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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대륙 발견자는 중국인?
독일인 지도제작자인 마틴 발트제뮬러는 1507년 이 지도를 제작했다. 이 지도에서는 호주 대륙을 제외한 오늘날 전세계 대부분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개빈 멘지스는 그의 최신작 '1421-중국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해'(윌리엄 모로우 출판사)에서, 수많은 선박들을 거느린 거대한 중국 탐험대가 마젤란이나 콜럼버스보다 약 1세기나 먼저 아메리카 대륙의 광범위 탐사를 비롯, 2년간의 세계일주항해를 성공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 책 '1421-중국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해'에서 역설
이러한 그의 주장이 전세계적으로 놀라운 파문을 일으킨 것을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책은 이미 영국 언론으로부터 다양한 평가를 받았으며, 뉴욕타임즈 매거진과 살론닷컴에는 회의적인 기사가 실리기까지 했다.
멘지스는 세간의 평가에 별로 동요하지 않고있다. 그는 이번 책의 출판사인 모로우 출판사의 뉴욕사무실에서의 인터뷰에서, 사실 그조차도 자신의 조사결과에 놀랐다고 말했다.
"정말 이는 대단히 놀라운 일"이라고 그는 말했다. 영국해군의 잠수함장 출신인 멘지스는 작은 체구의 조용한 말씨를 지녔으며, 전혀 언론에서 묘사하듯 지나치게 이상한 사람은 아니다.
멘지스는 결혼기념으로 아내와 함께 중국을 여행하는동안, 만리장성과 자금성의 역사에 매료되었다고 했다. 두 건물 모두 우연하게도 1421년에 완공됐다. 더 자세한 조사를 하던 멘지스는 두개의 역사적인 건축물과, 당시 황제였던 영락제, 그리고 그의 대적이었던 몽고의 티무르 등에 대한 10년이나 걸리는 연구 프로젝트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난 후, 역사학자들과 함께 원고(후에 '말을 탄 두 황제'라는 제목이 붙여짐)를 검토하는 동안, 멘지스는 캐리비안 제도를 그린 1424년작으로 추정되는 포르투갈인들의 지도에 대해 알게됐다.
"그 지도에서 포르투갈인들은 콜럼버스보다 70년이나 앞서 세계지도를 완성한 사람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라고 멘지스는 말했다. 그리고 그는 담담히 대답했다. "나는 다른 지도들을 자세히 살펴보았고, 그 결과 답은 바로 중국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기존에 쓰고있던 책을 그만두고,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 당시엔 정말 그 사실에 대해 정말 화가 났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기존 역사관에 대한 도전
이 책은 지속적인 변화를 가지는 다언어적, 지도학적, 생물학적 증거들에 대해 전문연구팀원으로써 멘지스가 판독과 대조를 반복하며 발견해낸 것들 뿐 아니라, 자신의 항해 경험에도 기반을 두고있다.
다른 서사작품처럼 '1421'은 역사수업으로 시작하고 있다. 제목의 해인 1421년, 중국의 황제 영락제는 자신의 황실에 바치는 공물을 거둬들이기 위해 보물선 함대를 특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멘지스가 발견한 것에 따르면, 800척의 선박을 지닌 대함대가 1421년 봄 항해를 시작했으며, 자금성 준공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황제의 특사로 파견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수평선을 넘어 지도에 존재하지 않던 곳에까지 도착했고, 그곳을 탐험하고 지도를 그렸으며, 공물도 거둬들였다고 한다.
또한 멘지스는 뜻밖의 우연한 일치에 초점을 기울이고 있다. 바로 당시 무역의 중심지였던 서남 인도의 칼리커트에서 중국인을 만난 니콜로 다 콘티라는 베네치아 상인의 존재가 그것이다. 다 콘티는 중국인들을 만났던 것에 대해 자세한 기록들을 남겼다. 멘지스에 따르면, 중국 선박들이 미지의 세계를 향한 서양의 전초지였던 희망봉을 일주했다는 이론을 확고하게 증명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다 콘티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우연한 일치는 멘지스로 하여금 중국인들의 무역로를 따라 보다 심층적인 연구를 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중국 선박들이 갔던 길들을 따라 세계일주항해를 했으며, 세계 곳곳에서 아시아 언어로 주인이라고 새겨진 해안의 표시돌들을 발견했다.
다른 발견물들 또한 그가 제대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고히 해주었다. 침몰한 선박들은 콜럼버스가 다녀가기 전 신세계를 방문했던, 중국말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증거를 제공했다.(이러한 사실은 탄소연대측정법과 DNA분석을 통한 인류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한다고 작가는 주장하고 있다) 그리하여 중국이 소개한 새로운 인류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
"나는 주변의 모든 종류의 정보들에서 일을 시작해나갔다"고 그는 회상했다. "처음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던 유럽인들은 중국 닭과, 쌀, 중국 자기, 옥 등을 발견했다. 또한 그들은 중국말을 하는 사람들도 발견했다. 나는 지도에 있는 모든 정보들을 취합해보았다. 그리고 난 후 첫번째 유럽 탐험가들의 기록을 고찰해보기로 결정했다....
지금, 나는 우리팀과 함께 이것들을 취합하고 있으며, 우리팀원들은 최초로 그 유럽 탐험가들의 완전한 기록을 영문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들은 모든곳에서 중국인을 발견했다. 캘리포니아, 멕시코, 아칸소, 플로리다 등등... 그리고 그들은 중국사람들 뿐 아니라 중국 선박까지도 발견했다. 그래서 나는 말한다, 더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느냐라고. 게임은 끝났고, 내가 이겼다. (이러한 기록들에 대한 완전한 조사기록은 이 책의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들
유명한 터키제독 피리 레이서가 제작한 이 지도는 1428년의 세계지도를 포함한 여러 지도들을 혼합하여 보여주고 있다. 이 지도는 1513년 영양의 가죽 위에 그려진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멘지스의 이론을 무시하기도 하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불행하게도 그는 아무것도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지 못했다"라고 중국의 역사학자인 루이스 레바테즈는 살몬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가 한 일은 역사를 혼란스러운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 뿐이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역사가 어떻게 흘러왔는지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됐다."
다른 전문가들은 좀 더 두고보자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의 분석에는 명확한 논리가 있다"라고 천체물리학을 연구하는 하바드-스미스소니언 센터의 천문항법 전문가인 필립 새들러는 스페이스닷컴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멘지스는 18개월 전 런던에 있는 영국왕립지리학협회에서 그가 발견한 것들에 대해 발표를 한 바가 있다.(이 발표문은 작가의 합의 하에 살몬닷컴에 기재되고 있다) 우연히도 런던에는 한 중국인 TV 관계자가 있었고, 멘지스의 발표는 위성을 통해 중국으로 방송되었다. 후에 이 발표는 CBS와 ABC에서도 방송되었다고 멘지스는 말했다.
"아주 우연치 않은 행운으로, 나의 발표를 전세계의 시청자들이 보게됐다. 그 결과 내게 막대한 도움을 주는 수많은 정보들이 몰려왔다"고 그는 말했다. "나는 사람들로부터 여러가지의 사실여부를 물어보는 수천통의 문의편지를 받았다. 예를들어, 캘리포니아주 새크리멘토의 한 호두 농부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집 뒷 뜰에 콜럼버스 이전시대 것으로 보이는 중국선박이 있다. 우리 가족들은 50년 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후 그 선박은 조사에 들어갔고, 그 결과 중국 선박으로 판명됐다. 이런 일들이 전세계에서 일어났다."
개빈 멘지스
또한 멘지스는 중국에서 강의를 들은 후, 한번도 만난 적조차 없는 두명의 중국 교수들이 자신의 발견을 확증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정말 너무 놀랐다. 두 중국 교수의 연구는 1511년 혹은 그 이전부터 중국과 브라질의 접촉이 있었다는 것을 확실히 증명해주고 있었다. 한 회의에서는 부가적인 요소들에 대한 엄밀한 조사가 실시됐다.
"회의는 아주 난관이었다"라고 멘지스는 말했다. "회의는 세 집단으로 나누어 진행됐고, 각각의 집단들은 세번째 내 증거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끝없이 논쟁을 벌였다. 그리고 3일 후 그들은 '당신의 증거 중 절반만이 사실이다. 유럽인보다 중국인이 먼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는 것은 논증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결국 멘지스의 연구는 그의 발견들을 확증해주거나 다른 사실들을 알려줄 새로운 연구들이 진행되도록 자극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아직 다 끝난 것을 아니라고 말했다. 특히 이미 영국과 미국에서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고 있는 자신의 책에 대한 반응들에 대해서는 말이다.
"나에게는 이 계속되는 문제들을 분석하는데 자신을 바친 자랑스런 팀원들이 곁에 있다"고 그는 말했다. [CNN] 2003.01.19
美대륙은 명나라가 먼저 발견했다?
고지도의 비밀 / 류강(劉鋼) 지음, 이재훈 옮김
책은 중국 명나라 영락 16년(1418년)에 제작된 세계지도인 ‘천하제번식공도(天下諸番識貢圖)’의 존재를 모티프로 세계사에서 근대의 문을 연 상징적 사건인 서구의 ‘지리상의 발견’이 가진 역사적 의미의 전복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 베이징(北京)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이자 고지도 수집 및 연구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책에서 ‘천하제번식공도’의 존재를 통해 1418년 이전에 이미 중국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비롯해 세계일주를 마쳤으며 14~16세기 초 유럽에서 등장한 세계지도들은 중국 고지도를 참고한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한다. 저자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실마리가 되는 ‘천하제번식공도’ 모사본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모사본을 지난 2001년 상하이(上海) 둥타이루(東臺路) 고서점에서 처음 발견했다. 남극과 북극, 그린란드를 포함해 아메리카·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등 지구의 모든 대륙과 대양을 나타낸 ‘천하전여총도(天下全與總圖)’란 제목의 세계지도의 왼쪽 아래 모퉁이에서 ‘건륭 계미년(1763년) 중추월(음력 8월)에 명나라 영락 16년에 간행된 천하제번식공도를 모사했습니다’라는 기록과 함께 ‘신하, 막역동(莫易仝)이 그렸습니다’라고 돼 있는 낙관을 확인했던 것. 지도의 수평 중심선이 고대 중국의 ‘낙읍(洛邑)중앙설’에 따라 북위 35도 부근을 지나고 있는 등 ‘천하제번식공도’가 15세기 지도를 베낀 모사본이 맞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저자가 제시한 중국 전통사상에 대한 설명들은 국내 고지도 연구에도 참고가 된다.
저자는 특히 이 모사본의 태평양 부분에 쓰여진 주석에 나오는 ‘정사태감마삼보(正使太監馬三寶)’가 명나라 초기 인물인 정화(鄭和)를 가리킨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슬람교도인 정화의 본래 이름이 바로 마삼보였다. 이와 함께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식인습관과 남아메리카에서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풍습 등 모사본에 실린 주석의 내용과 각종 사료들을 검토한 결과 정화의 함대가 세계일주를 했음이 증명된다는 것이다.
지난 2006년 ‘천하제번식공도’ 모사본을 공개해 전 세계적인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는 저자는 책에서 서양 고지도에 남겨져 있다는 중국 고지도의 여러 가지 흔적들을 파헤치며 기존 세계사 이해와 다른 파격적인 주장을 펼친다.
가령 서구의 ‘지리상의 발견’ 수백년 전에 이미 중국에서는 원양항해나 천문관측, 수학계산, 지도투영법, 경·위도 측정 등의 분야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뤄 중국 탐험가들이 성공리에 세계를 탐사할 수 있었다. 정화는 이들 탐험가가 남겨 놓은 지도의 안내를 받아 전 세계 항해 일주를 마쳤으며 중국인이 제작한 세계지도는 15세기에 유럽으로 전해져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등 항해가들이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는 배경이 됐다는 것이다.
저자가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주장들은 말할 것도 없이 철저한 학문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그러나 당송시대에 찬란하게 꽃피웠던 중국 과학기술이 15세기 말부터 정체된 배경을 도교의 쇠락에서 찾는 등 흥미로운 내용이 적지 않다. /최영창 2011-01-07
중국 ‘천하제번식공도’, 신대륙 발견사 뒤엎은 고지도
콜럼버스 ‘대발견’보다 74년 앞서
15C 초 그려진 ‘천하제번식공도’에 5대륙·남북극·그린란드 선명해
“투영도법 중국선 11C 이전 존재”.. 색다른 분석…주관적 추론 한계
<고지도의 비밀> 류강 지음·이재훈 옮김/
고지도에 남다른 애착을 지닌 수집가요 지도역사학 연구자인 베이징대 법학과 출신 변호사 류강. 2001년 상하이로 출장간 그는 둥타이루(동대로)의 골동품 가게에서 ‘천하전여총도’(天下全與總圖)라는 이름이 적힌 옛 지도 하나를 입수했다. “건륭 계미년 중추월에 명나라 영락 16년에 간행된 ‘천하제번식공도’(天下諸番識貢圖)를 모사했습니다”, “신(臣), 막역동이 그렸습니다”라는 주석이 붙은 이 지도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줄 류강은 그때까진 몰랐다.
주석 내용은 그 지도가 1418년에 그려진 ‘천하제번식공도’를 1763년에 막역동이란 신하가 그대로 베껴 그린 것(모사)이라는 걸 얘기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지도엔 아메리카 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 등 모든 대륙과 대양, 심지어 남극과 북극, 그린란드까지 선명히 그려져 있었다.
1418년에 제작됐다는 중국의 옛 세계지도 ‘천하제번식공도’의 모사본. 남북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태평양 등이 뚜렷하다. 테두리가 쳐져 있는 지도와 주석들은 18세기에 모사할 때 모본에 원래부터 있던 것들이라고 왼편 상단에 써 놓았다.
1418년이면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는 1492년보다 74년이나 앞서고, 포르투갈인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아프리카 희망봉을 처음으로 지나간 1487년보다도 근 70년이나 이르다. 3년 만에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유럽 출발지로 되돌아온 마젤란 선단이 항해를 시작한 것은 1519년이었다. 따라서 만일 주석 내용이 사실이라면 역사책에서 배워 온 서양의 이른바 ‘지리상의 발견’이란 완전 허구가 아닌가? 중국인들은 그 훨씬 전부터 그걸 알고 있었다!
혹시 주석 내용과는 달리 지도가 지리상 발견 이후에 전해진 여러 새로운 사실들을 짜깁기해 후대에 날조한 가짜가 아닐까? 류강은 우선 종이의 변색, 냄새, 바싹거리는 정도, 사용된 물감, 글씨체와 서법 등을 일차적으로 살핀 뒤 적어도 그 지도의 모사 시기만큼은 주석 내용과 일치한다는 확신을 갖고 본격적인 진위 확인작업에 착수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서양의 ‘지리상의 발견’ 이전에 중국인들이 천하제번식공도에 그려진 지리적 사실들을 이미 알고 있었고, 여러 정황으로 보건대 1405년 명 영락제의 명으로 대규모 선단을 이끌고 원정을 떠난 환관 정화가 세계를 일주했다는 걸 ‘증명’할 수 있게 됐다고 류강은 결론지었다.
하지만 그걸 누가 믿어주겠는가? 머뭇거리던 이 아마추어 연구자를 바깥세상으로 끌어낸 사람은 영국 해군장교 출신의 또 한 사람의 아마추어 역사연구자 개빈 멘지스였다.
멘지스는 1412년에 제작된 고지도에 그려진 대서양상의 섬 4개를 실마리 삼아 120여국 900여곳의 도서관과 박물관 등을 찾아헤맨 끝에 정화가 콜럼버스보다 먼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는 추론을 끌어냈고 <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조행복 옮김, 사계절, 2004)에 그 내용을 담았다. 류강은 자신이 산 고지도 사진을 멘지스에게 보냈고 멘지스는 베이징까지 찾아와 모사본을 직접 살펴보고 흥분하더니 세상에 공개하자고 했다. 2006년 1월 천하제번식공도가 공개됐고 중국 안팎에서 큰 반향이 일었다.
멘지스의 추론으로는, 1433년까지 28년 동안 모두 7차례에 걸쳐 ‘대항해’를 떠난 정화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것은 1421~1423년 무렵. 그렇다면 정화 역시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아니다. 1418년에 그려진 천하제번식공도는 정화의 발견 이전에 이미 아메리카 대륙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셈이며, 정화는 그 사실을 알고 원정을 떠난 것이다.
<고지도의 비밀>은 이와 같은 추론이 직관이나 빈약한 몇가지 사실이 아니라 방대한 문헌과 풍부한 사실들을 토대로 한 나름의 치밀한 고증을 통해 이루어진 것임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발트제뮐러의 세계지도(1507), 마르텔루스의 지도(1489), 비르가의 지도(1415), 마우로의 지도(1459), 14~15세기의 포르톨라노 해도, 대명혼일도(1389),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1402. 조선사람 김사형과 이무의 공동작품. 일본 류코쿠대 소장), 황여전람도(1717), 천하전도(1722), 피리 레이스의 지도(1513), 빈란드의 지도(1440), 도팽 지도(1545), 마테오리치의 곤여만국전도(1602) 등의 문헌을 비교 분석하고 당시의 시대배경, 과학 및 종교 상황 등을 살핀다.
1971년 베이징 북서쪽의 한 고성 터에서 1093년에 조성된 장광정이란 사람의 무덤이 발견됐다. 무덤 천정에는 별자리 그림(성상도)과 함께 세계지도의 윤곽이 발견됐다. 그것은 남북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윤곽이 선명한 1722년 제작 천하전도와 매우 비슷하다고 류강은 주장한다. 디테일은 떨어지지만 기본골격은 문제의 천하제번식공도와도 분명 닮았다. 그렇다면 이미 11세기에 천하제번식공도의 모본이 존재했다는 얘기다.
천하제번식공도 같은 세계지도를 그리려면 세계가 평면이 아니라 공 모양이라는 것, 공 모양의 표면을 평면에 옮기는 데 필요한 투영도법과 고도의 수학적 연산, 또 세계 각 대륙의 실제 지리상황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발견 및 발전은 유럽에서 이뤄진 것임을 천하가 알고 있고 중국은 17세기에야 서양의 지도제작기술을 받아들였는데 무슨 황당한 얘기냐? 중국엔 11세기 이전, 심지어 기원전부터 이미 투영도법이 존재했다고 보는 류강은 바로 그런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뒤집어버린다. 지도제작 기술과 그 토대가 된 과학은 서양에서 중국으로 전수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서양으로 전수된 동학서진(東學西進)이었다고.
류강은 지도학뿐만 아니라 화약, 나침반, 종이, 인쇄술을 포함한 중국의 자연과학적 성취는, 예컨대 장생불사의 선약 제조를 향한 열망이 화약의 발명을 낳았듯이, 자연의 이법(도)을 추구한 도교 철학을 그 바탕에 깔고 있다고 본다. 원·명 이후 중국의 자연과학이 쇠퇴하기 시작한 것은 통치 편의를 위해 자연 이법을 추구하는 ‘외단술’보다 내면 추구에 집착하는 ‘내단술’ 위주로 도교의 교리를 유도하면서 충효 중심의 유교를 진작시킨 통치자들 정책 탓이라는 류강의 분석은 흥미롭다.
<고지도의 비밀>은 멘지스의 책, 지도를 통해 유럽 이전에 초고대문명이 존재했다는 찰스 햅굿의 주장을 담은 <고대 해양왕의 지도>(김병화 옮김, 김영사, 2005) 등 서양 기원론에 반기를 든 최근 비주류 지도학 연구들의 인기를 등에 업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류강이나 멘지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확고한 증거는 없으며, 적어도 아직까지는 주관이 많이 개입된 추론일 뿐이라는 점이다. 아메리카나 오세아니아나 아프리카를 그토록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면 바로 인근의 고려·조선이나 일본도 그렇게 엉뚱하게 그리진 않았을 텐데, 하는 의구심도 든다. 해제를 쓴 정인철 부산대 교수(지리교육과)는 류강의 주장의 의미와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입론과정에 다양하게 동원되는 풍성한 정보와 지식, 상상력, 논법 등을 높이 평가했다. 2011/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