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공연은 저녁 8시에 시작하는데 몸은 그렇게 빨리 가라고 재촉을 하는 통에...
1시쯤 출발해서 설렁 설렁 달리고 일찌감치 모여있을 부사모들 만나서 그 동안의 회포를 풀고
다같이 저녁을 먹은 다음 공연장에 입성할 계획이었거든요.
그런데 항상 이변은 일어나기 마련, 아마도 머피의 법칙이 작용했나 봅니다.
아들내미 학교에 잠시 들어오라 카고, 가스오븐 고장나서 새로 사 놔야 다음날 도시가스에서 연결해 준다 카고,
또 작은 아들내미가 쓰던 큰 놈 명의의 휴대폰 해지를 해야하고 우체국에 뭘 부치러 가야 되고...
더운 땡볕을 돌아다니며 걍 돌아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마음은 급하고 정신줄은 이미 울산 가 있고...
한 바퀴 돌고 들어오니 이번엔 냉동고에서 내 놓은 쑥떡이 썰어달라고 기다리고 있더구만요. 국민할매 갖다 줄라고 밀양까지 가서 며칠 전에 해다 놨걸랑요.
아직 다 녹지 않은 놈을 인대 늘어난 손목으로 썰어대니라 죽을 지경이고 아침부터 그림 그린 얼굴에 땀은 줄줄 흐르고...
쑥떡만 먹으면 체할까봐, 그러면 공연에 아주 막대한 지장이 있는 고로 2년 전에 담가 논 매실 액기스를 차로 만들어서 작은 아이스 통에 얼음까지 띄워서 준비~~ 썰은 떡을 빨간색 반짝이 상자에 차례 차례 담고는 한지를 덮어서 간단한 메모를 남긴후(누가 보냈는지는 알려야...ㅋㅋㅋ) 커다란 가방에 담아서 진짜로 고고씽 할 때가 도래하고...
그런데 이게 뭔 일이다요? 네비에 울산현대예술관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네요.ㅠㅠ.. 나는 진짜 길치라서 혼자서는 낯선 곳을 도저히 못 찾아간다는. 나는 기계치라 그런 거 업데이트 할 줄도 모른다는...
남편한테 전화했더니 네비 샀던 가게로 빨리 가 보라고 약도를 일러 주데요. 자기도 할 줄 모른다고 ㅠㅠ..
시간은 점 점 늦어지고 10분만 하면 된다던 네비가게 사장님 30분도 더 걸리고 뭘 하는지... 자꾸 씰데없는 소리나 해쌌고 가게 안은 에어컨도 안 틀어 찜통이고... 부글 부글 열이 오를 찰라, '다 됐심더!'
그놈의 기계도 참... 뭔 약을 먹었는지 현대예술관을 촤악 올려 주더만요.
4시에 출발~그때부터 다시 행복은 시작되고...
아침부터의 신경질이 일순간에 달아나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내내, 두어 번 졸음운전으로 식겁한 것 빼면 완전천국에 있었답니다.
건천휴게소에서 잠시 졸았는데 에구머니 30분이 홀랑 지나있고 다시 밟아댔지요. 네비에 도착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울산 들어서니 길은 자꾸 막히고... 나는 울산이 그렇게 먼 덴 줄 몰랐네요. 현대예술관은 동쪽 거의 끝에 있었는지 중간에 바다도 나오고 또 한참 가고, 결국 7시 가까이 돼서 도착하니 부사모들 마중 나오고 껴안고 생난리 부르스를 추었네요 ㅋㅋㅋ..
드디어 분장실을 쳐들어 가기로 했지요. 우리 부사모는 부활님들에게 절대 방해를 하거나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기본 원칙을 갖고 있거든요. 선물을 전해야 할 때 빼면 떼로 몰려 들어가는 법은 절대 없죠.
제게 선물이 있었던 고로 저랑 한 사람 더 둘이서만 들어가기로 합의하고 가로막는 직원들 헤치고 의기양양하게 분장실로 고고씽~~
헉! 태원님 혼자서 열심히 머리를 매만지고 있더라구요. 까칠한 코디가 들어오면 안된다고 하려는 찰라 다정한 태원님 왈, '잠깐만 기다리세요, 머리 다 해 가요.'
문 앞에서 머리 손질 끝나길 기다리는데 막 식사를 하고 들어오는 드럼님, 베이스님, 보컬님이 차례로 등장하시다!
기본적인 팬질이란, 먼저 악수하기, 이름 밝히기, 사진찍기 등등 때로 포옹도 가능~~^^
할 거 다하고 태원님만 나오면 되는데 코디가 어찌나 머리를 못 만지는지 묶었다 풀었다... 그러다가 리허설 시간이 도래해서 우린 점잖게 포기를 하고 자리로 와서 앉았지요. (나중에 무대에서 보니 제대로 쪽 져서 기다란 비녀를 두개나 크로스~)
그 짓을 하느라 저녁 먹을 시간도 없어서 부리나케 김밥 한 줄 사와서 몰래 공연장 안에서 먹었네요. 점심도 떡 꽁다리 몇 개 먹었던지라 옆 부사모 언니들 한 개도 안 주고 혼자 다 먹었지라~~
공연은 안 봐도 짐작들 가시죠?
제가 본 공연 중에 최고였어요! 현대관계자 분들이 대거 자리했고 태원님 와이프(일명 소녀님)까지 와 있으니 어지간히 진을 빼더만요, 앵콜도 세 곡이나 하고.. 덥다고 카나 지난 겨울에 했던 무대장치(눈이 펄펄 내리는)를 가동하더만요.
우리 쪽에 부사모가 오글 오글 모여서 분위기 빵 뛰우니 점잖으신 양복님들께서도 나중엔 다 일어나서 환호하고 몸 흔들고 ㅎㅎㅎㅎ..
공연 중간 중간 우리 쪽으로 물도 시원하게 뿌려주시고 윙크도 날리고 키스도 날리고... 이런 부사모가 얼마나 저들도 고맙겠어요.
하여간 성황리에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은 어두운 무대를 향해 끊임없이 기립박수를 보내고...
이런 맛에 공연을 갑니다 ㅋㅋ..
자, 이제 마지막 숙제. 부활님들 차 옆에 항상 차를 대는 포항 부사모 젊은 아줌마가 있거든요. 대구쪽이라 우리끼리 한 편입니다.
다른 차들 다 나가고 암만 기다려도 부활님들이 안 나타나길래 퍼뜩 눈치를 채고 정문으로 다들 달려 갔지요. 그럼 그렇지, 막 마지막으로 나오던 베이스 재혁님이 붙잡혀서 사인을 하고 있기에 우리도 사인받고 사진찍고...
못내 아쉬워서 슬금 슬금 뒤를 밟았더니 근처 한우고기집에서 거시기하게 뒷풀이를 하고 있지 않겠어요?
열 댓명 남아있던 부사모가 식당 마당에서 긴급회의를 했네요.
1.나올 때까지 기다려서 태원님과 사진을 찍고 간다.
2.우리도 고기먹으러 식당엘 들어간다.
3.30분만 더 기다리고 안 나오면 포기하고 점잖게(?) 돌아간다.
당첨은 3번, 결국 현대관계자들에 둘러쌓여 빼도 박도 못하는 부활님들 뒷모습만 아쉽게 보고 다들 헤어졌슴다.
오다가 휴게소에서 라면 한 그릇 먹고 대구 애들 태워다 주고 집에 오니 새벽 3가 다 됐더라는...
금욜공연도 끝내주게 좋았는데 토욜공연은 더 난리가 났다고 카페에 올라 와 있더군요.
꽃남 보컬이 객석을 왕복 계주도 하고 그랬다네요. 달리면서 통로에 있는 관객들 손을 다 스치고 지나가는 퍼포먼스ㅋㅋ..
공연 끝나고 나니 여기 저기서 정모를 하자고 난립니다.
넘 길었죠?
더 긴데 아주 많이 줄인 거랍니다^^.
이로써 천방지축 부활팬 아지매의 콘서트후기를 마칩니다~~.
첫댓글 민들레님의 부사모를 향한 열정은 이십대도 아닌 십대의 열정같습니다.ㅎ 어쩌면 아직 저런 에너지가 남아 있는지...참 부럽습니다. 그래서 늘 그렇게 젊게 사는지도 모르겠지만요.ㅎ 태원님은 참 행복하겠슴다.ㅎ 이런 멋진 팬이 곁에 있어서......후기 잘 읽었습니다.
제가 해 간 쑥떡을 운영자가 사진으로 찍어서 떡하니 카페에 올려놨네요 ㅎㅎ..
콘서트 현장에 서있는 듯 합니다. 생생한 중계가 신이 삽니다.
제가 좀 수다쟁이라ㅋㅋㅋ..
공연장에서 만나서 이야기 다시 들려주세요. 기대합니다.
좀 마이 시끄러벌낀데요...ㅋㅋ..
세상에!!!!! 부사모의 그 열정이 모든 일에 그토록 민들레님을 신나게 해 주겠습니다. 공연을 보고 난 여운은 또다른 해가 가도 가슴에 감동으로 남아지기에 ... 멋진 후기 잘 읽었습니다. 부러버라 **술 한잔을 나에게 권하고 긴시간을 한마디 말없이 ___ 잘 듣고 있슴다.. 감사꾸벅
머지않아 중독이 되리니...ㅎㅎ. 부디 중독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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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하고 사는 건 아니고... 좀 나이가 더 들면 훨씬 수월해 집니다. 기다려 보시라~.^^
부활사랑, 이 열정을 도대체 누가 말릴지... 그래도 군에간 아들보다는 관심이 덜 가더라 하셨지요? ㅎㅎ
연예인과 팬클럽...실제로 이런 일이 TV 안에서 말고 현실에서도 실시간으로 일어 난다는 사실이 신기하네요..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요...그 심정이 이해가 가네요..
멀리 일본 아줌마들이 왜 한국까지 날아와서 욘사만지 뭔지 하며 나대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민들레님의 열정이 부럽고 좋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