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고등학교 2학년 기숙사 생활(2)
내가 기억하는 1977년의 역사적인 사건은 세 건이다. 안양천 수재발생 사건, 쌀막걸리 제조 허가, 미국의 청와대 도청사건이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도청사건은 6월 28일, 안양천 수재는 7월 8일, 쌀막걸리 허가는 11월 순이다.
미국이 청와대를 도청한 것은 주권침탈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피켓들고 규탄대회를 했고, 옆의 아주공과대학도 규탄대회와 함게 유신독재 타도를 외치는 데모를 벌였다. 당시 전교조라는 교직원 단체도 없었고, 초딩 말부터 중딩 졸업할 때까지 유신체제에 대한 세뇌교육을 받아 별 비판능력이 없었던 우리들에게 데모는 다소 생소한 사건이었다. 신문에서도 데모관련 기사를 읽어본 기억이 없다. 따라서 고딩의 규탄대회는 관제데모에 동원됐던 것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두 번째는 안양천 범람으로 인한 수재 사건이다. 그해 봄은 지독한 가뭄으로 전국이 메말라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저수지도 바닥을 드러낸지 오래였고 기숙사도 당근 물이 부족하여 샤워는 1주일에 한 번 할동말동할 정도의 제한 급수가 거의 2개월 이상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치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한 폭우가 쏟아 졌다. 당시 기숙사에 있던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비누만 들고 알몸으로 튀어 나와 빗물에 샤워를 하며 오랜 가뭄이 끝났음을 기뻐했다.
그러나 다음 날에 안양에서 통학하는 친구들이 등교를 못했고, 뉴스를 통해서 엄청난 물난리를 겪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도로유실, 교량침하, 주택침수, 산사태 발생, 수백명의 사망과 실종, 부상 등의 인명피해 등등 어마어마한 수해를 입었다. 다음날부터 이틀동안 전교생이 동원되어 수해복구 지원에 나섰다. 우리 반은 어느 초등학교 운동장에 약 50Cm 정도 쌓인 토사를 걷어내는 작업이었다. 삽으로 파낸 뻘이나 다름없는 토사를 손수레에 실어 한 곳에 모아 놓으면 트럭이 와서 싣고 가는 작업방식이었다. 쌓인 토사 속에는 옷가지며 나무토막, 종이, 가방, 신발 등의 온갖 생활 쓰레기가 뒤범벅였다. 갑자기 작업 중에 비명소리가 터졌다. 작업중 사람의 머리카락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작업은 중지되고 경찰이 출동해서 마네킹에 씌운 가발이란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소동이 가라앉고 작업은 재개되었다.
이때 들은 우스개 이야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자기집이 침수되자 인근 고층건물로 긴급피난을 갔는데, 옥상에서 바라보니 몰아치는 홍수의 기세가 대단한 장관이란다. 내 집은 떠내려가고 있는데 물구경에 빠졌다고 하면서 세상에 가장 재미있는 구경이 불구경, 물구경, 쌈구경이라는 말이 맞기는 맞다고 엄청 너스레를 떨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역사적 사건은 77년의 대풍년으로 쌀 수확량이 크게 늘자 그동안 금지해왔던 쌀막걸리 제조를 허용했던 것이다. 몇일 전부터 쌀막걸리에 대한 뉴스가 흘러넘쳤고 당일에는 선생님들이 쌀막걸리 기념주를 하겠다고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기숙사에서도 당근 쌀막걸리 맛을 보겠다며 점호 끝나고 그 아지트를 찾아 갔다. 많이 있으면 받아오겠다고 두되짜리 주전자도 들고 갔다. 하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라 술독 밑에 고여있는 막걸리를 박박 긁다시피 해도 겨우 반 되 남짓에 불과했다. 그냥 주전자 바닥에 깔린 정도였다. 이까짓 거를 뉘 코에 부친다는 말인가? 우리는 의논 끝에 차라리 오늘 당직이라 회식에 참여하지 못한 사감에게 상납하는 편이 좋겠다고 결정했다. 술을 엄청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우린 이미 알고 있었다. 식당에 딸린 쪽방에서 자고 있는 주방장을 깨워 사정을 설명하고 부탁했더니 어린 학생들의 생각이 참으로 훌륭하다며 간단한 안주와 술잔을 준비해 줬다. 쟁반에 주전자와 술잔, 김치와 부침개 접시를 담아 사감실 문을 두드렸다. 늦은 시간까지 TV를 보고 있다가 술상(술쟁반?)을 보시더니 엄청 반가워하셨다. 그렇지 않아도 그 좋아하는 술자리 가지 못해서 아쉬웠던 판에 뜻하지 않는 술상이라니 얼마나 좋으셨겠는가?
우린 사감샘으로부터 어떻게 이런 기특한 생각을 했느냐며 아주 훌륭한 학생들로 칭찬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 곁을 떠나 객지에서 공부한 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다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하시면서 아주 맛있게 드셨다.
우린 쌀막걸리 한 모금의 즐거움을 희생하는 대신 사제간의 두터운 정을 쌓을 수 있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만 했다. 사실 그때 사감샘께 고백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첫댓글 세상사는 이치와 눈치를 일찌감치 깨우친 영리한 학생들...!!
그때부터 병희는 똑똑했어.
잘 읽고 있어요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 해본 경험은 두고두고 추억거리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절친으로 만나고 있고요.
재밌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