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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경 벌레들 원문보기 글쓴이: 성경 벌레
■ 디모데전서 1-6장 : 에베소 교회의 젊은 목회자에게 보내는 편지(1) ☞ 줄거리 바울은 로마 재판정에 의해 무죄 선고를 받고 잠시 로마 감옥에서 풀려났습니다. 그 후에 그는 동방 지역을 여행하는 길에(63-65년경), 에베소 교회에서 사역하던 디모데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영지주의라고 부르는 이단과 맞서 싸워서, 정통 진리를 수호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는 디모데에게 여러 가지 교회 행정과 목회에 필요한 지침들을 함께 기록했습니다. 바울이 이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1) 나라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할 것, 2) 교회에서 여자들의 역할에 대한 지침. 3) 교회의 지도자들에 대한 자격과 선출 방법. 4) 성경을 읽고 권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것. |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3:11,12)
‘하나님의 사람’은 구약에서 선지자를 부를 때 사용된 아주 존귀하고 영예로운 이름입니다. 7바울 사도가 디모데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르는 것은 디모데가 자부심을 갖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돈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자족할 줄 알아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1, 4장에 이어 거짓 교사들에 대한 경고가 거듭되고 있습니다(3절). 거짓 교사들은 교만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했는데, 그 근본적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이익을 얻으려는 불순한 동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5절). 오늘날 이단들이 사람들을 현혹시켜서 이득을 취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디모데와 같은 순수한 사람들도 이러한 변론과 언쟁에 휘말리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이 부패해질 수 있고 진리를 잃어버릴 위험성이 있었던 것입니다(5절).
따라서 그릇된 사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족(知足)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6절). 족함을 알지 못하고 항상 부자가 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언제든지 악한 자들의 유혹과 올무에 빠질 위험성을 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9, 10절). 악한 자들의 유혹에 아무런 까닭 없이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이 그 빌미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자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필요합니다. 돈이 주는 유익보다 경건이 주는 이익이 훨씬 더 크다는 것(6절)과 하나님과 재물을 결코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사실을 항상 유념해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거짓 교사들처럼 돈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와 같은 영적이며 도덕적인 성품을 추구해야 합니다(11절).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러한 삶을 살 것을 요구하면서 은근히 거짓 교사들의 악한 성품들을 겨냥하 고 있습니다(4, 5절). 즉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거짓 교사들의 삶과는 분명히 대조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명백하게 대조되는 인격과 삶이 없다면 거짓 교사나 참 교사나, 이단 교회나 정통 교회나 구별이 잘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단들이 우후죽순처럼 세를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 폐해도 심각합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세상 사람들은 초록은 동색이라고 하면서 이단은 물론 정통 교회까지 싸잡아서 비난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와 그 성도들이 세상의 이러한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단과는 확연히 다른 거룩한 삶의 모습들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복음 증거의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12절).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도 온전한 모습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마 5:48).
-기독 대학인회,ESF/「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2007. 07. 25-
고대에 디오게네스(Diogenes,?-B.C.323)라고 불리는 스토아학파의 위대한 성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토록 몸에 짧은 바지 하나만을 걸친 채 자기 집도 없이 산기슭에 있는 나무 통 속에서 잤습니다.
한번은 알렉산더 대왕이 그에 대한 몇 가지 소문을 듣고 하도 이상하다 싶어 실제로 그렇게 생활하고 있는지 보려고 그를 찾아갔습니다.
성자의 형편을 본 왕은 안 되었다는 듯이 성자에게
“당신처럼 훌륭한 성자가 이토록 누추한 곳에서 지내셔야 되겠오 ”
라고 하며 아무말 없이 듣고만 있는 성자에게 또다시
“당신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내게 말해 보오, 무엇이든 필요한 것은 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다 해드리겠소,”
하니, 성자가 하는 말이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소. 그저 있다면 지금 내 앞에 오는 햇빛을 왕께서 가리고 계시니 다만 비켜 서 주시오,”
라고만 대답했습니다. 이에 한층 더 놀랜 대왕은
“내가 아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어게네스가 되었을 것이다.”
라고 말하며 그에게 존경을 나타내고 왕궁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0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헤아릴 수없이 많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디오게네스어와 같은 지족하는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 종합 주석 15권,예화」p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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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대 사역 |
참고 성경구절 |
1 |
예배 |
마태복음 4:10 |
2 |
말씀을 가르침 |
사도행전 2:42 |
3 |
복음 전파 |
사도행전 5:42 |
4 |
성도의 교제 |
사도행전 2:42-46 |
5 |
성만찬과 세례식 |
고린도전서 11:23-34 |
6 |
권징 |
마태복음 18:17 |
7 |
봉사와 구제 |
사도행전 6: 1- 3; 에베소서 4:12 |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 종합 주석 14권,도표」p64
51주 (화)
■ 디도서 1: 1-3:15 그레데의 목회자에게 보낸 편지 ☞ 줄거리 바울은 감옥에서 잠시 풀려난 후에 그레데 섬에서 어렵게 사역하고 있던 사랑하는 동역 자 디도에게도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인사를 전한 후에, 자신이 디도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바울이 디도를 그레데에 남겨 둔 것은 그레데 교회의 부족한 일을 바로 잡고, 각 성에 교회 지도자들을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바울은 디도가 교회에서 지도자를 잘 세울 수 있도록, 지도자의 자격에 대해서 상세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당시 그레데 교회에도 역시 에베소 교회처럼 거짓 교사가 침투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도에게 그들의 그릇된 가르침을 바로 잡도록 지시했습니다. 그리고나서 바울을 남자와 여자 성도, 종들에 대한 삶의 지침을 제시했으며,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복종할 것과 , 모든 사람들에게 온유와 관용을 나타낼 것을 부탁했습니다. |
“너는 저희로 하여금 정사와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예비하게 하며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3:1,2)
본문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내리고 있습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모든 사람에게 온유함을 나타낼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2절). 때로는 불합리하고 무식하게 대하는 이들에게도 온유함으로 대해야 함은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기 이전에는 그들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서 죄 용서를 받아 다시 태어난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게 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그분이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흘려주신 보혈로 우리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형벌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생한 영혼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모시고 살게 하셨습니다. 성령은 거룩한 진리의 영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가 되게 합니다(고전 12:13). 그것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쫓아 행할 때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됩니다(갈 5:16). 죄악을 멀리하게 되고 그리스도와 온전히 연합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 시대나 지금이나 미혹하는 영은 계속해서 활동하며 진리가 아닌 것으로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바른 교훈과 진리가 무엇인지 분명히 선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진리가 아닌 다른 것들로 변론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복음이 아닌 환경이나 유전이나 전통이나 외형적인 것을 중시하며 논쟁하기를 즐깁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론들은 신앙에 그 어떤 유익도 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오직 바른 교훈에 서야 합니다. 거짓된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이단들에 대해서는 한두 차례 훈계한 후, 그래도 듣지 않으면 멀리해야 합니다. 교회를 세워가며 그레데 섬이 직면한 큰 위기는 복음을 위협하는 거짓된 가르침들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성도들을 미혹하려는 거짓된 가르침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바른 교훈을 전파하면서 선한 일에 앞장서야 하겠습니다
-프리셉트/「묵상하는 사람들,메시지」 2006. 02. 28-
성애성구사 임선재 장로님 이야기입니다. 그가 찢어지게 가난할 때 심장병에 걸렸습니다. 그런데 40만원이 없어서 수술을 못하고 죽어갈 판이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아 기적적으로 생명을 구하였습니다. 임 장로님은 생활형편이 나아지자 40만원을 들고 세브란스병원 심장병 담당 의사를 찾아가서 내밀었습니다. 의사는 웬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네, 이곳에서 나는 심장수술을 하였습니다. 그때 40만원이 없어서 죽을 뻔 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런 환자들이 없으란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긴급하게 돈 없는 환자가 오면 누구라도 좋으니 거절하지 마시고 이 돈으로 고쳐 주십시오.”
임 장로님은 매년 심장병 환자 1명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6;9∼10)
- 강문호 목사/「갈보리선교교회」-
51주 (수)
■ 디모데후서 1-4장 에베소 교회의 젊을 목회자에게 보내는 편지(2) ☞ 줄거리 바울은 디도에게 편지를 보낸 후에 66년 초에 다시 투옥되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마지막 선고를 기다리는 동안,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하던 청년 목회자 디모데에게 두 번째 편지를 썼습니다. 디모데는 젊고 소심해서 목회하는 일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두 번째 편지를 통해서 디모데에게 담대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했습니다. 바울은 선한 사역자의 참 모습이 어떤 것인지 제시하고, 말세에 고통받는 세대에서 성도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쓰라고 권했습니다. 바울은 죽음이 다가온 것을 알고, 죽기 전에 디모데를 보기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추위를 가릴 겉옷과, 가죽에 쓴 성경책을 갖고 자기를 방문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3:14-15)
디모데만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살아왔던 바울도 그와 같은, 아니 그보다 더한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은 바울과 함께 하셨고 그를 환란 가운데서 건지셨습니다. 바울은 지금 복음으로 인해 고난을 당하고 있는 디모데를 향해 이 점을 강조하며 그를 격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의 아픔과 고통 가운데 함께 하시는 분이십니다. 고통 중에도 함께 계셔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디모데를 향한 또 다른 위로의 말은 그가 당하고 있는 고난이 정상이라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성도들은 핍박을 받게 될 것입니다. 경건은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와 같은 삶을 살다가 핍박을 받게 될 때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경건하게 살고 있는 나에게 어떤 종류의 핍박이 있습니까? 나는 그것을 어떻게 이겨내고 있습니까?
바울이 살아왔던 생애는 디모데에게 분명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디모데가 악한 자들과 속이는 자들 속에서 진리를 파수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더 긴요하게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경의 진리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케 하며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도록 교훈하며 책망하고, 바르게 하며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17).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배우게 되며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자로 자라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주시는 이 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있도록 더욱 성경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학생 신앙운동, SFC/「 날마다 주님과 함께, 본문해설」,2003,04,28-
이미 영화로 제작되어 기독교인 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던 ⌜벤허, Ben-Hur)⌟의 작가인 류 웰리스(Lew Wallace)는 원래 불신자로서 성경을 공허하고 황당무계한 거짓이라고 맹렬히 비판했던 자였습니다.
그는 어찌나 하나님을 반대하는 일에 열심이었는지 말로만 성경의 허구성과 기독교의 불필요성을 강조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책으로 써서 세상 모든 이에게 읽히고자 결심하는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당장 성경의 허구성을 밝혀 책으로 내기 위하여 성경을 자세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야 성경을 성공적으로 신랄하게 비판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대하는 그의 마음은 완악하였고 그의 눈은 성경 가운데서 잘못과 거짓을 발견하려고 번득였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로부터 읽어 가는 도중 그의 마음속에는 놀라운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읽는 가운데서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녹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드디어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는 말씀에 이르러서 그는 꼬꾸라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완악하고 비판적인 불신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랑과 안식이 찾아 든 것입니다. 그 사랑에 감격한 웰리스는 기독교를 비판하고 성경을 농락하던 붓을 꺾고, 그 대신 만인의 심금을 울리고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 불후의 명작 ⌜벤허⌟를 썼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은 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며, 우리 가 새 사람이 되어서 바르고 의롭게 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 종합 주석 15권,예화」p1156
51주 (목)
■ 요한1서 1: 1-5:21 이단에 대한 경계와 사랑의 교훈 ☞ 줄거리 모든 사도들이 죽고 나서 사도 요한만이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85-90년경에 요한복음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90년을 전후해서 소아시아 교회에는 영지주의라는 이단들이 출현했습니다. 요한은 이러한 이단을 경계하고, 성도들을 사랑 안에서 권면할 필요를 느끼고 펜을 들어 편지를 썼습니다. 이단은 자신들이 빛 가운데 있다고 주장하면서 죄를 짓고 방탕하며 살았으며,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이러한 이단의 그릇된 가르침에 빠져서 범죄하지 말라고 권면하는 동시에, 올바른 기독론을 제시했습니다. 또한 그는 성도들에게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형제들을 사랑라고 부탁했습니다. 요한은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며,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형제를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이 서신을 쓴 이유는, 그들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습니다. |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4:16)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도요한은 아버지가 아들 예수를 세상의 구주로 보내주신 것에 대하여 분명히 선언하며 다시 한 번 더 강조합니다(14). 그의 편지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빠뜨린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거듭해서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하나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인하는 것이요(15), 다른 하나는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16).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온전한 사랑을 이루신 이유는 심판 날에 담대함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한다면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범죄하는 자, 곧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지 않는 자는 심판날에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설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들이 심판 날에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주님과 같이 되었기 때문입니다(17下). 우리 안에 사랑이 완전해 지는 것은 주님과 같아지는 것이요, 그러할 때 심판 날에 담대할 수 있습니다. 이 온전한 사랑만이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의 두려움을 내어 쫓아 버릴 수 있습니다(18). 18절에서 말하는 두려움이란 경외심에 따른 두려움이 아니라 노예가 상전을 두려워 할 때 쓰이는 단어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습니까? 두려움입니까, 경외심입니까? 우리 안에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 주를 닯아 가고, 두려움 없이 주를 섬겨야겠습니다.
핍박과 어려움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하는 당시의 성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동일하게 어려움에 처한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같이 한다는 말입니다. 서로 위로하고, 먹을 것을 함께 나누고, 아픈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갇힌 자들을 위하여 더욱더 담대하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입니다. 바로 이런 성도들은 우리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마음에 묻어두고 있는 용서하지 못하는 형제들이 있다면 용서하십시오. 이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계속 용서치 않는다면 당신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 것입니다.
-학생 신앙운동, SFC/「 날마다 주님과 함께, 본문해설」,2002.10. 26-
한 아이가 하루는 하나님을 만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초콜릿과 음료수를 가방에 챙겨 넣고 길을 나섰습니다. 버스정류장을 네 곳쯤 지났을 때 목도 마르고 다리도 아파진 아이는 공원 의자에 앉았습니다.
조금 후에 비둘기들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앉아 있는 아이의 옆에 할머니 한 분이 오셔서 앉았습니다. 음료수를 꺼내 마시려던 아이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초콜릿을 꺼내 할머니에게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고맙게 그것을 받아 들고 아이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아이는 정말 기뻤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그 날 오후를 먹고 마시고 미소지으면서 다른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공원의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행복해하는 표정을 보고 물었습니다.
"오늘 너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행복해 보이니?"
"오늘 하나님과 점심을 먹었어요. 엄마도 아세요? 하나님은 내가 지금까지 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셨다구요!"
할머니 역시 기쁨으로 빛나는 얼굴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할머니 얼굴에 나타난 평화로운 표정을 보고 아들이 물었습니다.
"어머니, 오늘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렇게 행복한 표정이세요?"
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
"난 오늘 공원에서 하나님과 초콜릿을 먹었단다. 그런데, 너 아니? 그분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젊더구나." 최용우 / ⌜햇 빛같은 이야기⌟에서-
51주 (금)
■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 ☞ 줄거리 요한2서와 요한3서도 일반 헬라 서신과 같이 인사말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요한2서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보낸 편지였으며, 요한3서는 가이오라고 하는 "사랑하는 성도 "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요한 2서는 성도들에게 진리와 사랑 안에서 행하도록 권면하기 위한 편지였습니다. 그리고 요한 3서는 3명의 사람들을 위해 쓰여 진 편지였습니다. 요한3서는 진리 안에서 행하는 가이오에 대한 칭찬과 격려, 교만한 디오드레베에 대한 경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선한 증거를 받은 데메드리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유다서는 25절로 이루어진 짧은 편지이다. 유다서는 베드로후서가 쓰여진 지 얼마 후(68년, 또는 69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편지는 교회 안에 있는 거짓 교사들을 엄히 꾸짖고,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아름다운 송영으로 그 끝을 맺고 있습니다. |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요한3서 1:11)
디오드레베는 가이오가 있던 교회 지도자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디오드레베를 소개하기를 으뜸되기를 좋아하고, 요한과 동료 전도자들을 접대하지 아니하며, 심지어 요한과 교회 성도들을 악한 말로 헐뜯었다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순회 전도자들을 영접하지도 않았고, 전도자를 영접하고자 하는 자들까지도 교회에서 내쫓았습니다. 이에 요한은 교회를 직접 방문하여 이러한 디오드레베를 징계하리라는 자신의 의사를 밝히고 가이오로 하여금 그와 같은 악을 행하는 자를 경계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반면 요한은 데메드리오를 가이오에게 천거하면서 그의 행실을 본 받을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공동체 가운데는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남들이 칭찬해 주어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거나,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댓가를 기대하면서 으뜸되는 것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섬기는 것보다 섬김을 받는 것을 더 좋아하는 시대에 나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본문은 본서의 종결부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요한이서의 종결부와 마찬가지로 본서에 기록한 것 외에 더 쓸 것이 많으나 직접 대면하여 이야기할 것을 기약하며 간단한 문안 인사로써 끝을 맺고 있습니다.
특별히 요한은 에베소 교인들을 ‘친구’로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디오드레베와 그 무리들이 요한을 비롯하여 순회 교사들에게 가지고 있는 적의와 대조를 이루기 위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오늘 나는 이런 사람들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습니까?
-학생 신앙운동, SFC/「 날마다 주님과 함께, 본문해설」,2002. 10. 31-
나쁜 길로 빠져든 아주 절친한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 저녁, 그날도 이 두 사람은 함께 노름하는 곳으로 가던 중이었는데, 교회 앞 게시판에 ‘조의 삯은 사망이라’고 붙여놓은 설교 제목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그것을 본 두 사람은 기분이 언짢아졌고 이어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오늘은 놀러갈 마음이 없어졌네, 자네 혼자 가게.”
그러자 한 친구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뭘 저런 글 따위로 마음을 언짢아하고 그러나? 그러지 말고 기분 풀고 함께 가세. 혹시 아나 오늘밤 크게 한건 할지?”
그래도 한 친구는 끝내 안가겠다고 했고 두 사람은 실랑이를 벌이다가 각각 헤어져 한 사람은 노름장으로, 한 사람은 집으로 걸어갔습니다.
집으로 가던 한 친구는 게시판에서 본 글 구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그 교회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교회에 들어간 청년은 그날 저녁 맨 뒷자리에 앉아서 설교를 듣다가 완전히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새 사람이 되어 모든 죄를 청산하고 열심히 공부하여 정치계로 진출, 마침내 대통령으로까지 당선되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미국의 제22,24대 대통령을 지낸 클리블랜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혼자서 노름 장으로 가버렸던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는 미국에서도 흉악범들만을 수감하는 교도소에서 옛날 자기의 친구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것을 TV로 보며 눈물만 지을 뿐이었습니다.
“저 사람이 30년 전에는 내 둘도 없는 친구였는데 이제는 대통령이 되고 나는 이곳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구나-----.”
그러나 이 사람의 한탄이 이제 와서 무엇을 바꿔줄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악을 버리지 못하고 끝까지 악에 속했던 자와 악을 깨닫고 하나님께 속한 자의 결국이 이 얼마나 다릅니까?(한경직목사)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 종합 주석 16권,예화」p622-
51주 (토)
◇ 주제 : 그리스도의 대 위임령(마28:11-20)
명령의 특징은 명령을 받은 자가 행하지 않으면 화를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증거를 은폐하려는 자들의 음모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만나 부활의 증거를 보이시고 선교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선교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 거짓 것들에 유혹당해서는 안됩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무덤의 모든 된 일을 파숫군들로부터 보고 받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군병들을 많은 돈으로 매수하여 부활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케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와서 주님의 시체를 도적질하여 갔다고 말하라고 한 것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의 간악한 모습으로 이것은 전형적인 성령훼방 죄입니다. 마태는 종교지도자들의 얄팍한 술수가 결코 성공하지 못했음과 오히려 이것이 주께서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부활의 증거를 은폐하려고 하는 자들의 음모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부활하신 메시아로서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주님의 선교명령에 순종하며 살기 위해서는 거짓 것들에 유혹당해서는 안됩니다. 대적 자들은 부활을 믿지 못하도록 제자들이 시체를 도적질해 간 후에 숨겨두고 조작했느니,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잠시 기절하신 것이라느니 하는 등 주께서 부활하신 것에 대하여 확신을 갖지 못하도록 거짓 사실들로 유혹합니다. 만약 이것들에 유혹된다면 선교명령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습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께 대한 확신이 선교명령 수행을 가능케 합니다.
☞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은 부활하신 주님이 그동안 훈련하셨던 제자들에게 선교명령을 하시는 것으로 맺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습니다. 천사들보다 높으시고 땅위의 어떤 권세들보다 크신 권세를 하나님 아버지께 부여받으신 것입니다(빌2:10). 그러므로 주님의 선교명령은 최상최대의 명령 즉 지상명령(至上命令,The Great Commission)이 된 것입니다. 주의 제자훈련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주님을 따르는 자들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신 것입니다. 주를 따르는 자들이 주의 선교명령을 수행하며 살기 위해서는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이란 첫째, 명령권자의 지위를 이해하고 자신이 주의 지상명령을 받았음을 확신합니다. 둘째, 부르시는 곳으로 갑니다. 양들이 있는 곳, 나를 필요로 하는 곳으로 순종하여 갑니다. 셋째,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사역을 합니다. 즉 그들에게 영생을 얻도록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며 중생한 자에게 세례를 주고 주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켜 행하도록 훈련합니다. 넷째, 동행해 주시겠다고 하신 것을 확실히 믿으며 매사에 믿음으로 삽니다. 기독대학인회(ESF) /일용할 양식r 2004. 9. 20
6.25 동란 전 인민군 장교의 부인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그 인민군 장교는 기독교가 몹시 못 마땅해 기독교인인 아내를 알게 모르게 핍박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내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그의 생명에도 큰 위험이 뒤따르므로 그는 아내에게 제발 예수를 믿지 말라고 사정도 해보고 협박도 해보았으나 그 아내는 더욱 열심히 교회에 나가 남편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남편이 잠들 때엔 그의 손을 잡고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6.25 전쟁이 나자 그녀의 남편은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고 전방에서 싸우다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가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 미군 군목이 와서 기독교 신자가 있으면 나오라고 했습니다. 군목은 한명씩 찬송가를 시켰습니다. 이 때 인민군 장교는 아내가 매일 밤 들려주던 찬송이 생각났습니다. 이 찬송을 부르다가 자신도 모르게 감동을 받아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무사히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에 힘쓰는 것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오늘도 전도에 힘쓰는 아름다운 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출처] 전도예화 모음|
1955년 가을 어느 날입니다. 미국 오래곤(Oregon)주에 있는 유진(Eugene)이란 작은 마을에서 지역신문에 광고가 실리기를 밤 시간에 마을회관에서 종교영화 상영이 있다는 광고가 실렸습니다. 작은 마을이라 아는 이웃들끼리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누고는 준비된 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영화의 내용인즉 한국 전쟁(Korean Wa)r에서 생긴 고아들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특히 미군 병사들과 한국 여인 사이에 난 혼혈고아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고아들을 돌볼 손길을 찾는다는 호소가 곁들여 있었습니다. 이 날 영화를 본 마을 사람들 중에 한 농부 부부가 있었습니다. Mr & Mrs Holt였습니다.
이들 부부도 다른 부부들과 마찬가지로 영화를 보고난 후 헤어지면서 우리들 같은 가난한 농부들이야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을 주고받으며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홀트부부에게는 날이 갈수록 그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르곤 하였습니다. 부부는 두 손을 마주 잡고 기도하다가는 농장의 일부를 팔아 얼마의 기금을 마련하여서는 한국으로 갔습니다. 한국에서 8명의 고아들을 양자로 데려왔습니다. 이 기사가 지역 신문에 사진과 함께 실리자 여러 곳에서 돕고 싶다는 서신이 오고 자기들도 혼혈고아를 양자로 맡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이에 용기를 얻은 부부는 농토를 팔고 이 일에 전념케 되었습니다. 그들은 무려 2만에 가까운 고아들을 각 가정에 맺어주게 되었습니다. 홀트 아동복지회가 시작케 된 내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통하여 자신의 일을 이루어 나가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들 각 자에게 주어지는 일의 몫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으랴”하고 주저앉는 자들에게는 일을 맡기시지 않으십니다.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어”하고 용기로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일은 맡겨 집니다
-김진홍 목사(두례교회) 2009년 07월 30일-
주님! 살아 계셔서 언제나 함께하시는 주님
주님을 믿고 주님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신 주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을 사랑해 주시고 주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주님...
저의 교만함을 용서하소서. 남을 미워한 것, 화를 낸 것, 내 멋대로 행동하고 말한 것, 주님 용서 하소서.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촛점을 맞추고 살아가게 하소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바쁠 때나, 한가할 때나 주님을 전할 수 있도록 인도하소서.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오직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오직 주님의 말씀을 전하며 주님의 향기로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그런 삶을 살게 하옵소서.
나의 말로 상처 받는 이가 없도록 나의 말을 지켜 주시고 나의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빛을 가리우지 않도록 나의 말과 행동이 주님을 닮아 가게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