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한「모자람」이 주는 행복
2008년 3월 최영수 소장
내가 자랄 때는 미처 몰라서, 또는 어린 탓으로 하는 실수도 잘 용서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건 한 번의 잘못으로 끝내야만 했다. 두 번 다시 되풀이했다가는 엄청난 후회를 부모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았고 그로 인한 ‘모자람’에 대한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자존감도 곤두박질치곤 했었다. 내 주위 어른들은 어제보단 오늘은 분명코 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너무도 당연한 바람만 하셨다. 그런데 누구도 어떻게 훌륭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착하라’는 말 외에는 그 어떤 설명도 없었다. 일을 저지른 다음에야 어른들의 표정을 보고 그것이 잘 못된 일인지를 알뿐. 그렇게 나는 아이일 수밖에 없는 시간들을 너무도 쉽게 어른들의 요구에 순응하며 그렇게 착한 옷을 내내 스스로 입었다. 그렇게 나는 완벽을 지향하면서 2%부족에만 눈을 두고 살아가는 「어른아이」가 되었다. 늘 모자라는 자신으로 인해 속으로는 괴로워하고 속상해 하지만, 겉으로는 아이답지 않은 모습덕분에 싹수가 있는 아이로 인정을 받곤 했다. 그렇게 나는 보다 훌륭함을 지향하며 신의 작품 중 최고의 걸작인 나를 꿈꾸며 스스로를 키웠다. 그 때 나는 ‘잘 살아감’의 정답이 「완벽」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외로움을 느끼면서 마치 왕따를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날마다 보다 훌륭함’이 나의 무기가 되어 주위에 으름장을 놓으며 휘두르고 있는 나를 보았다. 결국, 내 스스로 나의 성장판을 닫아야하는 고통이 잇따르며 마음이 무거웠다. 그 깨달음 이후, 나는 하늘을 향한 나의 자람을 멈추고 주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연습을 시작하였다. 그것은 2%부족한 내 모습을 내 안에서 해방시킴과 동시에 밖으로 노출하면서 가능하였다. 그것이야말로 함께하는 지름길임을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그리고 「완벽」의 또 다른 이름은 「외로운 홀로」임을 알게 되면서 내게 있는 보다 많은 좋은 모습들을 놓치고 사는 어리석음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시간들은 내게 좋은 선물-나의 장점을 더 눈여겨볼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나를 형성시켜 주었다. 그리고 비로소 나는 ‘2% 모자란 나’에게 당당할 수 있었다.
요즘은 삶의 초점이 내가 자랄 때와는 달리 자신의 행복에, 만족에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삶을 영위하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양한 자기생활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우리네 가정을 보면, 아빠는 직장생활에 여가활동에, 엄마는 여가활동에 살림살이에, 아이들은 공부하느라 학교로 학원으로 바쁘다. 그러다 보니 한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낮 동안에 늘 붙어 지내는 이웃이나 친구들보다 못할 정도로 부모 형제간이 소원한 경우가 허다하다.
여기에 하나의 도식이 있다. 각 자의 바쁜 생활을 서로서로 수용하고 1/3만큼만 만남을 하자. ‘1/3의 만남’인 공유는 시간상 눈맞춤으로, 공간상 정보를 교환하면서 누리자. 나머지 2/3는 각 자 자신의 홀로서기로 할애하자. 홀로서기는 자신의 장점을 따라 하기만 하면 제일로 행복한 사람이 된다고 믿고 실천하면 되겠다. 이 때, 단점인 나의 ‘모자람’을 마주한 사람들과 맞교환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면 누구를 막론하고 ‘당당한 행복표’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시 말하면, 서로서로 미주일고주알 알며 챙기던 가족들과의 시간은 귀가하며 마주 선 순간의 ‘1분간의 눈맞춤’으로 하루얘기를 대신하고 그렇게 낮 동안의 바쁜 시간들에는 각 자가 자신을 위한 시간으로 온전히 채우도록 노력할 때, 홀로서기가 수월하고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각 자의 홀로서기는 자신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스스로를 브랜드화하고 그런 자신을 사람들 앞에 전시 및 소개를 하고, 그 때 불편한 자신의 단점은 마주한 사람들에게 협상카드로 제시함으로써 그들로부터 당당히 최고의 서비스를 받는 그래서 그들과 동반자적 관계를 맺으며 행복해질 수 있다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세상이 고속정보화되면서 다수의 인간들이 어쩌면 슬프게 여기던 고독을 당당한 홀로서기로 풀어내고 있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98%의 온전함에 나의 오늘 그리고 내일을 기대며, 얽어매던 자아를 풀고 2%의 모자람으로 이웃과 교류하자. 그렇게 그 모자람이 주는 행복을 우리 것으로 하자. 모자람으로 앓는 자들이여! 당당하게 일어서라. 그리고 ‘누구 없소?’ 라고 노래를 부르자. 그렇게 우리 모두 함께 행복해지는 봄맞이 채비를 해 보자. <행가래로 7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