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부네 집에 스님이 시주를 얻으러 왔다. 놀부는 스님이 곧 가려니 하고 거들떠보지 않았다. 스님이 끈기 있게 기다리며 불경을 외웠다. “가나바라, 가나바(봐)라…” 놀부도 마주 서서 불경을 외웠다. “주나바라, 주나바(봐)라…” 인터넷 사이트에서 읽은 유머다.
놀부는 어려서부터 심술쟁이였다. 넝쿨호박에 말뚝 박기, 남의 논에서 물 빼기, 초상집 찾아가 노래 부르기 등 못된 짓을 일삼았다. 부모가 죽자 유산을 독차지하고는 한 집에서 살아온 동생 흥부가족을 쫓아냈다. 그가 스님에게 시주했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영국에도 놀부 얘기가 있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이다. 주인공인 에벤에셀 스크루지는 심술쟁이라기보다는 자린고비다. 쥐꼬리 월급을 주며 점원으로 부리는 조카가 엄동설한에 석탄 한 덩어리를 상점 난로에 넣으려하자 “춥긴 뭐가 춥냐”며 호통 쳤다.
놀부와 스크루지가 떠난지 수백년이 지났지만 욕심쟁이 부자들은 한국에도, 미국에도 여전히 많다. 놀부처럼 유산을 받은 부자도, 스크루지처럼 자수성가한 부자도 있지만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 또는 금융제도의 부조리를 악용해 떼돈을 번 졸부들도 매우 많다.
요즘 이들 졸부를 규탄하는 ‘월가(Wall Street) 점령’ 시위가 전국에서 석달째 이어지고 있다. 놀부가 박에서 쏟아진 도깨비들에게, 스크루지가 크리스마스이브에 현몽한 세 동료의 귀신들에게 혼난 것처럼, 인구의 1%인 부자들이 99%인 서민들에게 혼나고 있다.
놀부와 스크루지와 졸부의 공통적인 속성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들여 호화롭게 살지만 자기가 고용한 근로자나 자기가 속한 커뮤니티의 복리복지에는 냉담하다는 점이다. 시위를 벌이는 자칭 ‘99% 국민’의 요구도 부를 공평하게 분배하라는 것이다.
물론 졸부 아닌 부자들도 있다 세계제일의 갑부인 빌 게이츠(그도 한 때 욕을 먹었다)는 세계 최대규모의 자선재단을 세워 미국과 지구촌의 의료, 교육, 복지 향상에 크게 한 몫 하고 있다. 록펠러재단이나 카네기재단 같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자선재단도 많다.
그렇지만 자선은 부자 재단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들은 영세민 하나하나를 대상으로 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졸부들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 것으로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다. 자고로 어려운 이웃은 같은 커뮤니티에 속한 비슷한 처지의 이웃이 도와왔다.
미국인들은 매년 ‘땡스기빙’(감사절))이 낀 연말연시에 남에게 감사거리를 주는 자선활동을 펼친다. 아예 11월 19일을 ‘자선의 날’로 정해 놨다. 국민 10명 중 7명꼴로 돈을 기부하거나 노력봉사 한다. 미국인들의 한 해 기부금 총액이 대략 3,000억 달러에 달한다.
본보도 감사절을 맞아 연례 불우이웃 돕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99% 시위대’가 세태를 반영하듯이 올 겨울엔 동포사회에도 어려운 이웃이 더 많아졌다. 가장이 직장을 잃어 당장 생계가 막막한 가정, 집을 차압당해 거리에 나 앉게 된 가정도 예년보다 훨씬 많아졌다.
쌀광에서 인심난다는 속담이 100% 맞는 건 아니다. 자선행위는 경기와 관계가 없다. 오히려 주머니가 가벼워졌을 때 불우이웃의 처지가 남의 일처럼 보이지 않는 모양인지 기부금이 더 많이 들어온다. 작년 같은 불황에도 역대 최고액인 5만6,000여달러가 모아졌었다.
한인사회에 놀부나 졸부보다 스크루지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그는 크리스마스이브의 악몽으로 개과천선한 뒤 커뮤니티 자선활동에 앞장 서는 ‘큰손 기부자’로 재탄생해 이름값을 했다. 성경의 ‘에벤에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거기까지 도우셨다’는 뜻이다.
성경에는 또 이런 말도 있다.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고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스스로) 윤택하여 지리라”(잠:11-25). 올해도 본보의 연말연시 불우이웃 돕기 캠페인에 적극 호응해서 풍족해지고 윤택해지는 독지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11-26-11
첫댓글 동포사회의 어려움을 동포사회에서 나눠갖는다는 건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올해에는 더 많은 기부금이 모였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작년만은 못 할 것 같군요.
한국일보사에서 해마다 년말에 사랑의 온기가 동포사회속에 흐르게 해주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 온기를 전해주신 많은 분들 가운데 미루나무님이 계시지요. 감사합니다.
눈산님, 이 글 나가면 기부금 더 많이 나올겁니다. 이런 모습 저런 모습으로 좋은일 하시는 윤선생님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어디요 제가 하는 게 아닙니다. 한국일보가 하는 거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