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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공항에서 출국하는 의정부청소년 베트남평화기행 '베프' |
ⓒ 김형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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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6일 중1부터 고1까지 의정부 청소년 19명이 인천공항에서 베트남 호찌민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다. 베트남전에 한국군을 파병한 지 50여 년을 맞아 전쟁 후 세대인 한국의 청소년들이 호찌민시와 당시 한국군이 활동했던 중부 지역을 방문하며 전쟁의 아픔과 평화의 중요성을 배우기 위해 7박 9일의 꽉 찬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1월 16일 인천을 출국한 지 1시간 만에 우리는 비행기에서 내렸다. 상해 푸동 공항에서 경유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행 경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대기 시간은 무려 4시간. 하지만 교사나 아이들의 표정은 전혀 어둡지 않았다. 해외 출국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했고, 손에는 지루함을 달래줄 스마트 기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첫 번째 도전 과제가 부여됐다. 와이파이를 연결해야 했으나 안내문이 모두 영어라는 것. 제일 연장자였던 고1 창준 역시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정작 와이파이 연결 시범을 보이며 모든 이의 스마트폰을 데이터 프리 세상으로 인도한 이는 중1 동현이었다. 그 자신감을 잊을 수 없다.
우리는 다시 4시간 동안 비행기를 타고 호찌민에 도착했다. 짐을 찾느라 새벽 2시가 넘어 공항을 나올 수 있었다. 아이들은 사전에 안내받은 대로 자신의 용돈을 공항 환전소에서 환전했다. 4명의 교사들의 긴장감은 호찌민의 따뜻한 기온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모둠 아이들을 인솔해 택시를 태워 호텔까지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영어에도 자신 없었으며, 주문을 외우는 듯한 택시 기사의 베트남어는 아이들을 인솔해야 한다는 교사들의 책임감을 한층 무겁게 만들었다. 왜 여행사를 통해 추진하지 않고 사서 고생했냐 우리에게 묻거든, 여행 경비를 줄이기 위함이라고 답한다.
다음 날 아침 8시, 조식 후 우리는 모둠별 여정을 시작했다. 4개의 모둠은 한국에서 계획했던 일정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호찌민 시내 일정, 식사 메뉴, 모둠 여행 경비 관리, 기록은 아이들이 역할을 분담해 맡았다. 인솔 교사의 역할은 단지 거들 뿐.
언어가 통하지 않는 것은 아이들과 마찬가지였으므로, 교사는 호찌민 시내 도로를 건널 때의 녹색아주머니 역할, 관광지에서의 사진사 역할, 호객 행위하는 사람으로부터의 가이드 역할, 아이들이 질문할 때는 아이들의 주도성을 저하하지 않는 범위에서 중학생 수준의 포털사이트 지식 도우미 역할로 충분했다. 교사가 한 걸음 떨어져 있으면, 아이들을 한 걸음 이상 성장할 수 있다.
우리 모둠의 첫 일정은 현지 여행사에서 다음 날 참여할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것이었다. 여행사에 들어서니 아이들은 나를 바라봤고, 나는 모둠의 제일 연장자였던 고1 창준이를 바라보았다. 창준이는 사뭇 비장한 표정으로 현지인이 주문을 받는 데스크 앞으로 걸어 나갔다. 동생들은 응원을 하기 위해 창준이 곁으로 다가갔으나, 창준이의 표정은 더욱 굳어져갔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예약 확인증을 흔들며 내게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현지 직원에게 세종대왕이 칭찬할 정도로 매우 정확한 된발음으로 '땡큐'를 외치며 문을 나섰다. 아이들의 상기된 표정에서 성취감과 자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영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겠노라고 다짐했다.
아이들은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잠시 길 위에서 멈췄다. 호찌민 시내의 주요 관광지는 도보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에 있다. 아이들은 여행 책자의 지도를 표고 현지 위치와 다음 목적지의 방향, 거리 등을 확인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나라 예비군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아이들이 길 위에서 머뭇거리던 상황에서 중1 종하는 스마트폰을 켜기 시작했다. 구글맵 앱을 실행하는 것이었다. 종하는 당당함 넘치는 미소를 띠며 한 손에는 21세기 GPS 나침반을 들고 우리를 인솔했다.
우리는 통일궁, 시립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아이들과 베트남 전쟁에 관한 책을 읽고 갔지만 우리의 관찰과 배움은 깊을 수 없었다. 커피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베트남 커피를 맛봤을 때 그 느낌을 풍부히 표현하지 못 하는 것과 다름 없다.
간만에 많이 걸어 지친 것도 있었지만, 전시물에 대한 기본 지식 부족과 설명판에 대한 독해의 어려움이 원인이었다. 인솔자로서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베트남어를 공부하든, 영어를 더 공부하든 아니면 박물관, 기념관에 전시돼 있는 전시물에 대한 공부를 더 하고 갔어야 했던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을 아이들과 함께 준비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아이들이 점심을 먹겠다고 정해놓은 식당으로 이동해 점심을 먹고 성모마리아 교회와 중앙우체국을 들렀다. 아오자이를 입고 기념 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이 보였다. 아이들에게 사진 한 장 찍을 수 있냐고 물어보라 했다. 남자 아이들이 쭈뼛쭈뼛하던 차에 서영이와 지윤이가 가서 말을 걸었다. 어느새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우리에게 오케이 사인이 보내졌고, 우리는 신속하게 자세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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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정부 청소년 베트남평화기행팀 '베프'의 호치민 시내 여행 |
ⓒ 베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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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도전하는 만큼 얻는 것이다. 인민위원회 청사를 방문하러 다시 길을 걸었다. 현지 경찰의 안내를 받아 길을 찾았고, GPS와 지도를 확인하며 청사를 찾았지만 우리는 10여 분째 헤매고 있었다. 우리에게 다른 현지 경찰들이 뭐라고 하는 것 같았지만 우리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우리가 해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건물은 공사 중이었고 건물에는 차단막이 둘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쉬움을 뒤로 접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사이공 센트럴 모스크는 호찌민의 시끄러운 소음과 번잡스러움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짧은 옷을 입고 있었던 여자 아이들은 입구에 비치된 긴 가운을 걸치고 사원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몸이 지친 탓도 있었지만 사원이 주는 차분함에 마음도 평안해졌다.
사원을 나와 몸의 열기를 식히기 위해 현지 커피숍에 들어갔다. 스마트폰으로 찍었던 사진을 업로드하기 위해서라도 와이파이가 필요했다. 이번에는 석진이가 나서기로 했다. 우리 중에 가장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배운 석진이. 석진이는 데스크로 다가가 몇 마디 나누더니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알아왔다. 석진이는 흐뭇해했다.
우리는 벤탄시장을 잠시 둘러본 뒤 숙소 근처 현지인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개방된 식당 구조와 특유의 음식냄새 그리고 왠지 깨끗해 보이지 않은 모습에 아이들은 살짝 주저하는 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음식이 나오기 시작하니 아이들의 표정은 금세 밝아졌다. 6명이 하나씩 주문했음에도 가격은 저렴했다. 우리는 음식을 더 주문하고 음료도 마시며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했다.
호텔에 돌아오니 8시가 넘었다. 다른 모둠도 호텔로 들어오고 있었다. 간단히 정리하고 숙소에서 모둠 아이들과 하루의 여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인상적이었던 점, 배웠던 점, 아쉬웠던 점, 반성할 점 등을 나누고 오늘의 여정에 대해서 개인 일기를 쓰도록 했다. 교사들은 10시쯤 돼서 다시 모여 각 모둠별로 특이 사항은 없는지, 하루 일과는 어땠는지를 나누고 내일 여정을 공유했다.
교사와 아이들이 사전에 더 공부를 많이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쉽다는 점에 공감했다. 인천공항에서의 기대감으로 가득 찼던 표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밤을 지새워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나서의 표정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호찌민을 활보하며 스스로 배워나갔던 모습을 떠올리며 교사들은 만족해했다. 교사들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덧붙이는 글 | 이번 의정부청소년들의 베트남평화기행은 경기도교육청과 의정부시의 혁신교육지구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신 경기도교육청, 의정부시 그리고 도와주신 의정부여자중학교, 한베유학원, 사회적기업 아맙, 나와우리에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선생님도 카페 가입하셨군요 저는 이제야 하네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