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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년이 되어도 푸르름은 언제나 청춘이라!...
몇 해 전 긴 걸음 같이 다니시던 노송님께서 "배방도 내 나이 돼 봐라"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노인(老人)은 늙어 본 적이 있지만
젊은이는 늙어본 적이 없다"
한 세월 비,바람, 추위,더위를 이겨내야 관록(貫祿)이 생긴다는 걸 가르치는듯하다
천년 소나무 마을에서 경사진 도로 따라 내려가면 좌측 산비탈에 굵은 소나무가 많이 보이는데
마치 강원도 깊은 산중에서 보는 소나무인듯하고 좀 더 내려가면
반남 박씨(朴氏) 박소 선생 신도비와 종중묘가 있는데 지나가는 길에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문강 박소(朴紹) 신도비 (神道碑)
도로옆 작은 언덕 위에 자리하는 신도비는 종 2품 이상의 벼슬을 지낸 사람의 행적을 기록하여 무덤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세웠던 비석이다.
도로 건너 달윤산 자락 양지바른곳에 반남 박씨 박소와 그의 집안 종중무덤이 여럿 있는데 잠시 후 그쪽으로 한번 가보기로 하고,
박소 신도비는 조선 중종 때의 문신(文臣)이자 성리학자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선조 임금 때 세웠다고 적었다.
처음 비(碑)를 만들었을 때는 비석(碑石)만 서 있었지만 음각한 글이 비, 바람에 노출되어 마모가 생기자 근래에 들어와 비각(碑閣)을 만들었던 것 같다.
안에는 두리뭉실한 얼굴의 거북이 비(碑)를 힘겹게 짊어지고 있는데 눈이 침침하여 어떤 글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비문(碑文)의 글은 사암 박순이라는 분이 지었고 글씨는 조선최고의 명필가인 석봉(石峰) 한호가 썼다고 한다.
반남 박 씨 종중 묘
명당 중의 명당으로 보이는데 입구에는 커다란 소나무가 좌, 우에 서 있는데 묘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보인다.
잠시 올라가 보면 상, 하단에 몇 기의 묘가 있고 망주석은 있지만 무인석(武人石)이나 문인석(文人石)은 보이지 않는다
야천 문광 박소의 묘(墓)
박소는 조광조 등과 신진사류와 함께 왕도 정치의 구현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김안로 등 훈구파로부터 탄핵을 받아 고향 합천에 낙향하여 후학들과 학문을 전념하다 42세 젊은 나이에 타계(他界)하셨다.
녹색 휀스 울타리 문이 열려있어 들어가면 묘(墓)를 알리는 비(碑)와 그 옆에 근래에 새로 만든 비(碑)가 나란히 서 있으며
비석 앞에는 사각형의 석등(石燈)이 하나 서 있고 좌, 우의 망주석이 있고, 선생의 묘를 중심으로 좌, 우 그리고 뒤쪽에 허리 부분 높이의 ㄷ자 형태의 돌담을 쌓아 짐승들로 부터 묘를 보호하고 있다.
박소 선생 묘 위에 또 하나의 묘가 보이는데 "고양부원군 고령박공 위 광순지묘"라 쓰여 있는데
고령 박 씨의 시조인 박 혁거세의 26 세손인 경명왕의 둘째 아들이 고양대군 박언성이다.
고령 박 씨와 반남 박 씨 한집안의 종중 묘라 하기에는 서로가 다른 파로 갈라진 지 좀 된 것 같은데 남의 집 산소에 와서" 배내라 감내라" 할 처지가 못되어 내려간다
박소의 무덤에는 커다란 백일홍 나무와 함께 또 다른 사철 늘 푸른 향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데 향나무는 몇백 년은 족히 된듯하다.
햇볕 잘 들고 깔끔하게 조성된 무덤에 올라오니 합천땅이 좋긴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이제 묘산면 사무소 방향으로 간다
묘산면 안성마을 어느 시골집 뒤꼍으로 들어와
오늘 두 번째 밥은 이걸로
물 부어놓고 잠시 기다리면 따뜻한 밥이 되는데
이번 걸음에 두 끼 정도 먹어 봤으며 앞으로도 애용해야 할 음식이다.
담장아래 양지바른 곳에 자라는 채소
도옥마을을 지나고
도옥마을 앞의 석장승
잡인(雜人)과 질병은 요기까지라며 도깨비 형상에 왕방울 눈에 뫼부리 코를 했으며
뭐가 좋은지 익살스럽게 웃고 있다
농로길도 지나며 해가 서산으로 기울기전이다.
겨울해는 살게 하고
여름에는 해 뜨면 죽었구나! 하는 생각과
긴 걸음 걸을 때에 기초 공사가 중요함에
아스팔트와 시멘트길은 적응하기 힘든다.
지맥길 마령고개로 가는 길에 고갯마루도 지나고
고개 넘어와서 본 오도산이 지척이고
웅기마을 가기 전 바위에 정면 5개 측면 1개의 비(碑)가 새겨져 있으나 비, 바람에 오래 노출되어 글씨는 희미하고 알 길이 없다.
오도와 두문산 방향
수도 지맥길 마령재
산 좋고 물 맑은 합천읍에 들어와
25년도 태양은 이제... 안녕
잠시 서서 지는해를 바라보며
나는 늘 그대로 인 것 같은데
시간은 그렇게 가고 있었으니 속절없는 시간만 간다는 걸 어째 나만 몰랐을까? 싶기도 하고
스무 살이 지나 몸도 마음도 더 이상 성장하지 않을 것 같더니
벌써 인생반백(人生半百)을 넘겨 내일이면 환갑의 나이로 접어든다.
"적당히 그리고 길이 아닌 곳에 가지 말라" 했지만 그런 곳에 얼마나 갔으며 적당히란 개념을 몰라 차고 넘치길 몇 번 했는지...
소나무 숲길을 지나고 산모퉁이 돌면 더 이상 25년도 태양은 볼 수 없겠다.
오후 5시 10분
로드킬 당한 고라니
다리뼈가 부러져 발버둥 치는게 안쓰러워 119에 신고하니 "국민권익 위원회"에 전화해 보라며 돌려준다
국민 권익 위원회에 "길가에 고라니 어쩌고 저쩌고!" 하니 "그런 건 인근 자치센터에 이야기하라"며 합천군청 민원실로 이야기하라고...
결국 합천 민원실에 이야기하니 자기들이 알아서 "처리한다"며 고라니 있는 곳 주소를 가르쳐달라고 한다.
공포와 고통에 울부짖는 고라니를 살리지 못하겠지만 추운데서 발버둥 치는 고통보다 조용히 안락사 시킬 것 같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꺼져가는 한 생명을 살려 보겠다고 "국민권익 위원회"에 전화도 해보고
나도 기가막혀 웃을 일이지만 전국 70만 고라니 협회에서 더 웃을 일이다.
합천읍에 들어와
334km 지점 마침 인근에 여관이 있어 들어가 씻고
내일은 진주 남강을 건너야 하기에 일찍 잠자리에 든다.
새벽 02시 무렵
바람은 차갑고 기온은 11도 정도다.
이곳은 신라의 대야성이 있던 자리인데
선덕여왕 11년 642년에 백제군 윤충 장군(성충의 동생 )이 1만의 군사로 신라의 대야성으로 쳐들어 온다.
이 싸움에서 김춘추의 딸 고타소와 그녀의 남편인 김품석이 죽자 이에 격분한 김춘추가 같은 하늘 아래에 백제와 못살겠다며 동맹을 찾아 고구려로 갔으나, 고구려는 신라가 찾지 한 "한강 위의 땅을 돌려주면 협조하겠다"하자 김춘추 "치아뿌라"며
포기하고 당나라에 무려 17년간 굴욕적인 외교를 펼쳤고 이에 당나라와 연합하여 660년 백제를 멸망시킨다.
*대야성 전투는 김품석이 부하장수인 검일의 아내를 겁탈하자 이에 화가 난 검일이 삶과 죽음의 구멍인 대야성문(大耶城門)을 열어 신라군이 몰살한 전투로 1만 대 5천의 싸움이었다
황강을 건너며
황강은 백두대간 초점산에서 발원하여 거창, 합천을 적시며 흐르는데 산세도 수려하지만 물도 깨끗하다
오늘은 새해 첫날이며 음력 11월 13일
달은 집 나올 때보다 배 불러 만삭에 가까워졌다
불 꺼진 합천군 대양면을 지나고
진짜 노숙자가 되었나
마을의 정자나 버스 승강장만 보면 들어가고 싶으니
잠시 승강장에 들어가 쉬었다 간다.
쌍백면을 지나고
이순신장군께서 한양에서 삼남길을 지나 합천 적중면에 있던 권율장군에게 찾아갔던 백의종군길을 알리는 표시석을 여럿 지나고
지나오는 길에 보니 합천 대암산 정상에 많은 렌턴불빛이 보이던데 일출을 꼭 보셨기 바란다
양천이 흐르는 곳에서
병오년 말띠
붉은말의 기운이 올라오는 새해 신년
일출이 서서히 떠오르려나 보다
아무래도 일출은 영 아닌가베
오전 7시 30분 기온은 11도에서 좀 더 내려간 것 같고
한우로 유명한 합천군 삼가면에 들어와
새벽부터 도로가에 부는 바람 고스란히 맞으며 20km를 왔더니 춥다.
식당은 모두 문을 닫았고 " 달달 베이커리"카페에 문이 열려 있어 들어가니
전등 불빛이 좋고 따뜻한 카페에 앉아
빵하나 따뜻한 커피 한잔 시켜놓고 언몸을 녹인다.
의령군 대의면을 지나 지리산 휴게소가 있는 산청군 생비량면으로
도로는 합천군 삼가면에서( 구도 33번)로 따라 진행하는데 차량 이동이 뜸한 편이다.
예쁜 여성분이 담아주신 사진
지리산 휴게소에 들렀으나 식사시간이 아니기에 "핫 앤 쿡" 라면으로 먹고
양천을 건서 진주시 집현면으로 가는 길에 영스님을 만나는데 어떻게 이런 곳까지 찾아왔을까?
충청도에서 맥가이버님,문경에서 추산님 그리고 진주에서 영스님,깜빡이 켜고 들어오면 걷는 사람이 부담될까!
사전에 약속하고 걷다 보면 서로에게 부담이고 특히 저 처럼 배낭이 무거울 때는 더욱 그렇다.
진행 경로는 길을 걷다가 혹시나 해서 몇몇 사람에게 알리는데 영스님께서 커피 한잔 사들고 오셨지만
길바닥에는 추워 오래 있지 못하고 저녁에 진주 남강 지나서 만나자 약속하고 영스님은 진주로 가신다
추운 날 뜨거운 커피 한잔 이보다 좋을 수 있겠나 영스님 고맙습니다.
바람 불어 좋은 날
감추고
싸매고 다니지만
입술이 많이 터져 갈라져있다
들판너머 장군대산과 월아산이 보이고
그 앞으로 진주시의 아파트가 보인다.
길가에 "모꼬찌 커피숍"에 떡국을 한다는 글귀가 보여 들어와 혼자라서 미안한 마음에
떡국과 대추차 두 가지를 시키고 있으니
먼저 떡국이 나오고
조금 있다가 주인께서 귤 3개를 주셨고
그다음에 보온병에 커피를 가득 담아주시며 "가시는 길에 마시라"며 건내주시는데 이런 고마울 때가 있을까!
새해 첫날에 떡국이 맛있어 싹 다 비울 무렵 주인께서 대추차를 가지고 나오셨다.
따뜻한 대추차 한잔들고 나오려다 고마운 마음에 그릇밑에 별도로 만 원짜리 한 장을 반으로 접어 숨겨놓고 나오니
잠시 후 주인장께서 만 원짜리 한 장 들고 나오셨는데
"너무 고마워서 그러니 받아달라"며 깍듯이 인사하고 나와 커피숍 앞에서 과일(배) 노점하시는 할매분께 대추차 반을 덜어 드리고 내갈길 간다.
남는 건 사진뿐이고
고생 봇따리는 그대로 인 듯
흙 한삽 분량의 핫팩이 줄어들어 이제 몇 개 남지 않았다.
진주시에 거의 들어오니 지나가던 차가 멈추고
아저씨 한분이 물 한병 주시고 곧바로 떠나신다.
고마운 분께 인사드리고
진주 촉석루 공북문으로 와서
그동안 진주성 1차 2차에 대해 써둔 글이 있으니 긴 글은 생략하고
1592년 진주대첩 일본군 2만 명과 5일간의 싸움 왜군 사상자 수천
1593년 행주대첩 3만 명과 12시간 싸움에서 왜군 사상자 수천
1593년 2차 진주성 10만의 왜군과 9일간 싸움
왜군 사상자 3만 명 이상
진주성 백성 6만, 병력 3천 사망
2차 진주성 싸움에서 10만의 왜군과 싸워 이겼다면 임진왜란 3대 대첩은 없었을 것 같았는데
이치, 웅치에서 싸웠던 황진장군의 전사(戰死)가 너무 컸던 전투다.
촉석루
영남의 3대 누각(울산 태화루, 밀양 영남루)인 촉석루
촉석문을 나와
남강을 건널 무렵에 첫해가 곧 사라질 무렵이다.
해가 너머 갈 무렵에 사천 비행장 방향으로 진행하기 위해 망진산으로 오르며
진주시민분들이 많이 찾는 산이기에 등로는 아주 좋은데 산객이 전혀 없을 시간이다.
망진산에서 본 지리산
올해는 지리산에 한번 갈 일이 있으니...그때 지리에서 만나기로 하고
해는 빠지고 영스님이 찾아오면 부담이라 조용히 사천공항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마을 앞에서 영스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어떻게 진행 경로를 알고 찾아오신 건지???
내일 걸어야 할 길이 50km정도이니 새벽 일찍 나가기로 하고 영스님과 곰탕집에 앉아 술 한잔하며 이야기 나눈다.
일이 힘드는지 살이 많이 빠진 영스님께 밥 한끼 사 드리고 영스님은 집으로 가시고
고마운분 감사합니다.
진주시 내동 마을 앞 4 각정자에 395km 지점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한적하고 조용한곳의 정자
저 정도면 호텔급인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전기 시설과 함께 돗자리도 깔려있다.
정자 안에 이불이 하나 있어 한기(寒氣)가 올라오지 않게 길게깔고 핫팩 1개 침낭속에 넣고
초저녁이라 잠은 오지 않지만 천리길에 마지막밤을 억지로 눈 감았다가 새벽 1시쯤 일어난다.
오늘은 마지막날이니 50km만 남아있어 밥 안 먹어도 기분 좋은 날이다.
새벽 기온 영하 10도
마지막 새벽달은 만삭이 다되어 있고
조용한 밤길 열어 간다.
새벽 02시 무렵에
진주에서 삼천포항까지 28km 가급적 차가 잘 다니지 않은 길로 간다
길은 대부분 이런 길이기에 사람의 왕래가 없고 차량의 이동도 없는 길이다.
진주시 방향으로
남쪽이라 좀 따뜻할 줄 알았더니 새벽이라 더 춥다
사천 비행장 앞을 지나며
밥 먹을 곳은 없고 대부분 낚시용품 파는 곳에만 문이 열려있다.
사천의 진산인 와룡산이고
모퉁이만 돌아가면 삼천포 대교가 나오고
마지막날이라 아침은 라면으로 해결
삼천포대교를 건너가며 남해 창선교까지 3번 국도길을 따른다.
초양대교
창선대교를 건너가면 남해땅이다.
가운데 뾰족한 곳은 최종 목적지인 용문산이 자리하는 호구산
3번 국도와 호구산-괴음산 망운산까지 연결되는 남해 산줄기가 이어지는데 남해 산줄기도 3번 정도 걸었던 것 같다.
창선교를 건너가면 지족항과 상동면이고
창선교와 죽방렴 멸치 잡는 곳
죽방렴의 빠른 물살이 흐르는데 뼈대높은 멸치 가족들이 얼마나 들어갔을지
동해바다의 멸치대왕님의 가까운 친척인 남해 멸치들
국내에서 잡히는 멸치로는 죽방멸치가 최상품이라 하여 비싸게 팔리는 귀한 존재다.
아!~ 밥 한 끼 먹어 보자.
난생 처음 먹어본 멸치 쌈밥인데 입맛 까다로운 저 같은 사람은 그저 얼큰한 라면이 최고라 생각 든다.
어쨌던 오늘 처음 쌀구경하고 용문으로 향한다
남해하면 시금치로 유명하고
예전 3월에 남해종주 61km 할 때 남해의 아밍고님께서 종주하러 오신 모든 분들께 시금치 한포대기씩 주셨는데 아밍고님께서 잘 계시는지 ...
늘 건강하시기 기원드린다
시골 마을
호구산이 지척이고 시금치가 가득한 들판을 가로질러 앞에 보이는 신전삼거리 도로까지 올라간다.
신전 삼거리를 지나니 푸른 남해 바다가 보이고 보리암이 있는 금산이 길게 보인다
화계동마을과 용소마을을 지나...
용문으로 가는 길 오르막 길이 이어진다
호구산 용문사는 망운산 아래의 화방사, 금산의 보리암과 함께 남해 3대 사찰이며
원효대사가 금산 자락에 보왕사( 봉암사)를 창건하셨고 이후에 보광사를 호구산 자락에 옮겼다고 한다.
그나저나 산아래 마을에서부터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지는데 끝도 없이 올라간다.
숙종 때 지은 사천왕각
용문사 일주문을 지나면 대웅전 오르기 위한 첫 관문이다
다른 사찰에는 사천왕(四天王)이 마귀를 밟고 있는데 용문사 사천왕은 관리나 양반을 짖밟고 있는게 특징으로 조선을 대표하던 사대부 양반들께서 봤더라면 어땟을지...
사천왕각을 지나면 봉서루이며 봉서루 누각 아래 계단을 지나면
가운데 석등이 보이고 그 뒤로 대웅전이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건물이며 입구와 처마 아래에 용머리가 많이 보인다.
먼 걸음을 이어오면서 아무런 사고 없이 잘 와서
감사 인사와 함께 올해 클럽 안전 산행할 수 있게 기원드린다
주지스님께서 밖으로 출타하시려다 제가 "양평에서 예천을 거쳐 이곳까지 왔다고 말씀드리니" 걸음을 멈추고 용문사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대웅전 천정에는 용들이 많이 사는데 사찰의 이름대로 대웅전 안팎으로 많은 용들이 살고
천정위의 용가족
가운데 용은 물고기를 한 마리 입에 물고 있고
그외 게,거북이까지 남해바다를 옮겨놓은듯한 모습의 대웅전 천정
여기도 용이고
대웅전 현판아래와 처마아래 기둥 위 다포에서 용이 살고
170시간 동안 449km 함께 와준 고마운 보따리
나를 지켜준 보따리
1700년 한국 불교 역사가 오롯이 묻어나는 산사(山寺)에서 비록 염불 한 줄 외우지 못하지만
묵언수행하듯 걸었던 길도 여기서 끝을 내고
대웅전 뒤편의 칠성각에 들러 생명장수신(生命長壽神)께 인사드린다.
인간의 생로병사를 관장했던 북두칠성은 한국, 중국 이집트의 고대인들이 소원을 빌었던 국자모양의 별로써 다른 별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평선 아래로 지거나 사라지는데 북극성 주변의 칠성은 지지 않고 밤새도록 하늘을 지킨다.
꺼지지 않은 횃불을 닮은 일곱 할배가 점잖하게 계시는 칠성각에서 시골집의 어머니 건강 기원드리는 3배하고 나오니
주지스님께서 "종무소에 들러 커피 한잔하고 가라 "며 부르시는데 손수 타주시는 커피 한잔 받아 들고 스님과 말씀도중에 용문사로 올라오기 전에 미리 예약해 둔 택시가 올라와 대구로 가기위해 삼천포로 나간다
짧지않은 길에 도움 주셨던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드리며 새해에도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꾸벅!~~
다음 천리길은 편안한 걸음이 예상되는 산길 낙동정맥이다.
올 한 해도 회원님들 편안한 산길 되시길 기원드리며 긴 글 마친다.

첫댓글 점심 추어탕 먹으면서
정독하고나니 뜨거운 뚝배기 추어탕은 다식은 추어탕으로 변해 먹기는 좋고 그러나 식어서 맛이 없다. ㅎㅎ
긴걸음 수고했고요ㆍ
나이는 숫자에 불가하다라는 어귀는 아닌듯하고요. ㅋㅋ
2026년도 건강하게 행복한 걸음되길 바랍니다 .
먼 길을 걸으면서 누군가 나 주신다면 기분 참 좋은 걸음됩니다.
중간중간에 함께 걸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다음 달 시산제 때 뵙기로 하겠습니다.
배방장님도
2026년도 건강관리 잘 하시고 부자되세요^^
회사 사정이 어려워 부자되기는 어려울 것 같고 몸이라도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지부장님도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퇴근길 방장님글 읽으며 시간가는줄 모르겠어요 드라마 한편보는느낌 읽는사람은 재미난데 쓰는분의 수고가 뼈저리게 느껴집니다 수고많으셨어요
글이 재미 없을 걸로 생각이 듭니다. 길을 걸으면서 가보지 않은곳에 대한 부담감에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늘 크게 작용하는데 머릿속에 든 생각을 다시 끄집어내 정리하는 것도 너무 힘들고요. 조만간에 한번 뵙겠습니다.
다친 고라니 등 짐승들과의 만남은
참 마음 아픈 일입니다.
데리고 병원에 가서 치료해줄 수도 없고
저도 경찰서에 신고하니.. 여기저기 전화하라고 돌리는 통에...
아주 난감하고 마음 상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데려가서 안락사를 시킨다면...
ㅠㅠ
후기를 보다가 대야성의 이야기에
얼마전 찾아본 백제 성왕의 구진벼루 관산성전투가
생각나네요.
오가는 길에 나와 주시는 지인분들이며
식당에서의 귤과 보온통의 따뜻한 음료
받은 것을 나누는 그 마음...
새해 첫날 복을 그리 지으며 방장님은 걸어가셨네요.
드디어 마지막날은 오고...
아휴휴~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말밖에는 달리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누군가의 간절한 마음 담긴 기도가
또 누군가를 무탈하게 해주는
2026년이 또한 날은 춥지만 마음이 따스해져옵니다.
방장님의 무탈한 걸음을 기원드려봅니다.
어버이같은 그 마음 저 또한 감사드립니다.
하천 하나를 할 때마다 하나를 배울려고 애를 쓰고 긴 걸음 걸을 때마다 또 하나를 배우려고 하는데 나이가 드니 그마저도 잘 안됩니다. 머릿속에 지우개가 든건지 자꾸만 지어지네요
지난 년말부터 년초에 이르러 3대용문 찾아 수행길을 떠나면서
힘드고 고달프고 춥고 손수 느끼면서 지난시간이 헛되지 않을거라 봅니다.
클럽 회원님들의 건강과 산행의 안전산행을 기원도 하셨을거라 봅니다.
지방 고을 마다 이어지고 사람들과도 만나고 무사히 안전하게 목표를 이루시고
수고많아 하셨습니다.
날씨가 몹시 추운 날입니다. 지금쯤 호남 정맥길에서 열심히 걸을 것 같은데 감기 걸리지 않게 단도리 잘하시고 걸음하시기 바랍니다.
손가락이 그냥 움직입니다
천년 소나무에 눈길이 가니
어느새
제고향 합천 땅 이네요
대야성 전투
대야문화재를 보며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이모네 동네
외가 동네
친구네 마을
골고루 밟으셨군요
진주성도 그렇고
훤한 그림이라
집중이 더 잘됩니다
이 길은 한번 걸어보고 싶으네요
은퇴후 꼭 걸어봐야 겠습니다
한해를 넘기는
삼대용문 의길 마무리가 되심 축하드리며
새해에도 건강한 걸음 하십시오~♡
용꿈꾸고 싶네요 ㅎㅎ
합천땅은 역사와 전설이 참 많은 곳인데 지금은 인구 소멸지역이라 시골 동네를 지나도 동네 사람 만나기가 굉장히 힘이 듭니다. 참 좋은 곳에서 태어나셨는데 고향에 자주 찾으시는지 궁금하네요. 올 한 해도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3대 용문사는 처음 걸으신 길인가 궁금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굼고 다니면 몸 버린다고 어르신들이 말씀하시는데~ 잘 드시고 다니십시오!^^ 햇앤쿡은 재작년에 많이 애용했었는데~ 먹고나면 쓰레기가 무겁고 부피가 커서 잘 애용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ㅎㅎ
다음 천리길이 기대됩니다.^^
하루 종일 걷다가 보면 식당에 문 여는 곳이 있고 그렇지 않고 아무것도 없을 때가 많습니다. 길을 걸을 때마다 늘 배가 고파 주위를 살피게 되는데 그래도 아무것도 없네요. 그리고 3대 용문은 처음가는 길이라 길 찾기 애매하지만 북쪽에서 남쪽으로 내려가기에 나침반을 남쪽으로 두고 무작정 내려갈 뿐입니다. 글 감사합니다
길고도 먼길
그리고 한없이 지루 한 길
이 길을 어떤 의미를 가지고 걸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결론은 제삼리 회원님들 질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길이라고...
도로변에 로드킬당한 동물들은 광역지자체마다 설치되어 있는
야생동물구조센터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여기에 있는 이 고라니는 경남야생동물 구조센터겠죠.
한곳만이 아니고 동물병원하고 연대가 되어
여러곳에서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춥고 힘든길 걷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지난번 경기도에서 다친 고라니를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119에 신고를 하니 구조대 차가 왔더군요. 근데 이번에는 어떻게 된 건지 여기 저기 전화를 하니 결국은 합천군에서 처리를 해 주더군요. 다리가 부러져 안락사를 시키지 않았나 생각듭니다.
요근래 며칠 동안 날씨가 추워지는데 산길 조심해서 잘 걸음하시기 바랍니다.
수도지맥은 딱 하나 남은 100km이상 지맥길인데 조만간 가봐야 할 듯 합니다.
70년대 시골동네 환갑 넘긴분이 별로 없었고 환갑이 마을 큰 잔치였는데~
과거시대 기준이면 0.8곱하라 하니 48세인거죠.
저도 버스승강장에서 자봤는데 하부가 뚫려있고 차량왕래가 많아 소음 때문에 제대로 자지는 못했습니다.
커피숖에서 떡국을~
사장님 인성이 좋은 분인듯요.
아무거나 잘 드실듯 한데 입맛이 까다롭다 하시니 사모님 애로사항이 있었을 듯요.
추운날 긴거리 고생많으셨고 이어지는 낙동정맥도 응원드립니다^^
마을 앞이나 사람들이 왕래하는 곳에 보면 사방이 막힌 승강장이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밑에 보면 조금 뚫려 있어 바람이 들어오죠
이런 곳에는 음식을 감싸는 랩으로 두 바퀴 정도 감으면 바람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저는 길을 걸을 때마다 항상 랩을 가지고 다니는데 요긴할 때가 많습니다. 나중에 한번 사용해 보시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