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뜻밖의 베스트셀러로 되고 나서 나는 많은 지역인들로부터 향토애 넘치는 부탁의 편지를 받아왔다. 요지인즉 자기네 고장도 답사기에 써 달라는 것이다. 그런 중 한 번은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읍에 살고 있는 한 장흥사람이 다음과 같은 항의성 편지를 보내왔다. 당신은 '남도답사 일번지'로 강진을 꼽았는데 무엇이 부족해서 장흥이 일번지를 강진에 내준 것이며, 강진과 장흥은 차로 반시간도 안 걸리는데 왜 발길을 해남 땅끝으로 돌려 답사객들이 외면하게 만들었느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장흥사람은 자기 고장의 자부심을 이렇게 말하며 끝맺었다.
"문화유산으로 치자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제1가람인 보림사가 있고, 현대문학으로 말할 것 같으면 송기숙·이청준·한승원이 모두 장흥사람입니다." 그는 이 편지와 함께 장흥군에서 펴낸 '장흥 지리지 모음' '문림(文林) 고을 장흥' '장흥의 가사문학' '보림사 중창기' 등을 소포로 부쳐왔다. 이 편지와 소포를 받고 나는 미안한 마음을 한동안 지울 수 없었다. 상대적 박탈감이 얼마나 심했으면 그런 서신을 보냈으며, 자기 고장을 얼마나 사랑하면 그 무거운 책들을 보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