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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지리지권 제 58 지제12
교주도는 원래 맥의 땅인데 후에 고구려의 땅으로 되었다가 신라를 거쳐 고려에 이르렀다.
성종14년에 전국을 10개 도로 나눌 때에 춘주등 군, 현을 삭방도에 소속시켰으며 명종 8년
비로서 춘주도라고 부르다가 후에 동주도로 고쳤다.
원종 4년에 교주도라고 불렀고 충숙왕 원년에 회양도라고 하였으며,
신 우 14년에 대관령 동쪽과 서쪽을 합쳐서 교주 강릉도라 하고 충주 관할 하에 있던
평창군을 여기에 소속 시켰다.
이 도의 관할하에 군이 8개 (방어군이 1개, 지사군이 2개, 소속군이 5개 있다)
현이 20개 있다.
고려사 지리지에 기록된 내용을 근거로 지금의 한반도의 강원도 지방과 대륙의 산서성과 내몽고 지방의 지명
과 규모를 비교 해보자.
우선 한반도의 강원도 와 대륙의 감숙성 주천현을 비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한반도 강원도에 천년전 고려초(917년)에 8개의 군과 20개의 현이 존재 하였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다.
현재에도 강원도는 휴양지에 속해 곳곳에 팬션이 즐비하다. 그 곳에 고대국가의 지방 제후들의 권력과
군사중심지인 군, 현이 28개 나 존재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정치 군사요충지는 지금도 강원도에 아무리 많이 잡아도 서너 곳에 불과하다.
천년전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군, 현은 일개 국가를 의미한다.
우리의 대표적인 역사책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을 찾아 보면 고성현은 원래 소가야국이었는데 신라가
빼앗아서 고자군을 설치하였고, 함안군은 아시량국으로서 제1대 이신아시왕으로 부터 도설지왕까지 무릇
16대, 연대로는 520년 간이나 존속 하였는데 신라 진흥왕이 정복하여 명칭을 대가야군으로 하였다가
고령군으로 바꾸었다.
이렇듯 천년전 고구려, 백제, 신라를 형성한 지역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의성현은 소문국이었고,
금마군은 마한국이었는고, 춘주(삭주)는 맥국이었으며, 또한 금주는 가락국 으로서 시조 수로왕으로 부터
거등왕, 마품왕, 거즐미왕, 이시품왕, 좌지왕, 취희왕, 질지왕, 감지왕, 구해왕까지 491년간이나
존속 하였는데, 신라 법흥왕이 구해왕의 투항을 받아 들여 그를 귀빈으로 대접하고 가락국의 옛 땅을
그의 식읍으로 주었다. 이것을 금관군이라고 불렀다고 기록하였다.
이 시대의 군, 현의 규모를 말해 주고 있다.
그저 한반도의 경상도, 강원도에서 존재 했었다고 할만한 그런 나라들이 아니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대륙의 지도에서는 한반도보다도 큰 지역인 실크로드의 중심지였던 감숙성이 고려지리지에 기록된
원주로서 신라의 9주 5소경의 하나인 북원경에 해당한다.
고려지리지에 정원도호부, 혹은 익흥도호부로 기록되어 있었던 원주는 그에 소속된 군, 현의 명칭이
현재 대륙의 지명과 그대로 일치한다.
그 대표적인 지명이 주천이다.
주천은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돈황석굴이 있는 지역으로, 신라의 불교 전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혜초스님이 서역을 여행하면서 기록한 것으로 당시 중앙아시아인의 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한 그 시대의
유일 무일한 기록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 왕오천축국전은 발굴에 참여했던 프랑스 학자 "파울 뻬리오"가 이 책을 프랑스로
가져 가서 지금까지도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 하고 있는 몇 안되는 현존하는 신라시대의 기록이다..
그 유물이 발견된 곳이 바로 돈황 불교 유적지이며 1900년대 무수한 불교유적이 발견되어 돈황석굴이
세계에서 알려지게 되었다.
그 돈황을 포함한 광범위한 지역이 바로 주천현으로 현 중국의 우주 로켓 발사 기지가 이 지방에 있다.
이 주천현에는 만년설에 덮힌 높은 산이 하나가 있는데 바로 기련산이다.
그 정상 부근의 빙하에 덮힌 해발 6500미터의 기련산맥의 녹은 물이 다시 샘솟은 곳이 주천인데
하서회랑이라고 불리는 실크로드의 주요 길목이다.
이 길을 따라 서안을 향해 가다보면 황토 에 젖은 강물이 가로 막는데 이 곳이 바로 난주이다.
난주에서 위원, 농서, 천수시를 지나다 보면 평량현이 나오는데 이 평량이 한반도에는 없는 지명으로
고려사 지리지의 기록에 의하면 원주의 또 다른 이름으로 평량경이다.
이 지역에는 고원, 해원, 진원, 위원등의 지명이 있는데 과연 원주라고 불리울 만한 곳이 아닌가?
다음은 교주도와 더불어 쌍벽을 이루고 있는 동원경이다
통일 신라시대 동원경(태원)은 고려의 강릉이 되었다.
강의 구릉이란 뜻으로 황하의 기슭에 붙여진 동원경이 한반도에서는 바닷가 강릉시가 된 것이다.
신라때의 지명이 황하의 기슭이란 뜻의 하슬라주이니 그 지명이 맞아 떨어진다.
대륙의 산서성 동원경 태원 위쪽에는 삭주시가 있다. 그 사이에는 태행산맥이 있고 오대산이 있다.
혜초스님이 말년에 거하셨다는 오대산이다.
혜초스님은 대륙의 신라에 살았고 대륙에 온통 그 흔적을 남기신 분이다.
고려사지리지의 교주는 원래 고구려의 각련성군이라 불렀는데 각련성이란 만리장성을 의미한다.
각각의 많은 성을 연결하여 천리장성이 되고 다시 그 천리장성을 연결하여 만리장성이 되는 것이다.
대대륙의 지도를 보라 삭주시 바로 뒤쪽으로 만리장성이 지나가고 있지 않는가?
춘주는 원래 맥국인데신라 선덕왕 6년에 우수주로 만들어 군주를 두었고 문무왕 13년 수약주(수차약
또는 오근내라고 부른다) 라고 불렀으며 경덕왕은 삭주로 고쳤다가 후에 광해주로 고쳤다.
태조 23년에 춘주로 되었고 성종 14년에 단련사로 부르고 안변부에 소속시켰는데 이 주사람들은 길이
험난하여 왕래하기 곤란하였다. 신종 6년에 이르러 최충헌에게 뇌물을 먹여 안양도호부로 승격시켰
다가 후에 낮추어서 지춘주사로 하였다.
수춘 또는 봉산이라고도 부르는바 여기에 양강이 있고 본 주에 소속된 군이2개 현이 9개 있다. 가평군,
랑천군, 기린현, 조종현, 린제군, 횡천현, 홍천현, 문등현, 방산현, 서화현, 양구현 등이 있다.
동주는 원래 고구려의 철원군인데 신라 경덕왕은 철성군으로 만들었다. 그 후 궁예가 군사를 일으켜
고구려의 옛 땅을 빼앗고 송악군으로부터 이 곳에 수도를 옮기고 궁실을 매우 떠벌리어 짓고 나라이름을
태봉이라 하였다.
고려태조가 왕으로 되자 수도를 송악으로 옮기고 철원을 동주라고 고쳤다. (궁예가 있던 궁전의 옛터가
이 주 북쪽27리 지점인 풍천벌에 있다.
성종 14년에 낮추어서 현령관으로 하였다가 후에 목으로 승격시켰으며 충선왕 2년에 전국의 목을 없애게
됨에 따라 낮추어서 철원부로 하였다.
창원(성종이 정한 명칭이다) 또는 륙창이라고도 부르며 여기에는 보개산이 있고
이 주에 소속된 군이 1개, 현이 7개 있다.
1. 김화金化군은 원래 고구려의 부여夫如군인데 신라 경덕왕은 부평富平군으로 고쳤다. 현종 9년에
지금의 명칭으로 고치고 본 주에 소속 시켰으며 인종 21년에 감무를 두었다. 화산花山이라고도 부른다.
2. 삭녕현은 원래 고구려의 소읍두현인데 신라 경덕왕은 삭읍으로 고쳐서 토산군의 관할하에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에 와서 지금 명칭으로 고쳤고 현종 9년 본 주에 소속시켰으며 예종 원년에 승령감무로 하여금
이 곳을 겸임케 하였다.
대륙의 섬서성에서 동쪽 하남성으로 흐르는 강이 낙수洛水이다.
그 낙수의 北에 건설된 고대 도시가 낙양洛陽이다.
또한 낙양성 北쪽에 황하가 흐르고 있다.
<하도와 낙서>
"하도"는 복희씨 때 황하에서 나온 용마의 등에 그려저 있었다는 그림이고,
"낙서"는 우임금이 홍수를 다스릴때 낙수에서 나온 신구의 등에 쓰여 있었다는 글이다.
이 낙서가 나온 강이 낙수이고 그 강의 북쪽에 건설된 도시가 낙양이며,
이 낙수의 상류지방을 상락上洛(=尙洛) 이라고 부르고
이곳에 우리의 고대도시 신라의 9주5소경중의 하나인 상주(尙州)가 있다.
그런데 대륙의 지도에는 상주라는 지명 위쪽에 서안과 장안 두 지명이 있다.
이 도시는 대륙의 고대 여러 왕국의 수도였는데 장안이라고 불리울때가 있었는데,
이 때가 고구려시대였고 그의 수도는 평양이었다.
서안이 평양이었을때 상주는 비사성으로 불리우고 있었다.
대륙의 섬서성에 우리민족의 고대 국가였던 고구려와 백제와 신라가 서로 차지 하려고 다투었던
패수와 한수漢水가 흐르고 있다.
패수에는 평양이었던 서안이 있고, 한수에는 한양이 있다.
이곳에 상락이란 지명이 있다.
그 상락지구에 낙수가 흐르고 있고 바로 그 곳에 상주시가 표기 되어있다.
이 지도에서 섬서성에 상주가 표기되어 있다. 이곳에 흐르는 낙수라는 강이 동쪽으로 낙양성으로 지나 황하에
합류되는 강이 낙동강이다.
다음은 고려사 지리지의 내용이다.
상주목(尙州牧)
본래 사벌 沙伐국으로서 신라 점해왕이 빼앗아서 주로 만들었고 법흥왕은 상주로 고치고 군주를 두었으며
진흥왕은 주를 없애고 상락군으로 만들었다. 신문왕은 다시 주를 설치하였고 경덕왕은 상주로 고쳤으며
혜공왕은 다시 사벌주로 고쳤다.
태조 23년에 다시 상주로 고쳤다가 그 후에 안동도호부로 고쳤으며 성종 2년에 처음으로 전국에 12개의
목을 설치 하였을때 이 주는 그 중 하나로 되었으며 14년에 전국 12개 주에 절도사를 두면서 귀덕군이라고
불렀다.
이를 영남도에 소속 시켰다.
현종 3년에 절도사를 없애고 다시 안동 대 도호부로 하였으며 5년에 상주 안무사로 고쳤고 9년에 목으로
정하여 전국 8개 목 중의 하나로 하였다.
상락上洛 (성종이 정한 명칭이다) 또는 상산商山 (세상에서 전하기를 이 주 북면 림하촌의 태가 성을 가진
사람이 반역자를 잡은 공로가 있었으므로 그 촌을 영순현으로 승격시켰다고 한다) 이라고 부르는바
여기에 낙동강이 있고 공검이라는 큰 제방이 있으며(명종 25년에 사록 최정분이 옛 터를 따라 이 제방을
쌓았다) 이 주에 소속된 군이 7개, 현이 17개 있으며 관할 하에 지사부가 2개 있다.
대륙의 지도 섬서성 서안의 동남쪽에는 낙수가 흐르는데 이 곳의 명칭이 상락上洛이다.
이 상락이 원래 사벌국이었으므로 비사성으로 불리웠는데 평양성 의 남방 방어의 요충지였다.
서안(평양성)의 북쪽으로는 황하(요수)가 큰 울타리 방어막이었고, 만리장성과 산해관, 무수한 요충지에
많은 성이 있었다.
요동성, 건안 신성, 백암성, 안시성, 오골성등은 북쪽의 성이고 남쪽은 비사성이 있는데 동래 내주에서
배를 타고 황하를 거슬러 올라 도착하게 되는성이 비사성이다.
上州, 上洛郡, 尙州, 沙伐州, 안동 도독부, 다시 尙州가되어 전국 8목중의 하나이다.
상락,또는 商山 이 라고도 부르는바 여기에 낙동강이 있고
공검恭儉 이라는 큰 제방이 있으며
소속에 군이 7개, 현이 17개, 지사부가 2개 있다(지사부에 소속된 군,현이 29개이다).
-주- 상주의 소속 군, 현이 53개 가 넘는다.
천년전 고려에는 10개의 도와 12개 주가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인
상주에는 사벌국 , 개녕에 감문소국, 함창군에 고령 가야국, 고령군에 대가야국, 의성현에 소문국 등과
그외 50개의 군,현이 있던 곳이 상주이다.
한반도의 경상북도에 5개의 나라와 50개의 군,현 이 존재했다고 볼수 없다.
대륙의 섬서성,하남성,산서성에 걸쳐 있던 상주를 고려사에 기록된 지명을 확인하면서 대륙의 지도에서
확인해보자.
1. 문경聞慶군---신라의 관문현(관현 또는 고사갈이성이라고한다.)으로 경덕왕은 관산으로 고쳐
고녕군의 관할하의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초에 문희問喜군 으로 고쳤다. 공양왕2년 가은현을 이군에 소속시켰다.
이 군에 길이 험한 요새처가 세곳이 있는데 초호(草岵)(현의 서쪽에 있다.),
伊火현(현의 서쪽에있다), 관갑천(串岬遷)(현의 남쪽에 있다.)이 그것이다.
-주- 말 그대로 신라와 고구려의 경계지역에 관문의 역활을 하던 곳이다.
다음지도 산서성 횡하의 만곡지구에 문희라는 도시가 있다.
고려사 지리지에 있는 우리고대 지명이 한반도에는 없으나 대륙에는 버젓이 살아 숨쉬고 있다.
이곳의 지형이 황하와 위수에의해 깊은계곡이생겨난 험난한 지형 이다.
지도에 보면 황하가 지도의 좌측을 타고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다가 ㄴ자로 꺽어 동쪽으로 흐른다,
이 만곡부분에 동관(동쪽 관문) 이란 지명이 있다.
문경새재라고 부르는 요새처가 있는 지형임을 알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곳 관갑천이다.
장안성을 지나 흐르는 대동강의 하류가 궤진약수로 되어있다는 고려사의 기록이다.
즉 대동강은 지금의 위수인데 위수가 관갑천에서 황하와 합쳐진다는 사실이다.
대동강이 황하에 꿰진다는곳이 궤진약수이다.
바로 황하가 ㄴ자로 꺽어지는 곳이다.
2.용궁군(龍宮)---신라의 축산인데 성종14년 룡주자사로 승격됨.
이군에 하풍진(河風津)이 있다.
-주- 이지역이 문경과 연해 있으며 황하의 연변이 란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해 주고 있다.
문경이었던 문희시 옆에 황하가흐르고 그곳에 河津이란 도시가 있으며,
그바로밑에 용문이란 도시가 있다.
등용문이란 바로 이곳 황하가 폭포를 이루는곳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등용된다는 말이 생긴곳이다.
이곳이 용궁군이다.
3.개녕군開寧郡; 원래는 감문소국으로 신라가 탈취하여 진흥왕때 군주를 두어 청주라고 하였고 문무왕때는
감문군으로 하였다가 경덕왕이 개녕군으로 고쳤다.
4, 보령군報令郡; 신라의 삼년산군인데 경덕왕은 삼년군으로 고쳤다.
이 군에 속리산이 있다.(신라때는 속리악이라했는데 중사(中祀)로 되어 있다.)
5, 함창咸昌군; 원래 古寧伽倻國으로 신라가 빼앗아 고람동군(또는 고릉군)으로, 경덕왕때 또 고녕군으로
고쳤다.
광종15년(964년)에 함녕군으로 , 현종 9년 본 상주목에 소속하고 함창군으로 바꾸었다.
6. 영동군은 신라의 길동군인데 성종 14년 계주자사가 되었다가 목종 2년 폐지하고 본 목에 속하다.
7. 해평군은 상주에 소속되었다가 뒤에 일선현에 속하였다.
이곳들은 대륙의 섬서성과 산서성 황하유역에 있던 대륙의 우리 역사 지명이다.
대륙의 지명을 한반도에 옮겨 놓다보니 여러가지 문제점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