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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회]
상대에게서 마교의 정예 중 하나인 흑우의 채취를 느끼다니.......
백용후는 잠시 자신이 착각했다고 생각했다.
흑우는 그의 숙부인 서종도가 심혈을 기울여 조련시킨 살인귀들로, 오직 마교에만 존재하는 비전으로 조련시켰다 했다.
때문에 그들의 비전이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순간, 신황 역시 서도문 등을 보며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다.
‘분명 예전에 아버지가 멸문시킨 그곳에 저 비슷한 것이 있다고 들었는데.......’
어젯밤 흑우와 백무의 격돌을 봤을 때부터 신황의 머릿속에서는 한 가지 가정이 맴돌고 있었다.
‘설마........’
그의 안색이 무거워졌다.
만약 그의 가정이 맞는다면..........
꿈틀!
“..............”
순간 그의 몸에서 스산한 기운이 넘실거렸다.
단지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주변으로 살기가 뻗치고 있는 것이었다.
‘이 보게! 진정하게.’
그때 적엽진인의 전음이 신황의 정신을 일깨웠다.
“음?”
순간 신황은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 다시 본래의 얼굴을 되찾았다.
“휴우..........!”
“음!”
그제야 그의 주위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신황은 근처에 있던 무인들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순간적으로 그의 몸에서 너무나 강하게 풍겼던 살기 때문이다.
잠시 동안 신황의 몸에서 풍겨 나왔던 살기, 그 지독한 살기에 그의 주위에 있던 무인들이 심혼을 옭아맸던 것이다.
만약 적엽진인이 제때에 전음을 보내 정신을 일깨워주지 않았다면 그들은 내상을 입었을지도 몰랐다.
그제야 점창파와 청성파의 무인들은 신황이 왜 명왕(冥王)이라 불리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살기만으로 심혼을 옭아맬 수 있는 존재, 그것이 바로 신황인 것이었다.
존재감이 달라졌다. 이제까지 덩그러니 혼자 앉아있던 신황이었기에 약간은 우습게 봤는데 조금 전의 사건을 계기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신황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이다.
이제는 그가 혼자 가운데 앉아있는 것이 거북스러워졌다.
그때 적엽진인이 다시 전음을 보내왔다.
‘무슨 일인가? 그렇게 살기를 내뿜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실수했습니다.’
‘조심하게!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자네의 살기에 심장이 멎을수도 있으니.’
그의 말에 신황이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서 살기 따위에 심장이 멎을 만큼 약한 사람이 있습니까?’
‘아! 그런가?’
그제야 적엽진인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모두 절정의 무인들만 있는 자리다. 하나도 만만히 볼 수 없는 자들이 모인만큼 약간의 타격은 있을지 모르지만 큼 충격을 받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적엽진인과 전음을 나눈 신황은 다시 눈빛을 빛내며 비무대를 바라보았다.
이미 격전이 시작됐다.
서문수는 양의검을 펼쳐 동철산을 압박해나가고 있었다.
양의검의 오의를 부드럽게 풀어나가는 서문수의 모습은 과연 명가의 제자라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단아한 모습이었다.
그런 서문수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동철산의 도는 무척이나 거칠었다.
낭인의 도였다. 황야에서 익힌 무공, 명문의 무공이 아니었지만 자신만의 특색이 살아있는 도였다.
‘과연 결선에 오를만한 실력.’
몇 번 검을 섞고 서문수는 동철산을 경시하던 마음을 버렸다.
손아귀가 쩌릿한 것이 상대는 자신 못지않은 내력을 갖고 있었다. 낭인으로 이정도의 실력을 쌓기란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용케 이정도의 실력을 닦았다.
하지만 감탄하는 것도 잠시, 서문수는 곧 양의검의 절초를 부드럽게 풀어내기 시작했다.
차차창!
검과 도가 부딪치며 불꽃이 튀었다.
‘그래도 정신은 차린 모양이군.’
적엽진인은 제대로 양의검을 풀어내는 서문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결선에 오른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낭인의 실력으로 양의검을 막아내기는 힘들 것이다.
지금 당장은 팽팽하게 접전을 펼쳐나갈지 모르지만 잠시만 시간이 지난다면 서문수가 무리 없이 이길 것이다.
적엽진인은 서문수에게서 시선을 돌려 신황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신황은 예의 무심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비무대를 향해 있지 않았다.
적엽진인의 시선이 신황의 시선을 따라갔다.
‘백용후.......? 둘이 아는 사이인가!’
그가 중얼거렸다. 적엽진인은 아직 백용후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
서문수와 동철산의 비무는 예상대로 서문수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생각보다 고전을 하기는 했지만 서문수는 무리 없이 동철산을 이길 수 있었다.
동철산은 분전했지만 혼자 익힌 도로 서문수의 양의검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명문이 무섭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서문수와 동철산의 대결이 일찍 끝난 덕분에 백용후와 냉한수의 대결이 빨리 시작됐다.
두 사람이 비무대에 오르자 무대가 꽉 차 보였다. 배용후와 냉한수, 두 사람이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커다란 덩치를 가졌기 때문이다.
제갈문이 짤막하게 그들에 대해 소개를 하고 내려간 후, 두 사람이 마주섰다.
“드디어 만나게 됐군.”
냉한수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전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그 목소리에 백용후이 미간이 찌푸려졌다.
“날 알고 있나?”
“당연하지, 백용후. 후후후!”
그가 음산한 웃음을 나직이 토해냈다. 그 순간 유리알같이 투명하던 그의 눈동자에 기이한 열기가 떠올랐다 순식간에 사라졌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너 때문이라면 믿겠나? 난 평생 오늘을 기다렸지.”
“네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그게 무슨 말이지?”
“후후! 그렇게만 알아둬. 곧 이유를 알게 될 테니까.”
“너.........”
냉한수는 알 수 없는 의미의 말을 한 후 예의 음산한 웃음을 지었다.
백용후는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다 고개를 꺾었다.
뚜둑, 뚜두둑!
뼈마디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그가 그렇게 몸을 풀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얼굴은 본래의 표정을 회복하고 있었다.
“그딴 말로 내 마음을 흔들어 놓으려 했다면, 상대를 잘못 골랐다.”
“크큭! 과연 그럴까?”
“그 웃음,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군.”
말과 함께 백용후가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쿠~웅!
그가 발을 내딛자 비무대가 요란하게 흔들렸다. 가공할만한 진각이었다.
그러나 냉한수는 음산한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눈에는 곧 붉은 기운이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우두둑!
그의 주먹에서 콩 볶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백용후의 절기는 권이었다. 그리고 냉한수의 절기도 권이었다.
또한 덩치도 비슷했다. 때문에 그들의 대결에 군웅들은 그 어느 때보다 흥분을 했다.
“시작해라.”
“와아아아!”
어지러운 함성이 일어나는 순간 그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쩌~어~엉!
그들의 주먹이 동시에 부딪쳤다.
콰득!
무언가 부러지는 느낌이 주먹을 통해 백용후에게 전해졌다.
보기에도 끔찍하게 냉한수의 주먹에 하얀 뼈가 살갗을 뚫고 튀어나왔다.
단 한 번의 격돌로 냉한수의 주먹 뼈가 조각조각 부서져버린 것이었다.
백용후가 익힌 패천권은 아직 마교에서도 제대로 익힌 이가 한명 없는 무공이었다.
극강한 위력도 위력이지만, 익히는 과정이 너무나 고되고 고통스러워 감히 누구도 익힐 엄두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패천권을 익히면 두 주먹이 금강석보다 단단하게 변한다. 때문에 별다르게 기를 운용하지 않아도 어지간한 무기로는 흠집도 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방금 전의 주먹질 역시 특별한 초식을 운용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마주 주먹을 뻗은 것뿐이다. 그런데도 냉한수의 주먹 뼈가 산산조각 나버렸으니, 패천권의 위력이 어떤지 쉽게 짐작이 가지 않았다.
“크큭! 과연 대단하군! 단 한 번의 격돌로 이 모양이라니. 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냉한수가 부러진 오른 주먹을 흔들며 광기를 흘려냈다.
뼈가 튀어나온 자신의 주먹을 흔드는 모습은 왠지 모를 공포를 주위에 심어 주었다. 제정신이 박힌 자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이죽거릴 수 있나 보자.”
말과 함께 백용후가 강하게 바닥을 울리며 냉한수에게 쇄도했다.
콰아아~!
그의 주먹에 검은빛이 희미하게 어렸다. 그것은 너무나 희미해 멀리 떨어진 군웅들의 눈에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단지 무언가 뿌옇게 보일 뿐이었다.
패천권(覇天拳)의 첫 번째 초식인 붕산멸(崩山滅)이라는 초식이었다.
엄청난 기세로 날아오는 백용후의 주먹, 그렇지 않아도 솥뚜껑만한 그의 주먹이 더욱 커보였다.
비록 희미했지만 백용후의 주먹에 어린 기운은 이름만큼이나 패도적이었다.
붕산멸이라는 이름처럼 산을 뭉개고 가루로 만들어 버릴 만큼 미증유의 힘을 간직한.
“크크큭! 그래야지. 그래야 내 생명을 바칠 보람이 있지.”
자신에게 날아오는 주먹을 보면서도 냉한수는 웃음을 지었다.
그저 웃는 모습이었지만, 그 광경을 본 중인들의 가슴에는 왠지 한 줄기 찬바람이 할퀴고 가는 것이 느껴졌다.
“멸염화(滅炎火), 육도천하(六道天下).”
한 줄기 외침과 함께 냉한수의 멀쩡한 왼손에서 강기의 회오리가 일어났다.
마치 악령의 손톱처럼 휘몰아쳐 오는 강기의 회오리, 그것은 곧 백용후의 온몸에 휘몰아쳤다.
콰~아~아!
붕산멸과 육도천하의 초식이 허공에서 격돌했다.
위이잉!
격돌의 여파로 멀찍이 떨어져있던 사람들에게까지 돌개바람이 몰아쳤다.
콰지끈!
백용후의 주먹이 강기의 회오리를 뚫고 냉한수의 옆구리에 처박히며 갈비뼈가 송두리째 부러지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커헉!”
냉한수의 입이 자신도 모르게 벌어지며 선혈을 토해냈다.
백용후의 얼굴로 고스란히 쏟아진 선혈, 하지만 그것은 일반 사람들하고는 틀렸다. 일반 사람들의 피가 붉은색인데 반해 냉한수의 피는 녹색인 것이었다.
냉한수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육도천하의 가공할 초식에도 불구하고 백용후의 몸에는 어떤 이상도 없기 때문이었다.
느낌으로 보아 오른쪽 옆구리의 갈비뼈가 송두리째 부러진 것이 틀림없었다. 부러진 뼈가 벌써 패를 찔러 숨을 쉬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었다.
백용후의 눈이 살벌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우웅~!
그의 반대편 주먹이 냉한수의 왼쪽 옆구리를 노리고 다시 들어왔다.
그에 냉한수는 급히 물러나며 멸염화의 다른 초식을 펼치려 했다. 그러나 그가 채 내공을 끌어올리기도 전에 백용후의 주먹이 작렬했다.
콰지끈!
또다시 섬뜩한 파열음이 울리며 냉한수의 왼쪽 옆구리가 움푹 함몰됐다.
“크아!”
다시 냉한수의 비명이 터지면서 녹색의 선혈이 백용후의 얼굴에 튀었다.
“감히 날 상대로 도발하다니, 그 죄는 죽어 마땅하니!”
백용후의 주먹이 몸 뒤로 곧게 뻗었다. 이에 그의 손에 다시 검은 기가 몰리기 시작했다.
이미 냉한수는 다른 초식을 펼칠 기력도, 정신도 없어 보였다.
그의 몸은 무방비, 그 자체였다. 백용후의 공격 단 두 방에 모든 전력을 상실한 것이다. 그만큼 백용후의 주먹은 가공했다.
하지만 백용후는 보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비칠거리고 있는 냉한수의 입가에 떠오른 웃음을.
‘나의 죽음으로 대계(大計)는 시작되니.........’
콰~아~앙!
냉한수의 몸에 다시 백용후의 붕산멸이 작렬했다.
콰콰쾅!
순간 냉한수의 등짝이 송두리째 터져나가며 하얀 뼛조각과 녹색 피가 허공으로 비산했다.
백용후는 녹색의 혈우를 고스란히 온몸으로 맞았다. 그 잔인한 모습에 군웅들이 고개를 돌리며 외면했다.
이번 대회 첫 번째 나온 살인이었다. 그것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인한...........
스스스~!
백용후의 몸에 뿌려졌던 녹색의 피는 곧 하얀 김을 내며 증발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것이 왠지 마음에 걸렸으나 몸에는 이상이 없기에 백용후는 신경을 쓰지 않고 비무대를 내려왔다.
‘나의 앞길을 막는 자, 모조리 죽일지니.’
냉한수는 강했다. 그러나 백용후는 그에 비할 수 없이 더욱 강했다.
그는 냉한수가 무엇 때문에 자신을 도발했는지 관심이 없었다.
죽이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는 어떤 짓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림인들끼리의 비무이다 보니 살인도 용납이 됐다. 때문에 강호에서 비무 중에 죽는 일은 그야말로 허다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잔혹한 죽음은 그 누구도 경험이 없었기에 판정을 내려야할 심판관도 넋이 빠졌다.
그 사이 백용후는 자리를 벗어나 유유히 사라졌다.
관람대에 있던 무림의 명숙들 역시 이 잔인한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아니, 무슨 무공이 사람을 터트린단 말인가?”
“어떤 무공이기에....., 혹시 마공이 아닌가?”
하지만 마기는 느끼지 못했는데.......“
사람들이 백용후의 무공을 두고 우왕좌왕했다. 그러나 생전 처음 보는 백용후의 무공이 무엇인지 그들은 절대 알 수 없었다.
‘무량수불, 저런 패도적인 무공이라니.’
적엽진인이 자신도 모르게 도호를 외웠다.
이제까지 수많은 무공을 봐온 그이지만 저렇게 패도적인 무공은 본적이 없었다. 그나마도 최선을 다한 것 같지도 않은 결투였다.
‘문수가 그와 부딪친다면 위험하다. 저자는 문수가 감히 상대할 수준이 아니다.’
그는 서문수가 걱정이 되었다.
자신의 사손인 서문수가 강하기는 하지만 백용후는 그와는 수준이 다른 자였다.
적여진인의 시선이 자신도 모르게 신황을 향했다. 혹 신황이라면 백용후에 대해 알까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나 신황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모두 냉한수를 죽인 무공에 경악하고 있었지만 그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째서...........’
신황이 보기에 냉한수는 스스로 자살을 택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도발을 할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도발 뒤에 대응을 보면 자신이 갖고 있는 힘조차 제대로 쓴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더구나 녹색의 피라니...... 사람의 피가 어찌 녹색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는 일련의 사건들이 무언가 석연치 않음을 느꼈다.
신황이 관람대를 나간 후 무대가 치워졌다.
무대를 치우는 사람들은 바닥에 널브러진 냉한수의 시신을 치우며 올라오는 토악질을 참느라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러게 무대가 치워지고 다시 비무가 시작됐다. 그러나 조금 전에 너무나 충격적인 장면이 나왔기에 관심은 시들해졌다.
혁련혜 역시 조금 전의 장면에 엄청난 충격을 느꼈는지 제대로 힘도 못써보고 탈락당해야 했다.
그렇게 그날의 충격적인 비무는 모두 끝났다.
그러나 사람들은 한동안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들의 뇌리에 박힌 백용후의 인상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무림맹주 백무광은 모든 비무가 끝난 후 자리에서 일어나며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날씨가 무척 좋군.’
그의 말처럼 무척이나 화창한 날씨였다. 붉은 피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혈뢰옥의 위에 자리한 건물로 들어가는 것은 혁련후에게 있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무인들이 철통같이 경계를 섰지만 혁련후는 그들의 눈을 속이고 가볍게 안으로 숨어들 수 있었다.
혁련후는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대지의 균열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의 눈앞에 보이는 균열이 바로 혈뢰옥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마치 호리병처럼 안으로 들어갈수록 공간이 넓어지고, 또한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깊기에 한 번 들어가면 절대 나올 수 없다고 알려진 곳이었다.
‘그러나 나한테는 해당 없는 이야기지.’
혁련후는 품에서 은색으로 빛나는 실 뭉치를 꺼냈다.
일반적인 밧줄이라면 이곳의 경계를 서고 있는 무인들에게 금방 발각되겠지만, 이것이라면 그럴 걱정이 없었다.
혁련후가 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천잠사로, 강하기가 쇠에 못지않고 유연하기는 일반 실 뭉치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또한 들고 있는 한 뭉치에 길이가 백장이나 되니, 이런 종류의 잠입에는 딱 알맞은 도구였다.
‘어디.....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한 번 보자고.’
혁련후는 천잠사의 끝을 입구에 구르고 있는 거대한 바위에 묶은 후, 끝이 보이지 않는 혈뢰옥을 향해 내렸다.
그 후 망설임 없이 천잠사를 붙잡고 혈뢰옥의 지저를 향해 미끄러져 내렸다.
혈뢰옥의 지하는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곳곳에 횃불이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혁련후가 날카로운 눈으로 혈뢰옥의 내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거대한 지하 공동에 인공 구조물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혁련후가 생각했던 것처럼 그렇게 음산하다거나 칙칙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상에 존재하는 무림맹의 건물보다 더 아름답고 회사해 보였다.
“이것 참! 혈뢰옥에 이런 구조물이 존재하다니........”
혁련후는 눈앞에 서 있는 거대한 구조물을 보며 입을 벌릴 수 밖에 없었다. 누가 지하에 이런 거대한 구조물이 있다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백무광, 이거 더 의심이 가는 걸?”
혁련후는 나직하게 중얼거린 후 구조물을 향해 몸을 날렸다.
건물에는 특별히 경비가 세워져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진을 펼쳐놓은 것도 아니어서 혁련후는 수월하게 구조물의 내부로 숨어들 수 있었다.
구조물의 내부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도 더 거대했다.
수백 명의 인원이 한꺼번에 연무를 해도 될 정도로 거대한 광장과, 곳곳에 보이는 훈련 시설, 그것은 일반적인 무인들이 훈련하는 그런 시설이 아니었다.
일반 무인들이 잠입이나 추적 같은 것을 배우는 일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혁련후의 눈앞에 보이는 시설은 그런 것들이었다.
“어제 그 살귀들이 이곳에서 훈련을 받은 녀석들이겠군.”
그는 어젯밤에 본 백무와 흑우를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이정도 규모의 시설이라면 그들을 키워내기에는 충분할 것이었다.
혁련후는 날카로운 눈으로 구조물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하지만 구조물 어디서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이 존재한다면 어딘가에 사람의 흔적이 느껴져야 하는데, 지금 이곳에는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다.
“이곳을 떠난 것인가?”
하지만 혁련후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런 거대한 구조물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짓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의 돈과 물자가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간 곳을 쉽게 버리고 떠날 리가 없는 것이다.
한참을 돌아보던 혁련후는 이곳의 구조물들이 중원 거대문파의 건물 내부를 그대로 옮긴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소림, 무당, 화산은 말할 것도 없이 하다못해 자신의 거처까지 그대로 재현되어 있는 것이었다.
구대문파와 오대세가의 수장들이 머무는 거처를 완벽하게 재현해낸 그 모습에 혁련후는 기가 막혔다.
“이놈들!”
그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이런 장소에서 살귀들을 키워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무림제패, 이들은 무림제패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이런 시설을 만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확실한 증거를 잡은 이상 더는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혁련후는 급히 몸을 돌렸다.
“구경은 잘 하였는가?”
흠칫!
갑자기 들려온 낯선 목소리에 혁련훈가 놀랐다.
바로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데도 여태껏 자신이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등 뒤에 적이 접근할 때까지 느끼지 못하다니, 그는 불길함을 느꼈다.
혁련후는 서서히 몸을 돌렸다.
뒤로 돌아보자 세 명의 노인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수염에 온화한 인상을 가진 노인들.
그러나 그들을 보는 혁련후의 눈빛은 그리 편치 않았다. 자신의 이목을 숨기고 세 명이나 그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미 절대자의 반열에 오른 지 오래인 혁련후였다.
그런데도 그의 이목을 속일 수 있다는 것은 세 노인의 능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당신들은 누구요?”
혁련후가 질문을 했다. 그러자 선두에 있는 노인이 온화하게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우리가 누군지 알아서 무얼 하려고 그러는가?”
“이곳에 이런 시설을 지은 의도는?”
“흘흘! 뭐, 다 알면서 물어보는가? 이미 자네도 짐작하고 있을 텐데.”
“그럼........!”
노인은 자신들의 의도를 굳이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혁련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감히 나에게 대적하겠다는 의미인가?”
“흘흘! 확실히 마도의 절대자라는 마선(魔仙)이면 나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지. 하지만 우리 셋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혁련후의 강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노인의 얼굴에 어린 웃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륙십강의 수위에 있는 마선의 존재를 알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 노인, 그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혁련후의 미간이 찌푸려질 때 노인이 예의 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 이젠 우리도 세상에서 거의 잊혀졌을 게야. 자네는 기억하고 있나? 삼태상(三太上)이라는 명호를.......”
“삼태상? 설마........!”
노인의 말에 혁련후의 얼굴에 경악하는 빛이 떠올랐다.
삼태상(三太上), 천마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마물들이다. 천하가 좁다하고 횡행하며 세상을 어지럽혔던 강자들.
항상 셋이 뭉쳐 다녔는데, 당시 소림의 초고수인 성허대사와 백팔나한진이 나서서 겨우 무공을 전폐하고 유폐를 시켰다는 말이 있었다.
“그럼 당신들을 유폐했다는 곳이 바로 이곳?”
“흘흘! 맞네. 이 지옥 같은 곳에 유폐된 시간이 무려 백 년이네. 그리고 참고로 말해주겠는데....... 우리는 이미 모든 무공을 회복했다네.
아니, 더욱 발전을 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게야. 그러니 자네를 상대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거네.”
“확실히 삼태상이라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지. 하지만 난 혁련후다. 마도의 절대자가 바로 나다.”
혁련후가 오연히 말했다.
비록 삼태상이 자신보다 한 세대 앞서 이름을 날린 고수들이지만 그는 결코 위축되지 않았다.
노마물들이 백 년이란 세월동안 얼마나 발전했을지 모르지만 그는 자신 있었다.
그는 믿었다. 자신과 자신의 독문무공인 마라삼천겁수(魔邏三天劫手)를.자신감 있는 혁련후의 모습을 보며 삼태상의 첫째인 소오노조(笑娛老祖)가 웃음을 지었다.
“나도 자네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이야기는 들었네. 그래서 준비를 조금 더 했지. 이정도면 자네를 실망시키지 않으리라고 보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흰 그림자들이 구조물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살귀들.........”
그 모습을 보며 혁련후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자신을 둥글게 둘러싸며 모습을 나타내는 하얀 복장의 귀면탈을 쓴 인형들, 그들은 그가 어젯밤에 그토록 궁금하게 여겼던 백무였다.
그의 생각대로 백무의 본거지가 바로 이곳 혈뢰옥이었던 것이다.
삼태상중의 둘째인 혈발사신(血髮死神)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우리가 그대로 활동을 했다면 넌 결코 마도의 절대자라는 허명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부터 그것을 증명해 보이겠다.”
순간 삼태상과 백여 명이 넘는 백무가 지독한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노마물,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혁련후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광오하게 소리쳤다.
그런 혁련후의 모습에 삼태상의 얼굴에 서린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홍염화와 혁련혜는 같은 자리에 누워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같은 방에 있는 두 개의 침대를 각자 차지하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그리 가볍지 않은 부상을 당했기에 초관염이 진맥하기 편하도록 한 방에 몰아넣은 것이다.
“흥!”
“쳇!”
그러나 정작 두 여인은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연신 콧웃음만 날렸다.
“휴~!너희들이 왜 그리 사이가 나쁜지 모르겠지만, 이제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 내 정신이 다 산만하구나.”
“...........”
보다 못한 초관염이 한마디 하였지만 두 여인은 대구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초관염은 고개를 흔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끄응! 내 너희들하고 같이 있다가는 그나마 얼마 남아있지 않은 수명이 더욱 짧아지겠구나.
침도 놓고 약도 미리 지어놨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먹거라. 난 이만 내 거처로 넘어가련다. 무이는 이곳에서 언니들을 잘 돌봐 주거라.”
“네! 할아버지.”
초관염의 말에 무이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고개를 절래 젓는 초관염과 반대로 무이는 무척이나 신이 난 표정이었다.
이곳은 다름 아닌 혁련혜의 거처다. 이제까지 무이는 팽가의 식구들과 신황의 거처에서 같이 지내왔다.
사람들하고 같이 어울리는 것은 좋았지만, 아무래도 자유롭게 지내는 데는 많은 제한이 있었다.
그것이 늘 아쉬웠는데 오늘 혁련혜의 널찍한 거처에서 하룻밤을 보낼 것을 생각하니 신이 절로 나는 것이었다.
초관염은 웃음을 짓는 무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걸음을 옮겨 밖으로 나갔다.
“언니, 물 좀 갖다 줄까요?”
무이가 싱글싱글 웃으며 홍염화에게 말했다.그러자 혁련혜가 먼저 대답을 했다.
“나도 부탁해!”
“네!”
순간 홍염화의 이마가 치켜 올라갔으나 곧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응! 찬물 좀 갖다 둬.”
“알았어요.”
무이가 씩씩하게 대답을 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그때 홍염화가 무언가 생각난 듯 무이의 등 뒤에 소리쳤다.
“무이야! 신가가는?”
“밖에서 무공 수련해요.”
무이가 뒤도 안돌아보고 대답했다. 그리고는 곧장 문을 닫고 우당탕 뛰어나갔다.
“으음!”
닫힌 문을 바라보며 홍염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신황은 이곳에 와서도 오직 무공 수련이었다.
처음에 그녀들을 이곳에 데려왔을 때만 얼굴을 내밀었을 뿐, 그 다음부터는 계속해서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다.
“휴우~!”
“왜 또 한숨이야?”
“내버려둬. 난 한숨도 못 쉬냐?”
“쳇!”
또다시 혁련혜가 시비를 걸었다.
하지만 홍염화는 그녀를 무시했다.
무림맹에 들어온 직후부터 사사건건 부딪쳤던 그녀들이다.
그녀들이 신경을 겨루는 대상인 신황은 들어오지도 않는데, 앞으로 며칠 동안 계속해 같이 있을 생각을 하니 절로 한숨이 나왔다.
만약 무림맹이 어수선하지 않았다면 신황이 이곳으로 와 그녀들을 지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나마도 무이가 없었다면 이곳에 왔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러니 한숨이 더욱 짙어질 수밖에.
“둘 다 비무에서 가을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지다니.”
“휴우~!”
“한 사람도 못 올라가고 이게 무슨 꼴이야.”
“에휴~!”
자꾸만 한숨이 나왔다.
원래대로라고 한다면 둘이 같이 맞붙어 멋있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하는데, 둘 다 처참하게 깨지고 말았으니.
“근데 그놈들, 누구지? 낭인의 무공이 그 정도 수준이라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아.”
혁련혜가 자신과 싸웠던 하무위를 생각하며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마치 인형과 싸우는 기분이었다. 아무런 감정도 이성도 없는 인형과, 그것은 무척이나 섬뜩한 경험이었다.
어려서부터 마도문파에서 성장해 별의별 광경을 다 본 혁련혜였지만, 오늘과 같은 경험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혁련혜의 말에 홍염화도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몰라. 하필이면 그런 놈한테 걸려서........”
“휴~!”
그녀들의 한숨이 넓은 방 안에 메아리쳤다. 여러모로 쓸쓸한 방안이었다.
“그런데 아빠는 어디 간 거야? 하나뿐인 딸내미가 이렇게 아파하는데.”
혁련혜의 목소리가 창문 밖으로 세어 나갔다.
“큭!”
혁련후는 자신의 옆구리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고 말았다.
주르륵!
그의 옷을 타고 흘러내리는 붉은 선혈.
그의 옆구리에 바람구멍을 만들어놓은 백무의 일인은 이미 머리가 수박처럼 깨져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바람구멍 하나에 목숨을 바꿨다면 분명 혁련후가 이득인 장사였다.
그러나 백무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아깝게 여기지 않았다.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 혁련후의 몸에 상처를 하나 아로새긴다면 그것으로 만족해하는 것 같았다.
머리가 수박처럼 부서져 나가도, 팔 다리가 끊어져 바닥을 나뒹굴어도, 그들은 악착같이 혁련후에게 덤벼들었다.
자신의 목숨을 도외시하는 자들만큼 무서운 사람은 없다. 그런 자들을 상대하려면 마찬가지로 목숨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지금 이 자리에는 그런 자들의 수가 백이 훨씬 넘었다.
혁련후의 가슴에 찬바람이 불었다.
아직 삼태상은 전투에 참여를 하지 않고 있었다. 저들은 조용히 혁련후가 지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간다면 저들의 수에 말리고 말 것이다.’
혁련후는 조용히 자신의 절기인 마라삼천겁수(魔邏三天劫手)를 끌어올리며 중얼거렸다. 오래 끌면 그가 불리했다.
쉬쉬쉭!
사방에서 하얀 그림자들이 그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화르륵!
혁련후의 손이 불길에 휩싸이는 듯한 환상을 만들어냈다.
그의 손을 허공으로 들어올렸다. 마치 타오르는 듯한 불꽃모양을 한 그의 손가락. 순간 혁련후의 입에서 대갈이 터져 나왔다.
“챠핫! 마마강림(魔魔降臨)!”
눈부신 빛이 혁련후의 손에서 일어나며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동시에 마치 유부에서 흘러나오는 악령의 울음소리처럼 소름끼치는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키이이이~!
“.............”
잠시간의 정적 후 놀라운 광경이 드러났다.
투투툭!
힘없이 떨어져 내리는 육편들, 모두가 혁련후에게 달려들던 백무였다. 혁련후에게 쇄도하던 열다섯 명이 이 한 수에 모두 육편으로 화해 사라진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들의 동료가 한순간에 고깃덩이로 변했는데도 백무의 눈빛에는 변함이 없었다.
백무가 쉴 새 없이 다시 혁련후에게 벌떼 같이 몰려왔다.
순간 혁련후의 손이 거칠게 바닥을 내리찍었다.
콰~앙!
바닥을 뚫고 들어가는 혁련후의 손.순간, 그가 외쳤다.
“대마폭멸(大魔爆滅)!”
콰콰콰콰!
순간 엄청난 기가 몰리더니 그의 손이 박힌 바닥부터 사방으로 강기가 폭발해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화산이 터지는 듯한 광경.
“...........”
화염의 강기에 휩쓸린 수십의 백무가 다시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다.그대 삼태상이 움직였다.
“제법이구나. 하지만 네놈도 지쳤을 터.”
저렇게 엄청난 위력의 초식을 한정 없이 사용할 수 있다면 그야말로 절대무적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내력으로 저 정도의 위력을 낼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것이 삼태상의 노리는 바였다.
“선풍마련(仙風魔?).”
“천~참분시(千斬分屍).”
“파황경동(八荒傾動).”
그들은 각자의 절기를 펼쳐 혁련후를 공격했다. 백 년 전에 이미 흉명을 떨쳤던 그들이 각자의 절기를 발동하자 엄청난 풍압이 일어나며 혁련후를 압박했다.
동시에 섬뜩하게 일어나는 강기의 폭발. 그것은 마치 폭죽이 터지는 것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순간 혁련후의 몸이 하얗게 물들어갔다.
“마~령현세(魔靈現世).”
콰콰콰콰쾅!
극강의 초식들이 격돌하며 엄청난 충격파가 공동을 뒤흔들었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대지가 흔들리며 바위와 돌 부스러기가 떨어져 내리며 자욱한 먼지를 일으켰다.
잠시 후 먼지가 가라앉은 전경이 드러났다.
혁련후를 향해 달려들던 백무의 반 수 이상이 처첨히 짓이겨진 모습으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혁련후의 모습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그가 있던 자리에는 엄청난 양의 선혈자국이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여우같은 늙은이..... 어서 쫓아라!”
삼태상의 첫째인 소오노조가 이를 바득 갈며 소리쳤다.
격돌하는 순간 불리함을 느낀 혁련후가 어느새 몸을 날린 것이었다.
혁련후가 흘린 피의 흔적을 쫓아, 남은 백무와 함께 삼태상이 몸을 날렸다.
신황은 혁련혜와 홍염화가 누워있는 숙소의 후원에 홀로 앉아있었다.
방에서는 홍염화와 혁련혜가 끊임없이 토닥거리고 있었고, 무이가 꺄르르 웃음을 터트리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황은 그녀들의 소리를 한 귀로 흘려들었다. 그는 커다란 나무 밑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아까 낮에 보았던 비무를 생각하고 있었다.
결선에 오른 자들 중 동철산을 제외한 하무위, 서도문, 냉한수에게서는 비슷한 냄새가 났다.
어젯밤에 그가 보았던 자들의 냄새가.백용후도 그 사실을 눈치 챘을 것이다. 실제 그는 냉한수와 싸웠고, 또 처참하게 끝을 냈으니까.
그렇게 지근거리에서 싸워놓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분명 그 역시 무언가 눈치 챘을 것이었다.
‘문제는 그들이 왜 백형을 상대로 되지도 않은 도발을 하느냐 하는 것인데.......’
제아무리 그들이 백용후를 도발해도 그들은 절대 백용후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 점은 그들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백용후를 도발했다. 그것이 뜻하는 것은, 그리고 녹색피의 비밀은.........
신황의 상념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는 지금 한 가지 가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가정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연결 고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 연결고리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눈을 감고 생각을 했을까? 갑자기 신황의 눈이 번뜩 뜨였다. 이어 그가 벌떡 일어났다.
털썩!
그 순간 허공에서 붉은 물체가 후원에 떨어져 내렸다. 신황은 급히 떨어져 내린 물체를 향해 달려갔다.
“크헉!”
피를 토해내는 붉은 물체, 그는 다름 아닌 혈뢰옥에서 삼태상과 싸웠던 혁련후였다.
혁련후의 몸은 온통 붉은 선혈로 물들어 있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신황이 혁련후를 부축하며 물었다.
“자네가 왜 이곳에.........”
혁련후는 비칠거리면서도 신황의 팔을 뿌리치고 혼자의 힘으로 일어났다.
“어떻게 된 겁니까?”
“크윽! 좀 싸웠네.”
혁련후는 말을 아꼈다. 선지피를 쏟아낸 그의 안색은 마치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려있었다.
하지만 그는 신황의 도움을 받아 일어나는 것을 거부했다. 그것은 그의 자존심이었다.
백무에 이어 삼태상과의 연이은 격돌은 그에게 심각한 내상을 안겨주었다.
더구나 마라삼천겁수는 극강한 위력만큼이나 과도한 공력의 소모를 요했다. 때문에 지금 그의 내공은 태반이 유실된 상태였다.
“꼬리를 달고 왔군요.”
“젠장~! 이곳까지 추적해온 것인가?”
혁련후가 입가에 묻은 선혈을 닦아내며 중얼거렸다.
딴에는 추적을 따돌린다고 했는데 그들은 착실히 그가 남긴 흔적을 쫓아온 것이었다.
쉬쉬쉭!
그 순간 그들이 있는 별채 곳곳에 하얀 그림자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혁련후를 쫓아온 백무였다.
담장과 지붕을 빽곡히 메운 백무, 그리고 뒤이어 삼태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이 아깝구나, 혁련후. 도망쳐온 곳이 겨우 여기냐?”
삼태상 중 첫째인 소오노조가 혁련후를 보며 비아냥거렸다.
혼자라면 감히 혁련후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없겠지만 그의 곁에는 든든한 두 아우가 있었다. 또한 칠십 명이 넘는 백무가 있었다. 그러니 그가 무엇이 두려울 것인가?
“혜아와 아이들이 저 방에 있다고 했는가?”
“그렇습니다.”
혁련후의 물음에 신황이 무심한 눈으로 삼태상과 백무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이들을 지켜주게. 난 저 노마물들에게 빚이 있네. 자네가 아이들을 지켜준다면 난 그 빚을 갚겠네.”
“알겠습니다.”
신황은 두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진 빚은 스스로 갚아야 한다. 설령 힘이 모자라 차가운 대지에 몸을 누일지라도 말이다.
혁련후는 고맙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신황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주고는 홍염화와 무이가 있는 별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에 삼태상은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였다. 아직 새파랗게 보이는 애송이가 하는 행동이 어처구니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신황에게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생명체는 하나도 살려 둘 생각이 없기 때문이었다.
소오노조는 혁련후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미 혁련후는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오연하게 서 있지만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다리는, 그가 서 있기조차 힘들어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증거였다.
소오노조는 말없이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백무에게 소거명령을 내렸다.
“흔적을 지워라. 철저히..........”
“...........”
여전히 백무는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들의 눈빛이 빛났다.그때 마침 무이가 이상한 기척을 느꼈는지 문을 열고 나왔다.
“백부님, 밖이 왜 이렇게 시...........”
순간 무이의 눈빛이 얼었다.
이제까지 나이에 비해서 적잖이 험한 일을 겪었던 아이였다. 무이는 한눈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차렸다.
탁!
무이는 조용히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갔다.
비록 선혈을 흘리고 잇는 혁련후가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이 순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 들어간 것이다.
그것은 혹 자신 때문에 신황이 망설일지도 모른다는 걱정 아닌 걱정 때문이기도 했다.
신황은 조용히 별채의 입구를 막아섰다.
캬우웅!
그때 신황의 발밑으로 설아가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어느새 세로로 좁아진 설아의 눈동자, 별채를 감싸고 있는 살기를 느끼고 나온 것이었다.
신황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설아도 이제는 피의 성향을 많이 띄고 있었다.
평상시에는 권태로움의 극치에다 게으름뱅이였지만, 미묘한 살기라도 풍기는 날에는 설아의 신경도 날카롭게 곤두섰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훗~!”
신황의 입가가 자신도 모르게 말아 올려갔다.늘 이렇다. 어디에 있건, 무슨 일을 하건 자신의 곁에는 늘 피보라가 일어난다. 마치 그의 숙명처럼.
공교롭게도 지금 역시 그랬다. 자신이 이곳에 온 것을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이곳에서는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마치 운명의 신이 그의 운명에 피의 길을 안배해 놓은 것처럼.
문득 그의 입이 열렸다.
“이것도 운명이라면 정말 빌어먹을 운명이군. 하지만 피하지는 않겠어.”
크릉!
신황의 말에 설아가 동의한다는 듯이 나직하게 울음을 터트렸다. 곧이어 지독한 살기가 그의 몸에서 풍겨 나오기 시작했다.
팟!
그 순간 백무의 파상공세가 시작됐다. 검은 하늘 가득 하얀 그림자가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촤~아~앙!
신황의 장포가 고슴도치처럼 일어섰다.
혁련후의 앞에는 어느새 삼태상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이젠 백무의 도움 없이도 혁련후를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거리낌 없이 다가온 것이었다.
“흐흐! 그냥 혈뢰옥에서 얌전히 죽어줬으면 아까운 생명들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일이 없었을 텐데.”
소오노조는 별채를 향해 날아가는 백무를 보며 중얼거렸다.
그가 보기에 별채 안의 생명들은 모두 덧없이 사라질 운명이었다. 백무는 한 번 명령을 받으면 일점의 망설임도 없이 임무를 수행했다.
그들이 받은 명령은 이곳에 있는 생명체의 몰살. 그러니 홀로 서 있는 남자와 별채 안의 생명은 모두 피바다 속에 몸을 누일 운명이었다.
그러나 혁련후의 입가에는 진득한 미소가 어렸다.
“큿! 어리석은 늙은이들. 너희들이 여기가지 따라온 것은 내 실수가 분명하다. 하지만 너희들 역시 실수를 했다.”
“뭐?”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지. 제대로 싸워보자고. 이제야 홀가분해 졌으니.”
혁련후는 소오노조의 의문을 무시했다. 백무는 더 이상 자신을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신황이 그들을 막아줄 테니까. 그는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 남자였으니까.
그가 있어 혁련후는 삼태상과의 싸움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말해줄 필요는 느끼지 못했다.
의문스런 표정을 짓는 삼태상. 하지만 이내 그들은 흉흉한 살기를 터트렸다.
“감히 우리를 놀리다니....., 네놈을 천참만륙(天斬萬戮)시켜 주마!”
삼태상 중 둘째인 혈발사신(血髮死神)이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앞으로 나섰다.
그는 혈황마공(血皇魔功)이라는 상고의 마공을 익혀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붉은 머리가 무기나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아주 위험한.
파파팟!
갑자기 혈발사신의 머리칼이 혁련후를 향해 쏟아졌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미세한 머리칼이 혁련후의 전신을 뒤덮을 찰라, 혁련후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마마군림보(魔魔君臨步), 혁련후의 절기인 마라삼천겁수와 더불어 오늘날의 그를 있게 한 절기였다.
그것은 보법이었지만 각법이기도 했고, 신법이기도 했다.
휘익!
어느새 혈발사신의 뒤를 점유한 혁련후의 발꿈치가 무서운 기세로 혈발사신의 뒤통수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검붉은 기운이 감도는 혁련후의 발꿈치, 만약 이대로 작렬한다면 혈발사신의 머리는 수박처럼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었다.
“어딜!”
“감히~!”
그 순간 소오노조와 홍루귀가 싸움에 참여를 했다.
콰콰쾅!
순식간에 그들이 있던 자리에 강기의 회오리가 몰아쳤다.
일 대 삼의 처절한 격전.
그들이 펼치는 대결은 엄청난 굉음과 함께 주위를 완전히 초토화시켜 나갔다.
쉬익!
신황의 머리 위로 날이 섬뜩하게 버려진 칼날 다섯 개가 한꺼번에 떨어져 내렸다.. 그때까지도 신황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마치 생명을 포기한 사람처럼............
칼날이 신황의 머리를 파고들기 일 보 직전, 그의 눈이 섬뜩한 빛을 뿌렸다.
촤촤촹!
이어 터져 나온 쇳소리.
신황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가 있던 자리의 주위를 흰옷에 귀면탈을 걸친 백무가 둘러싸고 있었다.
끼긱!
그때 소름끼치는 소리가 울려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손톱으로 철판을 긁는 듯한 숨 막히는 고음.
이제까지 무감각하기만 했던 백무의 눈에 이채가 떠오른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들의 검은 철갑처럼 일어선 신황의 장포에 막혀 신황의 머리 한 자 위에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토록 가공할 기세로 몰아쳤건만 신황의 월영갑에 의해 막히고 만 것이었다.
순간 신황의 입가가 미미하게 움직였다. 단지 입가만 움직인 것이지만 백무들은 알아차렸다.
그것이 바로 웃음이라는 것을. 지독한 살기를 머금은.그리고 그들의 생각은 맞았다.
푸욱!
신황의 오른손에 맺힌 월영인이 그의 정면에 있는 백무의 배에 쑤셔 박혔다.
촤하학!
이어 원을 그리며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도는 신황의 신형. 그의 회전이 어찌나 빠른지, 백무가 그 사실을 인지하였을 때는 이미 신황의 회전이 모두 끝난 뒤였다.
“...........”
주르륵!
순간 백무의 허리에 한 줄기 혈혼이 나타났다.
아직 영문을 모르는 백무, 그들 사이를 신황이 지나갔다. 백무는 그런 신황을 향해 다시 칼을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투투툭!
그 순간 그들의 몸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너무나 예리하게 베어져 나갔기에 고통을 인지하지 못했을 뿐, 기실 그들의 허리는 신황의 월영인이 지나간 순간 모두 양단된 상태였던 것이다.
신황이 다시 자신을 향해 몰려오는 백무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너희들이 귀신(鬼神)이라면 나는 명부의 왕이다.”
죽음을 관장하는 명부의 왕.
설령 상대가 이미 죽은 귀신이라 할지라도 한 번 더 죽여줄 것이다. 죽어서도 그에게 감히 고개를 들 수 없게 말이다.
슈우~!
신황이 마치 폭풍처럼 장포를 휘날리며 백무를 향해 마주 달려 나갔다.
티~잉!
정면으로 찔러오던 백무의 검이 신황의 왼팔에 막히며 위로 튕겨나갔다. 그 순간 신황의 오른팔이 위에서 아래로 섬전처럼 그어졌다.
촤하학!
순간 좌우로 양단되는 백무, 그 사이를 뚫고 신황이 지나갔다.
엄청난 피 보라를 뒤집어쓰고 순식간에 혈인이 되다시피 한 신황. 그의 몸이 폭풍처럼 회전을 했다.
그러자 그의 몸을 흐르던 핏방울이 사방으로 튕겨나가며 백무들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그러나 진짜 무서운 것은 핏방울과 함께 월영인이 소리도 없이 발출되었다는 것이었다.
쉬리릭!
백무들이 눈앞의 공간이 일그러지는 광경에 급히 몸을 뒤집으며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 뒤를 이어 신황이 먹이를 낚아채는 매처럼 백무의 뒤를 따라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피피핑!
그 순간 백무가 고개를 끄덕이며 갑자기 허공에서 무언가를 주고받았다. 수십 명이 일제히 손을 주고받는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만큼 급박해졌다.
백무가 손에 기를 주입하자 그들의 손끝을 타고 붉은 기가 허공으로 번져갔다.
그제야 드러나는 광경.
신황을 가운데 두고 수십의 백무가 은사를 종횡으로 연결한 것이었다. 어두운 밤이라 전혀 구별할 수 없던 은사가 백무의 기를 주입받자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잘 벼려진 칼날보다 더욱 날카로운 은사, 거기에 백무의 기까지 주입되자 그야말로 세상에서 제일 날카로운 칼날의 그물이 허공에 형성되었다.
피피핑!
백무가 손을 휘두르자 수십 겹으로 겹쳐있던 은사가 무서운 속도로 신황의 몸을 향해 조여 왔다.
이 상태로 간다면, 신황의 몸은 순식간에 수십 조각으로 갈라지고 말 것이었다.
그러나 신황의 얼굴에는 당황한빛 따위는 없었다. 그리고 허둥대는 꼴사나운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기이잉!
그의 손에 흐릿한 원방이 떠올랐다. 월영륜이었다. 그의 월영기가 응축되고 응축 된, 세상에서 제일 날카로운 칼날. 신황은 그렇게 믿었다.
신황은 거미줄처럼 조여 오는 은사들을 향해 월영륜을 날렸다.이어 다시 몇 개의 월영인을 발출했다.
화학!
마치 빛 무리가 폭발하는 듯한 광경이었다.
어두운 밤하늘이 신황이 낸 빛으로 잠시 붉게 물들었다가 다시 본래의 검은색을 회복했다.
티티티팅!
이어 줄 끊어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수십의 백무를 물 샐 틈 없이 연결했던 은사들이 끊어지는 소리였다. 백무의 눈에 처음으로 당혹한 빛이 떠올랐다.
아직까지 외부의 힘에 의해서 은사가 끊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은사가 끊어진 것보다 더욱 끔찍한 일이 벌어질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스륵!
잠시 백무의 시선이 흐트러진 사이 신황이 소리도 없이 근처에 있던 백무의 뒤를 점유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백무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없어진 신황의 흔적을 찾느라 바쁠 뿐이었다. 정작 신황은 그의 뒤에 있는데 말이다.
신황을 발견한 것은 주위에 있던 백무였다. 그들은 자신의 동료 뒤에 신황이 있자 소리도 없이 다시 파상공세를 펼쳤다.
기러기처럼 한꺼번에 날아오는 동료들 본 백무가 그제야 자신의 뒤에 신황이 있음을 눈치 채고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 순간 신황의 팔이 그의 복부를 뚫고 들어왔다.
신황은 그 상태로 앞으로 돌진했다. 백무의 몸을 방패삼아 말이다.
파파파팍!
백무의 몸 위로 다른 백무의 무기가 작렬했다.
순식간에 걸레처럼 변한 백무의 몸, 이미 그의 숨은 끊어진지 오래였다.
쉬쉬쉭!
그 순간 시체로 변한 백무의 몸을 뚫고 반월형의 검기가 사방으로 터져 나왔다.
파바바바박!
근처에 있던 백무 십여 명이 그 폭풍에 휘말려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그제야 신황이 허리를 폈다. 단 몇 번의 움직임으로 그는 스무 명 가까이 되는 백무를 죽였다.
하지만 아직도 적은 많이 남아있었다. 더구나 그들의 눈에는 일말의 두려움도 떠올라있지 않았다.
옆에서 동료가 죽어나가건 말건 오직 자신의 상대를 죽이기 위해 움직이는 백무였다.
그것은 누구라도 충분히 겁을 집어먹을만한 광경이었다. 단, 상대가 신황이 아니었다면 더욱 효과가 좋았을 텐데.
불행히도 그들의 눈앞에 있는 남자는 그런 것으로는 눈 하나 깜박일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싸울 때만큼은 인간의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은 남자였다.
그에게 정신적인 압박감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명왕이라 불리는 남자였다.
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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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요
즐감
자꾸 빠지게 되네요.
2016.12.02
다음 편을 기대하면서 자꾸 빠지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기대를 하면서
감사합니다
명왕,, 한방에 끝내버려요~~
고맙게 잘보고 있어요~~~
감사
앗싸,쵝오 항상 감사굽신 드리면서오늘도 즐,독. 하고 있읍니다
ㄳㄳ
즐독
잘봅니다
즈람 하구 갑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혁련후, 백무??? 신황....................
즐감하고 갑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 하고 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