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끼를 살려 남정네들의 눈요기를
수염 많은 양반이 여행하다가 날이 저물어
시골집에 묵기를 청하였다.
마침 주인은 집을 비우고 먼길을 떠나
내일 돌아오기로 하여 아낙네만 집을 지키고 있었다.
밤에 잠을 청하던 양반은 밖에서,
"수염 많은 사람은 내일 대차반(大茶盤)을 잡수시겠지."
라고 중얼거리는 아낙네의 소리를 듣고는
내일 나올 큰 주안상을 기대하며 잠이 들었다.
그러나 한낮이 되도록 주안상이 나오질 않았다.
화가 난 양반은 주인 아낙네에게 따졌다.
그러자 아낙은 웃음을 터트리고 대답도 없이 사라졌다.
그제야 희롱 당한 것이라 짐작한 양반은
아낙을 양반을 희롱하였다 하여 관아에 고발했다.
관아에 잡혀가 심문을 받게 된 아낙은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실은 수염 많은 손님이란
저의 음부를 가리키는 것이고, 대차반이란 남편의
양물을 가리킨 것이었사옵니다.
내일 돌아올 남편을 기다리며 중얼거린 소리였는 데,
자신의 수염 많은 것만을 생각하고 지레 짐작한
손님의 잘못을 왜 제게 추궁하십니까 "
라며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사또가 이를 증명하고자 아낙의
밑을 들춰보니 과연 털이 수북하게 나 있어
너털웃음을 지으며 무죄 방면하였다.
늙은 퇴기가 딸 하나를 데리고 만포로 이사와 장터 구석진 자리에 터를 잡았다.
기생 신세가 다 그렇지만 이 퇴기도 이 남자에게 짓밟히고 저 남자에게 차이며 모진
세월 헤쳐나와 뒤돌아보니 머리는 희끗희끗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고 눈 밑엔 잔주름이
자글자글한데 전대는 허전하고 설상가상 애물단지 아비 없는 딸 하나만 떠안았다.
퇴기가 화류판에서 나오면 할 수 있는 게 주막이나 색줏집을 차리는 것이 정해진 길인데
이 퇴기는 그 길을 거부했다.
딸이 제 어미 걸었던 길로 들어서는 걸 단연코 막기 위함이다.
열여섯이 되자 가슴은 부풀고 엉덩이는 벌어지고 얼굴은 꽃봉오리처럼 피어나는 딸,
야매를 보자 퇴기는 서둘러 강계를 떠나 산 넘고 물 건너 낯선 만포로 터전을 옮긴 것이다.
퇴기는 국숫집을 차렸다.
탁배기는 팔았지만 안주도 없고, 해 떨어지면 문을 닫아 주정뱅이 치다꺼리 할 일은 없었다.
온종일 팔아봐야 젊은 시절 하룻밤 해웃값도 안 되지만 마음은 편했다.
남편을 저승에 보내고 먹고살 길이 없어 국숫집을 한다고 둘러대다가 딸년 어디 재취 자리라도
보내는 게 퇴기의 소원이다.
장날이 아니면 바쁘지 않아 퇴기 혼자 국수도 삶고 손님상도 모두 볼 수 있어 딸 야매는
안방에서 바느질하고 자수 놓는 게 일이다.
평생 처음으로 조용하게 살아가던 퇴기에게 또다시 풍파가 닥쳤다.
저잣거리 대로변에 있는, 만포에서 제일 큰 식당인 오 첨지네에 식단 하나가 늘었는데
그게 바로 국수였다.
퇴기가 스무전을 받는 국수를 오 첨지네 식당에서는 열다섯전을 받았다.
너비아니부터 국밥까지 온갖 식사, 요리를 다하는 그 큰 식당에서 퇴기네 조그만
국숫집을 문닫게 하려 작정한 것이다.
얼마 후 퇴기가 열다섯전을 받자 오 첨지네는 단돈 열전을 받았다.
퇴기네는 파리만 날리다가 결국 문을 닫았다.
그게 지난봄이었다.
압록강 누런 황톳물이 유장하게 흐르는 장마가 지나고 염천이 물러나더니
아침저녁 옷깃을 여미게 하는 처서가 왔다.
만포읍내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월기봉 칠부능선에 이 세상에서 제일 비싸고 가장 맛있는 국숫집이 생겼다는 것이다.
호사가들은 좀이 쑤셨다.
한량 둘이서 올라갔다.
국수값이 비싸 봐야 국수값이지! 국숫집으로 오르는 길이 만만찮다.
한차례 쉬어가자고 바위에 앉아 뒤돌아보니 만포읍내도 보이고 그 건너 압록강도 보여
두한량은 감탄했다.
그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다른 곳은 청송암이다.
조그만 암자에 불상은 사라지고 세상에 둘도 없는 국숫집이 들어선 것이다.
암자 마당에는 차양막 아래 평상이 놓여 있다.
한량 둘이 평상에 앉자 서늘한 바람이 불어와 순식간에 땀이 쑥 들어갔다.
“주인 없소?”
고함이 메아리 되어 돌아오기도 전에
“나갑니다. 먼저 약수 한잔 드시고.”
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소리와 함께 나타난, 이게 선녀인가? 구미호인가?
이게 옷을 입은 건가? 벗은 건가? 젖꼭지가 다 보이는 망사 저고리에 속치마·고쟁이도
안 입은 망사치마! 기녀·유녀·들병이 다 겪어본 천하의 한량 둘도 이런 모습은 처음 봐
입만 벌리고 꼼짝할 수 없었다.
약수를 한사발씩 마시고 나자 구미호는 홀연히 사라졌다가 개다리소반에
국수 두그릇을 들고 왔다.
국수가 묘한 맛이지만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네눈알은 구미호의 망사 속 수밀도 엉덩이에 꽂혔다.
“이 약술은 공짜에요.”
쟁반에 받쳐 들고 온 두잔의 술에서 더덕향이 코끝을 스쳤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국수를 비우고 정신을 차려보니 만포읍내와 압록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게 올라올 때 쉬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본 풍경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국수 한그릇 값이 한냥으로 읍내보다 다섯배나 비쌌지만 한량들은 더 내고 싶었다.
지난봄, 국숫집을 문 닫고 화병으로 드러누운 어미를 두고 딸 야매가 두팔을 걷어붙였다.
먼저 탁발을 나왔다가 가끔식 국숫집에 들르던 노스님을 찾았다.
한번은 국수를 먹고 난 노스님이 야매를 자세히 보더니
“네 어미는 한평생 고생했지만 너는 한평생 호강하고 살 관상이다”
했던 말이 생각나 떡을 사들고 청송암을 찾아갔던 것이다.
노스님도 몇 달 동안 안 보인다 했더니 뼈만 앙상해서는 암자에 드러누워 있었다.
행자도 없이 혼자 기거하다가 곡기를 끊고 드러누워 있던 스님이 야매 손을 잡고 말했다.
“네 집에 들를 때마다 국수값을 받지 않고 탁발까지 해줘 고마웠다. 이 암자는 네가 맡아라.”
며칠 후 야매는 노스님의 다비식을 치렀다.
청송암 약수는 예부터 이름이 높아 치성을 드리거나 약주를 빚을 때 떠갔다.
야매는 청송암에 국숫집을 차리고 타고난 끼를 살려 남정네들의 눈요기를 채워줬다.
시장이 반찬이라, 이곳까지 오르면 배가 꺼져 국수맛이 안날 수가 없었다.
청송암을 둘러싼 솔밭엔 번호표를 받아든 남정네들이 문자 그대로 인산(人山)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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