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노나 라이더 [Winona Ryder]
생년월일: 1971. 10. 29
출생지 : 미국 미네소타 위노나
데 뷔 : 1986년 영화 < 루카스>
1971년 10월 29일 미네소타주 출생. 본명은 위노나 호로위츠(Winona Horowitz). 아르메니아와 러시아의 혼혈인 아버지와 노르웨이와 독일 혼혈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4형제 중 셋째. 태어나자 마자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여 10세 경에 본 영화 <마음의 여로(Heroes)>(77)에 감동을 받아 배우를 지망한다. 12살때에 소품이지만 가족 드라마의 명작으로 꼽히는 <열사의 꽃(Desert Bloom)>이라는 영화의 오디션에 합격을 했으나, 실제 배역은 아나베스 기쉬라는 13살 소녀에게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나 이것은 그녀가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성적이 우수하여 17세에 페타프마 고등학교를 조기 졸업했으며, 재학 중에 연극을 배워 무대에 서기도 했다. 본격적인 영화 데뷔는 86년에 이루어졌다. 작가 출신으로 감독 데뷔를 하는 데이빗 셀처 감독이 <루카스>에 그녀를 조연으로 캐스팅한 것이다. 코리 하임, 케리 그린, 찰리 쉰 등과 공연한 이 영화는 14살 소년의 순진무구한 러브 스토리를 진솔하게 그린 가작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 그녀의 데뷰는 순조로운 것이었다. 87년에는 다니엘 페트리 감독의 가족 드라마 <스퀘어 댄스>에 출연했다. 제이슨 로바즈, 제인 알렉산더 같은 관록의 연기파 명우들과 함께 로브 로우의 상대역으로 공연한 그녀는 그들에 못지않은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88년 <비틀 쥬스>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그녀는 세계 각 인종의 미를 완벽하게 조화시킨 얼굴을 갖고 있다. 이때부터 그녀의 다양한 활약이 펼쳐지기 시작하여 89년에는 세 작품이나 출연을 하였다. 극작가 어네스트 톰슨이 영화 감독으로 데뷰한 <1969>에서는 로버트 다우니 Jr., 키퍼 서덜랜드와 공연하였고, 록큰롤 초기의 전설적인 스타 제리 리 루이스의 이야기를 그린 <열정의 록콘롤>에서는 루이스의 세번째 아내 역으로 출연했으며, 마이클 레만 감독의 컬트 무비 <헤더스>에서는 여자 교교생으로 크리스챤 슬레이터 등과 공연하였다. 이 영화들은 모두 작품 자체는 크게 평가 받지는 못해도 그녀의 연기만은 뛰어난 것으로 인정을 받았다. 이어 90년에도 여전히 그녀는 바빴다. 짐 에이브람스 감독의 코메디 <록시>도 작품보다는 그녀의 연기가 더 돋보였고, 리차드 벤자민 감독의 <귀여운 바람둥이>에서는 오스카 수상 여우 쉐어, 봅 호스킨스와 공연을 하면서 오히려 그들을 압도하는 명연으로 격찬을 받았으며, 다시 팀 버튼과 만난 <가위손>에서는 동화 속의 여주인공 같은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91년에는 미국의 레오 까라라고 불리우는 젊은 세대의 기수 짐 자무쉬 감독의 <지상의 밤>에 출연했고,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새롭게 만든 <드라큐라>에도 출연했다.
마약(LSD)과 힌두교에 심취했으며, 작가면서 옵저버였고 지성인이자 히피였던 부친의 영향을 받았는지, 학교란 '혼란'을 의미한다고 말하는 예외적인 자유주의자. <가위손>에 함께 출연했던 조니 뎁과 19살의 나이에 동거 중 결혼. 프란시스의 코폴라의 <대부 3> 출연 제의를 단지 '건강상의 이유'로 거절하였고, 그래도 코폴라는 다음작 <드라큐라>에 또 캐스팅을 희망했으며, 팀 버튼이 밀고 있고, <나 홀로 집에>의 존 휴즈가 우상으로 섬긴다는 소녀. 미스테리한 분위기와 언뜻언뜻 비치는 이상한 광기는, 위노나가 지금까지 헐리우드에서 보아온 이런 하이틴 소녀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녀가 맡은 역할에서 볼 수 있듯이 매우 이색적인 배역들이 많다. 이것은 그녀가 남들이 꺼리는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기량과 근성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청순 가련형으로 보이면서도 어딘가 범상치 않은 불가사의한 매력을 지닌데다가 이렇게 폭넓은 연기력을 가지고 있어서, 차츰 거장 감독들이 그녀를 캐스팅하고 있는 추세이다. 다만, 그녀에게 있어서 걸림돌이 되는 것은 지나치게 민감한 신경과 건강상의 문제이다. 실제로 그녀는 코폴라 감독의 <대부 3>에서 마이클 콜레오네 의 딸 매리라는 대역을 맡고서도, 그 역에 대한 지나친 신경 과민으로 건강을 해치는 바람에 도중하차를 하고 말았다. 지금까지는 탄탄한 연기력을 바탕으로 해서 컬트 취향이나 이색적인 작품들에 많이 출연을 해왔으나, 서서히 대중적인 인기작이나 거장들의 대작에도 출연이 늘어나고 있어서 배우로서 본격적인 개화기는 이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위노라 라이더는 1971년 10월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서점을 경영하는 아버지와 교육용 비디오 제작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에게 태어난 마을의 이름을 따 '위노나'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부모가 히피였던 탓에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농장 공동체에서 자란 위노나 라이더는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고, 부모는 집에서 그녀를 가르치며 연기학교에 보냈다.
열 두 살부터 연기를 시작한 위노나 라이더는 영화 <열사의 꽃>의 오디션에 응모했으나 탈락했고, 이때 그녀를 눈여겨 본 감독 데이빗 셀저에 의해 <루카스>에 발탁된다. 그녀는 이후 <비틀쥬스>, <헤더스> 등에서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면서 헐리우드 영화계에서 강한 파워를 지닌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그리고 그녀는 <가위손>을 기점으로 아역배우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차츰 성인 연기자로 변신해 간다. <드라큘라>는 그녀가 성숙한 여인으로 출연한 첫 영화였고, <순수의 시대>와 <하우스 오브 스피리트>같은 시대물에 출연하며 성공적으로 도약한다. 사회의 질서에서 벗어나려는 20대 젊은이의 역할을 훌륭하게 연기한 94년 작품 <청춘 스케치>를 통해 위노나 라이더는 자유로운 젊음의 표상으로 자리 잡는다.
99년 정신병동에 갇힌 사춘기 소녀들을 다룬 영화 <처음 만나는 자유>에서 제작자로 변신하고, 그 이후 <뉴욕의 가을>,<미스터 디즈>에 출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