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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제 도 시
Ch.1 아이돌
idol [idl]Gk 「형태, 환영(幻影)」의 뜻에서 n. ★ idle과 동음 이의어.1 a 우상; 신상(神像), 성상(聖像)
~ workship 우상 숭배
b 우상신(神), 사신(邪神)
2 우상시되는[숭배 받는] 사람[물건], 숭배물
제 2 화
clancy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험한 산길을 반은 걷고 반은 기다시피 하며 올라가던 훈은 힘들어 하면서도 내심 감탄했다. 지하로 수십층씩 공간들을 이루며 뻗어내려갔고 위로도 백층을 넘기는 건물들이 마치 숲을 이룬것 마냥 들어차서 햇빛조차 제대로 내려오지 않게 하는 도심에서 고작 10km 정도를 벗어났을 뿐인데도 이곳은 완전히 별세계처럼 느껴지는 것이 너무나 신기한 일이 아닐수 없었던 것이다.
이러저러한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기존의 개발제한구역 일명 그린벨트 지역의 범위의 확대와 통제 수준의 강화가 이루어지면서 특히나 형성된지 오래된 완만한 산들이 많아 등산객이 끊이지 않았던 이 땅의 산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입산이 금지되어 버렸다. 그것이 아무리 낮고 가까운 산이라고 하여도 일단 그린벨트로 묶인 지역의 산에 들어가기 위해선 철저한 검열절차를 밟아야만 했다. 조난시 위치를 알리기 위한 조명탄과 유사시를 위한 소형 보온팩등을 제외한 어떠한 화기나 열기구도 들여올수 없었고 음식은 DI5 등급의 공인 포장지를 사용한 레져 전용 식품과 약간의 음료외에는 소지할수 없었다. 그 외에도 수렵 및 낚시 관련 도구, 술, 마약, 심지어 아이들의 일회용 기저귀까지 산의 자연환경에 미세한 영향이라도 줄수 있는 것들은 철저히 통제되고 관리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검열을 받은 후에는 각 지역별로 차등적용되어 있는 상당액의 요금을 지불하고 그들의 입산으로 인한 피해 발생시 보상 조건이 담긴 서류에 서명까지 한 후에야 입산이 허용된다. 그리고 오늘처럼 날씨가 좋지 않은 경우엔 그마저도 불가능하여 산악관리인이나 공무원등 관계자 외에는 입산이 통제되는 것이다.
하지만 훈과 지금 앞서 산길을 올라가고 있는 동행인 이만철씨는 그린벨트 관리 관계자들도 그렇다고 입산 허가서를 가진 사람들도 아니였다. 그들은 관리가 허술한 통제선을 통해 들어온 불법 입산자들인 것이다. 이들처럼 허가받지 않고 산에 들어왔다 적발되는 경우 그벌은 상당히 엄중한 것이였다. 초범인 경우에라도 최고 2000만원 까지의 벌금을 물어야 하고 삼진아웃 제도에 따라 세번째 적발시에는 곧바로 즉심에 넘겨 감방행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몰래 통제선을 넘어 산을 타는 이유는 몇가지가 있는데 대게는 산이 아니면 구할수 없는 것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조금이라도 자연생태가 유지되고 있는 대부분의 지역이 통제되면서 이런 곳에서만 구할수 있는 버섯이나 약초 또는 곤충이나 산짐승, 물고기등과 같은 자연물들에 대한 가격이 엄청나게 상승하였기 때문에 위험을 무릎쓰고서라도 입산하여 이런 것들을 챙겨오게되면 꽤나 짭잘한 장사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훈이 일행이 지금 빗속에서 산사태와 관계기관에의 적발이라는 이중의 위험을 무릎쓰고서 등산을 감행하고 있는것은 조금 다른 이유에서였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은 과거와는 비교할수 없을정도로 늘어났지만 결국 언젠가는 다들 죽게 마련이였다. 사후세계의 존재에 대한 고민은 미루어놓더라도 가족중 누군가의 죽음에 처하게 되었을때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맏닥뜨리는 것이 바로 시신의 처리에 관한 것이였다. 오늘날에야 일부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화장후 납골당 안체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몇십년 전까지만 해도 유교문화에 젖어있던 구세대들에겐 조상의 시신은 땅에 묻어야 한다는 매장 문화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덕분에 아직도 전국의 산 곳곳에는 이젠 누구의 것인지조차 모르는 무덤들이 여기저기 덩그러니 방치되어 있고 한다. 한가지 특이한 것은 예전 사람들이 시신을 매장할때 종종 사후세계를 준비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부장품을 함께 묻고 했다는 점이였다. 마치 고대의 왕족의 무덤에 보물들을 함께 매장한것 마냥 현대의 매장지에는 고인의 유품들이나 가족들의 선물들이 함께 놓여지곤 했었다.
그리고 훈과 이씨는 이러한 무덤들을 찾아다니며 시신과 함께 묻혔던 물건들을 꺼내어 팔아넘김으로써 꽤나 짭잘한 수입을 얻고
있는 전문 도굴꾼들이였던 것이다. 고분을 파헤쳐 유물을 꺼내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이집트의 피라미드 같은 왕가의 무덤을 파는것도 아닌데 무슨 수익이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것은 이 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얘기다. 급격하게 변해가는 기술과 유행에 따라서 세상의 모든것들이 빠르게 변해가는 현대에 '골동품'이란 단어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쓰이는가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얘기란 것이다. 물론 개중에는
실제로 귀금속이나 예술품, 현금 등을 함께 매장한 무덤들도 심심치않게 있기는 하지만
그보다 더 수익을 올리는 것은 바로 '옛물건들'이였다. 빠르게 변해가는 시간속에서 이제 기껏해야 100여년을 갓 넘겼을 과거의 물건들은 이제 더 이상 생산되지 않고 구하기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일부의 사람들에게 비싸게 팔려나가곤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세기 말에 병으로 일찍 죽었던 15세 소년의 무덤을 우연찮게 파게 되었을때 그들이 발견한 것은 생전에 아이가 즐겨하던 비디오게임기와 소프트들 그리고 아이가 살았던 당시 어느 제과회사에서 과자에 넣어 팔았던 그림이 새겨진 작은 프라스틱 조각들이였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다 합해봤자 하루 데이트 비용도 안되었을 가치의 물건들이였지만 오늘날에는 수집가들에게 엄청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변해이었다. 게임기는 팩과 합쳐 3500만원에 어느 수집가에게 넘어갔고 프라스틱 딱지는 등급별로 분류되어 (그 딱지들에 새겨진 번호에 따라 좀처럼 구하기 힘든 것부터 자주 나오는 번호까지 분류까지 되어 가격이 매겨지고 있었다) 장당 만원부터 많게는 100여만원씩 받고 팔아넘길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들이 노리고 있는 무덤은 그보다 훨씬 독특하면서 가치있는 것이였다.
"잠깐.. 다온거 같다 훈아..."
앞서가던 이씨가 멈추어 서선 낮게 숙이고 있던 허리를 편채 손전등으로 전방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훈 역시 그의 말에 불빛이 가리키고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올라오던 길과는 달리 어느정도 다져진 평평한 땅가운데 볼록이 솟은 무덤이 보였다. 그리고 주변에는 여러가지 화려한 조각들이 자라난 덩쿨과 식물들에 칭칭 옭아메인채로 서있는 것이 보였다.
"휴, 정말 힘드네 비오는날에 올라오는건 역시 무리다..."
"그러게요, 그냥 나중에 올걸 그랬어요."
"하지만 이쪽이 들킬 염려는 없으니 안전한거야."
이씨는 등에 둘러메고 있던 짐짝을 바닥에 힘겹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훈 역시도 자신의 짐을 바닥에 내려놓고 풀기 시작했다. 도굴을 위해 가장먼저 필요한 것은 타겟의 탐색이다. 물론 어느 무덤을 언제 팔것인지 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처럼 목적지에 도달한 후에는 효과적인 도굴을 위해 '내진'이 필수적으로 앞서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밤새 엉뚱한 곳만 파다 끝날수도 있기 때문이다. 훈은 이씨의 짐과 자신의 짐속에 있던 부품들을 조립하여 금새 휴대용 비파괴검사장치를 완성시켰다. 그 기계는 스스로가 마치 레이더처럼 여러가지 파형을 울려보냄으로서 반사되어 오는 파장으로 땅속의 상태를 짐작할수 있게 해주는 것이였다. 분묘의 옆쪽으로 기계를 바싹 가져다 댄후 모니터 옆의 붉은 버튼을 누르자 '쿵'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 무엇인가가 표시되는 것이 보였다.
"별장은 없구요 보아하니 금속제 관을 사용한 모양인데요.. 이걸론 관속까진 확인이 불가능해요..."
"됐어, 관이 있는것만 확인하면 되는거야 이번엔..."
"그런데 이번일은 정말 기분이 안좋아요, 부장품이라면 모를까... 꼭 이런것까지 해야되나요?"
훈은 찜찜한 표정으로 또다른 장비를 조립하며 물었다.
"나라고 기분이 좋은줄 아냐, 하지만 다른거 10번파는 만큼 돈이 들어온단 말이다. 정말 뭣같은 일에다 꾼으로써 양심에 찔리기도 하지만 어쩌겠냐.. 돈이 왠수지 젠장!"
두사람은 투덜거리며 서로 마치 전기톱처럼 생긴 기계를 하나씩 쥐어들더니 무덤의 양 옆으로 향했다. 무덤 윗쪽의 양옆으로 나란히 선 둘은 시선을 주고 받더니 기계의 끝을 무덤에 가져다 대고는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기계 끝에서 밝은 광선이 나오면서 관을 덮고 있는 봉분을 통째로 절단하기 시작했다. 몇분이 지나자 마치 칼로 썬것처럼 봉분의 아래쪽에 말끔한 절단면이 생겨났고 두사람은 휴대용 도르레를 이용하여 절단면 위의 흙더미를 통째로 들어냈다. 그 뒤로는 가장 확실한 전통적 방법인 삽질을 통해 나머지 흙을 걷어내는 것이였다. 한동안 흙을 치워내고 있자니 드디어 스테인레스로 만들어진 은색의 관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찾았군..."
이씨는 씩 웃으며 더욱 빨리 비를 맞아 진흙으로 변해가는 더미들을 손으로 쓸어내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아 관의 윗부분의 완전히 드러났고 두 사람은 조금전 사용한 절단기를 사용하여 관 옆으로 난 걸쇠들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여덟개의 걸쇠들이 모두 떨어져 나가자 둘은 관모서리를 부여잡고 뚜껑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끼기긱.. 끼긱...'
오랜동안 땅속에 묻혀잇으면서 부식으로 인해 접합면이 마치 본드를 부어놓은것처럼 강하게 들러붙어서 힘이 가해지자 괴상한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뚜껑은 완전히 떨어져나와 들려졌다. 뚜껑을 열어 치워버린 두사람은 손전등으로 관 안을 비추어 보았다.
"으아아..!!"
관속을 손전등의 불빛이 비추는 순간 훈은 괴이한 광경에 질겁을 하며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였다면 지금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반응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방금 파헤친 묘지가 벌써 50년도 더 전에 만들어진 것이고 그 안의 시신 역시 그때 묻혔던 것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둘에게는 자신들이 보고 있는 장면이 도무지 믿을수가 없는 장면이였던 것이다. 훈처럼 소리를 지른것은 아니지만 역시나 놀란 눈으로 손전등이 비추고 있는 관속의 시신을 바라만 보고 있던 이씨는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쓰다듬어 내리더니 입을 열었다.
"소문이 사실이였군..."
"아니, 이게 어떻게 된겁니까? 혹시 잘못 판거 아니에요?"
"같이 조사해놓고 무슨 바보같은 소리야, 그리고 요즘 산에다 이렇게 봉분까지 올려가며 매장하는 사람이 어디있냐?!"
"그럼 어떻게 된거냐구요? 이 시신은 마치..."
그랬다, 그들이 방금 퍼올린 관속의 여자 시신은 마치 어제 묻힌 것인양 생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전등에서 뿜어져 나가는 백색의 원형 불빛 아래 드러난 시신의 얼굴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고 불빛이 흔들림에 따라 생겨나는 음영탓인지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마치 조용히 이름을 부르면 지금이라도 당장 눈을 뜨고 관에서 일어날것만 같은 여자의 시신은 도무지 50여년전에 묻힌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짐을 뒤져 휴대용 단말기를 꺼내와 시신 옆에서 두루말이식 모니터를 펼쳐든 이씨는 화면에 뜬 메뉴를 클릭하여 데이터를 검색하더니 사진 한장을 화면에 뜨게 했다. 그리고는 그 화면을 시신의 얼굴 옆에 가까이 가져가자 그속에는 관속에 누운 시신과 똑같은 여자가 살며시 미소지어 보이는 사진이 떠있는 것이 보였다.
"살아있는 것만 같은 시체지... 이다인, 21세기 최고의 여가수라고 불리우던 사람이지, 30살의 나이로 요절하기 전까지 7장의 앨범과 30여장의 싱글을 냈고 그 하나하나가 모두 금세기의 명곡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사랑과 인기를 얻었지 뿐만 아니라 화려한 외모와 무대매너로 노래뿐 아니라 외모로도 인기를 끈 지난세기 최고의 디바라고 할수있는 여자야..."
이씨는 화면속의 여자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도 대충은 알고 있는데요.. 하지만 어떻게 이런..."
"그녀가 죽을때 요상한 소문이 들려왔어, 그녀는 평소 앓아오던 간질환이 악화되면서 쇼크사했던걸로 알려졌는데 죽기 얼마전부터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듯한 행동들을 했었다더군, 그중엔 자신이 죽거든 자신의 시신을 영원히 부패하지 않도록 처리해달라는 부탁을 남겼다는 얘기도 있었지. 그리고 실제로 그녀가 사망한뒤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신보존팀이 입국했었던 기록도 남아있어.. 하지만 고인에 대한 예의 때문에 이미 묻어버린 관을 파내어 사실을 확인하려는 사람은 섣불리 나타나지 않은채 세월이 지나갔지,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발견하게 될줄이야..."
"그 소문이 사실이였던 거군요"
그제서야 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레 손을 뻗어 시신을 만져보았다. 그러고 보니 빗속이라서 구분하지 못했지만 시신의 외부에 얇고 투명한 프라스틱 층이 덮여져 있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아마도 조심스레 방부처리한 시신의 표면을 공기와 접촉하지 못하도록 프라스틱으로 봉해버린 모양이였다. 그러나 그 기술이 어찌나 정교했던지 그 사실을 알고 보아도 좀처럼 눈치채기가 힘들 정도였다.
"자, 이제 그만 놀래고 할일 하자구..."
"이런.. 이렇게 생생해 보이는 시신이라니 정말 기분 더럽네요..."
"어짜피 우리 일이란게 더러운거야!"
이씨는 조심스레 관속에 시신과 함께 넣어진 물건들을 손전등으로 일일히 살펴보며 말했다. 유명 가수의 관인만큼 관속에는 값나가는 물건들이 꽤나 많이 들어있었다. 생전에 고인이 아끼던 것이였을 고가의 장신구들부터 그녀의 친필 싸인이 들어있는 앨범들 가족과 동료들이 마지막 작별의 말을 남긴 그녀의 사진들까지 모두가 고인의 명성과 더불어 고가에 팔려나갈수 있는 것들이였다. 그러한 물걸들을 싸그리 가지고온 경금속 상자안에 쓸어넣은 이씨는 레이져 절단기를 다시 집어들더니 시신의 목근처에 가져갔다.
"꼭 목이여야 해요?"
"죽은 시체 신원을 뭘로 확인하겠냐 ? 바로 얼굴이야"
절단기에서 빛이 뿜어져 나가기 시작했고 수초도 안되어 시신의 목에 한일자의 선이 생겨나면서 몸과 얼굴이 분리되었다.
"꼭 산사람 써는것 같은 느낌이네요..."
훈은 게름찍한지 인상을 찌푸리면서 절단된 얼굴을 또다른 대형 가방안에 조심조심 옮겨 넣었다.
"됐어! 어서 내려가자!!"
이씨가 먼저 짐을 다 챙겨들더니 소리치며 앞장서 왔던길을 다시 되짚어 내려가기 시작했고 훈 역시도 기분 나쁜 묘지에서 벗어나려는 듯 빠른 걸음으로 그의 뒤를 쫓아갔다. 21세기 최고의 디바라 불리우며 사후까지 자신의 아름다움을 보전했던 가수 이다인의 시신은 50년의 세월을 넘어 결국 두명의 도굴꾼에게 무참히 범해지고 말았던 것이다.
대게 다른 복합건물에 기생하듯이 끼어있는 구역별 출장소들과는 달리 도시의 경찰 중앙본부는 지하 30층 지상 86층의 건물을 모조리 차지한 거대기구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구역중 하나인 과학수사본부는 최상층인 80층에서 83층의 네개층을 모두 차지한채 하루 24시간 쉴줄 모르고 돌아가는 곳이였다. 아무래도 사건 증거물들을 가장 많이 다루는 곳이고 따라서 사건의 진실을 고스라니 가지고 있는 곳이라 보안이 중요한만큼 예전에는 지하층에 위치해 있었으나, 지하 구역들이 경제침체 이후 슬럼화가 된 이후에 몇차례인가 갱들에게 습격을 받고 부터는 아예 윗층으로 부서를 옮겨버린 것이다. 권태현은 올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아래층과는 달리 모두가 깔끔하게 차려입고 부산하지만 조용히 움직이고 있는 이곳의 모습이 왠지 어색하게만 느껴지는 것을 떨쳐버리며 82층을 가리키고 있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하얀색 복도를 따라 안쪽으로 걸어들어가면 나오는 데이터실 앞에 서서 신분 확인을 위한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지문, 망막, DNA의 기본적인 세가지 검사를 2초 내에 완료하는 보안시스템 덕분에 곧바로 태현은 입실 허가를 받고 투명한 문을 지나 데이터실 안으로 들어갈수 있었다. 그곳에서 모니터를 응시하며 무언가를 열심히 살펴보고 있던 낯익은 조사관을 발견하고는 그쪽을 향해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저 기억하시죠?"
태현의 인사에 모니터에서 눈을떼고 고개를 들어보인 조사관은 코끝까지 흘러내려온 안경을 추스리면서 마치 뇌속의 기억들을 정리라도 하는 마냥 눈을 껌뻑거렸다. 그리고는 태현이 기억났는지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이면서 말했다.
"아.. 박반장 파트너군, 이름이.. 권..."
"태현입니다, 권태현..."
"그래, 난 보다시피..."
조사관은 자신의 왼쪽 가슴께에 커다랗게 달린 신분증을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장경직이네 1급 조사관이지..."
이곳 과학수사본부는 일단 경찰 조직내의 하나의 부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거의 독립된 기관이라고 해도 틀린말은 아니였다. 그리고 그 내부에서는 경찰조직과는 다른 계급체계가 형성되어져 있는데 실적보다는 연공과 출신을 우선시하는 경찰조직과는 달리 이곳은 철저히 능력과 실적에 의해 계급이 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1급 조사관은 그중에서도 가장 최상위의 몇 안되는 사람들에게만 부여되는 직함으로 쉽게 말해 이곳의 우두머리란 얘기였다. 아마도 현장에 나가는 대원들 중에서는 그가 최고 직위일 터였다. 자신의 소개끝에 직함을 붙일 정도의 자부심은 그러한 조직의 특성에서 나오는 것일 터였다.
"예, 반장님한테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 그렇지 않아도 연락 들었네... 그 클럽 총격 사건을 맡고 있다면서?"
"그렇습니다. 오늘 온것도 그 때문이구요."
태현의 말에 장 조사관은 다시 고개를 모니터 쪽으로 돌리며 키보드를 두드리며 말했다.
"역시나 그렇겠지.. 어디보자... 그 신원불명 여자시신에 대해서 궁금한 거지?"
"그렇습니다. 그외에 사건에 대한 추가 정보들도 필요하구요."
"일단은 가장 큰 월척은 그 클럽에서 보완을 위해 심어둔 감시용카메라의 영상들이지..."
그가 엔터를 누르자 모니터상에 네개로 분할된 화면을 통해서 사건 당일의 클럽 영상들이 비추어지기 시작했다. 화면의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각 화면들은 클럽의 입구, 정문과 이어진 중앙홀, 그리고 중앙홀에서 다시 안으로 뻗어지는 두개의 통로들을 비추고 있었다. 통로들을 비추는 화면들은 3초 간격으로 각 방안의 화면들로 바뀌고 있었는데 그렇다는 것은 각 방들의 영상 역시도 따로 디스크에 담겨져 있다는 얘기로 부가화면 탐색을 통해 클럽의 대부분을 둘러볼수 있을 정도의 데이터가 있다는 의미였다.
"자.. 여기서부터가 그날 사고가 있기 1분전 영상이야..."
태현이 갔던때와는 달리 클럽의 홀은 분주히 드나드는 서빙맨들과 아가씨들로 활기를 띄고 있었다. 방들도 대부분이 손님들이 들어차서는 흥청망청 즐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조사관이 키보드로 단축기 조작을 하자 화면 하단 두개의 화면이 사고가 있었던 나데시코 룸과 그와 연결된 통로의 것으로 바뀌었다.
"자, 지금 들어오는 사람 보이지?"
조사관이 손끝으로 가리키는 화면 상단의 입구 화면에 검은색 후드티의 모자를 푹 눌러쓴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문을 열자마자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고 곧바로 홀을 가로질러 나데시코 룸이 있는 통로로 향했다. 그리고는 채 5초도 되지 않는 시간 사이에 룸의 문을 열고 들어가 중앙의 테이블 위에 올라서더니 품안에서 꺼내든 총으로 맞은편에 앉아있는 세사람을 무참하게 살해했다.
"정말 재빠르군요..."
"그렇지?"
남자는 세 사람이 죽은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몸을 돌려 총소리로 혼란해진 클럽의 소란스러운 군증들 사이로 스미듯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는 얼마후 입구를 비추는 모니터를 통해 남자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다시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 범행을 저지르고 다시 밖으로 나가기까지 고작해야 4-50초 정도의 시간밖에는 소요하지 않은 프로의 솜씨였다.
"대단한건 알겠는데.. 이걸로 뭘 알아내신거죠?"
"후후, 이곳 클럽에서 사용하는 카메라들은 모두 최신형이더군, 그말인즉슨 영상정보가 여타의 것들보다 훨씬 많다는 얘기야. 일단 보다시피 화질이 굉장히 좋지..."
"그렇군요"
태현은 거의 드라마나 영화 수준의 깨끗한 화면을 보며 말했다.
"그뿐만이 아니야, 이 영상에는 부가적인 정보들이 잡혀있어 바로 반사광들에 관한거지"
장 조사관은 통로를 지나가는 남자의 모습이 담긴 정지영상을 불러내더니 화면 좌측의 메뉴들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물체들을 보는건 빛의 파장이 물체에 반사되어 바뀌어지는 것을 감지하는거야. 거기에는 일반적인 인간의 눈으로는 감지하기 힘든 여러가지 정보들이 함께 들어있지, 쉽게 말해서 다른 물체에 반사된 빛들, 반사광을 얘기하는거야."
무언가 조작을 가하자 화면속의 배경들이 단계적으로 사라지더니 문제의 남자만이 남는것이 보였다.
"얘를 들어 반사도가 높은 유리앞에 서있는 사람의 경우 우리는 그 사람의 앞모습 뿐만 아니라 유리에 비추어진 뒷모습까지도 볼수가 있지, 이 카메라의 경우에는 그런식으로 반사된 아주 미세한 빛까지도 감지해냄으로써..."
또다시 조작이 가해지더니 갑자기 화면속의 남자의 모습이 회전을 하기 시작했다.
"입체화면을 만들어 내는거지... 흔히 보는 입체영화 촬영과 비슷한 원리야..."
완전히 3D로 바뀌어진 남자의 모습은 360도 회전이 되면서 전신을 비추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화상을 통해서 미쳐 발견하지 못한 증거를 발견할수 있지, 그중에서도.. 이런거..."
장 조사관이 화면을 손으로 건드려 이리저리 조작을 하기 시작하자 좀전의 화면에 비추어지지 않던 반대편 남자의 모습중 후드티 옆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있는 부분이 확대되어 보였다. 남자는 검은색의 얇은 장갑을 끼고 있었지만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면서 티의 긴팔이 말려 올라가 팔목 근처의 피부가 조금 드러난 것이 보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생각지도 못한 정보가 담겨 있었다.
"모자를 깊이 뒤집어 쓰고 마스크에 안경까지 쓴 상태라 얼굴로는 식별이 힘들었지만.. 운좋게도 팔목의 문신을 발견할 수 있었지 클럽에서 비싼 카메라를 사용한 덕분에 말이야."
남자의 팔목에 새겨진 기하학적 무늬의 문신을 모니터상에 띄우면서 조사관은 만족스러운듯이 미소지어 보였다.
"정말 대단하군요, 그래서 신원 확인은 됐나요?"
"그래, 전과자 기록에 문신을 집어넣으니 금새 튀어나오더군"
조사관이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자 화면에 한 남자의 데이터가 떴다.
"제레미 킴, 28세 폭력혐의로 20세때 한번 잡힌 기록이 있어 그뒤에 작년쯤 마피아 간부 살해사건과 관련하여 수배중이던 인물이지 쉽게 말해 전문 청부킬러란 말이야, 저 작은 카메라 영상속에 정말 다양한 정보들이 담겨있지?"
"정말 그렇군요..."
"그 외의 증거물들에선 별다른게 나오지 않았어, 특히나 여자에 관한건 아직도 조사중인데 여지껏 검색한 DB어디에서 그녀와 관련된 자료는 나와있지 않더군, 어쩌면 진짜로 베이스키드일지도 모르지만 현재로선 하늘에서 뚝 떨어질 사람인것만 같아. 마지막 희망으로 사진조회를 하기 위해서 아까 디스크에 담겨있던 영상이랑 시체의 남아있는 조직을 이용해 몽타쥬를 만들고 있네, 아마 수시간 내로 완성될거야."
"감사합니다. 덕분에 갈피가 잡히기 시작하는군요.."
조사관은 미심쩍은듯이 태현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자네 얼굴은 영 감사해보이지 않는데, 왜 뭐 불만스러운거라도 있는건가?"
조사관의 질문에 태현은 적잖이 당황하며 손사례를 쳐보였다.
"아닙니다. 조사관님한테 불만인게 아니라... 사실은 아까 영상에서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서 말이에요"
"영상에서? 그럴리가 내가 직접 살펴본건데..."
"하하, 조사관님 께선 아마 눈치채기 힘든 부분일겁니다. 사실 그날 클럽 현장으로 들어가면서 입구에서 특이한걸 발견했었거든요."
"특이한것?"
"예, 최신형 경비로봇 말입니다. 입구에 버티고 서있더군요.. 우리가 갔을때야 정지상태였지만 클럽 영업당시만 해도 작동중이였을 텐데 손님도 아닌 수상한 차림의 남자가 입구로 들어갔을때도 그렇고 총격이 있었을때도 그렇고 어디에서도 그녀석이 활동하는 모습을 확인할수가 없었어요..."
"그럴리가.. 그렇다는건..."
조사관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태현을 보았다.
"그래요, 가능성은 두가지죠.. 구입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최신형 로봇이 그날따라 고장이 났던지.. 아니면 클럽 내부에서 누군가 놈의 범행을 도왔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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