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24] 갈맷길 걷기 2 : 태종대에서 송도해변
장인어른이 별안간 입원을 했다. 그것도 가슴 철렁하는 중환자실이다. 실은 중환자실 재수생이다. 2년전 유사 증세로 며칠 중환자실을 다녀가신 터이니. 당시엔 그야말로 청천의 벽력이었는데 이제 다시금의 소식에 병세도 그만하다니 익숙도 한지 그닥 걱정도 아니다. 하여간 떠남에 무슨 벽(癖) 있는지 아니면 대체 내가 "산수에 벽이 있어 시로 늙었다"라 한 매월당이나 설악산 백곡담에 머물며 "한 번 누워 백 년을 보낼 계책"을 꿈 꾼 삼연인줄 아는지 와중에도 잔꾀다. 면회도 제한적이라 무작정 중환자 대기실을 지키고 있느니 짬을 내어 병원 근처를 걷자 작정을 하는 것이다. 병원이 송도에 있으니 태종대서 절영해안을 거쳐 걸어 암남공원까지 걸어내면 지난 여름의 갈맷길도 잇게 되는 셈이렸다. 며칠 지새운 사위 노릇에 마침 아이들도 내 차지라 옆지기도 짐짓 모른 체 하여주니 이로써 사는 재미 삼는다. ■ 일시 : 2010년 1월 24일 ■ 코스 : 태종대 - 감지해변 - 중리해변 - 절영해안 - 송도해수욕장
오전 면회가 11시 30분 부터 12시까지인지라 면회 후 점심 먹고 출발하니 태종대에서의 오늘 일정 출발시간이 2시 가깝다. 제법 날이 차고 바람이 있는지라 아이들 해지기 전까지만 걸릴려니 아무래도 4시간이 채 안되는 시간만이 허용된다. 애초 걷기로 태종대 한바퀴도 소중하나 수차례 걸은 길이고 시간을 고려하여 오늘은 가볍게 '다누비'를 타고 돌기로 한다. 어른 걸음으로 코스는 총 연장 17km에 5시간 가까운 소요일텐데 태종대를 유람삼아 돌고 암남공원도 후일을 기약하자면 아이들 걸음으로도 송도까지의 10km는 무난하리라.
태종대 순환 버스 '다누비'에서. 잘 걸어내야 할텐데. 연신 장난인 아무 걱정 없는 아이들이 이쁘다.
등대섬 전망대에 내려 대해를 바라보며 가슴을 틔운다. 저 멀리 수평선에 대마도의 실루엣이 걸렸다. 500원 짜리 조망용 망원경으로 바라보니 일렁이는 바다에 내 마음도 일렁일렁.
자주 찾은 태종대는 건성으로 돌고 감지해변으로 곧장 내려섰다. 찬 날씨에 어묵이 제격이다. 아이들 동행하기로 먹을 것과 선물의 약효를 어이 무시하리.
출발에 앞서 물수제비 뜨기 한판. 수제비를 떠야했으나 보일 듯 말 듯 파문만... 동심을 바라보자니 차수( 次修) 박제 가의 <묘향산소기>에 실린 물수제비 뜨기의 실로 아름다운 묘사가 얼른 떠오른다. 납작한 돌을 골라 물결을 향해 몸을 뉘어 던졌다. 물껍질을 벗기며 세 번도 뛰고 네 번도 뛴다. 느린 것은 두꺼비가 물에 잠기는 것 같고, 가벼운 것은 마치 물찬 제비 같다. 어쩌다가는 대나무 모양을 만들면서 마디마디 재빠르게 뒤쫒기도 한다. 혹 동전을 쌓으며 쫒아가기도 하는데, 뾰족한 흔적은 뿔 같고, 층층의 무늬는 탑인 듯도 싶다. 이것은 아이들의 장난인데, 물수제비 뜨기라 한다.
감지해변 산책로를 살짝 올라 뒤돌아보니 저 멀리 오륙도가 선명하다. 지금은 오도.
나아가야할 곳은 이리도 아름다운 그림이다. 감지해안 저 멀리 우측부터 남항대교와 송도 그리고 몰운대, 다대포, 가덕도, 거제도가 연이었다.
감지에서 중리로 가는 숲 길, 돌탑이 있다. 아이들 작은 소원 하나 얹어 합장하기로, '할아버지 얼른 나으세요'
중리 해변. 고층 아파트와 헐어질 중리해변 가건물의 사이, 파도가 높다.
마치 폐허의 어촌. 몇몇 할매의 호구지책일 뿐인 저 곳도 또한 길이라면 그저 두었으면. 지나가다 우리 할매 닮은 할매의 그 주름진 살가움에 좀체 걸음 떼지 못하여 아무렇게나 주저 않아 막썰어주는 개불, 멍게, 해삼, 성게에 때로 울컥도 하였으면.
바람 부는 한 평 우주는 반 평 햇살 마저 오롯이 내어주었다.
저 솥에 끓고 있는 것은 할매의 억척. 잊어서는 안되는 내 어메의 눈물.
누가 있어 알아주랴. 제 기운 운명을. 낡은 목선과 그 아래 노구의 성긴 손길은 평생의 동무였음에 틀림없다.
할매, 할배의 굵은 손마디가 길을 내었다. 차마 곱게도 꽃길을 내었다. 어이 걸어갈텐가. 그냥 주저앉아 통곡하고 말 것을.
그렇다면 그 기다림의 끝, 사랑이 올까. 이별 후의 간절한 그리움만 남을까.
아직 세상을 알지 못하는 동심은 수백의 계단을 앞에 두고 가위바위보다. 어쩔텐가. 나아가려면 말려야지. 더불어 제 걷는 길 내내 곱게 치장한 조약돌의 혼신에 눈물 한방울 더해야 하는 것임을 알려주어야 했으나 어쩔텐가. 얼굴 모양이면 엄마 닮았다 꽃 모양이면 나 보다 못 그렸다 지청구인 아이들의 맑은 심장에 일당 이만원, 삼만원의 노동을 이야기한들.
바람 앞에서 갈대와 인간은 닮았다. 나부끼는 그들의 청춘은 항시 가여운 법.
바람에 맞선들 바다는 끄떡도 없다. 파도에 맞선들 바다는 끄떡도 없다.
그저 그는 그의 길을 가고 그저 나는 나의 길을 갈뿐
지압보도를 걷는 아이들, 세상으로의 나아감이 꼭 그와 같음을 차츰 알아갔으면
말하자면 인생, 할매의 찰나의 일광욕 처럼 저 언덕 위 자리한 집 처럼 늘 위태한 것임을 차츰 알아갔으면.
막 물질을 마치고 아직 보호 필름도 채 벗겨지지 않은 새 문에 걸려 있는 쉬어가는 해녀의 삶 처럼 기운 차 노곤한 것임을 차츰 알아갔으면.
그 가는 길, 때로 지쳐 쓰러지더라도
때로 상대에게 위안이 되어주며
저 마주한 손의 온기 온전히 기억하여 때로 서로 의지하여 살아내어야 함을 알아갔으면.
삶이란 결국 이내 지워져 버리고 마는 영원의 길 내는 작업이며 각각의 길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지혜의 길임을 알아갔으면.
그리하여 사는 동안 저 노란 등대 처럼 묵묵한 걸음으로 참말 기쁘게 한세상 살아내었으면.
송도해수욕장 전경. 애초 암남공원을 목적하였으나 이만하여도 되었다. 아이들 걷기로 독려할 수 있으나 곧 어둑해질테니 또 걸으면 될테니 아무 걱정이 아니다.
저 뒤 땅의 끝에서 부터 걸었다. 내내 제법 야무진 걸음이었다. 둘째의 지친 표정이 밟힌다. 병구완 하느라 빠진 엄마의 자리일까. 얼른 엄마에게 가야지. 가서 '엄마 할아버지 얼른 나으시라고 기도 많이 했어요' 하고 응석부려야지. ******* 유동주 교수가 저서 <지구 반대편에서 3650일>에서 말한 '여행은 사는 법을 배우게 한다'는 말이 와닿는다.
그는 뜻 밖에 의도하지 않은 길을 가게 될 때, 계획하지 않은 길에도 즐거움이 있음을 이야기 했으며
낯선 곳에 가면 일상생활에서 무뎌진 마음이 열리고 빈손의 자유로움도 느끼게 된다고 했다. 길 위에서 만나는 말그대로의 자연과 참신한 인공(人工), 행복에 겨운 환한 미소와 눅진한 삶의 무게가 파고든 억센 주름을 보자면 과연 그 말이 옳다. 길 위의 동행과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 자연은 그러므로 스승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시 , 유종화 곡, 손현숙 노래 이상 행복팍팍 사랑팍팍 팬다
첫댓글 건강이 가장 소중한 것을 새삼 느낍니다. 날이 찬데 모두들 컨디션 유의하세요~~~
제가 제일좋아하는 갈맷길걷기 2탄이내요. 1탄의 김동률의 출발이라는 노래도 좋았고... 2탄 노래도 잔잔하니 좋습니다. 이럴땐 부산사시는 팬다님이 참 부럽습니다. 첫째 따님 키가 훌쩍 큰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소망처럼 장인어른의 쾌유를 빕니다. *^^*
덕분에~ 장인어른은 경과가 아주 좋으시네요^^
심란하셨을 맘 이해됩니다. 조속히 쾌유되시길 바랍니다. 아치섬(조도)에서의 학창시절이 떠오릅니다. 벌써 20년이 조금 더 되었군요 ! 갠적으로 젊음의 추억이 진하게 묻어있는 부산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러시군요~ 넓게도 매립이 되어 옛 분위기는 아니지만 섬(?)에 어렵사리 한번 들어가본 적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션...도 더욱 이해가 됩니다^^
고전음악 가끔씩 재즈정도로 음악을 즐기는 저에게 팬다님의 bgm은 늘 새롭습니다. 인생 참 맛있게 산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장인어른 쾌유를 빕니다. 일주일에 한번도 전화를 드리지 않는데 요즘은 아침 저녁 2번씩 문안인사를 드립니다.
산비장이님 어르신의 쾌유도 기원합니다!!!
애기들이 참 선해보여요~ 아빠 닮았나요 ㅎㅎ 팬다님의 가족에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해봅니다.
아빠 닮게한 죄로 장기적금 드가고 있습니다^^
중리 선착장에서 갯바위낚시배를 타고...영도 갯바위를 누비고, 태종대 앞 생도(주전자섬)에서 대물(?)전갱이 잡던 생각이 새록새록 납니다. 지금쯤 학공치낚시꾼들로 만원일텐데.... 부산의 아름다움이 묻어나는군요... 여행의 기쁨은 배움과 추억인것 같습니다. 새로운 것과 지난 것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아이들이 참 이쁘네요... 팬다님 장인어른의 쾌유를 빌며 덕분에 잔잔한 부산여행을 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다는 늘 그렇게 마음의 여유를 선물하는가 봅니다. 추억!!!
갈맷길을걸으며 따님들의기도가 전해지는것같습니다 빠른쾌유을빕니다
예^^ 어제 병실을 지켰는데 간만에 사위 노릇도 조금 하나 봅니다 ㅠ.ㅠ 여러분들 덕분에 경과가 좋으시네요~~~
언젠가부터 아프다는것에 깊게 느끼게 되었는데 ~~~고인이된 장진영 부군이 제게쓰신책을 선물주셔서 책을 이틀동안 읽으며 어찌나 눈불이 나던지 장인어른이 아프시다니 제마음도 편치 않네요 ~~저런한적한곳에서 일주일만 있다오고싶네요 언제나 이쁜두딸과 함께하는 모습 정말 보기좋아요
예~ 고맙습니다. 안색도 아주 좋으시고 2인실에 계시는데 옆 환자분의 사모님이 아주 인자하시어 많은 도움이 되네요^^
기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예뻐요^^
할아버지 얼른 낫게 해주세요, 하는 것인데 어찌 맛난거 사주세요, 하는 것 처럼 보이더만요^^
부산엔 갈맷길이 있군요.걷는걸 좋아하는 사람들로서는 반가운일이 아닐수 없죠.^^팬다님 따님들 힘들어보이지만 우애가 깊어보여 미소짓게 합니다.
큰 놈이 제법 마음 씀씀이가 넓어 개구쟁이 작은 놈이 덕을 봅니다^^
큰 딸이 부쩍 키가 컸습니다^^
쪼매... 한참 더커야할텐데 살짝 걱정도...
태종대 동삼중리...제 어릴적 놀던곳입니다 그땐 아파트도 없었고 그냥 조용한 촌마을이였는데 해양대학교가 중리에 있던 시절이라.. 새삼 그립습니다 고갈산자락의 중리 겨울바닷물색은 그대로인것 같습니다
암남공원이 내고향동네, 옛날에는 영도다리만 있던것이 또하나가 생기고 작년에가보니 영도와 송도가 다리로 이어져 이젠 지척이니..............
팬다님의 서정적 후기를 부산산악문화전시관에 전시하려합니다. 넒은 혜량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