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잡지사 기자가 되고 싶다고 자청한 앙앙의 프리랜서, 친구들은 뭐하느냐고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을 전했다. “반 이상은 취업했어요.” 극심한 취업난 시대에 대체 무슨 과이기에. 그녀는 이화여대 비서학과 졸업반이었다. “외국계 기업의 외국인 팀장도 비서를 뽑거든요. 하는 일은 고작 말이 통하지 않아서 답답한 그에게 친구 역할을 해 주는 정도죠. 그의 스케줄을 정리해 주고 말벗을 해 주는 정도? 작은 회사에서도 체면상·명목상 비서를 채용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 경우 역시 ‘비서가 있다’는 것을 폼내기 위해서 뽑았기 때문에 칼퇴근이죠.” 얼마나 천국 같은 직업인가? 매달 연예인 섭외에 간·쓸개 다 빼놓고, 한 달에 열흘은 마감에 시달리다 결국 남는 것은 망가진 몸과 마음뿐인 잡지사 기자로서는 ‘나도 비서가 되는 건데, 쩝!’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수밖에. “왜 기자가 되려 하지? 비서가 백배는 낫겠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서른둘의 비서요? 천덕꾸러기일걸요? 어차피 하는 일은 스케줄 정리나 커피 심부름 등 단조로운 일이기 때문에 나이 들면 ‘결혼 안 하나?’ 등 눈치를 준대요. 결혼이라도 하면 당장 그만둬야 할 판이죠.”
이렇게 되면 역시 공무원·스튜어디스·선생님 등 그간 우리가 지겹도록 들어온 직업 리스트를 반복해야 하는 걸까? 자료 조사를 하던 차에 ‘대기업 직원 평균 근속 연수 상위 10개 기업’이라는 리서치 자료를 발견했다. 대기업 여성 직원이 평균적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근무했는지 알 수 있어서 ‘이거다!’ 싶었다. 오랫동안 근무할 수 있다는 것은 여성이 일하기에 좋은 회사라는 방증이 아닌가? 1위인 KT&G를 비롯하여 중소기업은행, KT, 국민은행, 제일은행, 우리은행, 조흥은행, 현대중공업, 한국외환은행, 쌍용자동차부터 20위인 한국전력공사까지 차례로 전화로 리서치한 결과 신빙성은 50대 50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여성 근속 연수 상위 10위까지 대다수를 차지하는 금융권이 비교적 남녀 차별이 없고, 자산운용본부·기획본부 등 핵심 업무 배치에서도 평등하다는 것은 인정할 만했다. 하지만 근속 연수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 카운터에서 일해 온 계약직 직원이거나 KT&G를 비롯하여 현대중공업·쌍용자동차·한국전력공사 등은 모두 제조업 계통이었다. 일반 사무직은 그 수가 많지 않았을뿐더러 승진 또한 쉽지 않아 여성 임원은 KT&G와 현대중공업, 쌍용자동차, 한국전력공사에서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부장급 이상의 여성 간부도 KT&G와 한국전력공사에 각각 2명뿐이었다.
앙앙은 객관성을 입증하기 위해 ‘여자가 다니기 좋은 회사’의 기준을 마련하고 헤드헌터에게 도움을 청했다. 기준은 첫째, 여성 채용률(여성 선호도), 둘째, 여성 임원의 비율(승진의 기회), 셋째, 기혼 여성에 대한 배려(근무 여건), 그리고 헤드헌터는 각 회사에서 구인을 의뢰할 때 여성 선호도를 그 기준에 덧붙였다. 다음은 헤드헌터가 추천한 ‘여자가 다니기 좋은 회사’ 리스트에 전화 리서치를 통한 객관적 자료를 첨부한 결과다.
2005년 업무배치로 본 사내 분위기
- CJ 소비자를 우선으로 하는 그룹이라 여성 마케터 역할이 크고, 이들과의 관계가 승진에도 영향을 미쳐 오히려 여성이 유리하다.
- 제일기획 네 명의 헤드헌터가 모두 ‘여자가 다니기에 좋은 회사’라는 것을 인정했다. 남녀 차별 없고 각 부서의 남녀비율이 7:3 정도다.
- 태평양화학 관리직·인사부 등 일반 사무부서에 여직원 수는 많지 않으나 기본적으로 여직원 수가 많아 남녀 차별적인 분위기가 아니다. ‘어린이집 운영’ ‘여직원 휴게실’ 등 여성 복지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 로레알 남녀 비율 50대 50, ‘트레이닝 매니저’라는 주요 업무에 여성 직원 비율이 높다.
- 한국IBM 여직원의 도전적인 직무 수행을 위한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을 자주 시행한다. 업무 배치에서 차별 요소가 전혀 없는 편.
- 제일모직 실적 위주의 평가 제도로 남녀 차별이 거의 없다.
- 월마트 남녀 비율 60대 40. 여성 임원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홍보, 의류 구매 등 여성 분야뿐 아니라 부동산 개발사업, 타 점포 관리, 금융 등 남성의 주 업무 영역에서도 활약 중.
- KTF 기업 여성 리더십 과정 프로그램을 따로 운영하고 있고, 여직원 상담실을 따로 두어 여직원의 불편함을 접수받는다.
- 휴렛팩커드 헤드헌터의 말에 따르면 ‘여성을 선호하는 회사 중 하나’로 꼽는다. 능력 평가제.
- 한솔교육 남성보다 여성이 많은 회사. 오히려 여성 위주의 사내 분위기다.
- 컴투스 오로지 실력으로만 평가하기 때문에 남녀 차별이 있을 수 없다.
- AIG 보험 설계 업무뿐 아니라 일반 정규 사무직에도 여직원 수가 많아 남녀 평등적 사내 분위기.
- P&G 기혼 여성이 출장을 가면 탁아 비용이 지급된다.
Editor’s Tip 헤드헌터의 추천 리스트에서는 빠졌지만, 취재 중 에디터가 알게 된 ‘여자가 다니기 좋은 기업’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한국전력공사 여성 평균 근속 연수 20위에 올랐을 정도로 여성이 오래 다니는 기업 중 하나다. 2004년 공채 신입 사원 1백11명 중 62명이 여자로 여성 채용률이 더 높은 편. 전체 관리직 인원에서 여성 책임자 비율은 0.2%(부장 2명, 과장 2명)로 낮은 편이었지만 한국전력공사의 여성 인력팀에서는 “간부 시험 점수로만 평가한다”고 객관성을 보증했다. 무엇보다 기혼 여성을 위한 복지 장치가 잘 마련되어 있다. 특히 ‘유아자녀교육보조비’가 4세까지는 40만원, 5세 미만까지는 60만원이 지급된다.
삼성그룹 헤드헌터가 꼽은 리스트는 각기 다르지만, ‘제일기획’ ‘제일모직’ 등 삼성그룹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후했다. 남녀 차별 분위기가 절대 없고, 업무 배치 역시 편파적이지 않으며, 성과 중심의 평가 제도라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 게다가 삼성SDS는 기혼 여성을 위해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사내에 모유 유축실이 있으며, 재택근무 제도를 사용할 수 있다.
KT 여성 근속 연수 상위 3위에 오른 기업으로 국내 기업 중 여성 임원이 5명(상무대우 3명, 상무보 2명)으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회사다. 2004년 신입 사원 공채 모집에서 33%(1백50명 중 50명)의 여직원이 채용되었고, 기혼 여성을 위해 어린이집을 4개 운영하는 동시에 육아 휴가 1여 년을 보장하고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