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수비는 수비라인의 중심이다. 중심이라는 말은 흔들림 없이 안정감을 갖춰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2014 브라질월드컵을 앞둔 대표팀 중앙수비수들의 어깨가 무거운 이유다.
김영권(1990년생, 187cm/74kg, 광저우 에버그란데)
<프로필: 차근차근 성장한 대형 수비수>
해성중-전주공고를 거친 김영권은 전주대에 진학한 후 기량이 급성장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했고 대학 진학 이후 센터백으로 자리를 잡았다. 안정적인 경기 리딩과 수비력을 보이며 1학년 때부터 주전 자리를 꿰찼다. 전주대 정진혁 감독의 제안으로 풋살을 시작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좁은 공간에서 경기를 하는 풋살의 특성상 패스력이 크게 향상됐다. 대학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U-19 대표팀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2009년 청소년대표로서 출전한 U-20월드컵은 김영권의 축구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U-20월드컵은 홍명보 감독과의 인연이 시작된 때이기도 하다. 김영권은 U-20월드컵 당시 전 경기 풀타임 활약하며 한국의 8강 진출에 혁혁한 공을 세웠고 큰 주목을 받았다.
이후 여러 해외 팀들의 러브콜을 받았다. 그의 선택은 J리그였다. 2010년 FC도쿄에 입단한다. 그 해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에도 뽑히는 등 차근차근 연령별 대표팀을 거쳤다. 2011년에는 오미야 아르디자로 팀을 옮겨 성장세를 이어갔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당시 단짝 홍정호가 갑작스런 부상으로 올림픽 출전이 좌절됐지만 새로운 파트너 황석호와 안정적인 수비를 이끌며 올림픽 동메달 획득의 주역이 됐다.
김영권은 런던 올림픽을 앞두고 광저우 에버그란데로 이적하며 중국 슈퍼리그에 발을 들였다. “왜 수준 낮은 중국으로 가냐”는 만류도 있었지만 오히려 슈퍼리그는 그의 실력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 세계적인 명장 마르셀로 리피 감독의 애정을 듬뿍 받으며 대형 수비수로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들기도 했다. 김영권에게 ‘신의 한 수’가 된 선택이었다. 현재 김영권은 대표팀의 가장 핵심적인 수비수로 자리 잡았다.
김영권은 월드컵 최종엔트리 발표 전 7번의 소집 중 5번 홍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2기와 6기 때에도 제외라기보다는 선수 보호에 가까웠다. 홍 감독 부임 후 치러진 15경기 중 10경기에 나섰다(A매치 총 19경기 출전). 홍명보 호에 승선할 때마다 단짝 홍정호와 호흡을 맞추며 좋은 활약을 보였다. 조광래 감독 시절이던 2011년 6월 열린 세르비아와 평가전에선 왼쪽 풀백으로 출전해 A매치 데뷔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스타일: 기술수비, 제가 할게요>
수비수들 중 기술만큼은 김영권을 따라갈 자가 없다. 패스, 킥 등의 발재간이 뛰어나다. 대학시절 은사인 정진혁 전주대 감독의 권유로 시작한 풋살 덕이다. 풋살 국가대표로서 최전방 스트라이커 자리에서 활약한 만큼 공격 본능도 남다르다. 정확한 왼발 크로스는 한국의 역습상황에서 중요한 공격 옵션이 될 수 있다.
반면 한 발 늦은 수비전환 속도는 약점으로 꼽힌다. 가장 최근의 평가전이었던 튀니지전을 비롯해 실점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상대 선수를 놓치는 모습이 자주 포착된다. 상대를 마크하는데 있어서 한 층 더 높은 집중력이 요구된다.
<김영권의 말>
“AFC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해내면서 지지 않는 법을 배운 것 같다”
(김영권이 중국 슈퍼리그 광저우 에버그란데로 이적할 당시 많은 사람들이 만류했다. 중국 리그가 수준이 낮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영권은 광저우에서 새로운 경험들을 쌓았다. 특히 지난해 AFC챔피언스리그 우승은 그에게 큰 자신감을 준 계기가 됐다)
“이번 대표팀 수비라인의 특징은 젊다는 점이다. 패기와 투혼이 특징이다. 젊은 피의 힘을 보여주겠다”
(김영권을 비롯한 중앙수비수 홍정호, 황석호는 89-90년에 태어났다. 맏형 곽태휘만이 유일한 81년 생이다. 그만큼 이번 월드컵에서 젊은 선수들의 패기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