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_연중9주간 화요일_올무
수석 사제들, 율법 학자들, 원로들은 예수님께 말로 올무를 씌우려 합니다.
한 두명도 아니라 떼로 몰려온 그들은 심지어 많은 이들에게는 지도자로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었습니다. 머리를 맞대어 꾀를 내었으니, 참으로 괘씸합니다. 자신들이 내 놓은 함정 질문을 예수님께 던질 궁리를 하면서 얼마나 신나게 조롱을 해댔을까요?
올무는 명사로서 두 가지 뜻을 가집니다. 새나 짐승을 잡기 위하여 만든 올가미라는 뜻이 있고, 사람을 유인하는 잔꾀를 일컫는 뜻도 있습니다. 두 번째 의미의 올무도 사람을 도구로 여긴다는 점에서는 올가미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올가미는 긴 줄의 끝을 고리로 만들어 짐승의 발이나 목이 걸리도록 만듭니다. 일단 걸리기만 하면 더 이상 풀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힘을 주어 벗어나려 할수록 더더욱 매듭이 조여지는 원리입니다. 때때로 수거하지 않은 올가미로 인해서, 많은 야생 동물들이 고통스럽게 숨을 쉬다가 사람들에게 발각되는 안타까운 일들이 목격되기도 합니다. 막상 올가미에서 구조된 동물들은 충분한 회복의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오랜 시간 올가미 줄에 살이 파묻혀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한 탓에 영양실조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극심한 충격과 스트레스로 인해 털이 빠지거나, 극도로 예민해져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인간들에게조차 경계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올가미를 벗어났지만, 아직도 그들의 마음을 옭아매는 밧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
참으로 훌륭한 가르침입니다. 복음의 마지막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예수님께 올무를 놓아 붙잡으려던 이들의 태도가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이들이 되려 ‘매우 감탄’하였다고 전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올무를 놓으려던 세력들마저 감탄하게 하신 것입니다.
‘걸리기만 해봐라’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다가선 이들은 자신들의 계획이 무산되어 실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논리만으로 그렇게 바뀌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올무를 놓으려던 이들의 위선을 알았지만, 조금의 복수심도 없이 편견 없이 그들의 있는 그대로를 보아주며, 무엇보다 그들이 믿고 살아온 하느님에 대한 가르침으로서, 변명의 여지 없는 확고한 믿음을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 휘둘리기 쉬운 세상 속 삶입니다만, 하느님의 것을 의식하고 살아간다는 것을 묵상해봅니다. 어느 것도 예외가 없겠지만, 빨간색 파란색의 구분과도 같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야말로, 더욱 특별하고, 소중한 하느님의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독서의 말씀을 찬찬히 외워봅니다.
무법한 자들의 오류에 휩쓸려 확신을 잃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우리의 주님이시며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은총과 그분에 대한 앎을 더욱 키워 나아가십시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