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배우자
김 용 언
넉넉한 평지에서도, 고꾸러질듯한 비탈에서도 직립하는 나무를 배우자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바람 불면 바람 부는 쪽으로 기우뚱하지만 그럴수록 뿌리를 땅 속 깊히 드리우는 나무를 배우자
산다는 것이 고달프다고 말하는 인간을 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초록 잎을 틔우고 가을이면 잎 떨궈 제 발등을 덮어 겨울을 이겨내는 나무를 배우자
시詩가 빵이 되지 않는다고 투덜대는 시인도 살다보면 외롭기도하고 아프기도 한 걸 보며 상처 난 자리에 옹이를 키우는 나무를 배우자
모여서 숲을 이루고 다른 나무 씨앗이 떨어지면 땅을 내어주는 넉넉함도 배우자
인간의 삶이 백년 전후라지만 나무는 베푸는 마음이 넉넉하여 백년 천년지나도 새로운 잎을 틔우는 나무의 사랑법을 배우자
시낭송으로 사람 마음을 적셔주는 한국 시낭송 1인자라는 박영애 시인도 눈부시지만, 젊은 시로 아픈 사람을 치유하는 비아 시인도 있지만 나무는 숲을 이뤄도 거만함을 숨기고 산다
병든 사람을 치유하는 홍아무개 작가도 있지만 나무의 깊은 겸손은 두손을 모으게 한다
홀로 서 있어도 한 폭의 풍경화가 되고 숲을 이뤄도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는 나무의 품위가 눈부시다
나무여!
물보다 깊고 불보다 뜨거운 나무여!
시인, 수필가, 소설가의 가슴에 뿌리를 내려 메말라 가는 인간의 가슴을
벅차게 해다오.
동국대 국문과 졸업, 《시문학》으로 등단(문덕수, 김종길 2회 추천)
시문학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시분과 회장(역임),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장(역임), 한국
현대문학작가연대 이사장, 《현대작가》 발행인
작가의 변
글을 쓰면서도 글을 쓰는 목적에 대해 회의를 느낄 때가 많다.
독자를 위해 글을 쓰는 것인가? 아니면 나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쓰는 것인가?
삶의 무게를 스스로 저울질하게 된다.
결론은 나를 위해서 쓰는 것이고 최종 도달점은 독자라는 걸 느끼게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공감 혹은 감정의 공유자를 찾아 나서는 길이다.
물론 글을 쓴다는 것은 고독한 작업이다. 록클라이밍 오버행 코스 중간에 매달려 밤을 침낭 속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려야할 때가 있었다.
밤새 근육이 굳을까 꼼지락거리며 손과 발가락을 꿈틀거리며 머리를 회전시켜야하는 작업이요 노동이다.
나는 젊었을 때 외간 여자를 가슴에 품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썼던 글들은 뜨거웠다. 뜨겁기는 했지만 감동이 적었다. 열정만으로 글이 될 수 없다는 걸 시간이 지난 후 깨달았다.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감정의 공유 혹은 공감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끔 뜨거워지고 싶어질 때가 있다.
청춘이라는 것은 뜨겁기 때문이다.
허홍구 시인의 〈봄〉이라는 시가 공명력을 높힌다.
평범하면서도 부끄러움을 깨닫고 싶은 마음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꽃망울 터지는 봄날
“선생님은 참 재밌고 젊어 보여요”
내 팔에 매달리는 꽃이 있다
스물한 살 젊디젊은 여인
묵은 가지 겨드랑이 가렵더니
새순 돋는다
아무래도 이번 봄에는
꽃밭에 넘어질 것 같다
꼭, 넘어질 것 같다.
-허홍구 〈봄〉 전문
작가에게는 봄날 같은 마음이 있어야 현상의 아름다움도 느끼고 상상의 날개도 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시 한편으로 작가의 글쓰기 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