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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모음/연구 자료 2009/05/03 01:31
2009년 2월 사목정보의 특집 기사 중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의 가톨릭 성령 운동의 역사에 대한 글입니다.^_^
<글쓴이>
오태순 신부(서울대교구), 1969년 사제품을 받았다. 가톨릭 회관장, 오류동 주임, 교구 사목국장,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목차장, 한마음 한몸 운동 본부장, 서울대교구 민족화해 위원회 상임위원장, 역삼동/불광 3동 주임, 성령쇄신 봉사자 협의회 회장 엮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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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 성령운동의 역사와 결실
오태순
교황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오 주님, 마치 오순절 때와도 같이, 오늘날에도 당신의 놀라우신 일들을 통해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라는 시작기도를 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끝났다. 새로운 성령강림을 열망하던 미국 듀케인 대학교 신학교수들과 학생들은 1967년 2월 피정 중에 성경을 묵상하며, 성령 충만을 경험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성령쇄신운동은 성령의 역사(役事)가 이루어지면서 여러 가지 치유와 함께 참여자들은 주님 현존을 체험하고 신앙생활에 활기를 얻고 있다.
한국에서는 1971년부터 외국 선교사들의 노력과 1974년 평신도들을 위한 첫 성령세미나를 시작으로 발전하여, 오늘날 각 교구와 본당에서 세미나와 기도모임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오늘에 이르게 된 한국 가톨릭 성령운동의 발전 과정을 발아기, 정착기, 발전기, 성숙기-<2001~2009년 세계성령대회>로 구분해 살펴보겠다.
1. 발아기(1968~1974)
미국에서 성령은사가 표출되기 시작하고 불과 1여 년 만에 한국에서도 당시 구로동본당 공소회장 김제원 바오로(서울봉사회 10대 회장)와 일반 신자들에게 성령 은사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이는 220여 년 전 그리스도교 진리가 한국인에 의해 자력으로 신앙의 싹이 틔워지고 100여 년의 모진 박해 속에 순교를 거듭하면서도 기적적인 신앙 공동체를 유지 · 발전시켜온 놀아운 역사와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1961년에 가톨릭에 귀의한 김 회장은 과거의 과음과 과로로 불치병에 걸려 사형선고를 받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 1968년 5월 12일 주일 밤에 부인과 함께 자신을 주님께 봉헌하며 기도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뜨거운 숯불을 붓는 것 같은 열기를 받고 30여 분간 고통과 콧물과 눈물로 뒹굴면서 혀가 꼬부라지는 이상한 성령 체험을 하였다.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 체험을 통해 불치병이 말끔히 치유되었고 심령기도를 하게 되었다. 또한, 기도 모임이 이루어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적의 치유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김 회장의 온 삶은 전교와 성경공부, 성경강의와 그 확산에 이바지하게 되었다. 그 결과, 소박하게 모인 기도회를 중심으로 교구의 지원 없이 새 성당을 건축하는 등의 놀라운 성과가 나타났다. 그러나 사목자들의 이해가 미치지 않아, 신자들을 통해 한국에서 시작된 자생적 성령쇄신이 일시 중단되자 1971년부터 한국 주재 외국선교사들을 통해 성령의 불의 붙기 시작했다.
1973년 11월에는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교에서 이상철(Rev.Blowers) 신부와 김제원 회장, 염영호 형제의 인도로 신학생 13명, 수녀 2명, 평신도 1명을 포함한 18명이 성령 세미나를 받았다. 이 세미나는 당시 부제였던 최기산(보니파시오: 현 인천교구장) 주교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같은 해 12월 5일에는 오늘날 ‘한국가톨릭성령쇄신 봉사자협의회’의 전신인 ‘성신운동협의회’가 결성되었다. 이 위원회는 화렐 신부, 에델튀르트 바이스트 수녀와 이정자 수녀, 염영호, 이승우, 공영길 형제 등이 참여했다.
1974년 1월에는 한국인 신자 대상으로 첫 번째 성령세미나가 백 제랄드(Rev.Gerald Farrell M.M 메리놀 선교회) 신부의 인도로, 꾸르실리스타 13쌍의 부부와 함께 서울 중구 남산동 김기환 베드로 회장 자택에서 이루어졌다. 2차로 2월~4월에 종로 1가 유니온 타자기 건물 3층에서 정옥동 회장과 공영길 등이, 3차로 9월~11월에 김옥균 주교(전 서울대교구 총대리), 김수창 신부, 오태순 신부(현 한국성령쇄신 봉사자협의회 회장), 최병원 회장, 조동완 회장 등이 세미나를 이수하였다.
2. 정착기(1975~1981)
1975년 2월 7일 ‘성령운동협의회’를 ‘한국성령봉사회’로 변경했고, 회장이 화렐(이상철) 신부에서 최봉도 신부로 바뀌었다. 회장이 한국인 신부가 되고, 봉사를 못하게 되었던 김제원 회장이 전국위원으로 추대되었다. 이는 한국의 성령쇄신이 한국교회 안에서 사제들이 참여하고, 평신도가 이끌어갈 만큼 성장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이어서 <성령쇄신지>가 창간(1976.5)되었으며, 편집은 이상철(화렐) 신부와 공영길 형제가 맡았다. 아무런 자료준비도 없는 처지에서 <성령쇄신지>는 성령쇄신 발전에 큰 도움을 주었으며, 1978년 5월에 정간되기까지 25회가 발간되었다.
6월 25일에는 세미나 교재로 ‘성령세미나 매일 묵상’이 이승우 형제의 번역으로 출판되었다. 동년 5월 24일부터 28일까지 왜관 피정의 집에서 제1차 성직자 · 수도자 성령쇄신 묵상회(세미나)를 개최했으며 여기에 신부 11명, 수도자 43명이 참가했다. 또한 6월 19일에는 서울에서 젊은이들을 위한 첫 번째 성령세미나를 개최, 80명의 젊은이가 참가했다. 7월에는 송광섭 신부가 전국봉사자위원회와 서울대교구 성령봉사회 위원으로 뽑히고, 10월 11일부터 제2차 성직자 · 수도자 성령묵상회가 상지회관에서 열렸다.
1976년에는 성령쇄신 관련 책들이 여러 권 출판되었다. 11월 인천교구에서 처음으로 성령세미나가 시행되었고, 1977년 2월 17일부터 21일까지 마산교구 진주에서 37명의 사제를 위한 최초의 성령 세미나를 시행하였다. 2월 20일부터 25일까지 메리놀회 한국지부장 코코란 신부의 주선으로, 치유의 은사에 있어 국제적 명성을 지닌 가톨릭 성령쇄신 지도자인 맥낟(Rev.Francis MacNutt) 신부, 존 힐리(Rev.John Healey)신부, 샤프(Rev.Schaf) 신부가 내한, 성직자 · 수도자와 10여 명의 평신도를 위한 3박 4일 특별 세미나를 미8군 수양관에서 실시하였다. 끝나는 날에는 한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명동 대성당에서 3천 명에 가까운 교우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참가한 가운데 특별 ‘기도의 밤’이 이루어졌다. 이 밤, 성모님께서는 한복 차림으로 파이프 오르간 쪽에서 우리와 함께 하셨다. (한국의 성령쇄신 30년사 499쪽 ‘한복 차림으로 발현하신 성모님’ 참조) 무엇보다 같은 해 12월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두봉 주교님(당시 안동교구장)이 성령쇄신 전담 주교로 임명됨으로써 교회 안에 성령쇄신이 확고히 정착되었다.
3. 발전기(1982~2000)
발전기에는 각 교구에서 성령세미나와 기도회가 크게 확산되고, 약 70여 종의 성령쇄신 관련 출판물 보급, 음악학교 개설(1995), 청소년 세미나 확산, 성령쇄신회관 신축(대구 · 서울 · 청주교구 등), 봉사자 전문화 과정교육, 신자 재교육 프로그램 등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2000년을 기준으로 정착기에 비해 발전기에는 성령세미나 수료자 수가 9만 7,480명에서 62만 8,475명(6.4배)으로, 기도회 연 참석자 수가 47만 5,586명에서 565만 747명(11.8배)으로, 성령세미나를 수료한 성직자 · 수도자 수가 625명에서 3,533명(5.5배)으로 증가했다. 그리고 기도회를 개최한 본당 수는 1981년의 137개에서 2000년에는 528개로 늘어났다.
4. 성숙기 <2001~2009년 세계성령대회> : 성령의 열매
세계성령쇄신 40여 년의 역사와 한국성령쇄신의 역사를 통해 맺어진 열매는, 개인적인 열매와 교회공동체 차원의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개인과 교회의 쇄신’이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 사도 시대 이후 2천 년의 교회 역사상 교회가 쇄신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하느님께서는 몇 가지 중요한 영성 운동을 통해 교회를 새롭게 하시고 신앙생활에 활력을 부어 넣으셨다.
기원 후 3세기경부터 시작된 수도원 운동(Monastic movement)은 교회의 박해가 풀리고 신앙의 자유가 주어지자, (오히려 영적인 해이가 교회를 무기력하게 하였을 때) 독수자 · 은수자들은 철저한 고독과 금욕의 수도적 삶을 통해 교회를 새롭게 하였다. 그 뒤 중세에 프란치스칸 운동과 도미니칸 운동이 일어나 복음적 단순성과 가난의 삶을 통해 교회를 쇄신하였다. 근대에는 성체성사의 중요성을 강조한 전례 운동을 통해서 신자들과 교회를 참 신앙으로 이끌어 주었다.
현대는 물질문명과 과학 발전, 자유주의와 성의 타락이 신자들을 위협하고 백성이 교회로부터 멀어져 가는 상황이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미국에서 시작한 성령운동을 통해 신자들을 교회로 모으고 신앙 공동체를 건설하게 하셨다. 또한,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성령을 통해 하느님을 개인적이고 인격적으로 깊이 만나는 영적인 체험을 할 수 있었던 것 또한 성령 쇄신의 열매이다.
세계적으로는 두 개의 조직이 성령을 통해 결성 되었는데, 하나는 ICCRS(International Catholic Charismatic Renewal Services)이고, 또 하나는 Catholic Fraternity이다. 이 두 단체 모두 교황청 평신도 위원회에 정식으로 소속되어 교황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지도와 협력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15개의 각 교구에 성령봉사회가 조직되어 지도신부와 회장단을 중심으로 교육과 세미나, 기도회를 활발히 하고 있다. 또한, 전국 가톨릭성령쇄신엽합을 결성하여 연 1회 전국대회 및 각 교구 성령대회를 지원하고 있다.
전국가톨릭성령쇄신연합은 ‘성직자 · 수도자 묵상회’를 매년 4회에 걸쳐 4박 5일로 진행한다. 1975년 첫 묵상회를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122차에 걸쳐 연인원 4천 명의 성직자, 수도자들이 성령 세미나를 이수하였다. 이것은 외국인들이 부러워하는 한국교회의 자랑이다.
한편, 교회 안에 성령기도회가 보편화되고 있지만, 그들을 올바르게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 이론을 갖춘 지도 신부를 모시기 어려웠다. 그래서 전 전국회장이었던 김대군 신부는 2006년 4월에 ICCRS로부터
1) 지금 이 시대에 하느님께서 성령 쇄신에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가?
2) 현재 성령 쇄신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서를 받고,
1) 이제 성령쇄신은 기도회 안에만 머무르지 말고 선교활동에 투신하였으면 한다.
2) 좋은 지도자 양성을 위해 신학교에서 <성령론>을 가르쳐 사제들이 양들을 올바르게
인도할 수 있도록 성령을 체험하게 했으면 한다
라는 의견서를 로마에 제출하였다.
그런데 2007년 1월부터 인천 신학교를 시작으로 성령세미나를 하고, 대전,광주,부산 신학교에서는 부제반을 포함한 전체 신학생들에게 4박 5일간의 성령세미나를 받게 하여 대다수 학생들이 성령을 체험하면서 올바른 이해를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한편, 교구별로 성장해 가던 청년성령봉사회는 전국 가톨릭청년성령쇄신연합을 결성하여, 연 1회씩 전국 성령축제를 치르고 교구별로는 젊은이 성령세미나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연수와 워크숍(workshop)을 개최하는 등 청년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성장하였다. 특히 2006년 7월에는 제1회 세계 젊은이 성령대회를 한국에서 개최하여 23개국에서 1,300여 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찬양과 말씀, 치유와 미사를 통해 하나 되는 은총을 체험하였다. 이 때 ICCRS 사절로 대회에 참석하여 강의했던 시릴 존(Cyril John)은 대회 장소였던 꽃동네를 견학하고 봉사활동을 체험하였다. 그는 다음 번 세계성령대회 개최지가 한국의 꽃동네가 되어야 한다고 로마에 보고하여, 2007년 4월 세계 이사회에서 정식 안건으로 채택되었으며, 이사 13명의 만장일치로 한국 성령대회 개최를 결정하였다. 대회의 주제를 ‘행동하는 사랑’으로 한 것은, 처음으로 유럽 지역을 벗어난 이 대회를 통해 성령기도회가 기도와 찬양만이 아닌, 성령의 열매인 사랑을 실천하는 것임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1996년 전임 교황이신 요한 바오로 2세는 아시아 주교회의에서, 1천년기의 교회는 유럽이, 2천년기의 교회는 미국과 아프리카가 이끌어 왔다면, 앞으로 3천년기의 교회는 아시아의 교회가 인도해 갈 것이라는 예언적 메시지를 주셨다. 한국 가톨릭성령쇄신은 이제 세계 교회를 위해 봉사할 시점이 되었음을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아멘.
첫댓글 본당 제단체 중 하나인 성령기도회에 관하여 지도 신부(본당신부)가 사목적 도움을 제대로 주기 위해서는
신학교 부제반 부터 성령 세미나를 필수 코스로 이수시켜 성령 운동에 대한 체험을 하게하는 사목 정책은
참으로 옳다고 생각됩니다(인천,부산,대전,광주).
위의 통계수치로 보면 현재 한국 가톨릭교회 사제 중 25%만 세미나(4박5일 성령묵상회)에 참석하였네요.
평신도 10% 참여율 보다는 높지만 사목적인 차원에서 볼 때 다 가보시면 제일 좋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