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엔 그냥 통에 담아 놓은 은행알 껍데기를 벗겼다. 껍데기는 버리고 알은 봉당에 널었다. 작년에 은행알을 주워 한번 까고 말린 뒤, 나중에 주은 건 그냥 묵혔던 것인데, 겨울에 깐다고 하다가 너무 묵히고 말았다. 은행알은 말렸다가 며칠 단위로 까서 밥할 때 넣어먹으면 은행쌀이 돼서 참 좋다. 더구나 말린 은행알은 아린 맛이 전혀 없다. 나는 밤쌀, 옥수수쌀, 은행쌀 이런 걸 계절별로 마련하여 먹는 게 좋다.
오후엔 지보초등학교에 가서 책상 두 개를 얻어왔다. 지보초등학교에서 안 쓰는 것이다. 선반으로 쓰다가 마당용 식탁으로 쓰면 되겠다 싶다.
내일부터 이틀 비가 온다기에 땔감 손질을 좀 하고, 화목보일러 재를 긁어내고 내부청소를 했다.
무효소 항아리를 열어보니 비 지나고 무를 건져도 되겠다. 비 지나면 무를 건져 건진 무는 조청을 만든 다음 버릴 생각이다.
해질녁 절골 묵밭께로 갔다. 올봄엔 절골이 내 텃밭이나 마찬가지다. 냉이부터 시작해, 곰보배추, 씀바귀, 쑥으로 채취가 바뀌고 있다. 약간은 더운 햇볕이 설핏 산 너머로 기우는데 산새 한 마리가 미루나무 쪽 숲에서 연달아 지저귄다.
야야 저녁때가 됐는데 저 사람은 왜 내려가지 않고 밭에 쭈그리고 있지? 그러는 거 같다.
나는 쑥이 좋아 한 30분 쑥을 땄다. 그리고 다시 어제 본 쬐그만 흰 꽃을 떴다. 마당에 옮기기 위해서다.
집에 와 나무보일러의 불을 지피고, 밀가루 반죽을 했다. 김치국물 남은 거에 된장을 풀고 거기에 쑥을 한줌 넣고 파 하나 썰어 넣고 칼국수를 했다. 직접 반죽하여 밀고 썰어 넣는 과정이 약간은 설렌다. 칼국수는 어릴 때 어머니가 해주신 칼국수를 먹은 뒤 음식점에서 먹어보았을 뿐이다. 처음이라 밀가루를 뿌리며 해도 좀 늘러붙은 게 생겼지만 그런대로 면발이나 맛이 좋았다. 반쯤 말린 쑥이었는데 쑥이 아삭아삭 하니 씹는 맛이 있어 좋았다. 반찬 없이 칼국수만 먹어도 되었다. 간단하지만, 반죽하고 밀고 써는 작업이 즐겁다. 이 과정이 칼국수의 참 맛이었구나 싶다. 과정이 즐거우면 결과가 좋지 않아도 좋다. 내 철학과 맞는 일이다. 엄마 옆에서 칼국수 자투리를 얻어 궈먹던 생각도 났다.
그래 내친 김에 한 걸음 더 간다고, 남은 반죽의 일부로 짜파티를 만들기로 했다. 후라이팬에 밀가루를 좀 뿌리고 약한 불에 짜파티를 구웠다. 그리고 몇 년 묵은 잡꿀을 발라 먹었다. 예전 히말라야 트레킹 할 때 음식 값이 비싸서 짜파티에 꿀을 식사로 사먹은 적이 있다. 그때 꿀을 발라 먹는 짜파티 맛은 잊을 수 없다. 릭샤왈라는 짜파티 한 장에 짜이 한 잔으로 한 끼를 대신하기도 했는데, 설탕을 듬북 넣은 진한 짜이 한잔에 무교병인 짜파티 한 장은 얼마나 감미로운 것이었을까. 나는 칼국수에 짜파티까지 포식을 했으니 오늘 저녁 사치를 맘껏 부린 셈이다.
내일은 비가 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