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안개 자욱한 가을 들녘에,
후여 !
후여 !
살아있는 허수아비가 새를 쫓는다.
멀리서 보면 허수아비 같고,
가까이서 보면 작은 소녀들인데~
고즈넉한 새벽에 이슬 젖은 나락을 헤치고,
일 년 농사 알곡을 파먹는 참새들을 쫒는다.
새가 나는지,
소녀들이 날고 있는지,
참새만 한 것들이 참새를 쫒느라
날듯이 뛰면서 새들을 훌쳐낸다.
도시로 이사 간 아들네 살림 밑천 대느라
군뜰 언덕배기에 겨우 논 한떼기 남은 것을,
염치없는 참새들이 다아 까먹네.
새벽녘 눈곱 덜 떨어진 눈을 비비며
옥이언니를 따라온 화야도
언니만큼 크게 목청 돋우어 소리 지른다.
후여!
후여!
고지박 딱딱!
수박 딱딱!
후여!
후여!
이른 봄부터 주름지고 힘없는 갈퀴 손으로
모심고 물데느라 이골이 진 우리 할머니는,
도회지로 간 아들네 하얀 이밥 먹이고 싶은 욕심에,
볍씨 한알도 참새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는지
날이 새기 전에,
어린 손녀들 깨워서 들녘으로 보낸다.
눈 비비고 일어나는 착한 맏손녀가 애처로운지,
다섯 살 아래인 화야도 딸려 보낸다.
언니 치마 자락 붙들고 말없이 졸졸 따라가는
어린 동생을 옥이언니는 딱 저만큼만 업고 간다.
식전에 연약한 소녀는 또 무슨 힘이 있으랴!
새들도 잠이 덜 깬 고요한 새벽에,
"탁탁"
저 멀리 들판에서 막대 치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이슬이 하얗게 내린 풀섶을 헤치고
몇 달 전에 엄마를 저세상으로 보낸
이웃집 경자언니가 두 살배기 동생을 등에 업고 먹개구리를 잡는다.
초등학생 경자언니는,
오랜 산후병으로 엄마가 돌아가시자
그 어린 동생마저 보내고 싶지 않아서인지
잡아온 먹개구리 푹 고아서 가녀린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었다.
어린 아가는 엄마의 참젖이 그리웠는지
지극정성 누나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몇 달 후,
뒷산 수채골짝 무덤이 되어 마을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엄마 잃고 동생 잃은 경자언니네는 제일교포 부자삼촌을 따라
멀리 도회지로 이사를 했고,
마을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가느다란 목소리 길게 뽑으며 새들을 호령하던 친언니는,
구천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이 계시는 안동에서
하얀 교복을 입은 중학생이 되었고,
혼자 남은 화야는 더 이상 새 쫓으로 가는 일은 없었다.
조용한 마을에 새벽공기를 타고 들려오던
경자언니의 막대소리가 멈추어지자,
마을 사람들은 비로소 걱정한숨 덜었고,
도회지로 떠난 경자 언니네가
잘되기를 빌고 또 빌었을 것이다.
추석날 귀향길에,
누렇게 출렁이는 가을 들녘을 바라보면
새 쫓는 작은 소녀들의 외침이 들려오고,
먹개구리 잡느라 풀섶을 "탁탁" 치는
경자언니의 막대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후여!
후여!
날듯이 뛰면서 참새들을 쫒던,
살아있는 허수아비들은
이제 나의 캔버스에서 부활을 기다리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맑은 그림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