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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기도 영험담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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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방대광명
2021. 4.19
반야심경의 격(格)과 영험담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줄여서 반야심경이라 칭하는 이 경전의 글자 수는 총 260자입니다.
이 260자의 반야심경은 반야부(般若部) 계통에 속하는 경전입니다.
전통적으로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전을 성격별로 분류할 때는 크게 화엄부 아함부 방등부 반야부 법화열반부 등의 다섯 부분으로 나누었는데, 이 중에서 가장 방대한 것이 반야부 계통의 경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성도하여 열반에 이르기까지의 45년 중, 반에 해당하는 22년 동안을 반야부 계통의 경전을 설하셨다고 합니다.
이 반야부 경전 속에는 총 6백 권에 이르는 [대반야경(大般若經)], 곧 마하반야바라밀경이 있습니다. 한글대장경 제 21책부터 40책까지가 대반야경으로, 깨알 같은 글씨로 인쇄한 것이 총 12,000페이지에 달합니다. 흔히들 불경 중에서 가장 길다고 생각하는 화엄경의 7배 분량입니다.
반야심경은 이렇듯 방대한 대반야경의 정수를 뽑아놓은 경입니다. 그래서 6백 권 마하반야바라밀경의 심장과 같은 경이라는 뜻으로 ‘마음 심(心)’ 자를 더하여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이라 하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 보십시오. 수백만 글자로 설해놓은 대반야경을 260자로 응축시켜 놓았으니 그만큼 내용 파악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큰 내용보다는 핵심과 함축성 있는 가르침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오히려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반야심경에는 대본(大本)과 소본(小本) 두 종류가 있는데, 현재 유통되고 있는 것은 소본입니다. 소본과 대본의 중심 내용은 별 차이가 없으며, 대본에는 소본의 앞뒤에 서론부분인 서분(序分)과 결론부분이라 할 수 있는 유통분(流通分)이 더 첨가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범어(梵語)원본도 대본 소본 모두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한 중국에서 여러 차례 한문으로 번역되었는데, 현재 남아있는 것으로 일곱 가지가 있습니다.
①마하반야바라밀대명주경(一大明呪經): 구마라집 번역. 소본.
②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당나라 현장 번역. 소본
③보편지장반야바라밀다심경(普遍知藏一): 법월 738년 번역.
④반야바라밀다심경: 반야 800년 경 번역. 대본.
⑤반야바라밀다심경: 지혜륜 당나라 때 번역. 소본
⑥반야바라밀다심경: 법성(法成)번역. 소본
⑦성불모반야바라밀다심경(成佛母一): 시호(施護) 송나라 때 번역. 소본
이 일곱 가지 번역본 가운데 우리나라, 중국, 일본에서는 현장 번역본을 법회 및 의식 때 염송하고 있으며, 이 현장법사의 반야심경에는 다음과 같은 인연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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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유기>를 통하여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당나라의 현장법사(玄奘法師)는 당태종이 나라의 보배로 일컬을 정도로 존중했다고 합니다.
일찍이 현장법사는 불전의 원서인 범본(梵本)을 구하여 아직 한문으로 번역되지 않은 대반야경(大般若經)을 비롯한 모든 불경을 번역하겠다고 원을 세웠습니다. 그 원을 성취하기 위해 현장법사는 629년 8월 당태종과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인도를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교통수단이 미개했던 시절이라, 생명을 건 위험을 감수하며 중앙아시아의 험악한 산악과 사막을 지나가야만 했습니다.
현장법사는 나라의 보호 없이 제자 40명만을 데리고 은밀하게 길을 떠났고, 중앙아시아의 관문인 서역 땅 계빈국의 국경에 이르렀을 때에는 40명의 제자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이 한명도 없었습니다.
홀몸이 된 현장법사는 하염없이 두려움을 안고 큰 강가에 이르렀으나 나룻배마저 없었습니다. 그때 마침 상류로부터 집짓는 재목들이 떠내려 오는 것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저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민가가 있을 것이니 쉬어 가로 하자.”
한참을 올라가자 잡초가 우거진 쓸쓸한 고찰이 눈에 띄었고, 안쪽에서 신음소리가 들러와 들어가 보니 문둥병을 앓는 노비구가 있었습니다. 현장법사는 병든 노비구만 홀로 있게 된 내력을 물었습니다.
“이 절에는 원래 대중이 많이 있었는데, 내가 이와 같은 업병(業病)을 앓게 되자 한 사람 두 사람 다 떠나고 말았다오.”
비록 구법의 길이 바쁘기는 하였지만, 그대로 놓아두면 당장 숨이 넘어갈 병든 노비구를 외면할 수는 없었습니다. 현장법사는 지성을 다해 간병하였고, 다행히 노승은 얼마 있지 않아 완쾌되었습니다. 노승은 그지없이 감사하며 더 머무르기를 권하였지만, 현장법사는 곧 떠나야 한다며 하직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노승은 품속에서 범어로 된 반야심경 한 권을 꺼내어 선물하였습니다.
그 뒤 현장법사는 이 경의 가피를 많이 입었습니다. 재난을 당할 때마다 이 경을 독송함으로써 몰아치는 공포와 모든 액난을 면한 것입니다.
특히 현장법사가 인도 항하(恒河: 갠지스강)의 한 지류를 통과할 무렵, 떼지어 덤벼든 그곳의 주민들이 순식간에 사지를 묶어버렸고, 당황한 현장법사는 물었습니다.
“왜 나를 이렇게 결박하는 것이오?”
“항하의 재물로 바치려는 것이오.”
그들은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항하의 수신(水神)을 잘 대접해야 농사가 풍년이 드는데, 그 대접하는 방법이 사람을 바쳐 1년에 한 번씩 제사를 올리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그날이 제삿날이었고, 현장법사가 공교롭게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으므로, 같은 마을 사람보다는 외국인을 죽이기가 인정상 쉬운 일이라 실례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장법사로서는 목숨은 아깝지 않았지만, 인도 땅에 도착하여 범본 불경을 구하지도 못한 채 죽는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이 모두가 전생에 지은 업장 때문인가? 따라오던 제자 40명을 다 죽이고 이제 자신까지 죽게 되었으니...”
현장법사는 마음으로 깊이 참회하며 그들에게 청했습니다.
“나는 출가한 승려입니다. 당신네들 모두가 잘 살게 될 수 있다면 내 목숨을 기꺼이 줄 것이오. 그러나 죽기 전에 경문이나 한번 읽을 수 있도록 이 포승줄을 약간 늦추어 주시오.”
현장법사는 반야심경을 품에서 찾아내어 세 번을 읽었습니다. 그 순간, 새까만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회오리바람이 일어나 모래흙을 수십 길이나 끌어올리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이변에 놀란 주민들은 대경실색하여 현장법사를 풀어주었습니다.
그 뒤 현장법사는 인도의 나란타대학에서 여러 해 동안 학문을 연구하였고, 그 대학의 대학원장급에 해당하는 직책과 예우를 받았으며, 귀국할 때는 천축국의 왕이 나라의 보배로 받들면서 환국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마침내 귀국한 현장법사는 그의 서원처럼 번역불사로 생애를 끝내게 되었는데, 그 어떤 경전보다 반야심경을 먼저 번역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귀국 길에 노승의 중병을 간호해 주고 범본 반야심경을 얻었던 계빈국의 고찰을 다시 찾아보았지만, 노승은 고사하고 헐어빠진 고찰의 자취도 찾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후일 현장법사께서는 그 ‘병든 노화상이 관세음보살의 시현이었다.’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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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과 현장법사의 이러한 인연담과 함께 현장법사 번역의 반야심경은 매우 중요시되어, 예불의식이나 법회가 있을 때면 종파를 초월하여 이 경전을 독송하였으며, 불자들은 신행생활 및 공부의 한 방편으로 반야심경을 즐겨 외웠습니다. 그리고 이 경전에 대한 해설서도 수백 종이나 발간되었습니다.
불교의 경전 중에서 교리적으로나 신행의 면에서 핵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반야심경!
이토록 소중한 반야심경이기에 이 경을 읽고 얻은 영험담 또한 역사적으로 매우 많이 전래되고 있습니다.
이제 반야심경을 공부하는 우리의 신심을 조금이나마 북돋우기 위해, 많은 영험담 중에서 2004년에 작고하신 한갑진(韓甲振) 거사님의 체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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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갑진 거사의 아버지는 83세에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의사는 7일을 더 넘기지 못한다고 하였고, 환자 또한 극심한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팔다리가 사늘하게 식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거사의 아버지는 반듯하게 눕지 않고 모로 누워 주무셨는데, 병석에서도 팔다리를 구부리고 모로만 누워있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차가워지고 임종이 임박해짐에 따라 구부러진 팔다리가 그대로 굳어 다시 펴지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돌아가시면 상례에 따라 염을 하고 입관을 해야 하는데 팔다리가 펴지지 않는 것부터가 거사에게는 큰 걱정이었습니다. 마침내 임종 3일전, 아버지는 가족도 잘 분간하지 못한 채 계속 신음소리만 내었습니다. 전신이 얼음장같이 차가워지면서 허리부분이 더욱 심하게 오그라들기 시작했습니다. 가끔씩 허공을 향해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였지만 무슨 말인지를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한갑진 거사가 암담한 심정으로 서성이고 있을 때, 병실 한쪽에 놓여있는 반야심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거사는 반야심경을 펼쳐들고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막연한 기대감으로..., 그런데 허공을 향해 알아들을 수 없는 독백만 하던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경 소리가 참 듣기 좋구나.”
거사는 너무 신기하여 반야심경을 계속 읽었고,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아버지의 얼굴이 온화하게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을 계속 읽다보니 목이 잠기고 기운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아, 녹음을 하면 되겠구나.’
거사는 녹음을 한 다음, 아내와 교대를 해가며 밤새도록 녹음기를 반복해 틀어 드렸습니다. 이튿날이 되자 얼음장같이 차가웠던 아버지의 수족에 따스한 기운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모로 누웠던 몸을 반듯이 고쳐 누우셨고, 오그렸던 팔과 다리를 똑바로 쭉 폈습니다.
그리고 24시간 뒤, 아버지는 평화로운 얼굴로 아들의 손을 잡고 운명하셨습니다. 이렇게 반야심경의 영험을 경험한 한갑진 거사는 불교에 깊이 귀의하여, ‘호국팔만대장경’ 등의 영화를 제작하고 [사후 세계]등 여러 권의 불서를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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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만으로도 굳어버린 몸을 녹여 편안한 임종을 가져다준 반야심경!
만약 반야심경의 깊은 뜻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 읽으면 그 영험이나 공덕이 어떠하겠습니까?
반야심경 속의 말씀 그대로 걸림 없는 마음을 얻을 뿐 아니라 행복한 삶, 안정된 생활, 필경에는 부처님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될 수 있습니다.
이제 감히 청하옵니다. 이 수승한 반야심경을 함께 공부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마하심으로 바꾸고, 삶을 지혜롭게, 현실을 바라밀의 세계로 바꾸어 봅시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이 속에 그 비결이 남김없이 들어있으니....,
출처: 김 현준저, 생활속의 반야심경, 도서출판 효림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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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갑진 거사가 반야심경과 인연을 맺게된 것은 1972년 병환이 위중한 부친의 임종을 앞 둔 때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한 갑진 거사의 부친은 당시 83세였는데, 병원에서는 7일을 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친은 극심한 고통으로 아무 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팔다리가 점차 싸늘하게 식어가면서 연신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내시는데 그 모습을 보고 듣고 해야하는 거사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습니다.
거사의 부친께서는 평소에 옆으로 누워 계시던 습관대로 병상에서도 팔다리를 구부리고 옆으로 계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팔다리가 싸늘하게 식어가면서 그대로 굳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반듯하게 펴보려고 하였으나 이미 굳어버린 팔다리는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습니다. 이대로 돌아가시면 염습은 어떻게 하며 입관은 또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임종하기 3일 전부터는 팔다리가 식어가던 증세가 온 몸으로 퍼져 흡사 얼음장 같았습니다. 허리 부분은 안쪽으로 더 굽어들었고, 가족도 분간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신음 소리에 섞여 간간이 무엇인가 말을 했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임종을 향해 가시는 부친을 바라보는 거사의 심정이 오죽 했겠습니까?
불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병실을 서성이던 어느 순간이었습니다. 거사는 병실 한 쪽에 놓여있는 책상에서 작은 책 한권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반야심경이었습니다. 거사는 반야심경을 펼쳐들고 무심코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아니요, 무엇을 위해서 읽은 것도 아닙니다. 말 그대로 무심코 읽기 시작한 것입니다. 거사는 반야심경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 때 였습니다. 허공을 향해 알 수 없는 말을 외치던 아버지가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경 읽는 소리가 듣기에 참 좋구나."
거사는 하늘을 날듯이 기뻤습니다. 부친의 의식이 돌아오면서 온 몸에 서서히 따뜻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거사는 부친의 병상 곁에서 목이 쉬어 잠길 때까지 반야심경을 읽었습니다. 온 가족이 번갈아가면서 반야심경을 독송했고, 나중에는 녹음기를 구해와 녹음해서 계속 들려드렸습니다.
엄습해오는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부친의 얼굴에 온화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그리고, 온 몸에 따뜻한 기운이 돌고 구부리고 있던 허리가 펴지면서 반듯하게 누우시는 것이었습니다. 부친은 하루 뒤에 거사의 손을 잡고 아주 평온한 모습으로 임종을 맞으셨습니다.
거사는 부친의 위패는 신촌 봉원사에 모시고 49재를 모셨습니다. 재를 모시는 동안, 처음에는 부친의 위패에만 절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법당에 참배하는 불자들이 부처님께도 절하는 것을 보고서야 자신도 부처님께 절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49재가 끝난 후에도 1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벽기도를 올렸습니다.
불교와 한 갑진 거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영화인이었던 거사는 자연스럽게 불교영화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호국팔만대장경'을 만들었고 '목련구모'라는 영화도 있습니다. 목련존자가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극락세계로 모신 이야기를 영화로 제작한 것이지요.
거사의 깊은 불심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불교란 무엇인가?'라는 궁금증이 일어 본격적인 불교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국내 불교서적뿐만 아니라 영화 일로 외국에 나갈 때마다 불교서적을 구입해와서 읽고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출판사를 차려서 '알기쉬운 불교', '인도와 불교', '부처님의 생애', '부처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저술했고, '석존의 직관', '진리의 말씀, '감흥의 말씀' 등을 번역하여 불교를 일반 대중에게 알리는 일에 힘을 보탰습니다.
부처님께서 베풀어주신 가피력은 그대로 신앙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쓰던 서재는 어느새 불교 도서관이 되었고, 집2층에는 조촐한 법당을 마련했습니다. 거사는 매일 새벽 4시가 되면 아침 예불을 모시고, 하루 일과를 마친 후에는 저녁 예불을 모셨습니다. 부처님께 예를 올리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끝맺은 것이지요. 거사가 행하는 일상 속에서의 신앙생활은 모든 불자들에게 귀감이 된다하겠습니다.
반야심경 강화에 앞서 현장법사의 일화와 한 갑진 거사의 불연(佛緣)에 대하여 말씀드리는 것은 반야심경을 지극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공경하여 독송해야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물론 반야심경뿐만 아니라 다른 경전을 독송할 때에도 공경하는 마음을 지녀야 할 것입니다. 부처님 심중의 말씀인 경전을 지성스러운 마음으로 읽고, 관조하고, 사유해나가노라면 언제인가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진실한 도리를 깨우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도서출판 효
출처: 반야심경에서 배우는 성공비결 108가지 (황태호지음, 청어출판사간)
머리글 중에서
부모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고 이 세상에 태어나 아롱다롱 살던 그 옛날 어린시절 모든 것이 눈부시게 아름답기만 했다. 그러다가 여섯 살 나던 겨울 어느 날, 저녁밥을 먹다가 덜컥 숨이 끊어져 황천길을 헤매다가 다음날 새벽 북망산 가기 직전에 되살아난 기이한 체험을 나는 갖고 있다.
그 때만 해도 서울 변두리의 의사가 없는 시골인지라 동네에 살던 침구사가 부랴부랴 달려왔지만, 이미 황천문을 넘어섰다며 침 한 대도 놓아주지않고 그냥 돌아갔다고 한다.
그러자, 어머니는 숨이 끊어져 싸늘해진 나를 따뜻한 물로 목욕시키고 새 옷으로 갈아입혀 당신의 잠자리에 눕혀 놓았다고한다.
그러고는 한겨울 찬물을 길어다가 부엌에서 목욕을 한 어머니는 이내 먼길 가는 내 앞에서 반야심경을 독경하셨다고 한다.
잠시 잠깐도 쉼없이 날밤을 꼬박 새우시며..
다음날 새벽 일찌감치 죽은 나를 산으로 내다 버리려는 순간!
마치 한 숨 푹 잘 잔 것처럼 생생생생 되살아났다는 것이다.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어머니의 장장 여덟 시간에 걸친 반야심경 독경 덕분에 죽었던 내가 되살아났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나는 오십 년을 줄곧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만나는 사람마다 반갑고 하는 일마다 감사하고 천지자연 우주 삼라만상에 감동할 뿐이다.
죽었다 살아난 며칠 후 어머니 손에 이끌려 따라간 절에서 큰 법당에 참배하며 바라본 부처님 눈매가 어찌 그리도 선연하던지...
불공드리며 염불하시던 스님의 낭랑한 독경소리에 자지러지게 빠져들었던 그 감동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 날 스님앞에서 무릎꿇고 배운 반야심경을 나는 지금까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수련해오고 있다
반야심경을 읽고 암병을 치료한 조용하게
현상계의 변화는 물거품 같은 것이어서, 생로병사라든가 죽었다 다시 살아나고 살았다가 별안간 죽는다고 해도 이상스러울 것이 없다. 또한 죽을 지경에 다달았다 살아난다 해도 기적이라 할 것도 없다.
우리들이 본래의 면목을 잃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계의 모양이 불행·질병 등이다.
그러나 불행이란 것이 본래부터 존재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생명본연의 제자리로 돌아가는 계기를 마련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종교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이 지내던 사람이 질병을 계기로 독실한 신앙인이 된 경우가 많은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사람이 본래의 자리를 잃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계의 변화가 많지만, 이것들 중에 우리가 빨리 느끼는 것이 건강상의 문제이다.
한서교통 이사 조영하 거사님과 아주 인연이 깊은 동생뻘의 어느 중년부인이 1978년에 유암이 걸려 한쪽 가슴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리하여 그 이후 허약하게 지내오다, 2년 전 가을에는 늑막염에 걸리게 되었다. 마침내 더 이상 손을 쓸 수가 없을 정도로 병세는 악화되었다.
그 소식을 듣고 마냥 걱정을 하면서도 내려갈 형편이 못 되어서 전전긍긍하고 있을 때 전혀 회복의 가망이 없어 병원에서 퇴원을 하였다는 말을 듣고 그를 찾아보게 되었다. 과연 그는 암이 전신으로 퍼질 만큼 악화되어 있었다.
피골이 상접한 채 초췌하게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슬픔이 밀려 왔다.
더구나 현실적으로 절망적이면 절망적일수록 더더욱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집안 식구는 물론이거니와 주변 사람들은 모두 포기한 상태에서, 그녀는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차마 육안으로는 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있을 수도 없고 해서 하룻밤만 묵고 올라오려고 하였다. 허나, 영 마음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으며, 지금 헤어지면 영영 이별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환자는 태연하려고 무척 애를 썼다.
이 때 문득((반야심경))만 잘 읽으면 병이 나을 것 같은 희망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저녁을 먹은 후 마주 앉은 자리에서 조거사가 말하였다.
「얘, 사람이 죽어도 좋은 게고 살아도 좋은 게니, 너도 걱정을 뚝 떼어 버리고 반야심경이나 외워보아라. 부처님이 어찌 우리를 속이겠느냐?」
「허지만 아프고 꼼짝도 못할 정도로 죽겠는데 어떻게 합니까?
이 세상의 부귀영화가 부러운 것이 아니라 젊은 나이에 죽을 것을 생각하니 억울해서 그래요!」
하며 더 살고 싶다고 호소하였다.
사람이 죽음에 임박해서 죽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필사적인 노력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으며, 비록 십분을 더 사는데 일 억원을 내놓으라고 하면, 누구든지 있는 것 다 내 놓을 지경이다.
그도 죽기 싫어 혹시나 하고 틈틈이 <<반야심경>> 1편씩을 외웠으며, 하도 죽겠을 때는 밤새도록 경을 외우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그럴수록 그는 더욱 위로 하였다.
「이 경을 계속 외우면, 내생의 고생을 덜게 될 것이다.」
하며 부지런히 경을 외우라고 격려하였다.
「하지만 뜻도 모르고 외우니까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어요.」
하면서, 환자는 뜻을 풀이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그리하여 조거사는 밤새도록 <<반야심경>>을 강의하여 주었는데, 다음날 아침에는 오히려 그를 위로하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며 「 이제는 죽는 것도 두렵지 않다.」고 하였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진일보(進一步)하는 이야기를 꽤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그래 올라올 때는 내려갈 때보다는 약간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상경하게 되었다.
서울에 올라온 그는 그 뒤 약 7년 동안 법우들에게 강의해온 여러 가지 설법과<<반야심경>> 강의한 것을 녹음한 테이프를 보내주었다.
테이프를 가지고 갔다 온 아내는 그녀의 병세가 호전되어 얼굴에 핏기가 돌고, 먹는 것도 토하지 않는다고 반가운 소식을 들려주었다.
그 뒤 한달쯤 있다가 그녀가 오빠를 무척보고 싶어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즉시 당진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저녁에 당진에 도착했을 때는 마중 나온 사람 중에 그녀가 끼어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사실 계속 주사기로 물을 뽑아 왔는데, 열흘 전부터는 물을 뽑지 않고도 견뎌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다시 마주 앉아 또 <<반야심경>>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반야심경>>읽기를 그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해왔는데 모르는게 하도 많아서 해설을 들어야만 답답한 마음이 풀리겠노라는 것이었다.
그래 그는
「없는 것 뒤에 정말 있는 우리의 참모습을 보는 수행을 하자.
입으로만 <<반야심경>>을 외우지 말고, 그 뜻을 알고 체득하라.
우리의 참된 모습은 경의 말씀대로 불생불멸하며,
영원히 사는 생명인 것이다.
있는 것은 불성 (佛性)뿐이며, 원래 우리에게 병이 없는 것이다.
오직 건강·행복조화·번영만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본래 지닌 부처님의 완전 원만한 생명력을 모르기 때문에 너에게 병이 나타난 것이다.
오히려 이 병은 네게 불교의 참뜻을 알기 위한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며,
결코 두려워할 만큼 힘센 존재는 아니다.
오직 네가 지닌 찬란한 부처님의 광명과위대한 힘만을 보아라
마하반야바라밀이라는 말의 의미는
「이미 다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너는 아득한 옛부터 이미 부처인 것이다.
이 가르침을 확고히 믿어야 한다.
오직 부처만 볼 뿐이며, 결코 부족하고 못난 것을 인정치 말아라.
시어머니가 밥을 차려주는 것도 미안해하지 말아라.
우린 모두 서로를 돕는 보살인 것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원리대로, 부처만 인정하면 그러한 세계가 너에게 전개되기 마련인 것이다. 이제까지 형식적으로 불교를 믿었지만, 지금부터는 불교의 진리를 직접 체험토록 하여라. 기왕 이렇게 된바엔, 죽기를 각오하고 정진하여라.」
부탁하였다. 그러자 누워만 있던 사람이 한발짝씩 걸음을 옮기고, 몸을 움직이더니 다음날 아침에는 그의 세숫물까지 떠다 주었다.
밤새 반야심경을 독송하며 수행을 하였건만 얼굴은 아주 평안해 보였다.
그러하여 상경할 땐 아주 홀가분한 심경으로 돌아왔다.
그는 지금도 일심으로 정진하고 있으며, 자식들이 늘상 지어미 심부름해대던 것도 차츰 줄어간다 하니 기쁠 뿐이다.
설령 세연이 다해 어느 때 죽는다 해도, 여한은 없으리라.
병 덕분에 그녀는 부처님의 가피력을 체험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출처: 불교설화대사전
반야심경 독송의 가피력 / 진각스님
만약 불자님들의 가정에 한 가족이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여
어느 병원에서도 소생할수 없다는 의사의 판명이 나온다면
당장 불자님이 무엇을 할수 있다고 생각 하십니까?
잘 아시겠지만 그 때는 의지가 최대한 약해 지는 시기 인지라
모두가 기독교인은 하나님에게 크리스챤은 성모마리아님에게
불자님들은 각 사찰의 불보살님에게
그리고 설령 종교가 없던 사람 마저도 어느 한 종교에 매달릴 겁니다.
【 살려 주십사 】 하고 말이죠.
그 어떤 대상을 선택하여 기적의 의지를 갈구 하려는 것이 우리 중생의 마음입니다.
이처럼 어떻한 어려움에 빠졌을 때
우리는 흔히들불보살님들에게 무아의 기도를 통하여
기적같은 가피를 입어 그 어려움에서 헤어 나오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마음이 안정되지 않고, 불안하고, 평상심을 잃을 때
혹은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을 때
그때 사람들은 기도를 할 겁니다.
다시말해 사람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때는
기도 하려는 마음들이 없다가
본인이나 가족이 급한 경우에는 매달리려 한다는 것 입니다.
기도 정진은 불교에서는 가장 신성한 종교의례 입니다.
기도의 가피는 불보살님의 법력을 얻자는 것인데
그런 급한 경우가 아닌 매일 매일 하는 습관을 들이자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지금 써 내려 가려는 이야기도
평상시에 반야심경과 108 배를 게을리 하지않던 어느 법우의 이야기 입니다.
【 묘법연화경 】 【 보문품 】에
" 선남자야, 만약에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여러가지의 고뇌를 받을 때
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그 음성을 듣고 모두 해탈케 하느니라 "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또한 관세음보살은 관세음보살의 모습이 아니라
여러 백천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 이제 그 가피력을 입은 법우의 이야기를 적어 봅니다.
1991 년 6 월 3 일 오후 2 시에 서울 잠수교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김 준환이라는 학생이 (당시 고대 3 학년) 구입한지 5 개월이 되는
현대 스쿠프 승용차를 운전하여 강북쪽으로 가던 중
잠수교 터널 안에서 옆의 차를 피하려다가
앞에 가던 유조차 뒷 부분에 부딪히고 튕겨져 나가
옆의 옹벽에 부딪치며 전복되어 차가 엎어진 채로
20 여미터 데굴데굴 굴러 갔습니다.
유조차 운전자는 순간
큰 사고가 났음을 알고 정지 하였으며,
사고차는 유조차 앞으로 미끌어져 나갔습니다.
유조차 운전자가 내리려는 순간, 그는 기이한 광경을 보게 됩니다.
다름이 아닌 전복된 사고차가 안보일 정도로
하얀 모습의 커다란 부처님 형상이 차를 덮고 있는게 아닙니까?
순간, 그 유조차 운전자는 섬뜩함을 느꼈으며,
잠시후 그 부처님 형상이 없어지자 그는 차에서 내려
사고가 난 차에 가보니 차는 폐차 직전으로 찌그러져 버렸고
이상하게도 사고차의 운전자가 보이질 않는 것 이었습니다.
당시 51 세의 유조차 운전자는 운전 경력이 많은 사람이었고,
믿는 종교는 크리스챤이라고 했었습니다.
분명 이런 정도의 사고라면 운전자는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찾아보니
운전자는 보이질 않고 옹벽 옆에서 한 학생이 책가방을 들고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유조차 운전기사가 그 학생에게 다가가
" 학생 ! 혹시 저 차 운전하던 운전자 못 보았는가? "
그러자 그 사고차를 운전하던 김 준환 학생이
" 제가 저 차를 운전했는데요 "
유조차 운전기사는 믿기지 못하여 다섯번이나 물어 보았었습니다.
정말 운전자라면 이렇게 살아 있을수가 없으며,
더구나 온 몸에 상처도 없이 서 있을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유조차 기사는 그 학생이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을 하며
사고처리를 해 주고는 그 학생의 아버지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김 준환 학생의 사고 소식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학생의 아버님에게 유조차 기사가 혹시 종교가 있으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학생의 아버지는 종교는 불교 집안 이라고 대답을 하였다.
그제서야 유조차 운전자는 자기가 본 형상이 부처님이라는 것을 알고
그 학생의 아버지에게 그 때 의 일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난 뒤 유조차 기사가 김 준환 학생에게 다가가
그 사고 당시의 일이 궁금하여 물어 보니
" 사고 순간 차가 부딪히는 것을 보며
누군가가 자기를 감싸 안는 느낌을 받고 보니 차가 거꾸로 있는데
옆 유리창이 보이므로 안전벨트를 풀고책가방을 지자
누군가가 안아서 차에서 내려주었습니다 " ....그랬습니다.
자 !, 한번 생각 해 봅시다.
자동차 유리창 부분은 작습니다.
그 부분을 빠져 나오려면 멀쩡한 상태에서도 쉽게 빠져 나올수 없는 것 입니다.
당시 김 준환 법우도 회상을 할 때
" 저 창문으로 내가 어떻게 빠져 나왔는지 모릅니다 "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아마 이러한 일은 우리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 할수 없는 부분이라 여기시죠?
이것이 바로 불가에서 흔히 말하는 가피력입니다.
그 차는 결국 대파되어 폐차를 시키고 키가 181 Cm 였던
김 준환 법우는 그런 대형사고를 당하고도
큰 상처하나 없이 무사히 그 구멍으로 온 것 그것이 바로 불보살님의 가피력 입니다.
그의 가정을 잠시 소개해 보면,
그 법우는 2 대 독자로 그의 어머니 김월맹심 보살은
20 년 전 부터 시부모님의 영정을 처음 백련사로 모실때
그 인연으로 불교와 인연이 되어 불교에 귀의를 했고
백련사에서 정진하며 전국 어느 사찰이든
【 우란분절 백중 기도 천도재 】가 있는 곳이면 빠짐없이 동참하며
하루도 정진을 게을리 않고 매주 토요일이면 철야정진을 하였습니다.
그는 당시(1995 년 쯤으로 기억) 백련사 재무로 일했으며
사고가 나기 2 년 전부터 아들 (김 준환 학생)에게
매일 아침마다 【 반야심경 】을 독송하라고 하면서
절을 최하 50 번 조금 더 하면 108 배를 시켰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아들이
" 법당도 아니고 부처님도 안 계신데 어디에 절을 하냐 " 고 하자
김월맹심보살님은
" 지금 네가 앉은 자리가 법당이니 그냥 열심히 해 봐라 " 고 대답 했었답니다.
아들이 성품이 착하여 어머니 말씀을 거르지 않고
매일 아침마다 기도를 하고 난 뒤에 학교를 다녔다는 것입니다.
사고후 월맹심보살님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그의 집안은 늘 부유하고 걱정은 없었으며
백련사에서 기도 할 때는 특별히 원을 세운 것은 없으나
기도 중에는 '원하는 것은 어디에서나 그저 좋은 인연이 맺어지기'를 바랐으며
사고 후 기도의 공덕을 부처님의 가피지묘력을 확신하고
기도드린 정성보다 너무 큰 가피를 입었다고 하면서 더 정진을 했었습니다.
불자 여러분.!
이와같이 기도는 어떻한 일이 발생하였을 때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삶이 기도하는 삶으로 살아가는 이 불자의 집안처럼
앞으로 닥쳐오는 불행을 불보살님의 가피지묘력으로 미리 피할수 있다는 것 입니다.
모든 열매는 열매가 맺기 까지의 과정이 있는데
그 과정도 없이 나무한 그루 탁 심어 놓고
느닷없이 열매 맺기를 바라는 멍청한 사람이 되지 마시고
그 나무를 정성스레 가꾸며 결실을 기다리는 현명한 사람처럼
늘 쉬지않고 기도정신 수행을 하시면 불보살님이 감응하시와 가피를 주실 겁니다.
즉,
부처님이나 불보살님은 어느 먼 곳에 계신 것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자기 가운데 계신 불보살님에게 가피를 청하는 기도를 타력이라고 하겠습니까?
기도로 마음을 허공처럼 깨끗이 비워 버리면,
바로 그 마음 속으로 부처님이 자리를 하시는 겁니다.
본래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으나
그 마음이 탐진치 삼독의 때가 끼어 볼수가 없는 것이죠.
용맹정진하는 수행 속에서
몸과 마음의 때를 벗기어 내는 청소를 하는 수단으로 통하여
각자의 마음이 청정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가피를 입을수 있는 것 입니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이를 참고 견디는 '인욕바라밀'이 없이는
불보살님의 가피를 기대 할수도 없는 것입니다.
보통 어떤 기도를 하면 한 번 기도를 시작하고 보면
늘 수많은 장애가 따르는 법입니다.
그 장애가 생길 때 반드시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재가불자 여러분 그리고 법우 여러분 !
사람에게는 누구나 소망과 희망 이라는 것이 잇습니다.
소박하고 작은 것에서 부터
크고 위대한 온갖 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다시 한번 발심하시어
우리들의 원을 실현키 위한 기도를 오늘 다시 정하여
쉼없는 용맹정진을 해 보세요
'반야심경' 영험이야기
예산군 예산읍 향천리 금오산(金烏山) 기슭에
7교구 수덕사 말사인 천년고찰 향천사(香泉寺)가 자리 잡고 있다.
금오산이라는 산 이름과 향천사라는 절 이름의 유래가
전설로 재미있게 전해 내려오고 있다.
향천사는 서기 656년(백제 의자왕 16년)에 의각선사(義覺禪師)가 창건했다.
의각선사는 키가 8척 거구였으며 인물이 준수하며
스님은 평소 반야심경을 늘 지송했다.
스님이 중국에서 공부할 때였다.
취침에 들려던 혜의스님은 밖에서 심광이 일고 있음을 보았다.
"아니 이 밤중에 웬 빛일까?"
놀란 혜의스님은 선뜻 문을 열지 못하고 창틈으로 엿보았다.
"저곳은 의각스님 방이 아닌가."
의각스님은 방에 단정히 앉아 반야심경을 독송하고 있는데
경구가 입에서 밖으로 흘러나을 때마다 광명이 솟아 나오고 있었다.
이튿날 의각스님은 대중을 모아 놓고 말했다.
"간밤에 내가 눈을 감고 반야심경을 백번 외우고
눈을 떠보니 사방 벽이 뚫린 듯 뜰 밖까지 훤히 보이더군요.
웬일인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 벽을 만져 보았으나
벽과 창이 모두 달려 있어 다시 앉아서 경을 외웠는데 역시 뜰 밖이 보였습니다.
이는 반야의 부사의한 묘용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들은 반신반의 하는 표정으로
서로 얼굴을 쳐다볼 뿐 아무도 입을 열려하지 않았다.
이때 혜의스님이 일어나 간밤에 본 사실을 이야기 했다.
그 후 의각스님은 오자산(五子山)에서
불법(佛法)을 공부하면서 더 이상 중국에 머물 것이 아니라
고국에 돌아가 불법을 널리 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석불 3,053개를 비롯하여 전단향 나무로 만든
아미타불과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16나한상 등을 만들었다고 한다.
655년 당나라에 온 백제 사신을 따라서 귀국했는데,
귀국하면서 오자산에서 만든 석불을 싣고 왔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고국에 돌아와 오산현(예산) 북포 해안에 이르렀으나
마땅한 자리를 찾지 못해 석불들을 계속 배에 방치했다.
이때 배 안에서 종소리가 나 해변에 진동했다고 하여
부근 마을 이름을 '종성리(鐘聲里)'라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금까마귀 1쌍이 찾아와 지금의 절 자리를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의각스님은 그 자리에 향천사를 세워 석불을 봉안하고,
까마귀에게 보은을 하는 차원에서 산 이름을 '금오산'이라 했다고 한다.
스님께서 그 자리에 절터를 닦기 시작할 무렵, 인근 마을에는 소문이 자자했다.
"중국에 다녀오신 스님이 우리 마을에 절을 세우고 삼천불을 모신다지요?"
"우리 마을의 경사가 아니고 뭐겠어요.
작은 힘이지만 우리 모두가 뜻을 모아 법당이 속히 완성토록 불사에 동참하도록 합시다."
마을 사람들은 너도나도 정성이 담긴 시물을 의각스님에게 전했다.
어느 날 아침, 떠꺼머리 총각이 의각스님을 찾아왔다.
"아직 이른 시각인데 어쩐 일로...
"벌써부터 스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시물을 마련치 못해 망설이다
오늘 용기를 내어 이렇게 빈손으로 올라왔습니다.
있는 힘을 다하여 흙을 파내고 나무를 나르는 등
불사 일을 돕고자 하오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참으로 고맙소.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이란 시물보다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이라오.
나를 만나고 싶고 법당을 세우는 이 현장에 오고 싶은
그 마음엔 벌써 불심이 가득했으니 부끄러워 말게나."
"스님, 제게는 몸져누워 계신 노모님이 계시옵니다.
이 몸 장가도 들지 못하여 변변히 모시지 못하니 불효가 크옵니다.
법당이 완성되면 제 모친의 병환이
속히 완쾌되길 부처님께 간곡히 기도 올리려 합니다."
"그대의 효심이 그리 장한데 어찌 기도가 성취 되지 않겠소."
스님은 그 총각에게 반야심경을 수지 독송토록 일러줬다.
종일 일하면서 한줄한줄 외우기 시작하여
어느새 총각은 반야심경을 줄줄 독송하게 됐다.
그는 아침, 저녁으로 어머님 머리맡에 앉아
반야심경을 외우며 병환에 차도가 있길 기원했다.
법당 낙성식이 거행되는 날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새 옷으로 갈아입고 모두 새 절로 향했다.
떠꺼머리 총각도 그날은 깨끗한 옷으로 몸을 단정히 하고
어머니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올렸다.
"얘야, 나 좀 일으켜다오. 나도 법당 낙성식에 가서 부처님을 뵙고 싶구나."
"어머님, 아니 됩니다. 그대로 누워 계세요. 저 혼자 다녀오겠어요."
"아니다. 이상스럽게 오늘 아침 몸이 아주 가볍구나."
어머니 청에 못이겨 아들이 손을 내밀자
총각의 어머니는 언제 아팠느냐는 듯 거뜬히 일어났다.
떠꺼머리 총각은 자신의 눈을 의심 했다.
"어머님, 부처님께서 제 소원을 들어 주셨어요."
기뻐 어절 줄 몰라하며 부둥켜 앉고 울던 모자는
삼월의 햇살을 받으며 낙성식에 참석했다.
오랫만에 길을 걸어 갈증을 느낀 노파는
법당 옆 약수를 마시며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아들에게 물을 권했다.
약수에서는 전날과 달리 그윽한 향기가 풍겼다.
이를 확인한 스님은 그날 낙성식에서 절 이름을 '향천사'라 명했다.
지금도 향천사 극락전에는 10
어느 승려가 반야심경을 마음으로 신봉하고 현세에서 효험이 나타나 기이한 일이 일어난 이야기
승려 의각(義覺)은 원래 백제 사람이다. 그 나라가 멸망했을 때 일본에서는 오카모토궁에서 천하를 다스리던 사이메이 천황의 시대였는데, 그 때 일본에 건너와서 나니와(難波)의 구다라지(百濟寺)절에서 살고 있었다.
의각법사는 키가 칠척이나 되고 널리 불교를 공부하였으며 항상 반야심경을 외웠따.
같은 절에 에기(慧義)라는 승려가 있었는데 밤중에 혼자서 나가 걷고 있었다. 언뜻 의각법사의 방을 보니 밝은 빛이 환하게 비추고 있어 이를 이상히 여긴 에기(慧義)가 창문의 종이에 몰래 구멍을 내어 들여다보았더니 의각 법사가 단정히 앉아 경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빛이 바로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에기는 놀라고 무서워하며 다음 날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이 일을 절 안의 승려들에게 알렸다. 그러자 의각 법사가 제자에게 "나는 지난 밤 '반야심경'을 백 번 정도 외웠다. 그런 후 눈을 떠보니 사방의 벽 밖으로 바깥이 내다보여 밖의 정원안이 훤희 보였다. 나는 이것 참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방에서 나와 절 경내를 돌아보고 다시 돌아와 보니 이번에는 벽과 문이 모두 닫혀있었다. 그래서, 방 밖에서 반야심경을 외웠더니 이전과 마찬가지로 벽과 문이 투명하게 내다보였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바로 반야심경의 기이한 험력(驗力) 때문이다. 이에 논찬하여 말하였다.
"위대하구나. 석존의 제자인 의각이여. 많은 법문을 들어 지식이 넓고 불법을 널리 전하였으며 칩거하여 불경을 외웠네. 심안이 열려 물질 안을 자유롭게 왕래하였고 그의 드러난 모습은 심오하고 고요하도다. 어찌 동요하는 바가 있으리오. 방의 벽도 열려 통하고 밝은 빛이 나타나 비추는구나."
출처: 일본국현보선악영이기(日本國現報善惡靈異記)
교카이(景戒)저, 문명재, 김경희, 김영호 역주
정지선사의 반야심경 독송
당나라 때 정지선사가 계셨다.
속가의 성은 조趙씨고 옹주 고릉지방의 사람으로 88세까지 살았다.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관상하기를 좋아하였다. 늘 경문에 따라 수지 학습하였다. 천성이 출가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정관초년(627)에 광화사에 은거하였다. 대략 십 수 년을 살았다. 곧잘 움막에 들어가 좌선하고 승방에서 살지 않았다. 그 때문에 사면팔방에서 그를 숭배하여 모여드는 대중이 200여명이나 되었다. 주야 육시로 신구의 삼업을 닦으며 분발하여 부지런히 정진하였다. 촌음도 헛되이 허송하지 않았다.
당시 그의 코 안에는 혹 같은 살덩이가 있어 코를 막고 있었다. 백 가지 약을 써보았으나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그때 어느 스님이 그에게 말하였다.
《반야심경》을 일만 번만 읽어보시오. 그 말대로《반야심경》을 일만 번을 독송하였더니, 코 안에 혹이 떨어져나갔다.
-《고승전》2집
출처: 관세음보살 영감록 (만법 김상근 번역, 삼보제자간행)
청화 큰스님 반야심경 법문
우리가 신중불공(神衆佛供) 모실 때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은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생략해 버립니다.
그러나 신중불공 모실 때는 꼭 반야심경 불공을 해야 합니다.
그것보고 신분(神分) 그럽니다.
귀신 신(神)자, 나눌 분(分)자.
어째서 해야 하는가 하면, 신중불공(神衆佛供)이라 하는 이것은 삼마(三魔) 외도(外道), 즉 마귀(魔鬼)나 그런 나쁜 기운(氣運)들을 몰아내고서 또 좋은 선신(善神)을 우리가 청(請)해서 가피(加被)를 받게끔 하는 것입니다.
소원 성취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우리 주변에 삿된 기운들이 있으면 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런 기운들을 다 몰아내고서 우리가 선신들의 가피를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신중불공(神衆佛供) 모실 때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외우면 나쁜 신(神)들은 그냥 물러갑니다.
모두들 있다고만 생각하므로 나도 있고, 너도 있고, 중생(衆生)들이 삼독심에 가리워진 안목으로 있다고만 생각하므로 이제 나쁜 마음을 품습니다.
그러나 나도 원래 허망(虛妄)한 것이고 너도 허망한 것이고, 또는 좋다는 것도 허망한 것이고 이렇게 허망하다고 귀신(鬼神)들이 느낀다고 생각할 때는 우리를 해코지 할 수가 없습니다.
반야심경(般若心經)을 한번 외우면 그냥 옆에 있는 사람만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잠재의식(潛在意識)도 정화(淨化)가 되는 것이고, 우리 주변도 정화를 시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중불공을 모실 때에 반야심경을 외우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나쁜 귀신은 못 배겨냅니다.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고 집착(執着)하고, 그래서 나쁜 맘이 생기는 것인데 그런 것이 모두 허망하다고 풀어버리므로 나쁜 마음이 차근차근 풀어집니다.
그 삿된 아귀(餓鬼)라 하더라도 부처님의 법문을 하면, 우리 사람보다 더 잘 알아먹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쁜 신들이 있다가도 반야심경을 외우면, 그냥 아! 그렇구나. 그야말로 참 석가모니(釋迦牟尼) 같은 분들은 거짓말을 절대로 않는 분인데 그분이 비었다고 했으니까 정말로 비었구나! 느껴가지고 물러갑니다.
물러가면 그냥 또 우리 분위기에 있는 선신(善神)들은 부처님 법문을 제대로 다 알아듣기 때문에 우리 주변에 모여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신중불공(神衆佛供) 모실 때는 꼭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주변의 모든 삿된 것을 물리치고. 선신(善神)들의 가호(加護)를 받고서 우리가 원력(願力)을 세우고 축원(祝願)을 해야 그래야 더 훨씬 효과적으로 되겠지요.
-청화 큰스님 법문
출처: 다음 오도선방 블로그 황전스님 글
지리산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암자에서 수행을 할 적에는 시간만 나면 지리산에 터를 잡고 있는 다인(茶人)의 집을 찾아가서 여러 수행자들과 법 거량도 하고, 다도(茶道)를 즐기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야생차가 돋아나는 봄이 되면 그 다인(茶人)집에 모여서 야생차를 만들며 차 맛을 시음하곤 하였다. 생각해 보니 참으로 오래전 일이다.
장맛비가 내리는 오후에 창밖을 바라보면서 홀로 지리산에서 가져온 녹차를 마시다보니 조금 특별한 능력을 가진 한 보살님이 생각이 난다.
어느 봄날이었다. 야생 찻잎이 나왔으니 차를 만들자고 하면서 그곳으로 오라는 다인의 전화를 받았다. 전국에서 많은 다인들이 온다는 것이었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다인 집을 찾아가보니 벌써 많은 다인들이 차를 비비고 있었다.
나도 장갑을 끼고 멍석에다 차를 열심히 비벼서 차를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차를 만들고 있는데 멀리서 자동차 소리가 들려오더니 잠시 후에 30대로 보이는 한 보살이 인사차 문을 활짝 열고 다인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 보는 보살님이었다. 그런데 이 보살님은 다른 다인들과 인사를 마친 후에 나를 한동안 지긋이 바라보는 것이었다. 나또한 그녀에게서 묘한 기운이 감지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몇 시간 동안 어울려서 차도 만들고 새 차를 마시면서 웃고 떠들고 하다가 늦은 저녁에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보살님이 같이 온 두 보살님과 함께 나를 따라 암자에서 하룻밤을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그날 밤 지리산에서 가져온 차를 마시면서 그 보살님과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보살님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불보살님을 비롯하여 천상의 일과 지상의 일, 그리고 사람들에게 붙어 있는 빙(憑)은 물론 여러 귀신들과도 대화도 하고 귀신을 부려먹기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를 지키는 신장님은 물론 여러 신장님들과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당시 나는 <다카하시 신지>의 <마음의 발견>이란 책을 읽고 그러한 경계를 이해 한 상태여서 이 보살님이 하는 이야기를 다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그 보다는 보살님이 하는 그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지만 내가 수행하는 과정이나 비몽사몽간에 약간의 경계를 경험을 해 보았던 그러한 경계의 이야기였다.
그러다 보니 그 보살님의 이야기가 재미와 호기심에 밤새도록 하고 또한 그 많은 이야기들을 다 긍정을 해주고 나자 그 보살님이 암자를 떠나면서 하는 말이 이제야 가슴이 확 터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자신의 가족은 물론 특별한 몇 몇 사람 말고는 아무도 자신의 말을 인정해주지 않고 정신병자 취급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하였다.
그 후 1년쯤 지난 어느 날 그 보살님이 남편과 자식을 데리고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이러한 이야기를 하였다.
“스님, 세상에 이런 일도 있습니까? 제가 말입니다. 놀기가 답답해서 피자 가게를 열었습니다. 가게를 열기 전에 고사를 지내려고 하니 불교를 믿는 나로서는 돼지 머리를 놓고 고사를 지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돼지머리는 놓지 않고 과일과 떡, 그리고 막걸리만 놓고 고사를 막 지내려고 하는데, 세상에...
노숙자 모습을 한 귀신들이 한 오십 명 정도 가게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귀신들은 들어오자마자 고사음식을 게걸스럽게 서로 싸워가면서 먹는데 한 마디로 난장판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귀신을 보지 못하니 고사 상 앞에 돈을 놓고 술을 붓고 절까지 하는데 그 절을 귀신들이 다 받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나의 보는 능력을 인정해주는 어떤 도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 상황을 말씀드리고 어떻게 대처를 할 것이냐 물었더니, 글쎄 반야심경 한편을 읽어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데 모셔올 만한 스님을 잘 알지 못한다고 하자, 도인은 웃으면서 나보고 직접 반야심경 한 편을 그냥 읽어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도인의 말만 믿고 반야심경을 한번 읽으니 놀랍게도 그 귀신 모두가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고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스님, 그런데 말입니다. 더 놀라운 사건이 생겼습니다.
고사를 다 정리하고 밖으로 나오려고 가게 문을 여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가게 문 앞에 오십 여명의 귀신들이 깔끔한 정장차림으로 와서 끝도 없이 절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모두들 <고맙습니다!> <정말로 고맙습니다!> 하고 말입니다.
나는 그저 멍하니 오도 가도 못하고 그 귀신들을 지켜보고 있는데, 얼마쯤 절을 하고 나자 귀신들 모두 떠나갔는데 마지막으로 3명의 귀신만 남아서 끝도 없이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절을 계속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으로 보살님 덕분에 몸을 바꾸게 되었다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떠나갔습니다. 스님 반야심경의 위력이 이렇게 대단한 것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물론 반야심경도 대단한 위력이 있습니다만, 그 위력 있는 반야심경으로 귀신들을 제도할 만한 능력을 가져야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도 장군이 명령을 내려야 부하들이 말을 듣지, 힘도 없는 부하가 부하에게 명령을 내린다고 말을 듣겠습니까? '이자식이 누구에게 명령이야' 하고 오히려 물어뜯어버릴 것입니다. 어째든 참으로 좋은 경험을 하였습니다. 간접적이지만 나도 물론 그렇고요.
그러고 보면 귀신들은 스스로 제도하지는 못하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노숙자처럼 기약도 없이 떠돌다가 보살님 같은 능력자를 만나면 그때 비로소 나름대로의 해탈을 하는 가 봅니다.”
그 후 보살님은 가게를 처분하고 여러 큰 스님들을 찾아다니며 여러 가지 수행을 하였다. 만나는 스님들마다 귀신이 붙었다는 둥, 마장이 끼었다는 둥, 눈에 보이는 것은 환상이니 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둥, 끝도 없는 질책과 스님들이 저마다 시키는 대로 절도 하고 염불도 하고 사경도 하고 위빠사나, 참선 등 몇 년 동안 인연이 되는 수행을 나름대로 하고 또 했지만 수행을 하면 할수록 얼굴은 더 맑아지면서 더 선명하고 더 명확하게 잘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보살님이 나를 찾아와서 지금 수행의 경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장에 대해서 말을 해주고 나서 가족들과 인도로 이민을 갔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도저히 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만나는 스님들과 법사들이 귀신에 놀아나고 있으니 천도를 해야 된다. 천일기도를 해야 한다. 정법으로 가야지 외도에 빠지면 안 된다. 등등 어찌나 말도 많고 탈도 많은지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인도로 가서 수행다운 수행을 할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그 후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 같다. 홀연히 생각이 나서 아는 사람을 통해서 그 보살님의 소식을 물으니 인도에서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화경에 보면 눈의 공덕을 성취하면 이 육안을 가지고도 천상천하를 다 본다고 했다. 나는 그 보살님이 법화경에 나오는 눈에 공덕을 성취하지 않았더라도 전생에 천안(天眼)을 얻은 부처님의 제자 <아나율>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부처님의 십대제자들도 그 능력이 각각이었다. 사리불은 지혜제일이고, 목건련은 신통제일이다. 아나율은 천안제일이고, 수보리는 공의 제일이다. 이 말법시대에 부처님의 제자들이 인연 따라 다시 사람 몸으로 와서 그 능력으로 중생들을 위해 쓰고 있는지 누가 아는가?
자신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도력(道力)이고, 다른 사람이 타고난 능력을 외도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는가. 인연 따라 주어진 것을, 인연 따라 좋은 일에 쓸 수만 있다면 그 또한 보살행인 것을...
나무아미타불
[나의 체험록] 반야심경 1080장 사경을 해보니
불교를 공부하는 것은 주어진 과정의 지식을 습득하는 학습이 아니라
현실에 주어진 삶의 근원적인 존재의 의문이나 기복적인 바램으로
경전 공부, 사경, 정근, 진언, 108배, 좌선 등으로 자신의 근기에 따라 몸짓하는 행위를 합니다.
나름의 공부를 하면서 업장이 두터움을 알기에 아미타불 정근을 쉼 없이 하거나
생활 속에서 어려운 재난과 고통을 하소연하는 관세음보살을 쉼 없이 정근을 하거나
각양각색으로 자신의 근기와 경계에 따라 하지만 공부에 벽을 느끼는 얽히고설킨 생각들이 정립이 안되어 고뇌하기에 스승을 찾기도 하며. 스승을 친견을 합니다.
10여전에 내 마음이 거친 야생마처럼 천방지축 날뛰고 있을 때
선배님의 스승이신 선승을 친견하였습니다.
스님께서 거창한 법문이나, 편안한 덕담을 제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제게 반야심경을 1080장을 사경하게 하였습니다.(한문으로 쓸 것이며, 연필은 안되고 펜 종류로 쓸 것)
그리고 다 쓰면 찾아 오라고 하였습니다.
돌아와서 종이 등을 준비하여 시간 틈틈이 쓰기 시작하여, 445일 여일만에 1100장을 사경하었습니다.
사경을 하면서, 왜 스님께서 제게 사경을 시켰는지 스스로 알게 되었다.
집중하며 사경하는 제 자신이 제 자신을 지켜보았습니다.
거친 마음이 고요해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경 한것을 가지고 다시 찾아뵈니 법당에 놓고 108배를 시키며 회향하였습니다.
그리고 눈 감고 1080장을 더 사경하게 하였습니다.
세세생생 지어온 내 업장은 어디서 왔는가?
한 생각이 모아져 마음이 되어 ... 행위가 되어...
업의 작용이 "나"라고 착각하여 대변자 노릇 하는구나 ㅠㅠㅠ
사경을 마치고 뒤돌아보니 사경한 공덕은 무엇인가?
공덕은 없다,
굳이 있다고 하다면 사경한 만큼 공덕이 있다.(해본 사람만이 안다)
어둡고 거친 마음과 대립하지 않는 것,
마음을 사라져야 할 대상으로 보지도 않으며.
일어나고 사라지는 마음을 지켜보는 것
그것이 누구에게 일어나는가?
스스로 참구하는 것
침묵의 바닷속에서..............
사경을 한 후 반야심경이나 경전을 읽으면
이젠 논리로 해석으로 눈으로 뜻으로도 읽지 않는다
보노라면 가슴이 가득한 것
근원의 어머니 같은 편안한 것
어찌 말로 표현하랴
반야지로 가는 수레를 타는 것.............................
청곡 ()
출처: 다음 나무아미타불 카페(cafe.daum.net/amtb) 청곡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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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다음 카페 미주현대불교 (cafe.daum.net/mobuddhism) 어지리님 글
()()().......반야심경을 매일 49편씩 외우면 한시간 정도 됩니다.
금강경의 속편이라고하는 이 경을 외우고 ...꿈에 관세음보살님<키크고 단정하고 순수한 미인>이 나오셔서 어려운 일을 해결해주시고....열심히 하라는 격려도 한답니다.
하루에 지극정성으로 한시간만 외우면....업장소멸도 되고 소원도 이루어집니다.
우룡 큰스님 법문중에서
일본 사람인데 반야심경을 아주 열심히 그리고 정성껏 독송한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이 워낙 열심히 반야심경을 외다보니 어느 새 반야심경 독송 100만독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즈음 어느 날 불보살님의 목소리인지 하늘에서 크게 들려오더랍니다. "네가 그렇게 반야심경을 열심히 외우니 너에게 영가천도의 능력을 주겠다."라고 하시더라는거예요.
과연 그 말씀대로 그 분은 반야심경 열심히 외운 공덕으로 영가천도의 법력을 얻어서 다른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 영가천도재를 많이 집전하고 열심히 반야심경 외우고 기도하고 남을 많이 도우면서 살아가신다고 합니다.
벽운사 지산스님 법문 (급한 위기땐 이 경전을 외우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YKEwjeSXHAM
짧은 이 경전의 위력 ! 갑자기 닥친 위기엔 이 경전을 외우세요
위기에 빠지면 외우세요 분초를 다투는 위험이 닥쳤을 때 짧고 확실한 경전을 외움으로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는 경전 !위기엔 경전을 외우세요신앙이란 삶의 지표입니다 신앙을 과학의 잣대로 볼 수 는 없는 것 입니다 "아함경" : “사람이 신앙심이 없다면 사공없는 배를 타는것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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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스님 법문 소나무 반야심경과 부처님의 가피
https://www.youtube.com/watch?v=f8kSxVgMJac
[BTN불교TV]광우스님의 소나무 18회. 반야심경과 부처님의 가피
방송 시간 : 매주 수 07:30, 22:00 / 토 22:00 / 일 07:30소중한 나, 무량한 행복. 소나무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는 목표는 무엇일까요. 행복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행복해지기를 원합니다. 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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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 기도가피 사례법문(광우스님)
https://youtu.be/6KqghJ1I_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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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학스님 유튜브 법문- 신중단에 왜 반야심경을 외우나?
https://www.youtube.com/watch?v=Bkje9lLh2eM
[불교] 우학스님 생활법문 (신중단의 상식)
『신중단의 상식』① 신중단에 반야심경을 외우는 이유② 신중단에는 절을 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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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 [법상스님의 반야심경과 마음공부 1회] - YouTube
반야심경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 [법상스님의 반야심경과 마음공부 1회]
반야심경은 반야경전의 중심사상을 270자로 함축하여 서술한 경전입니다. 또한 초기 불교 부처님 교리를 담은 경전이죠. 그만큼 불자들에겐 매우 중요합니다. 일체중생들의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을 바라신 부처님의 말씀이 담긴 반야심경.반야심경을 주제로 법상스님의 말씀 들어봅니다.#반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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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광스님-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가피를 빠르게 받고싶다면 이 짧은 경전(반야심경)을 매일 읽으세요.
https://youtu.be/I1QJGH4Q0b0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 가피를 빠르게 받고 싶다면 이 짧은 경전을 매일 읽으세요!
어려움에 처해있을 때가피를 빠르게 받고 싶다면이 짧은 경전을 매일 읽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