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천국의 계단’의 한 장면(위)과 ‘가을동화’의 조연 한나나(아래 오른쪽). |
지난 2009년 탈북한 이씨는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압력밥솥의 추가 쉬쉬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66㎡(20평) 남짓한 아파트 거실 한쪽엔 가느다란 머리빗, 파마용 롤러, 미용 연습용으로 쓰는 가발 쓴 마네킹 등 미용기구가 놓여 있었다.
그는 평양의 출장 미용사였다. 출장 미용사는 머리를 하고 싶은 사람의 집으로 찾아가 미용 서비스를 해준다. 이씨는 “처음에는 집에 미용기구를 차려놓고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손님들을 대상으로 머리를 해줬다. 하지만 위(당국)의 단속이 심해져 못하게 돼서, 출장 미용을 주로 했다”고 말했다.
이씨와 같은 ‘가정 미용사’ ‘출장 미용사’를 찾는 이들은 주로 중상류층으로 미용에 돈을 들일 만큼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학생들도 머리를 하기 위해 많이 찾아왔다”며 “일반커트는 2000원, 세팅파마는 1만5000원, 매직파마는 5000원부터 3만원까지로 3만원짜리 매직파마를 하는 중학생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북한에서는 노동자들이 월평균 3000∼4000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정도의 비용이 부담되는 사람은 일반 미용실을 찾는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은 각 동마다 두어 개의 국영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북한에서 가장 ‘잘나가는’ 미용실은 평양 시내에 있는 ‘문수원’과 ‘창광원’으로 규모도 크고 시설도 한국의 고급 미용실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런 고급 미용실은 가격이 비싸 일반 주민은 가지 못하고 고위간부 가족들과 같은 최상류층만 찾는다고 한다.
이씨는 전문 미용사는 아니었다. 북한에서 정식으로 미용기술을 배울 수도 없었고, 이 때문에 합법적으로 미용 자격을 취득하지 못했다. 그는 “한국 드라마를 몰래 보다가 미용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8년 전 북한 당국의 감시를 피해 몰래 중국으로 넘어가 미용기술을 배워왔다”고 했다.
이씨는 “(중국에서는) 조선보다 더 세련된 미용기술을 배울 수 있다. 이렇게 (중국에 불법체류하며) 미용기술을 배우는 조선 사람들이 많다”며 “중국에 몰래 가서 미용기술을 배우고 돌아와 암암리에 미용실을 운영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기술을 배운 뒤 함흥에 있는 종합시장에서 미용기구를 구입해 본격적으로 출장 미용업을 시작했다.
북녘에 부는 ‘한류’
북한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헤어 스타일은 뭘까. 이씨는 “손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주문은 남한 드라마 속여배우들의 머리 모양으로 잘라달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당시 조선 여성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던 드라마가 ‘가을동화’(KBS·2000년)와 ‘천국의 계단’(SBS·2003년)이었다. ‘천국의 계단’ 여주인공인 최지우씨와 ‘가을동화’ 조연으로 나오는 한나나씨의 머리 스타일이 가장 인기 있었다”고 말했다.
예술단원들이 한국 드라마가 담긴 비디오 영상을 가져와서 특정 배우의 머리 모양으로 머리를 해달라고 하는 것도 예사였다고 한다. 이씨는 “많은 (북한) 사람들이 점점 더 한국의 머리 모양, 옷 모양, 화장 방법을 원했다”며 “잘나가는 미용사가 되려면 반드시 한국 드라마를 봐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 탈북 직전엔 한국 드라마 속 머리 모양을 따라하지 못하도록 엄격히 두발 단속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조선에서 한국 것은 무조건 인기가 있어요. 살결물(스킨)과 같은 화장품도 한국 화장품이 제일 비싸게 팔리죠. 여기 한국에서나 조선에서나 사람들이 하고 다니는 건 똑같아요. 멋내고 싶고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지 않겠어요?”
출처 : 주간조선, 20011년 9월 19일 기사문
http://weekly.chosun.com/client/news/viw.asp?nNewsNumb=002173100008&ctcd=C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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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궁금합니다. 정말 최지우 머리랑 똑같이 해 달라고 하면 해 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