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그, 아야!”
홀로 바느질을 하고 있던 아내는 얼굴을 살짝 찌푸리고 가늘고 날카로운 소리로 부르짖었다. 바늘 끝이 왼손 엄지손가락 손톱 밑을 찔렀음이다. 그 손가락은 가늘게 떨고 하얀 손톱 밑으로 앵두 빛 같은 피가 비친다.
그것을 볼 사이도 없이 아내는 얼른 바늘을 빼고 다른 손 엄지손가락으로 그 상처를 누르고 있다. 그러면서 하던 일가지를 팔꿈치로 고이고이 밀어 내려놓았다. 이윽고 눌렀던 손을 떼어보았다. 그 언저리는 인제 다시 피가 아니 나려는 것처럼 혈색이 없다 하더니, 그 희던 꺼풀 밑에 다시금 꽃물이 차츰차츰 밀려온다.
보일 듯 말 듯한 그 상처로부터 좁쌀 낟(곡식의 알갱이) 같은 핏방울이 송송 솟는다. 또 아니 누를 수 없다. 이만하면 그 구멍이 아물었으려니 하고 손을 떼면 또 얼마 아니 되어 피가 비치어 나온다.
인제 헝겊 오락지(실이나 헝겊 등의 가늘고 긴 조각으로, 오라기의 사투리)로 처매는 수밖에 없다. 그 상처를 누른 채 그는 바느질고리(바늘, 실, 골무, 가위, 자 등 바느질 도구를 담는 그릇)에 눈을 주었다. 거기 쓸 만한 오락지는 실패(실을 감아 두는 물건) 밑에 있다. 그 실패를 밀어내고 그 오락지를 두 새끼손가락 사이에 집어 올리려고 한동안 애를 썼다. 그 오락지는 마치 풀로 붙여둔 것같이 고리 밑에 착 달라붙어 세상 집혀지지 않는다. 그 두 손가락은 헛되이 그 오락지 위를 긁적거리고 있을 뿐이다.
“왜 집혀지지를 않아!”
그는 마침내 울 듯이 부르짖었다. 그리고 그것을 집어줄 사람이 없나 하는 듯이 방안을 둘러보았다. 방안은 텅 비어 있다. 어느 뉘 하나 없다. 호젓한 허영(虛影헛된 그림자. 방 안에 이런저런 그림자들이 있지만, 쓸 만한 오락지를 집어 줄 그림자가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작자는 ‘헛된’ 그림자로 표현하고 있다.)만 그를 휩싸고 있다.
바깥도 죽은 듯이 고요하다. 시시로 퐁퐁 하고 떨어지는 수도의 물방울 소리가 쓸쓸하게 들릴 뿐.
문득 전등불이 광채를 더하는 듯하였다. 벽상(壁上벽 높은 지점)에 걸린 괘종(掛鍾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무거운 추가 움직여 각 시각마다 종소리를 내는 시계)의 거울이 번들하며, 새로 한 점(새벽 1시)을 가리키려는 시침(時針시곗바늘)이 위협하는 듯이 그의 눈을 쏜다. 그의 남편은 그때껏 돌아오지 않았었다.
아내가 되고 남편이 된 지는 벌써 오랜 일이다. 어느덧 칠팔 년이 지났으리라. 하건만 같이 있어본 날을 헤아리면 단 일 년이 될락 말락 한다. 막 그의 남편이 서울서 중학을 마쳤을 제 그와 결혼하였고, 그러자 마자 고만 동경(일본의 수도 도쿄東京)에 부급(負芨본래 뜻은 ‘책 보따리를 짊어지다’는 의미인데, 여기서는 ‘유학을 가다’로 쓰였다. )한 까닭이다.
거기서 대학까지 졸업을 하였다. 이 길고 긴 세월에 아내는 얼마나 괴로웠으며 외로웠으랴! 봄이면 봄, 겨울이면 겨울, 웃는 꽃을 한숨으로 맞았고, 얼음 같은 베개를 뜨거운 눈물로 덥히었다. 몸이 아플 때, 마음이 쓸쓸할 제, 얼마나 그가 그리웠으랴!
하건만 아내는 이 모든 고생을 이를 악물고 참았었다. 참을 뿐이 아니라 달게 받았었다. 그것은 ‘남편이 돌아오기만 하면(!)’ 하는 생각이 그에게 위로를 주고 용기를 준 까닭이었다.
남편이 동경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가 무엇인가? 자세히 모른다. 또 알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어찌하였든지 이 세상에 제일 좋고 제일 귀한 무엇이라 한다. 마치
옛날이야기에 있는 도깨비의 부자 방망이 같은 것이어니 한다.
옷 나오라면 옷 나오고, 밥 나오라면 밥 나오고, 돈 나오라면 돈 나오고… 저 하고 싶은 무엇이든지 청해서 아니 되는 것이 없는 무엇을, 동경에서 얻어 가지고 나오려니 하였었다. 가끔 놀러오는 친척들이 비단옷 입은 것과 금지환(金指環금반지, 금가락지) 낀 것을 볼 때에 그 당장엔 마음 그윽이 부러워도 하였지만 나중엔,
‘남편이 돌아오면!’
하고 그것에 경멸하는 시선을 던지었다.
남편이 돌아왔다. 한 달이 지나가고 두 달이 지나간다. 남편의 하는 행동이 자기가 기대하던 바와 조금 배치되는 듯하였다. 공부 아니 한 사람보다 조금도 다른 것이 없었다. 아니다, 다르다면 다른 점도 있다. 남은 돈벌이를 하는데 그의 남편은 도리어 집안 돈을 쓴다. 그러면서도 어디인지 분주히 돌아다닌다. 집에 들면 정신없이 무슨 책을 보기도 하고 또는 밤새도록 무엇을 쓰기도 하였다.
‘저러는 것이 참말 부자 방망이를 맨드는 것인가 보다.’
아내는 스스로 이렇게 해석한다.
또 두어 달 지나갔다. 남편의 하는 일은 늘 한 모양이었다. 한 가지 더한 것은 때때로 깊은 한숨을 쉬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무슨 근심이 있는 듯이 얼굴을 펴지 않았다. 몸은 나날이 축이 나 간다.
‘무슨 걱정이 있는고?’
아내는 따라서 근심을 하게 되었다. 하고는 그 여윈 것을 보충하려고 갖가지로 애를 썼다. 곧 될 수 있는 대로 그의 밥상에 맛난 반찬가지를 붇게(반찬의 종류가 많아지게) 하며, 또 곰(미주) 같은 것도 만들었다. 그런 보람도 없이 남편은 입맛이 없다 하며 그것을 잘 먹지도 않았었다.
또 몇 달이 지나갔다. 인제 출입을 뚝 끊고 늘 집에 붙어있다. 걸핏하면 성을 낸다. 입버릇 모양으로 화난다, 화난다 하였다.
어느 날 새벽, 아내가 어렴풋이 잠을 깨어, 남편의 누웠던 자리를 더듬어보았다. 쥐이는 것은 이불자락뿐이다. 잠결에도 조금 실망을 아니 느낄 수 없었다. 잃은 것을 찾으려는 것처럼, 눈을 부스스 떴다. 책상 위에 머리를 쓰러뜨리고 두 손으로 그것을 움켜쥐고 있는 남편을 보았다. 흐릿한 의식이 돌아옴에 따라, 남편의 어깨가 들썩들썩 움직임도 깨달았다.
흑 흑 느끼는 소리가 귀를 울린다. 아내는 정신을 바짝 차리었다. 불현듯이 몸을 일으켰다. 이윽고 아내의 손은 가볍게 남편의 등을 흔들며 목에 걸리고 나오지 않는 소리로,
“왜 이러고 계셔요.”
라고 물어보았다.
“….”
남편은 아무 대답이 없다. 아내는 손으로 남편의 얼굴을 괴어들려고 할 즈음에, 그것이 뜨뜻하게 눈물에 젖는 것을 깨달았다.
또 한 두어 달 지나갔다. 처음처럼 다시 출입이 자주로웠다. 구역이 날 듯한 술 냄새가 밤늦게 돌아오는 남편의 입에서 나게 되었다. 그것은 요사이 일이다. 오늘 밤에도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초저녁부터 아내는 별별 생각을 다하면서 남편을 고대고대하고 있었다. 지리한 시간을 속히 보내려고 치웠던 일가지를 또 꺼내었다. 그것조차 뜻같이 아니 되었다. 때때로 바늘이 헛되이 움직이었다. 마침내 그것에 찔리고 말았다.
“어데를 가서 이때껏 오시지 않아!” (계속)
(미주) 먹을거리를 물에 넣고 오랫동안 고아서(진득해질 정도로 끓여서) 만든 음식. 소의 창자 끝에 달린 기름기 많은 곤자소니 부위, 소의 가슴살인 양지머리, 허벅지 뒤쪽 살인 사태 그리고 뼈 등을 넣고 오래 곤 국을 곰탕이라 한다. 즉 곰탕은 고깃국물이다. 그와 달리 현진건 소설 〈운수 좋은 날〉에 나오는 설렁탕은 소 네 다리의 뼈인 사골, 무릎 관절을 이루는 도가니뼈, 기타 잡뼈 등에 소의 허파, 혀, 그 외 양지머리와 사태 등을 넣어 끓인 ‘뼈 국물’이다. 국물은 일반적으로 설렁탕은 뽀얗고 곰탕은 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