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가 서울, 안동, 영천, 부산을 지나면서 대마도를 거쳐 머문 이키섬(壹岐島). 지난해 여름 아이노시마(相島)를 다녀온 후 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기회가 찾아왔다.
우연히 검색한 이커머스 업체에 나온 후쿠오카 저가승선권이 구미를 당기게 했다. 일정을 검토해보니 어느 정도 조정하면 휴가를 낼 수 있을거 같아서 먼저 직원들과 업무 조율을 하고 숙소와 여행자보험, 포켓와이파이 등 기본적인 부분을 예약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2박3일간의 개략적인 계획을 수립했다. 다소 힘들 수도 있는 초저예산 자유여행이지만 새로운 곳을 보고 계획대로 진행되면 꽤 기분이 좋을 듯했다.
첫날 저녁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에 도착해서 포켓와이파이를 수령하고 뉴카멜리아에 승선했다. 평일이어서 방배정에도 여유가 있었고 저물어가는 부산의 야경을 보면서 가벼운 맥주 한잔에 다가올 여정에 대한 기대가 되었다.
둘째날 일찍 일어나서 샤워를 한 후 선내 식당 뷔페로 배를 든든하게 채웠다. 이런 류의 여행에서는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둬야 사정이 여의치 않아 굶게 되더라도 최악의 상황을 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7시 30분부터 하선해서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8시, 하카타항 국내선 부두인 베이사이드 플레이스로 이동하면서 다양한 크기의 선박과 넓은 바다에 가슴이 확 열리는 것 같았다.
국제항에서 국내항까지는 천천히 걸어도 15분, 이키섬 배표를 예매할 1, 2터미널의 동선을 확인한 후 인근에 있는 하카타포트타워를 관람하려고 했으나 10시부터 개장이라서 코인라커에 배낭을 맡기고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구입했다.
10시 정각에 하카타 부두를 출발해 12시 20분에 이키섬 고노우리항에 도착하는 페리 치쿠시는 1,925톤, 16노트, 승선인원 756명으로 뉴카멜리아호에 비해서도 크게 손색이 없는 대형 선박이다. 이리저리 돌아봐도 한국인은 나밖에 없는 듯했다.
재빨리 움직인 덕분에 안쪽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확보해서 포켓와이파이와 핸드폰 충전, 잠깐이나마 수면을 취하면서 체력을 보충할 수 있었다. 투어버스 운행이 안된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전동자전거를 대여해서 다니려고 했는데 관광버스를 운행한다는 안내문을 프런트에 문의하니 고노우라항에 도착해서 신청할 수 있을거라는 답변을 들었다.
고노우라항에 입항 후 대합실로 들어가서 문의하니 곧 출발한다며 오후 투어비용이 2,840엔이라기에 바로 티켓을 끊었다. 작은 미니버스에 탑승하니 버스관광객은 일본 노부부, 중국계 젊은 커플, 한국 젊은 커플과 나까지 총7명이었다.
일본 큐슈와 대마도 사이에 있는 이키섬(壹岐島)은 부산에서 73km 떨어져 있다. 대마도와 달리 우리나라 여행객에겐 낯선 곳이지만 일본에서는 꽤많은 관광객들이 찾아가고 있다. 이날도 자위대와 여행사 관광객, 주민들로 붐비고 있었다.
섬 전체가 일본 국정공원(国定公園)으로 지정된 이곳은 아름다운 해변과 기암절벽을 볼 수 있는 데다 성게 등 다양한 먹거리로 잘 알려져 있고 면적은 133.82㎢로 영천시의 1/6로 하루에 섬 전체를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첫번째 코스는 화산분출물에 의해 형성된 언덕으로 이키섬에서 제일 높은 산인 다케노츠지(岳の辻) 전망대로 이키 섬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다케노츠지 전망대에서 왼쪽으로 돌아 다달은 구로사키 포대는 1928년에서 1931년까지의 세월에 걸쳐 완성된 귀중한 전쟁 유적으로 구경 41cm, 탄환의 무게 1t, 최대 사정거리 약 35km라고 하는 거대한 지하 요새다.
구로사키 포대에서 1분 정도 거리에 있는 사루이와(猿岩, 원숭이바위)는 이키섬 탄생 신화에 따른 8개의 기둥 중 하나로 원숭이 옆모습의 절벽 모양이 인상적이다. 높이 45m의 바위인데 원숭이가 먼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신기하게도 조금 자리를 옮겨 바라보면 원숭이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횡혈식석실묘(굴식돌방무덤)인 ‘귀신굴’ 오니노이와야(鬼の窟)고분군은 통일신라시대 때 유행한 묘제로 수평으로 드나들 수 있는 길과 공간으로 죽은 뒤에도 산 사람처럼 살아가는 공간을 만들어준 것으로 일본의 대학에서 실측한 결과 지름 45m, 높이 13m에 이르는 지도자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이키국박물관(一支国博物館)은 이키섬 내 출토된 고대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으로 전시자료가 약 2,000여점에 이른다. 거대 디오라마와 160체의 미니어처 인형은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도록 생생히 재현되고 있어 이키섬에 대해 잘 알게 한다. 일본 야요이시대 하루노츠지(原の辻) 유적에서는 100여 점 이상의 한반도계 토기, 청동기, 철기 등이 출토된바 있다.
이 박물관에서는 지난해 조선통신사 영접소 그림지도가 유네스코 세계기억유산으로 인정된 것을 기념해 조선통신사 행렬도와 영접소 그림지도, 조선통신사 영접소가 있었던 카쓰모토항(勝本港)의 유적 사진을 전시하고 있었다.
특히 조선통신사 영접소 유적은 이키섬을 방문한 조선통신사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단서로서, 가쓰모토항에 약 2,500평(100칸×25칸) 규모를 자랑했으며 그림 속 영접소가 있던 자리는 현재 가쓰모토우라 거리의 일부가 되어 당시의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성모궁(聖母宮, 쇼모궁) 남쪽에 위치한 아미타당에 당시의 초석 일부로 보이는 돌이 남아 있어 영접소가 있던 곳이라 추정하고 있다.
이키섬 관광을 마치고 나서 성게 관련 특산물을 판매하는 가게를 둘러본 후 고노우라항으로 돌아와서 페리를 타고 하카타항으로 돌아왔다. 길치본능을 버리지 못하고 좀 헤맨 다음 텐진역 인근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체크인하고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마지막 날 좀 피곤했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서 샤워를 하고 비장의 카드로 준비한 즉석식 컵밥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한 뒤 일찍 숙소를 나섰다.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바쁜 발걸음에 맞춰 텐진시내와 지하상가를 둘러보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방문지인 도초지(東長寺)를 목표로 부지런히 걸었다.(구글맵을 켜고도 여전히 여러차례 헤맸지만)
가는 길에 제법 큰 사찰이 있어서 도초지인줄 알고 들어갔더니 쇼후쿠지(聖福寺)였다. 이 절은 1195년 요사이 선사가 가마쿠라 막부의 초대 장군인 미나모노토 요리모토를 창건자로 하여 만든 일본 최초의 선사(禪寺)로 요사이 선사는 일본에 차를 전파한 ‘차의 시조’로도 알려져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도초지를 찾았다. 구전에 의하면 도초지는 806년 당나라에서 귀국한 구카이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하며 국가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천수관음입상이 본전에 모셔져 있다.
경내에는 옛날 문인들의 서화가 새겨진 롯카쿠도(六角堂)와 후쿠오카 번주들의 묘소가 있다. 1992년에는 일본 최대급 목조좌상인 ‘후쿠오카 대불’이 세워졌다.
여행을 떠나기전 목표로 했던 것은 다 성취했다. 냉천공원이 우리 역사속 인물과 관련된 것 같아서 유심히 살펴보았는데 연관성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제 하카타 국제여객터미널에서 부산으로 가는 뉴카멜리아호만 타면 여행의 완성이다.
구글맵을 켜고 부지런히 걷는데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한 건물 앞에서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3번을 타면 국제항에 간다고 했는데 아무리 봐도 코스에 없어서 옆에 있던 두명의 여자분에게 물었더니 몰라서 다시 옆의 여자에게 질문을 해준다.
한참 지도를 쳐다보다가 다른쪽에서 타야 된다며 거의 10분이나 함께 이동했다. 대충 설명을 듣고 알겠다고 했는데도 실수로 국내부두로 가면 안된다며 끝까지 따라와서 상세히 알려주고 나서야 다시 처음 정류장으로 돌아갔다. 다른건 몰라도 일본인에게서 친절함과 깨끗함, 절약정신은 배워야 할 것 같다.
오전 11시에 하카타항에 도착해서 수속하고 12시 30분 출발, 오후 6시에 부산항에 입항해 저녁식사를 하고 부전역에서 영천역으로 무궁화호로 이동해 그리운 집에 돌어오니 어느덧 밤 11시가 넘었다.
누군가가 “편한 여행을 할 수도 있는데 왜 사서 그 고생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계획하는 즐거움과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감이 있고 여행 속에서 살아있다는 확신과 성취감을 느끼는 게 아닐까?”라고 답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