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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도착한 인천공항.
드빙의 주인장 허여사님과 그때는 몰랐지만 맨 처음 만난 뽕삐드 언니와 꿈꾸는 숲님.
허여사님의 당당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에 역시 주인장의 포스가.
그 후 속속들이 등장하는 인도여행의 동행자님들….그때 느낀 약간의 실망감-개인소개 시간에 살짝 말씀 드렸죠 ^^
그리고 그사이에 나보다 더 실망스러운 눈빛의 내 룸메이트 방랑객.-그때의 그 표정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불타는 청춘이 얼마나 암담했을까 ㅋㅋㅋ.
그렇게 타이팀과 케세이팀으로 나눠, 난 타이팀 10명과 함께 고대하던 길고도 짧았던 인도여행을 시작하였다.
뭄바이의 호텔, 경악을 금치 못했지만-델리는 귀곡산장이라 했던가-첫날밤의 설렘과 피곤함으로 금새 아침이 돼있었다.
뭄바이, 인도의 상업도시.
뭄바이는 가장 인도답지 않은 도시였던 것 같다.
그렇게나 얘기 들었던 소보다는 개가 더 많은 도시 - 아마도 소는 하나도 못 본 듯하다.
물론 인도 특유의 더러움은 만연했지만.
인도의 첫인상은 듣던 대로 더럽고, 소보다는 개가 많고 원숭이도 있구나 하는 정도-하지만 이건 기우였다.
인도는 소, 많았다. 물론 돼지도, 말도, 염소, 낙타도, 코끼리도…
뭄바이는 많은 건물들이 한창 건설 중이었다.
인도의 부자는 우리나라보다 많다고 한다.
인구가 12억~13억(정확한 수치는 모른다고 했다 인구 조사하는데 4년이나 걸린다니..)정도 이니 그 중 부자가 4~5%만 해도 5천만 명에서 6천만 명, 우리나라 전체 인구와 맞먹는다.
그 부자 중 한 명이 63층짜리 개인주택을 짓고 있다고 한다.
13층까지는 주차장이고 그 위는 개인공간들이라나 뭐라나…
바달님 그 건물 다 지으면 꼭 가본다고 했으니 후기 알려주삼.(들어갈 수는 있으려나 ㅋㅋ)
그날 밤 우리는 아우랑가바드로 가기 위해 뭄바이 CST역으로 갔다.
야간기차로의 첫 이동.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우리들의 무거운 가방을 맨손으로 5개씩 머리에 이고 들고 가는 빨간 옷의 짐꾼들.
아마도 계급 때문에 생존을 위해 그렇게 힘들게 산다는 거,
짐을 다 내리고 힘세다고 하니, 해맑게 웃으면서 자신은 힘세다고 뽀빠이 흉내를 내는 짐꾼.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렇게 힘들게 사는데 원망스럽지 않은지 의아했다.
그리고 기차여행. 좁은 3층 내공간.
처음에는 올라가기도 힘들어 낑낑 대고, 더러운 담요, 허리에 맨 복대 때문에 불편한 배, 가방에 든 디카, 2층 칸에서 우는 인도아이, 이 모든 것 때문에 거의 날을 샌 거 같다.
인도는 여행하기 힘들구나…-나중에는 완전 적응 됐지만 ^^
아우랑가바드. 그때는 몰랐다. 여행초기여서. 이곳을 보기 위해 우리는 인도의 거의 반, 우리나라의 20배를 다녔다는 것을.
다울라따바드 포트. 그곳에서 본 데칸고원.
예전 교과서의 사진 그대로 그곳에 있었다.
사실 처음엔 거기가 어딘지 몰랐다.
바달님의 설명으로 그제서야 알게 되고 얼마나 신기했는지.
여행을 좀더 일찍 다녔으면 학교 다닐 때 세계사나 지리를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을 텐데.
그리고 좀더 풍부하게 세상을 살수 있을 텐데.
다울라따바드에서 만난 시골 아이들. 순진하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들.
우리모두 폴라로이드 사진기가 절실했다.
디카 속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좋아했으며, 많은 외국인을 만났을 텐데도 그들은 즐겁고 행복해 했다.
엘로라 석굴사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그 어마어마하고 정교한 바위 덩어리.
위대한 유산들을 보면서 항상 느끼지만, 고대인들은 현재의 우리들보다 너무나도 통이 크다.
그리고 만난 인도인들. 아이들처럼 행복하고 즐거운 사람들.
현지인들이 외국 관광객에게 관광지에 놀러 와서 먼저 사진 찍자고 하고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이란 참 이색적이다.
한 인도 남자는 사진 찍기 전 좋아라 머리 빗질까지 했고, 그들을 보면서 나도 함께 유쾌해졌다.
아잔타 석굴사원. 불교미술의 보고 인도회화의 금자탑, 정말 엄청난 크기, 다양한 석굴들, 국사책에서만 봐온 바로 그거….
경이로움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이렇게 거대하고 훌륭한 문화유산, 아니 세계적 문화유산이 근 200년 후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수많은 벽화들이 너무나 많이 훼손되어있었다.
벽화를 둘러 보면서 우린 그렇게 추측했다.
영국의 이기적인 어느 집엔가 사라진 벽화들이 고이 모셔있을 것을.
그리고 전망대 너머 아잔타 석굴 위의 고원. 그 황량함과 광활함.
왠지 존 스미스가 사냥했다는 호랑이가 어디선가 나올 거 같은, 그 위를 걸으면서 내 팔은 타서 껍질이 다 벗겨 졌지만,
아잔타를 직접 와본 사람만이 볼 수 있는,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광경을 사치스럽게 즐겼다.
아잔타를 뒤로하고 도착한 오르차.
배낭여행자들도 잘 몰라 들르지 못한다는 오르차.
이곳은 참으로 이국적이었다.
소박하지만 아기자기한 오르차의 시장들.
전망 좋고 왠지 모르게 포근한 마할들.
가장 여유로운 인도여행지였다.
오르차를 떠나면서 잠깐 보았던 소박한 학교 앞의 아이들.
한국제 볼펜 몇 자루에 행복해 했던 그들에겐 이 작은 선물이 커다란 기쁨이었다.
기대하고 고대하던 카주라호.
떠나기 전 가이드북 보면서, 이곳을 도착하기 전부터 인도동행자들과 함께 회자되었던 카주라호.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인도는 그런 상식도 적용되지 않았다.
현지 가이드의 노골적인 설명과-그는 브라만 계급이라 했다. –현란하게 조각된 미투나들.
그건 절대로 말(?)로 설명할 수 없다.
행동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
그냥 보는 수밖에.
그래서 일까. 인도 사람들은 옆집아저씨, 아줌마, 직장상사, 친구 부인, 남편 등 필 닿는 모든 사람과 바람을 피운다지만
아이러니 하게 이혼율은 지극히 낮다고 한다.
인도인들은 결혼을 단순히 제도로만 생각하는 걸까.
좋게 말해서 솔직하고 가식적이지 않은 인도인들의 생각일까,
아님, 아무 생각이 없는 걸까.
미투나 사진은 차마. 올렸다가 좀 거시기 해서 --:;
우연히 만난 카주라호의 현지가이드와 대화했던 일이 생각난다.
아주 자연스럽게 접근해서는 내 오른쪽 코에 붙어 있던 빈디가 잘 어울린다며 빈디는 왼쪽 코에 붙이는 거고 자신이 붙여주겠다고. 물론 거절했지만, 우리는 그렇게 아주 자연(?)스럽게 얘기했다.
인도사람들은 잘 웃고 즐겁다고, 항상 문제없다고 말한다고, 왜 그렇게 행복하냐고 물으니,
긍정적인 생각과 표현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전염시키며,
부정적이면 부정적인 모습을 전염시키기에 항상 즐겁고 행복한 게 좋은 거라며,
자신의 의견으로 명상가 같은 좋은 얘기를 하며 카주라호에 혼자서 다시 오라 했다.
카주라호에는 사원군외에 다른 볼거리가 많다고.
그러면서 자신의 명함을 주었다.
한 장뿐이라며 생색내듯이.- 불행히(?)명함을 호텔에서 분실했지만.
카주라호 가이드 아자씨
그리고 카주라호에서 산 반지 두개.
은반지인줄 알고 산 반지가 가짜일 줄이야.
그곳에서 만난 한국말 무지 잘하는 인도인이 그랬다.
내가 인도인 나쁘다고, 어떻게 속이냐고 하자 한국장사꾼도 관광객을 속이지 않느냐고, 그 말에 할말을 잊고 생각했다.
역시 장사꾼들은 또 다른 단일 민족이다.-하지만 내가 속았듯, 가짜 반지를 선물로 받은 우리언니는 좋아라 한다. 역시 인도은제품은 특이하다나 ㅋㅋㅋ
바라나시. 바달님이 가장 좋아한다던. 인도의 모든 것.
허나 패키지 여행으론 가장 인솔하기 힘들다던.
저녁에 도착한 바라니시는
먼지와 연기, 냄새와 더러움, 사람들과 진정한 소들의 도시였다.
바람을 타고 공기 중에 돌아다니는 살 타는 냄새…
그렇게 늠름하던 사박사박님조차 두려움을 느꼈던 도시.
인도의 힌두인들 대부분은 바라나시에서 화장되어 갠지즈강에 뿌려지기를 원한다고 한다.
저녁을 먹고 내려온 좁은 골목에서 운구되어 가는 시체를 보았다.
그냥 무섭다기보단 호기심이.
누군가가 아닌 분명 부모, 형제가 죽었을 텐데, 슬퍼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화장터에 가서 동화되었다.
엄숙하지만 전혀 장례식 같지 않은,
외국인인 이방인에게 조차 화장을 공개하는 그 모습에서 저들의 생로병사는 아무 의미가 없음을 느꼈다.
그냥 주어진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갈 뿐,
강가(GANGA)에 뿌려져 정화되고 다시 태어나 또 즐거운 삶을 살고 그렇게 돌고 돌면 된다는 것을.
바라나시의 겐지즈강은 나에게 성스러운 성지의 느낌을,
모든 것을 포용하는 공간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짧은 정착이라 많이 머무르지 못해 아쉬웠지만….
아그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비싼 사랑의 상징물 타지마할 무덤.
그나마 이곳은 다른곳과는 달리 인도 정부가 관리를 철저히 하고 있었다.
타지마할을 보호하기 위해 반경 1킬로미터안에는
공장은 세울 수 없고 교통도 전기버스나 말 등 공해 없는 수단으로만 진입할 수 있다니
그럭저럭 노력이 가상하나 타지마할 입장요금은 인도정부 역시 장사꾼인 듯 너무나 비쌌다.
아름다운 타지마할.
그곳을 느끼기엔….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다이아나 벤치에서 사진한방 찍는데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리고 그 아름다운 곳에 들어있는 건 달랑 무덤 하나.
정말 너무나 사치스런 사랑의 상징물.
아줌마동행자님들은 역시나 현실적이었다.
세상에, 역사상 단 한 명뿐인 이런 남자의 사랑 좋으냐고 물으니 대부분 원치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미혼인 난 한번쯤은 원하는데 ㅋㅋ
여하튼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을 찬찬히 느낄 시간도 없이
사진 찍느라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우리는 다시 이동했다.
– 아그라 포트도 웅장했으나 여행 막바지고 많은 성들을 봐서 흥미로움이 점점 떨어져 갔다.
지금은 아쉽다, 좀더 집중했어야 했는데…
파테푸르 시크리. 일정이 지연되서 못갈뻔한, 못갔으면 아쉬웠을 곳.
이곳은 참 한가해서 그래서 좋았다.
거대한 왕궁이지만 15년 만에 폐허가 되었다는,
쉽게 건설하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버리는 통큰 악바르왕.
역시 그는 무굴제국의 황제다웠다.
자이뿌르는 현재 인도 왕족의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흥미를 유발했다.
인도 여행하면서 수없이 보았던 성들과 사원들,
그곳에서 느꼈던 공허함, 관리소홀로 훼손된 많은 부분들.
유적지 한구석에라도 당시 생활상을 시각적으로 보여줬으면 했는데,
그런 모습들이 이곳에서 짜깁기 되었다.
거대한 카펫트와 상들리에, 왕족들의 의상들과 그외 제품들은
그 당시 얼마나 화려하게 왕과 왕비들이 살아 왔는지 그 시간의 공간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암베르 포트 . 인도여행의 마지막 성.
힘든 여정의 막바지라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또 다른 볼거리를 보여주었다.
요새와 같이 마을과 성을 둘러싼 산의 언덕과 작은 성곽.
성 위에서 마을모습을 보면서 뭐랄까,
평화로운 마을을 바라보는 왕이 된듯한 여유로움을 느끼게 해주었다.
–실상 성문에는 관리되지 않아 엄청난 크기와 수의 벌집과 벌들이 있었고,
성문 밖은 농사는 팽개치고 여행객에게 물건을 파는 어른들과 아이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여행 지 내내 인도의 잡상인들에게 시달렸지만 이곳처럼 그렇게 치열한 곳도 드물 것이다.
델리와 뉴 델리. 인도의 수도.
자이뿌르에서 200킬로미터밖에 안 되는 거리를 무려 7시간 반이라는 시간에 걸쳐 도착한 도시.
델리는 도시에서보다는 여정에서 더욱 기억에 남는 도시였다.
우리나라 국도처럼 생긴 왕복 4차로의 좁은 고속도로.
공사와 사고로 꽉 막힌 자동차들.
그 큰 관광버스가 2번의 중앙선 유턴과 역주 행 끝에 7시간 반 만에 도착한 도시.
누가 믿을까, 우리나라 40배의 나라에서 우린 2시간이면 가는 거리를 무려 7시간 반이나 걸렸다는 걸.
그렇게 긴 여정을 끝으로 우린 인도여행을 마감했다.
룸메이트 방랑객과 뽕비드언니, 뒤늦게 정들은 사박사박님과 마지막 건배를 하고,
-개인적으로 우리조장 상수님과 마지막 건배를 못해 아쉽지만 ^^-
스마일님과 사박사박님이 사오신 장미꽃 열 송이.
너무 감동해서 나머지 분들을 두고 떠나는 길이 너무나 아쉬웠다.
-먼저 집에 가는 것 뿐이었는데….
꿈꾸는 숲님과 하늘만큼님의 눈물의 배웅. (지금 생각해 봐도 짠하다.)
창 밖으로 손 흔드는 방랑객.
밖에 까지 나와 배웅한 조장님, 스마일님,
그리고 공항입구 까지 오신 허여사님과 바달님의 서운한 표정들…
타이팀 9명은 돌아오는 공항에서 얼마나 허전했는지 모른다.
갈 때는 10명도 많은듯했는데……
10일이란 시간 동안, 아마도 28명 모두는 여럿이지만 하나였던 듯하다.
우동안 클럽의 회원이신
화려한 화보촬영으로 모두를 화보촬영의 늪으로 빠지게 했던 순수한 꿈꾸는 숲님,
왠지 너무 마음 좋고 모든걸 이해해주실 것 같은 하늘만큼님,
첫 번째 음주시간에 자신의 솔직한 성담론을 펼쳐주신 화끈한 블랙오팔님,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실 것 같은 김실님,
남편이며, 주위사람이며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으실 거 같은 사랑이님,
차분하시고 자기세계가 확실한 거 같은 레아님,
우리 이모뻘인데도 넘넘 귀여우신 스마일님,
모든걸 혼자 개척하실 것 같은 씩씩한 사박사박님,
도의 경지에 오른 상수님,
마음이 너무나*2 넓은 뽕삐드님,
인도여행에서 별거 다 겪은 방랑객.
연배가 높아 (내가 무리에서 두 번째로 막내였던 게 얼마만이던가) 많은 분들과 이야기하진 못했지만,
중간중간 아가페, 캐나다부부님의 따뜻한 관심과,
인천공항에서 빨리 시집가라는 아주 좋은 덕담 (ㅋㅋ)을 해주시며 떠나신 마음 넓으신 위위 부모님들의 모습에서
내가 다가가지 못했던 다른 분들의 마음을 느꼈다.
혼자 떠나는 여행도 외롭지 않고 즐거울 수 있다는 경험을 해주게 한 여행이었기에.
인도에는 너무나 소중하고 다양한 유적이 공존해있지만
참으로 허술하게, 시간과 공기에 의해 훼손되어가면서 방치되어 있었다.
힌두교의 쉬바신은 창조와 파괴의 신이라 했던가,
그래서 인도인들은 창조 뒤인 파괴가 있어야 다시 위대한 창조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인도인들은 행복하다.
그들을 억누르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계급이 지금까지 존재하는데도
-물론 짧은 기간의 여행이라 그들의 계급에 대한 생각을 자세히 들어볼 순 없었지만-
먹을 것이 없어, 살 집이 없어 굶어 죽고 얼어 죽지만,
내가 만난 대다수의 인도인들은 항상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안 되는 것도 없고, 되는 것도 없다고 하는 인도,
인도에는 모든 것이 공존한다.
더러움과 깨끗함이,
인간과 동물과 식물이,
과거의 찬란한 문화유산과 현재의 살아 움직임과 미래의 다시 태어날 삶이.
힘든 인도여정을,
가이드일을 하면서 남을 챙기고 보살피는 일이 체질인줄 알았다며 우리를 이끌어준 바달님과
여행이 좋은 게 아니라 사람이 좋아서 여행을 한다는 허여사님께 감사함을 전합니다.
“ 옴 샨티 ” – 구름님 인용.
2008년 2월 23일
첫댓글 다시 가보고 싶은 인도....잘 읽구 갑니다
예쁜 애즈님처럼 인도 후기도 단정하면서 마음이 다시 찡 무엇인가 와 닿는 느낌이 나는군요 너무 정리를 잘 해주어서 감사해요 우리의 큰언니처름 비행기도 놓치지 않았죠? 하는 일도 똑 부러지게 잘할것 같아요. 나이든 언니(?)들과 다니느라 재미없는 것을 티없이 웃으며 다녀준 것을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그저 미안스러울 뿐이네요. 다음 여행은 지름신이 내려 건강한 젊은 남정네^^^를 많이 만났으면해요. 그런데 나는 왜 또 같이 여행을 가고 싶죠?..............
인도여행은 힘들지만..그만큼 맘에 남는게 많답니다. 여행중..이 힘든 인도를 왜 또 오냐고 묻던...질문이 생각나네요. 여행뒤...느껴지는 이 느낌땜에 ...인도로 다시 가게 됩니다. 그래도 왕언니들하고 같이 하니 좋은 점이 더 많았을거에요. 사랑 많이 받은 여행...그쳐~~~
우와~ 후기너무 잘 쓰셨어요~~틈틈히..다이어리에 적은..저보다 기억력이...더 대단~~그때로 돌아가서 여행하고 있는듯한 기분...아~~인도도 그립고... 함께한 회원님들도 그립고.. 그러네요...^-^
인생은 한조각 배를 타고 홀로 떠나는 긴 항해라 했거늘~~ 모두가 행복을 찾아 헤메지만, 물질만으로도, 마음만으로도 행복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준 소중한 여행이였네요. 인도에서 보고,듣고, 느낀것들이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고, 따뜻하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원합니다 .
벌써 여행기를 다 썼구나...에구 에구 부러버라... 이 언니 좋게 봐 줘서 담에 만나면 맛난거 사줘야겠네..ㅋㅋㅋ .. 일상으로 돌아오니.. 일이 장난이 아니라 여행기가 늦어지네..인도여행 귀국보고회도 해야하고 온 동네방네 다니면서 "나 인도여행 갔다왔다~ "자랑도 해야하는데...... 어~ 쿠.. 그냥 거기서 여권 버리고 오지 말껄...ㅋㅋㅋ..
다시 여행하는듯한 기분이네요~~~그런데 지금이라도 당장 떠나고 싶은 이기분 어찌할꺼나..ㅋ..우리한번만나서 인도커리먹으러가요..........
안되는 것도 없고, 되는 것도 없다는 인도. 모든것이 공존한다는 말이 정말 와닿네요. asis님 글을보고 짧은 기간동안 이토록 많은것을 끌어낼수 있다는것이 한편 부럽고 준비가 됐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네요. 만나서 반가왔구요 좋은여행 많이하시길... 참!핸펀은 바로 찾았답니다^^*
역쉬 asis... -예쁜 사람이 예쁜 짓을 !-자기 모습처럼 여행기도 깔끔하네. 어떤 사람들은 인도 여행에서 돌아 오면 다시는 인도에 가지 않겠다고 한다는데 난 자기 글 읽으니 벌써 인도가 그리워지네..
다시 인도를 한바퀴도는느낌.... 역시 젊은게 부럽단생각... 이쁜 아가씨 잘읽고 간답니다
옴 샨티!!!
인도도 가고싶당~
신세대 asis님 인도의추억을 다시금 되살리게 해줘서 고마워요~! 다음에도 기회가 되면 동행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