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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의 말씀:소생의 보잘 것 없는 글월을 읽어주시고 격려의 말씀을 들려주시는 동문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가지로 부족한 글이오나 더욱 노력할것입니다. 여기 제 4 화 노태우 편을 보내드립니다.
추석날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신 희 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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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화 노태우와 나: 신희석이가 소위 ‘한국적 출세’를 아니한 이유④
나는 전두환대통령과 4~5차례 독대를 하였지만, 노태우대통령과는 개인적으로 전혀 만난 적이 전혀 없다.
하지만, 업무의 측면에서는 가끔 동북아국제관계의 외교안보현안에 관한 상부의 지시를 받고 특별연구
보고서를 여러차례 청와대에 제출한 적은 있다.
1990년 5월 25일(?), 일본국회의 중의원 및 참의원 양원합동본회의장에서 노태우씨가 한국대통령으로 최초의 일본국회연설을 하여 일본국민들의 열광적이고도 따뜻한 박수갈채를 받았는데, 이 당시 노태우연설문의 초고를 작성한 사람이 바로 '신희석 교수'이다. 지금도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중의 하나이다(청와대비서실이 작성한
다른 초고와 합성될 가능성도 있었겠지만). 나는 주로 정치외교안보적 측면에서 한일관계사를 개념화(Conceptualization)하기 위한 작업을 시도하였다. 반면, 한일관계의 문화적 측면에 관하여는 소설가 김소운씨가(?) 집필한 것으로 들었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우선, 내가 작성하여 전달한 노 대통령의 연설문 초안을 색갈바랜 35년전 노트필기의 초고를 기초로 하여 정리하여 보기로 한다.
존경하는 중의원 의장, 참의원 의장, 그리고 양원 의원 여러분!
나는 대한민국의
국가 원수로는 사상 처음 일본 국회연단에 서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나는 한일 양국이 상호존경과 상호이해에 기초를 두고 진정 가깝고도 가까운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일본을 방문하였습니다.
21세기를 앞둔 이 세계의 격변 속에
가장 가까운 이웃인 우리 두 나라가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열어야 한다는 시각에서
오늘 저의 기탄없는 소견을 중참양의원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한일 양국은 향후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본격적으로 펼쳐 나가야 하겠습니다.
나는 1988년유엔총회에서 동북아 평화협의회의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이 협력체의 실현에는 북한의 태도변화 등 정치적인 여건의 성숙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위하여 한일양국이 가능한 분야로부터 공동이익을 실현할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동반자로서 아시아태평양 시대를 앞장서 열어가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이 지역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모든 나라에게 도움을 주는
효율적인 협력의 구조적 틀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경제협력과 교역이 지속적으로 확대, 강화되도록 여러분들의 협조를 기대하겠습니다.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한일 간에는 만성적인 무역불균형의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은 미국과 유럽에 대해 시장개방과 무역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도 이와같은 정책적의지를 갖고 불균형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조치를 취하여주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경제발전이 일본의 국가 이익에 직결된다고 하는 공통인식하에서
일본의 탁월한 기술이전과 기초과학협력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모든 것이 변화하고 많은 것이 발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두 나라 국민 간의 진정한 우정을 가로막는 '마음의 벽'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전후 45년이 지난 이제 세계대전을 치렀던 유럽각국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 두 나라 국민 간에는 잘못된 과거에 대한 인식과 감정이 아직도 정리되지 못하고
지난 날 어두웠던 한일양국의 불편한 시절에
우리 민족이 겪었던 커다란 고통과 시련, 그 엄청난 비극을 지금 이 자리에서 재론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들 대한민국국민들은 나라를 지키지 못한 스스로를 자성할 뿐
지난 일을 되새겨 그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려 하지 않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는것은 진실에 바탕을 둔 두 나라 국민간의 진실된 상호이해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밝은 미래를 열어나가자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한일관계를 정책과학적 측면에서 개념화하는 작업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한일관계의 뿌리는 조선이 일본의 Edo막부에 파견한 대규모사절단인 '조선통신사'에서 비롯됩니다.
15세기초엽부터 18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조선은 일본에
약 10 여차례에 걸쳐서 조선통신사를 파견하였습니다.
그 당시 조선통신사를 맞이하였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Edo시대 일본의 유학자요, 외교관인
Amenomori Houshyu(雨森芳洲)입니다.
그는 현대적의미의 ‘외교’라고 하는 개념을 동원하면서 나라와 나라간의 관계
특히 가까운 이웃나라 상호간의 외교관계에는
첫째 정직성, 둘째 성실성, 그리고 셋째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Omoiyari)이 있어야 하는데
한일관계야말로 바로 이러한 정치이념과 외교철학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 하였습니다.
앞으로의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존재양식은
이렇한 개념과 외교철학의 관점에서 발전되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관련하여 제가 특히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것중의 하나는
지난 날의 역사로 인하여 일본에 살게 된 약 70만명의 재일한국인문제입니다.
이분들들은 일본국민과 함께 전쟁의 고통과 참화를 겪었으며,
또한 전후 일본의 재건과 발전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분들이 사이 좋은 이웃으로 이곳 일본에서 아무런 불편 없이 살게 될 때,
우리 두 나라국민은 한일우호협력관계를 뜨거운 가슴으로 느끼게 될 것입니다.
친애하는 중참양의원 동지 여러분!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으로, 또한 믿음을 공유할 수 있는 친구로
더욱 평화롭고 번영하며 자유와 행복이 넘치는 한일양국을 우리 다 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경청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하, 노태우 대통령의 일본국회연설문 작성배경을 상세히 정리하기로 한다.
내가 안식년(Sabbatical Leave)을 맞이하여 일본국제교류기금(The Japan Foundation)의 초청을
받고 미국하버드대학국제문제연구소(Center for International Affairs,CFIA)를 경유하여 동경대학대학원
정치학연구실의 객원교수자격으로 동경에 도착한 것은 1990년 1월로 기억한다.그 당시 나의 고교동기생인
유창종 동문,황인행 동문,강철규 동문 ,정철호 동문,정건해 동문 등 7~8명이 시청앞 소공동에 있는 작은 식당에 모여서 나를 위한 송별회를 해 주었다.
특히 유창종동문(검사장,훗날 서울지방검찰청장)은 약간의 현금이 들어있는 흰봉투를 나에게 전달해주면서 미국과 일본에 잘 다녀오라고 할때 눈물글썽했던 그 고마운 우정을 나는 결코 잊지 못하고 있다. 또한,강철규 동문(훗날 공정거래위원장)도 내가 아태정책연구원(APPRI)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을때 약간의 현금이 들어있는 흰 봉투를 들고 나의사무실을 방문, 직접 전달하면서 나에게 격려의 점심을 사주던 다뜻한 우정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이 친구들은 64년 대전고교 졸업 이후 부터 40 여년간을 주로 한남동에 있는 H 클럽에서 월 1 회 정기적으로 만나오던 친구들인데, 나의 장기해외출장과 부덕의 소치로 인하여 최근에는 모임이 계속되지
못하고 있어서 매우 안타깝고 송구스럽고 아쉽게 생각한다(언젠가 부활할것을 기대하면서).
나는 가족들과 함께 동경시내 Suginami-Ku의 Horinouchi에 있는 작은 맨션아파트에 입주하고 주 3 회정도 동경대학정치학연구실에 출퇴근하였다. 일본의 정치학회를 대표하는 저명하고도 탁월한 국제파 정치학자인
동경대학의 Sato, Seizaburo (佐藤誠三郞)교수가 나를 다시금 초청해 준 카운터파트이었다.
1990년 4 월 초어느날 , 나는 청와대 고위층인사로부터 한통의 국제전화를 받았다.노태우 정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던 청와대공보수석 이수정씨이었다. 이 수석은 노태우대통령이 5월하순경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
국회에서 한국의 국가원수로써는 최초로 국회연설을 할 예정인고로(5월하순경) , 그 원고를 작성하여 지급송부 해 달라고 하는 요청이었다. 이 수석은 노대통령 방일의 중요성과 한국국가원수 최초의 일본국회연설의 정책적
의미를 강조하면서 동북아국제관계와 한일관계에 관한 나의 전문지식을 총동원하여 특별히 잘 써 달라고 하는
필요성과 당위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나는 일본지식인들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하여 동경대학의 Eto, Shinkichi 교수, Sato Seizaburo 교수와 진지한 의견교환을 하였으며 또한 주한일본대사직을 마치고 막 귀국한
Yanai Shinichi 대사와도 Teikoku Hotel 별실에서 한일관계에 관한 경험담과 의견을 진지하게 청취하였다.
한일관계를 정책과학적(Policy Science) 측면에서 개념화(Conceptualization)하는 작업은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노태우 대통령의 일본국회연설문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오늘날 한일관계의 뿌리는 개화기이전까지 조선이 Edo막부에 파견한 대규모사절단인 조선통신사(300~600명)에서 비롯된다. 15세기초엽부터 18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조선은 일본의 Edo막부에 10 여 차례에 걸쳐서 전후기조선통신사를 파견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하여 잠시 중단된 적도 있었음).
그 당시 조선통신사를 맞이하고 안내역을 맡은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Edo시대 일본의 의사이자 주자학계열의 유학자요, 외교관인 Amenomori Houshyu(雨森芳洲)(1668~1755)이다. 그는 현대적의미의 ‘외교’라고 하는 개념을 동원하면서 나라와 나라간의 관계 특히 가까운 이웃나라 상호간의 외교관계에는 첫째 서로 속이지 않는 정직성, 둘째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난 성실성, 그리고 셋째 상대방 나라에 대한 각별한 배려(Omoiyari)가 있어야 하는데 한일관계야말로 바로 이러한 정치이념과 외교철학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 시기에 현대적 개념인 '외교라'고 하는 용어를 도입한것 자체가 획기적이라고 하겠다. 나는 약간의 지적자극을 받았다.
나 역시 동감이었다. 나는 노태우대통령의 일본국회연설문에 이 개념을 도입 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간단한 여행가방을 하나들고 일본열도의 최남단 후쿠오카를 경유하여 프로펠러가 달려있는 경비행기로 바꿔 타고 옛날 한국영토이었던 Tsushima(對馬島)를 혼자서 방문하였다. Tsushima군청이 관리하는 역사기념관 내부진열사료실에서 조선통신사 Amenomori Houshyu에 관한 역사적자료를 적지않게 발견하였다. 앞서 말한Amenomori 의 외교철학개념의 발상을 그곳에서 알게 되었다. 나는 다음날 동경으로 귀환한 후 현장체험의 Imagination과 Inspiration이 망각의 세계로 돌아가기 전에 미친듯이 연설문집필작업을 개시하였다.
1990년 5월 25일(?). 일본국회에서 노태우대통령이 발표한 한국국가원수 최초의 연설문은 이와 같은 배경과 나의 직접적인 체험 속에서 적지않게 고심하면서 작성된 것이었다. 약 1 주일 후, 나는 동경시내 Yuraku-Cho역 앞에 있는 동경외신기자클럽(FCC) 본관로비에서 주일한국대사관의 모 1 등서기관에게 노태우대통령의 연설문초고를 전달하였다. 그후 일본NHK방송의 실황중계를 통하여 내가 땀과 눈물을 흘리면서 작성한 원고를 한국대통령이 읽어 내려가는 장면을 바라보면서 나는 대한민국의 정치학자로서 흐뭇한 마음을 금치 못하였다. 나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축배의 잔을 높이 들어 올렸다. 나의 집필사실을 아는 측근인사들로부터 명연설문이라고 하는 칭찬을 받았지만, 나는 아무런 생색을 내지도 않았거니와 반대급부를 요구한 사실도 없다. 그저 조용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그마한 술잔을 밤새도록 기울였을 뿐이었다.
나는 대한민국의 국가공무원으로서 또한 국제정치학자로서 우리나라의 최고통치권자에게 외교안보문제에 관하여 나의 보잘것없는 소신과 사상과 철학을 전달 할 수 있었던 것으로서 그저 만족할 따름이었다. 그럴리도
없었지만 설사 노 대통령이 어떠한 특혜 또는 반대급부를 제공했다 손치더라도 나는 이를 수락하지 않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나는 국제정치학자로써 우리정부의 한 구석 특히 외교통상부에 적을 두면서 현장그라운드를
누비고 작전업무를 땀흘려 추진하는 고위외무관료들의 뒷편과 옆편에서 국제정치현상을 분석하는 틀과
( Analytical Framework) 이론적 체계를 제공하는것이 학자의 사명이요, 또한 국가공무원으로서의 당연한 업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시대와 영웅은 상호 함수관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국가를 위하여 커다란 공헌을 하는 Leadership의 유형에는 크게 나누어서 ‘현상타파형’과 ‘현상유지형’으로 나누어진다.전두환은
‘현상타파형’인 반면,노태우는 ‘현상유지형’에 속한다고 하겠다. 전자는 진취적이고 개혁을 부르짖는 반면,후자는 환경을 살펴가면서 상황주의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일반적 경향이다. 노태우대통령은 칼을 먼저 빼지 않고 기다렸다가 조용히 자신의 좌표를 설정하는 전략형 타잎이다.
오래전 외교통상부의 같은 직장에서 함께 근무하였던 이병기 청와대 전 의전수석(그 후 국가정보원 차장과 외교통상부 외교안보연구원본부대사로 근무하는등 노태우 정권의 1등공신이며 박근혜정권의 주일대사와 국정원장을 경험한 탁월하고도 우수한 인재임)으로 부터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병기 대사는 온후하면서도 원만한 성격을 갖는 나라사랑 고위관료이다. 외교안보연구원에서 함께근무하는동안 우리는 여러차레 식사회동을 하면서 다양한 정책현안에 관하여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주일대사시절, 우리 가족을 Azabu의 대사
관저로 초청하여 식사회동을 하였을 때에도 나는 이 대사의 온후한 인품과 동북아국제관계에 관한 해박한
지시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대사야 말로 노태우정권의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Political Leadership의 유형에는 '현상타파형'과 ' 현상유지형'의 두가지 유형이 있다. 현상타파형 이든 또는 현상유지형이든 양자공히 일장일단이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한러관계와 한중관게를 포함한 북방외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그 나름대로 대한민국의 국가발전에 크게 기여한 노태우 대통령의 공헌은 높은 평가를 받을만 하다고 하겠다(다음호에 계속...제 5 화 김영삼과 나⑤).
첫댓글 잘한다 잘해 !!!
신희석 ... 다음 정부에서 일본과의 관계개선 필수요원으로 !!!
추천 !
다음호 기대해 보자 !
- 동창들에게도 더욱 관심갖으면 ... 철세가 저녁살께 ~
그래. 철세야!! 술과 밥은 내가 살테니까 걱정 말아라. 하지만 네 형 희석이가 너말대로 '정부의 필수요원'이 되고 싶었다면 옛날 박정희말기에 했었을 것이다. 네 형의 학문에 대한 애착과 소신 그리고 철학을 이해하여 다오.평범속에서 비범을 찾자. 희석이가....!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을 위해서...
차기 정부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 신형 ? ...)
비범은 비범을 낳는다 ? 철세가 ... ! ㅋㅋㅋ
철세야! 나는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국가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이지 정권차원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영원불멸 하나 정권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현 상태로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면서
묵묵히 학문의 길을 걸어 갈 따름이다. 차기정권코미트 가능성은 0.01%이다. 추석 떡은 잘 먹었느냐? 희석이가
희석아 !
70넘으면 학문 접고, 건강으로 매진하기 바래... 깜박 깜빡...
너 ? 무슨 운동 잘하니 ?
혹시 걷기 ? 이런 운동이 최고여 ~
퇴직모임에 참여해 봐라 !
건강이야기로 화두가 시작해서 끝날때까지...
미련버리고 빨리 접을때 후회도 적은 법 !!!
치과,CT촬영, MRI촬영해서 건강찾기바란다. 질병은 반드시 올껄...
건강은 돈주고 살 수 없지 ~ 90세 이상은 곧 평균수명으로 간다고 ...
철세야! 나의 건강까지 걱정해 주어서 너무 고맙다. 나의 주치의의 권고에 의하여 하루에 2~3KM정도 마누라 손목잡고
유산소운동 걷기를 1주일에 2~3번정도 하면서 최근에는 20년만에 다시금 골프바람이 불어서 마누라와 함께 운동하러 다닌다.그리고 바벨을 사용하여 벤치프레스도 계속,동창모임에도 가능하면 자주 나갈려고하니 꼭 연락 주렴.응? 희석이가!
환영 곧 회원으로 영입해야하겠네 ...
걷기는 주 5회이상
43회 골프 / 3팀이 매월 첫째주 " 수 "요일 벌써 30년이상 하고 있는데...
반갑다
친구들에게 접근하려는 님의 마음
지난 현대사의 구비 구비에서 친구의 드러나지 않게 크고 소중한 역할을 했듯이 지금 정체성이 혼돈되어가고 있는 현실,특히 대선을 앞둔 우리의 판단기준에 도움이 될 조언도좀 들려주시게. 우후죽순으로 늘어난 언론매체와 정치평론가라는 자들의 덜익은 보도가 오히려 국민의 판단을 헷갈리게 하는것 같아 답답하외다, 친구있음에 자랑스럽소. 건강하시오 오래 오래/
성운이! 귀중한 말씀 정말 고맙네..! 오늘날과 같이 정체성이 혼돈되어가고 또한 과도한 언론매체의 정보홍수속에서 우리 국민들은 마치 방향감각을 상실한 에뜨랑제와 같은 인상을 받고 있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확실한 자유민주주의와 안정된 시장경제체제이요, 국내외 정세의 소용돌이속에서도 우리는 확실한 가치를 추구해야 하오.
고맙소.계속 조언과 채찍질을 기대 하오.!! 소생의 보잘것없는 글은 당분간 계속 될것이오. 희석이가....
철세야 정말 고맙다. 나의 건강에 까지 관심을 갖고 격려해주는 우정에 더욱 힘과 용기가 용솟음 친다. 마누라를 부추겨서 주 23회가아니라 매일 유산소운동 걷기를 계속 하겠다. 골프는 25년간 쉬었다가 재개하자니 한
왕초보 이다. 30 여년간 쌓아온 골프모임에 들어갈 실력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자주 얼굴을 보는것은 좋은 일이다. 희석이가..........신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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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세야! 나의 실수로 비밀댓글표시가 들어갔구나. 알았다. 좋은 글을 쓰느라고 노력하고 있다.하지만 다른사람의 작품을 평가하기는 쉽지만 자기 스스로 작품을 창조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나는 6하원칙에 의거하여 명쾌하게 논리를 전개하고 있을 따름이다. 물론 건강과 운동에도 커다란 관심을 갖고 있다. 희석이가
희석친구 고맙소 바쁠텐데 보잘것 없는글에 댓글 감사하며 친구가 추구하는 확실한 가치가 우리 역사를 이끌어 가야 할텐데. ...그래도 우리 국민은 현명하니 현명한 선택을 하리라 믿으며 지역이기주의에 사로잡힌자들도 그 굴레를 벗어나야 한다는 아쉬움을 갖고 있소 건강하시고 다음글 기대합니다.
성운이! 동감이오. 다음 글을 기대한다니 흐뭇하오. 기다려 주소서. 좋은 댓글 보내주시오. 희석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