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물
조정자
꽃물이라는 말은 꽃을 가꾸기 위하여 꽃나무에 주는 물을 말하기도 하지만 또 다른 말은 곰국 같은 것을 고았을 때 아무것도 섞지 않은 진국을 말하기도 한다. 나는 이렇게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내 가족들의 보양을 위해서 그 꽃물을 만들기 위해서 찬물에 사골 뼈와 고기를 담근다.
창밖엔 함박눈이 목화송이처럼 탐스럽게 내리고 있다. 그 고운 눈을 바라보려고 찻잔을 들고 창가에 섰다가 이번엔 날리는 눈의 찬 감촉을 느껴보려고 창문을 열었다. 쏴~하고 들어오는 찬바람이 상쾌함을 주었다. 창밖으로 내민 내 한쪽 손위에 눈송이가 앉았다가 봄눈처럼 이내 녹는다. 눈은 먼 산과 나무위에 쌓여 하얀 절경을 이루어 가고 있지만 하늘이 앞 동의 아파트지붕에 가리어 네모난 하늘밖에 볼 수가 없어서 아쉬웠다. 이 눈 오는 모습을 어릴 적 친구 옥이네 시골 집 높은 마루에서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옥이네 집은 조금 높은 언덕 위에 있어서 마루에 올라앉으면 앞산과 온마을과 먼 신장로 까지 훤히 보여 눈이 오는 날이면 우리는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꿈에 젖어 보곤 했던가! ‘어머나 뼈에 핏물이 다 빠졌겠네.’ 나는 화들짝 놀라 눈 내리는 것을 바라보던 감상에서 벗어나 찬물에 담가놓은 사골 뼈와 고기를 맑은 물에 씻어서 곰 솥에 넣었다.
어머니는 김장이 끝나고 추워지면 늘 사골을 고셨다. 쪽진 머리에 수건을 둘러 찬 바람을 막으시며 사랑방아궁이에 장작을 지펴서 종일 사골을 고셨다. 그 맑고 곱게 곤 사골국물에 송송 썰어 놓은 대파를 풍성하게 넣어 가족들 몸보신을 시키시고 또 그 국물을 충분히 식혔다가 김치항아리를 열고 김치에 후 물 붓듯이 잘 부어두시곤 했다. 나중에 김치가 푹 익으면 오늘처럼 눈이 펑펑 내린 날에 잘 익은 국물을 떠서 국수 위에 부어 주시며 앞치마 자락을 날리시던 모습이 아른 거린다
지금은 사골국물이 뼈 건강에 큰 도움이 안 된다는 정보가 많다 식품영양성분 데이터에 따르면 우유보다도 칼슘이 현저히 낮고 또 세 번 이상 고았을 때는 인의 용출이 증가되어서 칼슘의 흡수를 방해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사골에는 콜라겐 단백질과 칼슘과 같은 무기질성분이 풍부하다고 하니 고영양식임에는 분명 한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집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많은 국민이 사골 국을 즐겨 먹는 것이 이런 영양가만 따져서 먹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우선은 담백하고도 고소한 깊은 맛 때문이 아닐까? 잘 고아서 기름을 깨끗이 거두어낸 국물에 대파를 푸짐히 넣어서 뜨거운 국물에 익은 듯 만 듯한 파 맛과 어울어지는 그 국물의 맛은 맛의 마침표가 아닌가 싶다.
밖엔 눈이 오고 집안에선 곰국이 끓고 있는 것이 묘한 조화를 이루어 집안이 따뜻하고 포근함을 느낀다. 가족의 훈기가 가득 차있는 것 같은 집안에서 한 방울의 기름기도 허락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불순물을 거두어 내며 부글부글 끓고 있는 곰 솥을 지키며 맘속으로 외친다.
‘콜라겐 단백질아 나와라. 캴슘과 콘드로이틴도 나와라 글루코사민도 나와라 나는 진국을 골 것이다 내 가족을 위해서 꽃물을 만들 것이다.’
저녁식사 때 온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을 행복한 모습을 상상하며 뜨겁게 익어 가고 있는 내가 끓인 이 사골국은 진정한 꽃물이다
첫댓글 어머니의 사랑까지 덤뿍 우려낸 사골 꽃물이네요~~
심재호집사님 들어 오셨다 가셨네!
반가워요 너무 무료해서 빈 마음 채워 보려고 올렸어요
집사님 방에도 가끔들릴께요.
어머나!!! 글 속에 어머님인생도 권사님도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담겼습니다. 사골국도 푹 고았고 우리 권사님 글 또한 우려낼 대로 우려내 담백하고 구수합니다.
뒤늦게 찾은 카페에 읽을 글들이 많아 좋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푹 고은 사골 국물처럼 글이 곱고 예쁠까요. 잘 읽고 갑니다.
지나간 시간들이 그리워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