : 형님! 오늘 오십장 귀빠진 날인데, 이따 식당으로 오세요!
종구 : 집두 절두 없는 놈들이 생일 챙겨먹냐... 일 없다. (뒷정리하는 나라를 슬쩍 보는) 나라 잔소리도 무섭구.
나라 : (멈추고 흘겨보는) ...!
종구 : 저거 봐라, 저거. 눈으로 사람잡겠다. 나는 됐으니까 태호나 불러. 나라가 목이 빠져라 기다리니까.
나라 : (참다 못해 터지는) 아저씨!!
쓰윽 나가버리는 종구. 약 오른 나라, 소독약 쟁반 챙겨서 들어가버린다.
아쉬운 영칠, 나라가 사라진 안쪽을 기웃거리는데.
해진 : ...영칠아.
영칠 : (돌아보는) ...
해진 : 아깐... 내가 미안했다.
영칠 : 나두 잘한 건 없지 뭐. 근데... 노름은 끊어야 돼, 형.
해진 : 아... 자식, 또 그 소리.
영칠 : 백원 따면 천원 잃는 게 그 판이라니까!
해진 : 사람은 타고난 운빨이라는 게 있거든? 그게 뭐냐면 말야...
티격태격하는 해진과 영칠. 그 위로, 두 사람이 목이 터져라 불러 제끼는 트로트 노래 소리!
32. 할매 식당 앞 ( 저녁 )
우두커니 서 있는 태호. 식당 안에서 해진, 오십장, 영칠의 노래 소리가 들린다.
어색한 느낌 때문에 선뜻 들어서지 못하는 태호.
33. 할매 식당 ( 저녁 )
얼큰하게 취한 해진, 오십장이 어깨를 두른 채 노래 부르고, 영칠은 막춤을 추며 분위기를 돋군다.
인자한 미소로 지켜보는 조회장.
할매 : (주방에서 나와서는) 식당 떠내려 가것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냐!!
일동 : (노래와 춤이 뚝! 멈추는) ...
나라 : (찌개 뚝배기 내가며) 할머니 목소리가 더 크거든?
할매 : (입술을 삐죽) 안주 모질라? 두루치기라두 혀줘?
조회장 : (돌아보며)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지요.
할매 : 음마! 문자꺼정... (투덜대며 주방으로 들어가고)
나라 : (뚝배기 놓아주며) 생일 축하해요, 아저씨. 이건 서비스.
오십장 : 고마워서 워쩐댜.
나라 : (영칠이 술잔을 들자, 뺏으며) 술 안돼요. 아까 소독했잖아요.
영칠 : (심쿵하며 설레는) 거... 걱정해주시는 건 고마운데... 저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그때 문이 열리고 태호가 들어선다. 멈칫, 쳐다보는 나라.
해진 : (반기며 다가가는) 어서 와, 태호씨! 역시, 조용필은 피날레에 등장해야지! (잡아 끌며) 앉어! 이제부터 본게임이거든.
태호 : (앉지 않고) 생일이라면서요?
오십장 : (멋적은) 잉. 요것이 몇 년만에 챙겨묵는 생일인가 모르것네.
해진 : 아무 걱정 마쇼! 내가 대박만 터지면 다들 환갑 잔치까지 챙겨줄께!
조회장 : 차이사, 나는 환갑 지났네.
해진 : (과장되게 눈을 동그랗게 뜨는) 아직 50대 아니세요? 언빌리버블!
다들 기분좋게 웃는데 태호, 나라를 흘끔 본다. 시선 피하고 빈 그릇 치우는 나라.
태호 : 영칠아. 부탁했던 자료, 언제까지 되겠어?
영칠 : (끄덕이는) 내일 사무실로 갈께요.
태호 : 고마워. (둘러보며) 그럼, 많이들 드세요.
해진 : 어? 그냥 가는 거야? 태호씨!
빈그릇을 주방에 갖다 놓던 나라, 돌아본다. 식당을 나가는 태호.
34. 식당 근처 / 골목 ( 저녁 )
걸어오는 태호. 앞치마를 두른 채 뛰어오는 나라.
나라 : 장태호씨!
태호 : (멈추고 돌아보는) ...?
나라 : (다가와서 숨을 고르고, 흘겨보는) 사람이 왜 그래요? 아저씨한테 생일 축하한다는 말 했어요? 안했죠?
태호 : (피식) 그거 혼내려구 쫓아온 거에요?
나라 : 아뇨. 태호씨한테 한번 더 기회를 주려구요.
태호 : 네?
나라 : 누가 그러던데요? 장태호씨, 알구 보면 미련 곰탱이라고... 그래서 제가 태호씨한테 쑥하고 마늘 좀 주려구요.
곰의 탈을 벗고 사람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태호 : (어이없는) 나라씨...
나라 : 종구 아저씨 따님, 어디 사는지 알았어요.
태호 : (표정) ...!
나라 : 아저씬 직접 찾아가는 게 겁나나봐요. 그래서... 제가 슬쩍 가보려구요.
어쩌면 주소가 틀릴 수도 있으니까 미리 확인도 할 겸... 주말에 같이 가요.
태호 : (차분하게) 썩... 좋은 생각은 아닌데요.
나라 : (멈칫) ...어째서요?
태호 : 제 3자가 나설 문제가 아니에요. 종구 형님이 준비가 안됐으면... 될 때까지 본인한테 맡겨둬야죠.
나라 : (고개 젓는) 옆에서 도와주면, 그 준비가 더 빨리 될 수도 있죠. 이번 토요일이에요. 결정은 태호씨가 해요.
할 말 마치고 돌아서서 가는 나라. 태호, 허... 해서 쳐다보는.
35. 폐차장 근처 ( 저녁 )
종구, 미주의 차를 발견하고 멈춰선다. 차에서 내리는 미주, 종구를 바라본다.
승용차 양편에 떨어져 선 채 바라보는 두 사람.
종구 : (무표정한) 이 시간에 어떻게 왔냐? 영업 안해?
미주 : 마담 하루 빠진다고 망하는 가게 아니에요. 아저씨야말로 어떻게 된 거에요?
(폐차장 돌아보며) 사람 싫어하는 사람이 앞마당까지 내주고.
종구 : 글쎄다... 저 인간들하구 부대끼다보면 좋아질 지도 모르지.
미주 : 그런 아저씨, 상상이 잘 안되는데요.
종구 : (입술만 웃는) ...나두 그래.
미주 : (웃지 않고 보다가) ...꽃게탕에 소주나 한잔 할래요?
종구 : (멈칫, 그러나 표정 가다듬고) 술 끊었다니까.
미주 : 그냥 해 본 소리에요. (차에 오르려는데)
종구 : 너... 무슨 일... 있냐?
미주 : (쓰게 웃는) 아뇨. 오늘 기분 좋아요. 재벌 2세 만나서 골프 레슨도 받구, 차도 같이 마셨는 걸요.
그거 자랑이나 할까 싶었죠.
종구 : (물끄러미 보는) ...
미주 : (겨우 웃음을 담고) 갈께요.
차에 오르는 미주, 시동 걸고 출발한다. 우두커니 바라보는 종구.
36. 더 클럽 / 홀 ( 저녁 )
내실 앞을 지키고 서 있는 사마귀. 안주 쟁반을 든 종업원이 지나간다.
손짓으로 부르는 사마귀.
사마귀 : 마담은 아직두 연락 안됩니까?
종업원 : 그게... 아까부터 전화기가 꺼져 있어서...
사마귀 : 다시 연락해보세요. (내실을 돌아보는)
37. 더 클럽 / 내실 ( 저녁 )
단 둘이 마주 앉아 있는 흥삼과 세훈.
흥삼 : 설계도는 다음 주까지 완성해야 된다. 장태호, 휴가 끝나고 오는 대로 실탄 확보에 투입할 거야.
덩어리가 크니까 꼼꼼하게 체크하고...
세훈 : (한귀로 흘리며 다른 생각) ...
흥삼 : (멈추고 보는) 듣구 있냐?
세훈 : (표정 고치고) ...형.
흥삼 : 2단계 성패는 너한테 달렸어. 자금은 내가 움직여도 설계가 탄탄하지 않으면 전부 헛수고다.
세훈 : 그건 아는데... (잠시 말을 고르는) 조금 속도 조절을 해야 되지 않나 싶어서...
흥삼 : (뜨악하게 보는) ...
세훈 : 윤회장, 만만치 않은 상대에요. 부사장도 기전실이나 내 동향을 수시로 체크하는 눈치고...
흥삼 : (말 자르는) 윤재성은 신경쓰지 마. 벌써 작업 들어갔다.
세훈 : (놀라서 보는) 네?
흥삼 : 질문, 고민... 그런 거 할 필요 없어. 큰 그림은 내가 그릴 테니까 넌 스케줄대로만 움직이면 돼.
세훈 : (한풀 꺾이며 시선 떨구는) ...
흥삼 : (미심쩍게 보다가) 윤회장 딸내미 때문에 그러냐?
세훈 : (멈칫, 얼른 표정 고치고) 아니에요, 그런 거.
흥삼 : (냉랭한) ...그래. 아니라야 될 거다. (다짐 받고, 스스로 다지듯) 칼이 짧은 사람은 한발 더 들어가서 찌르는 거야.
니가 뭘 위해 공부하고, 내가 뭐 때문에 이 바닥을 버텨 왔는지... 우리 그것만 기억하자.
흥삼의 눈빛에 눌리는 세훈,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노크 소리 나고 사마귀가 들어선다. 다가와서 흥삼에게 나즈막한 귓말로 보고하는 사마귀.
흥삼, 미간을 찌푸리는...
38. 포장마차 / 노천 테이블 ( 저녁 )
취기로 눈빛 흐려진 미주, 테이블에 턱을 괸 채 소주잔을 비운다. 벌써 빈 병이 두 개쯤...
흘러 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후... 한숨 쉬는 미주, 다시 잔을 따르려는데...
사내1 : (능글거리는 미소) 저희랑 합석하시죠?
고개 드는 미주. 사내1이 작업 걸러 왔고, 사내2, 3은 미주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인다.
사내1 : 포차가 좀 그러면, 분위기 좋은 데로 옮겨두 되구요.
미주 : (피식 웃고) 올 사람, 있어요.
사내1 : 에이, 이런 미인을 두 시간째 혼자 냅두는 남자면 와두 별 볼일 없죠. (미주 어깨를 짚으며) 그러지 말구 저희랑...
하는데 누군가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멈칫, 돌아보는 사내1.
흥삼이 서늘한 표정으로 서 있다.
미주 : (흐흥 웃는) 회장님이 별 볼일 없는 남자래요. 어떻게 알았지?
싸늘하게 사내1을 노려보는 흥삼. 슬그머니 미주 어깨에서 손을 치우는 사내1, 김샌 표정으로 돌아간다.
무뚝뚝하게 미주를 돌아보는 흥삼. 미주, 흔들거리면서 잔을 따른다.
흥삼 : 윤재성은?
미주 : 부재중 전화만 스물 세 통... (흐릿하게 쳐다보는) 되게 궁금했나봐요?
흥삼 : 니 주사 받아줄 기분 아냐. 어떻게 됐어?
미주 : 만났구, 꼬셨구, 명함까지 주고 받았죠. 물장사한다 그러니까 표정이 밝아지던데요?
침대로 데려가는 시간이 절약되겠다 싶은 거죠. (냉소를 담아) 이만하면 잘했어요, 나?
흥삼 : 날 원망할 거 없어. 니가 알고 싶은 걸 손에 넣는 조건으로, 내 거래를 받아들인 사람은 너야.
미주 : 알아요. 그게 회장님 방식이죠. 겉으론 선택이고 거래지만 결국 상대가 거부할 수 없게 몰아붙이는 거...
(멍하게 술잔을 들고 보며) 그리구 항상... 내가 뽑는 제비는 꽝만 나오구요.
잔을 털어 넣는 미주.
무표정하게 보던 흥삼, 의자를 끌어다 앉는다.
흥삼 : 류씨한테... 딸내미 주소는 전해줬냐?
미주 : 찢어 버렸어요. 내가 보는 앞에서...
흥삼 : (표정) ...!
미주 : 아저씨... 뭔가 모르게 변했더라구요. ...낯설었어요.
(문득 눈매 가늘어지는) 설마... 회장님 계획이었어요? 처음부터 이렇게 될 줄 알구?
흥삼 : 과대평가하지 마. 사람 마음까지 조종하는 능력은 없어.
미주 : (원망스레 응시하는) ...
흥삼 : (일어나며) 다 마셨으면 일어나. 태워다 줄 테니까.
미주 : (조용히, 힘을 실어) 곽... 흥삼...
흥삼 : (멈칫 보는) ...!
미주 : (테이블 짚고 일어난다, 똑바로 바라보는) 날... 언제 놔줄 거니?
흥삼 : (차분히 보는) ...놔주면? 갈 데는 있구?
미주 : (파르르 떨며) 당신은... 악마야.
흥삼 : (태연하고) ...알아. 여기가 지옥이거든.
원망과 서러움으로 노려보는 미주. 담담하게 마주 보는 흥삼.
그런 두 사람 위로 배경 음악이 깔리며.
39. 편집 화면
묵묵히 운전하는 흥삼. 조수석의 미주, 시트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었다. 어깨가 스르르 기우는가 싶은데...
오른 손을 뻗는 흥삼, 불편하지 않도록 가만히 받쳐준다. 그러면서도 말없이 앞만 바라보는...
/ 늦은 밤, 폐차장.
종구가 버스에서 내려선다. 예전보다 늘어난, 10여명의 노숙자들이 흩어져서 자고 있다.
수심이 서린 눈빛으로 그들을 둘러보는 종구.
/ 할매 식당.
해진 일행이 떠난 뒤, 지저분한 테이블. 빈그릇을 쟁반에 옮겨담던 나라, 멈추고 의자에 걸터 앉는다.
남은 술을 따라서 한잔 홀짝 털어넣는 나라, 멍하게 태호를 생각한다.
/ 상가 사무실.
어두운 실내. 소파에 드러누워 세훈의 서류를 뒤적이는 태호.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서류를 얼굴에 덮어버리는...
40. 흥삼의 옛집 / 전경 ( 아침 )
화면 바뀌면... 단독 주택 전경. 대문 앞에 흥삼의 차가 서 있고...
41. 흥삼의 옛집 / 서재 ( 아침 )
아버지가 쓰던 의자에 앉아있는 흥삼.
책장이나 가구에 먼지를 가리기 위한 시트가 덮여 있고... 옛 기억을 더듬는 시선으로 망연하게 둘러보는 흥삼.
숙취때문에 초췌해보이는 미주가 들어선다.
흥삼 : (돌아보는) 벌써 일어났니?
미주 : (의아한, 목은 잠기고) 어떻게... 된 거에요?
흥삼 : 자는데 불편하진 않았을 거다. 가끔씩 청소 아줌마가 오거든.
미주 : 여기가 어디냐구요?
흥삼 : (씁쓸히 웃는) ...우리 집.
미주 : (표정) ...!
42. 흥삼의 옛집 / 정원 ( 아침 )
정원 한쪽의 벤치. 커피를 한모금 마시고 내려놓는 흥삼.
미주는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흥삼을 보고 있다.
흥삼 : (남의 일처럼 담담한) 이 집에서 내가 태어났고, 또 이 집에서 부모님 두 분이 돌아가셨다.
미주 : ...!
흥삼 : 근데... 부모를 잃었다고 고아가 되는 건 아냐. 살던 집까지 잃어야 진짜 오갈 데 없는 고아가 되는 거지.
(일어나서, 정원을 둘러보며) 3년 전에... 시세보다 두 배 넘게 쳐주고 이 집을 되찾았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니까...
미주 : ...몰랐어요.
흥삼 : (짧게 미소 짓더니, 표정) ...끝내야 하는 일이 있어. 그게 마무리되면 (미주를 돌아보는) 널... 놔줄 생각이다.
미주 : (표정) ...!!
흥삼 : 이제 대답이 됐냐?
미주 : (믿기지 않아 일어나는) ...진심이에요?
흥삼 :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그 일만 매듭 짓고나면 펜트하우스는 정리 할 거구, 그 담엔 여기 들어와 살 생각이야.
(미주를 돌아보는) 만약 그때까지 갈 곳을 못찾으면...
미주 : ...?
흥삼 : 그리구 니가 원한다면... 여기가 미주, 니 집이 될 수도 있어.
미주 : (놀라는, 당황스럽고) ...회장님?
흥삼 : 이건 강요하는 것도, 거래하자는 얘기두 아냐. 아주 오래 전부터... 나 혼자 꿈꾸던 생각이지. 그냥 욕심같은 거.
대답할 말을 못찾고 바라보는 미주. 흥삼, 쓰게 웃더니 미주를 지나쳐서 집으로 향한다.
혼란스러운 미주, 흥삼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영칠 : (소리) 곽흥삼 회장한테 동생이 한 명 있었어요.
43. 상가 사무실 ( 낮 )
태호와 영칠, 마주 앉아서 출력물 뒤적이며 회의 중이다.
태호 : (서류에서 고개 드는) 있었어요는... 뭐야?
영칠 : 미국에 유학 갔다가 교통사고로 죽었어요, 2001년도에.
태호 : (놀라는, 서류 내용 다시 확인) ...!
영칠 : 거기 기록에 보면, 곽회장이 직접 건너가서 시신 수습하고 장례까지 치렀다구 나와 있어요.
태호 : (미심쩍게 혼잣말) 3살 때 입양된 게 아니잖아...
영칠 : 네? 누구 말하는 거에요? 곽흥수는 입양이 아니라 유학이라니까요?
태호 : 이건 됐구... (서류 덮고) 스티븐 김은?
영칠 : (다른 서류 찾으며) 5년 전에 입국했는데 출국 기록이 없더라구요.
태호 : 뭐? 그럼 그때 입국한 뒤로 행방불명이 됐단 얘기야?
순간 태호 표정에 스쳐가는!
/ 9부 52씬. 폐버스에서 종구.
종구 : 5년 전에 그 남자, 작두가 죽인 거 아니다. 흥삼이 손에 묻은 피, 대신 뒤집어 쓴 거야.
/ 가닥이 잡히는 듯, 생각에 잠긴 태호.
영칠, 서류를 찾아서 내민다.
영칠 : 그리고, 그 킴스 무역... 간판은 무역 회산데 진짜 업무는 브로커에요.
태호 : (정신 차리고 쳐다보는) ...?
영칠 : 거 왜 불법 체류자나 신분이 불안정한 사람들, 그런 고객들한테 합법적인 신분을 위조해서 파는 회사더라구요.
태호 : (일순 뇌리를 스치는, 허겁지겁 서류 찾으며) 어디였지? 곽회장 형제가 보내졌다는 그 보육원...
44. 한중그룹 / 세훈의 사무실 ( 낮 )
모니터를 골똘히 보는 세훈. ‘2nd Stage'라고 떠 있는 작업 파일.
/ 10부 37씬. 클럽 내실에서 흥삼.
흥삼 : 니가 뭘 위해 공부하고, 내가 뭐 때문에 이 바닥을 버텨 왔는지... 우리 그것만 기억하자.
/ 노크 소리 나고 정민이 들어선다.
얼른 파일을 닫는 세훈.
세훈 : (농으로 웃으며) 야한 거 보구 있었는데, 들킬 뻔 했네.
정민 : (웃지 않고) 저녁 때 시간 좀 내주세요.
세훈 : 오랜 만에 데이트 할 수 있는 거에요?
정민 : 소개시켜줄 사람이 있어요.
세훈 : (눈빛으로 묻는) ...?
정민 : 소개란 말은 좀 그런가? 아무튼 실장님도 아는 사람이에요.
세훈 : 누군데요?
정민 : (여전히 웃음기 없는) 미리 알면 재미없죠. 기대하세요.
사무실 나가는 정민. 세훈, 얼떨떨한 표정인데...
보육원장 : (소리) 흥수는 참 아까운 아이였어요.
45. 교외 / 보육원 마당 ( 낮 )
마당에서 공을 차며 노는 아이들.
일각에서 천천히 걷고 있는 태호와 초로의 보육원장.
보육원장 : 성품도 온순하고, 특히 공부 머리가 좋아서, 시험만 쳤다하면 1등을 도맡아했죠. 지 형, 흥삼이하구는 정반대였어요.
태호 : 그럼... 미국 유학은 형이 보내준 겁니까?
보육원장 : (끄덕) 무슨 일을 해서 벌었는지 몰라두, 동생 뒷바라지는 지극정성이었습니다.
흥수가 유학만 안갔어두, 그런 사고는 안당했을 것을... (혀를 끌끌) 돌이켜보면 참 불쌍한 형제에요.
걸음을 멈추는 태호, 품에서 사진 한장을 꺼낸다. 최근 것으로 보이는 세훈의 프로필 사진.
태호 : 곽흥수하고... 닮았습니까?
보육원장 : (눈이 커지는) 닮았다 뿐입니까? 아주 빼다 박았는걸!
태호 : (혹시나 했지만 역시 충격) ...!!
보육원장 : 흥수가 잘 자랐으면 딱 이런 얼굴이었을 텐데... (의아해지며) 헌데... 이 사람은 대체 누굽니까?
태호 : (대답하기 곤란한) ...
46. 거리 일각 ( 낮 )
멍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걸어오는 태호.
태호 : (소리) 친동생을 미국으로 보내 신분을 바꿔치기하고... 그 약점을 알고 있던 브로커는 익명으로 살해당했다.
멈추는 태호, 저만치 호텔을 바라본다. 흥삼의 펜트 하우스가 보이는.
태호 : (소리) 도대체 왜... 어째서 그렇게까지...
복잡한 시선으로 올려다보던 태호, 문득 표정 바뀐다. 핸드폰 꺼내서 주소록을 훑어 내리다가 ‘윤정민’에서 멈추는!
47. 할매 식당 / 안채 ( 낮 )
세수하고 젖은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내던 오십장, 의아해서 본다. 그 앞에 서 있는 종구.
오십장 : 시방... 머라 했다요? 현장 일자리?
종구 : 내가 할 건 아니구... 노숙하는 애들 중에 일하고 싶은 녀석들, 몇 자리 나면 데려갈 수 있냐고...
오십장 : (갸우뚱) 고것은 쪼까 어렵겠는디...
종구 : 왜?
오십장 : 그 잡것들이 끈기가 없으니께, 쪼깨만 힘에 부쳐두 일하다 토낀당게요. 괜시리 데불고 갔다가 나만 덤터기쓰지라.
종구 : (설득조로) 다 그런 건 아니야. 개 중엔 착실하게 일해 보겠다는 놈들두 있어.
오십장 : (머리를 긁는) 하아... 워치케 할까나...
조회장 : (듣고 있었는지 방문이 열리고) 이거 봐, 오십장.
오십장 : 야아, 회장님.
조회장 : 우리 그룹에서 신축하는 대규모 리조트 있지 않나? 거기 데려다 일 시켜 보게.
맨주먹이라도 해보겠다는 젊은이들이면, 기회를 줘야지.
오십장 : (헛소리인거 알지만, 억지로 웃는) 그건 그라지요. (종구를 보는) 그라믄 내일 현장 가서 야그는 꺼내 보것어요.
종구 : (그제야 미소) 고마워.
오십장 : 근디... 대관절 뭔 조화속이다요? 일자리 연결해주고 코미숑 쎄게 받기로 허셨남?
종구 : (대답 대신 웃는) ...
48. 폐차장 ( 낮 )
걸어오던 종구, 멈칫 선다.
양씨와 최군 등 노숙자 몇이 지글지글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 물론, 권커니 자커니 소주도 빠질 리 없다.
표정 매서워지는 종구. 얼른 술병 치우라고 눈짓하고 일어나는 양씨.
양씨 : 어여 와. 저녁 전이지? 일루 와서 같이 들어.
종구 : 뭐야? 돈이 어디서들 났어?
양씨 :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 왜 영칠이가 악어한테 가서 명의 찾아 왔다며? 그 얘기 듣구 우리두 단체로 몰려 갔거든.
최군 : (히죽거리며) 악어두 별 거 아니던데요? 쪽수로 밀어 붙이니까, 명의 값이라구 두 당 오만원씩 토해내더라구요.
종구 : ...!!
양씨 : 우리가 오천원에 넘긴 거, 지들은 수 십만원에 팔아 치우면서... 그 정도는 껌값이잖아. 안그래?
울컥! 치미는 종구, 성큼 성큼 가더니 고기가 익고 있는 불판을 그대로 걷어차 버린다.
놀라고 당황해서 피하는 노숙자들.
종구 : (둘러보며 으르렁대는) 정신 똑바로 차려! 니들이 껌값 받고 팔아치운 이름! 그거 땜에 신용불량자에 범죄자 되는 거야!
평생 제대로 된 일은 못한다구! 알어?
최군 : (볼멘) 누가... 일이나 시켜 준대요?
종구 : (꿈틀! 최군의 멱살을 잡는) 그래서 술판 벌렸냐? 밤낮으로 헤롱거리면서 쓰레기 취급 받으려구?
최군 : 혀.. 형님...
종구 : (확 떠밀어 버리고, 이글거리는) 세상 사람들이 다 깔보는 거 같지? 천만에... 너희를 제일 깔보는 사람은 니들 자신이야!
일동 : (할 말 없고, 시선 떨구고) ...
종구 : 길바닥에서 자고, 쉰 밥으로 배를 채우고, 몸뚱아리에선 썩은 내가 진동을 해도...
(잠시 노숙자들 보다가) ...그래두 사람이다, 우리.
쥐죽은 듯 조용하다. 종구, 그들을 지나쳐서 버스로 올라간다.
주섬주섬 먹던 것을 치우는 노숙자들. 최군, 남아있는 술병을 물끄러미 보더니 바닥에 부어 버린다.
49. 펜트 하우스 ( 저녁 )
타라락!! 계수기에서 지폐가 넘어간다. 돈을 추리는 사마귀.
그 옆에서 지켜보는 독사. 흥삼은 말없이 창가에 서 있다.
사마귀 : (돈뭉치를 한데 모으고) ...수금액이 모자랍니다.
흥삼 : (흘끔 돌아보는) ...
독사 : (긴장해서) 말씀드렸잖습니까? 악어두 학을 뗐답니다. 이 새끼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나 잡아잡수하구 개기는데...
흥삼 : (말 자르는) 그걸 류씨가 부추겼다고?
독사 : 지하도에서 쫓겨난 놈들이 요즘 폐차장에서 지낸다구 들었습니다. 그 자식들이 종구 형님 빽으로 그렇게 설쳐대는 겁니다.
흥삼 : (다시 창 밖을 보는, 흐흥 웃더니 혼자말처럼) ...사람이 갑자기 변하구 그래... 죽을 때가 됐나...
일순 살기가 번득이는 흥삼의 눈빛... 그때 핸드폰이 울린다.
흥삼 : (잠깐 의아했다가, 접대용 웃음으로 변하며) 웬일로 전화를 주셨습니까, 원장님? 네... 건강하시지요?
(듣다가 웃는)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명절 때나 겨우 성의 표시하는 건데요.
(일순 표정 굳는) 네? 부하 직원이라니... 누구 말입니까?
의아해서 쳐다보는 독사와 사마귀.
흥삼, 저쪽 얘기 들으면서 점점 싸늘해지는...
50. 카페 앞 ( 저녁 )
서둘러 걸어오는 태호, 멈춰선다. 창가에 정민이 앉아 있다.
잠시 보다가 마음 다잡고, 출입문으로 향하는 태호.
51. 카페 안 ( 저녁 )
태호 앞에 커피잔이 놓이고 종업원이 간다.
미소를 담은, 그러나 팽팽한 시선으로 마주 보는 태호와 정민.
정민 : 미안해. 멀리까지 불러서... 여기서 선약이 있거든.
태호 : 우물은 목 마른 놈이 파야지. 할 말 있어 전화한 건 나잖아.
정민 : 그래서? 할 얘기가 뭔데?
태호 : (말을 고르는, 선뜻 꺼내기 어려운 용건이다) ...
정민 : (비웃는 미소로) 태호씨... 많이 조심스러워졌네? 예전엔 뭐든 거칠 것이 없더니.
태호 : (결심하고) 강세훈 실장... 어떻게 만난 거야?
정민 : (의외인) 뭐?
태호 : 니가 먼저 사귀자고 했어? 아니면 강세훈쪽에서 접근한 거야?
정민 : (어이없이 웃음이 터지고) 미치겠다, 정말...
태호 : (진지하게 기다리는)
정민 : (웃음기 남은 채) 알아서 뭐하게? 태호씨하구 난 이미 끝났어. 근데 이제 와서 갑자기 내 러브스토리가 궁금해진 거야?
태호 : ...중요한 문제야. 알아야겠어.
정민 : (웃음기 사라지고) 그러니까 알아야 되는 이유를 묻고 있잖아.
태호 : (뚫어지게 보는) ...
정민 : (대답을 다그치듯) 태호씨.
태호 : ...지금은 말 못해.
정민 : (냉랭해지는) 그럼 나두 말해줄 이유 없지. 정 궁금하면 세훈씨한테 직접 물어봐. 조금 있다 여기 올 거니까.
태호 : (표정) ...!
정민 : (시계를 보더니) 근데... 7시까진 일어나주라. 귀한 손님이 오기로 했거든.
태호 : 강세훈 말고? ...누구?
정민 : (뿌듯한 미소) 그 사람 아버지.
태호 : (흠칫 놀라는) ...!!
52. 카페 앞 / 주차장 ( 저녁 )
주차하는 세훈, 휘파람 불면서 내린다. 카페로 다가서다 멈칫! 창가 자리에 마주 앉은 태호와 정민.
세훈, 이것 봐라? 싶은 묘한 미소가 번지고...
53. 카페 안 ( 저녁 )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쳐다보는 태호.
정민 : (자기 기분에 조금 들뜬) 그때 태호씨가 해줬던 충고, 틀린 말 아냐. 생각해보니까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게 없더라구.
아니, 관심이 없었다구 해야 되나? 그래서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세훈씨 아버지랑 연락이 닿았어.
태호 : (저도 모르게 목소리 높아지는) 캐나다 말하는거야, 지금? 강세훈 양아버지가 여기 왔다구?
정민 : (멈칫) 태호씨... 그 사람 뒷조사까지 했어?
태호 : 강세훈도 알아?
정민 : (어이없는) 어디까지 조사한 거야?
태호 : 강세훈도 알구 있냐구! 양아버지 오는 거!
정민 : 세훈씨 위해 준비한 서프라이즌데, 왜 태호씨가 놀라구 그래?
태호 : (심각하다 싶은, 말문 막히고) ...
세훈 : (다가오며, 태연하게) 소개시켜 준다는 사람이 장태호씨였어요?
태호 : (멈칫 돌아보는) ...
세훈 : (빙긋 웃으며) 하긴, 새로 소개 받을 필요는 있네. 비지니스는 집어 치우고, 구남친 대 현남친으로... (정민에게 찡긋) 맞죠?
정민 : 아뇨. (태호를 보며) 태호씨는 지금 일어날 거에요.
세훈 : (의아한) 네?
혼자만 초조한 태호, 하는 수 없이 일어난다. 의아해서 보는 세훈.
태호, 세훈 옆으로 지나치다가 멈추고.
태호 : (정민은 들리지 않게, 귀에 대고 나즈막히 경고) 당신... 이제 엿됐어. ...곽흥수.
세훈 : (쿵!! 눈동자가 커지는, 어떻게 내 정체를) ...!!
54. 상가 사무실 앞 ( 저녁 )
심각한 표정으로 서둘러 오는 태호. 갑자기 헤드라이트가 시야를 밝힌다.
찌푸리며 눈을 가리는 태호. 차에서 내리는 독사와 부하들.
독사 : 휴가 받았으면 알차게 자빠져 쉬지, 어딜 그렇게 빨빨거리고 다니냐?
태호 : (경계의 눈빛, 상대 숫자 살피며) 언제구 올 줄 알았어.
독사 : 말이 짧다. 서열은 개무시하는구만.
태호 : (코웃음) 서열 챙기는 인간이 작두 형님 뒤통수 쳤나?
독사 : (꿈틀) ...!
태호 : 형님 배신해서 캥기고, 장태호는 자꾸 걸리적거리고... 날 잡았다 이거잖아, 오늘.
독사 : (입술 비틀어지며 웃는) 니 제삿날은 맞는데, 제사 모시는 건 내가 아니구 큰형님이다.
태호 : (멈칫) 뭐...
하는 순간, 뒤에서 나타난 독사 부하가 각목을 휘두른다.
퍽!! 머리 맞고 맥없이 고꾸라지는 태호.
55. 폐건물 / 창고 ( 밤 )
어두운 실내, 외줄기 조명 아래... 철제 의자에 앉아있는 두 사람의 실루엣.
희미하게 눈을 뜨는 태호. 맞은 편에는 얼굴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 흥삼이 앉아 있다.
통증 때문에 머리를 감싸며 찡그리는 태호.
흥삼 : (아무 감정이 없이 건조한) ...왜 그랬니?
태호 : (겨우 쳐다보는) ...?
흥삼 : 무슨 생각으로 내 뒤를 캤어?
태호 : 작두 형님이... 열쇠를 남겼습니다. 5년 전에 살해된 그 브로커...
흥삼 : (눈빛) ...!
태호 : 제가... 궁금한 걸 못참는 성격이라서요.
흥삼 : 전에 얘기했을 텐데? 쓸데없는 호기심이 만수무강의 장애물이라고...
태호 : 회장님을 알아야... 회장님을 지켜드릴 수 있습니다.
흥삼 : 아니. (눈빛 날카로워지며) 넌... 열어선 안되는 상자를 열었어.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건... 니 시체 뿐이다.
태호 : (초조해지는) 회장님을 위해서 한 일입니다. 강세훈, 아니... 곽흥수한테 확인해보세요!
흥삼 : (멈칫했다가, 다 안다는 듯 미소) 벼랑 끝에서 기어 오르기... 그게 니 주특기지. 안됐지만 이번엔 안통할 거다.
흥삼이 태호 앞에 툭 내던지는 물건... 정사장 습격에 썼던 권총이다!
흥삼 : 낯이 익은 놈이지? 정사장 금고에서 찾았다. 그땐 방아쇠를 못당겼지만, 오늘은 당겨봐.
(미소 사라지며) 표적은... 니 머리통이다.
태호 : (권총을 보다가, 흥삼을 보는) 이걸로... 회장님을 쏠 수도 있습니다.
흥삼 : 그래봤자 너두 여기서 죽는다. 밖에 애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태호 : 절... 믿으십니까?
흥삼 : 니 자존심을 믿지. 지저분하게 떠날 놈이 아니거든. 니 손으로... 한방에 끝내는 거다.
태호 : (노려보다가) 그럼 총알을 주셔야죠. 빈 총으로 어떻게 끝내겠습니까?
흥삼 : (멈칫) ...!
태호 : 회장님을 겨눌지, 제 머리통에 대고 당길지... 궁금하셨던 거 아닙니까?
(이글거리는) ...보여 드리겠습니다, 진짜 저란 놈이 누군지.
흥삼 : (팽팽하게 보며) ...이래서 내가 널 좋아한다니까.
일어나는 흥삼, 주머니에서 총알 하나를 꺼내 던져준다.
다가와서 권총과 총알을 집어드는 태호, 천천히 장전한다. 철커덕! 약실에 잠기는 총알.
긴장해서 지켜보는 흥삼.
가만히 총구를 드는 태호, 관자노리에 갖다댄다. 눈매가 싸늘해지는 흥삼.
순간, 흥삼을 향해 총구 겨누는 태호. 멈칫! 굳어버리는 흥삼.
총을 겨눈 태호와 그 앞에 서 있는 흥삼의 대치 상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