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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에서 사는 맛과 멋
청도시조선족교원 친목회 차설매
아름다운 해변도시 청도에 자리잡은지도 어언간 6년 철을 잡는
다. 자식들이 사업하는 상해와 가까운 거리에 있고 또 살기가 좋다
고 소문나 주저없이 짐을 싸가지고 온 청도였지만 처음엔 낯설고
산설고 물설어 주위의 아름다움도 잘 보이질 않았고 우울증까지 찾
아와 고향을 버리고 온것을 후회할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청도에서 사는 그 향기로운 맛과 아름다운 멋을 점차 깊이 느
끼게 되며 청도는 아름답고 살기좋은 나의 제2고향으로 굳건히 자
리매김 하고 있다.
내가 자리잡고 사는 곳은 청도시성양구이다. 조선족과 한국인이 도합 8만여명이나 거주하고 있는 곳인지라 아파트단지마다 우리 동
포들이 얼마나 많이 사는지 마치 서울에 온것 같기도 하고 또 동북 의고향 마을에 온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우선 우리 민족의 입에 맛는 먹거리부터가 눈에 풍년이다. 큰 시장에 가보면 연변특산 인 마른명태, 고사리, 더덕, 취, 도라지, 인삼, 송이버섯 등이 있는가 하면 동북에서 들여 온 검정귀버섯, 감자국수, 고추가루, 입씰, 콩, 옥 수수 등도 있다. 그리고 한국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 큰 슈퍼, 작 은 마트할 것 없이 한국 부식품들이 쫙 깔렸다. 아이들이 먹기 좋 게 만든 식품만해도 수십가지이다. “ 새우깡” , “오징어깡” , “감자칩” “ 땅콩생트” , 찰떡파이” ,“ 초코송이” , “ 뽀또 ”, “크라운산도“ 베베 ” 등등 포장도 정교하고 그 이름만 보아도 감칠맛이 돈다. 또 새우젓, 멸치젓, 까나리액젓, 다시다, 미원, 가지각색의 음료와 술, 그리고 고추장, 된장, 쌈장, 초고추장, 거기에 삼겹살, 해어류까지 없는 것이 없다. 아무튼 한국인들이 무엇을 먹으면 우리도 무엇을 먹을 수 있 다.
청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반도인지라 고향에선 구경도 못
했고 먹어보지도 못했던 해산물들이 많고도 많다. 아침 일찍 해물시
장에 가면 운동장처럼 넓디넓은 해물시장에 싱싱하고도 먹음직스러
운 해물들이 펄떡펄떡 뛰며 고객들을 유혹한다. 삼치, 참치, 칼치, 꽁
치, 고등어, 장어, 금동어, 오징어, 숭어, 붕어, 잉어, 연어, 쭈꾸미, 낙
지, 조기, 대구, 아구 등 많고 많은 물고기외에 새우, 게, 굴,조개류만
해도 수십가지가 줄을 서고있다. 해물시장은 팔고 사는 사람들로 붐
빈다. 해물을 파는 사람들도 사는 고객들도 모두 흐뭇한 기분임이 력연하다. 우리 같이 동북에서 온 사람들을 놓고 말하면 보기에도
희귀하고 맛도 으뜸인 해물이야 말로 제일 인기를 끄는 먹거리이다.
무우, 감자, 호박, 쑥갓들을 보기좋게 썰어놓고 거기에 오징어,쭈꾸미
우럭, 숭어등을 깨끗이 씻어넣고 고추장, 된장을 풀어넣고 고추가루
등 각가지 조미료를 듬뿍넣고 부글부글 끓인 해물 매운탕이야 말로
천하제일 맛으로 손색이 없다. 해물시장 한곁에는 붕어, 잉어, 가물
치, 연어 등 민물고기들도 팔고 있는데 우리는 고향의 맛이 생각날
때면 이런 민물고기들을 사다 끓여 먹으며 고향에 대한 회포를 나누
군 한다.
이외에도 청도시 성양구에는 우리 민족들이 꾸린 음식점들이 많
고도 많은데 그 간판만 보아도 입맛을 다시게 된다. 한국의 간판을 본딴 경북궁요리집, 제주도민속촌, 뼈다귀감자탕, 놀부네집, 덕수궁, 고려촌--- 등등이 있고 연변을 본딴 연변순대집, 진달래떡집, 연변짝 태집, 연변냉면, 진달래냉면, 삼천리냉면, 태백산술집, 해란강민속궁, 청향관 --- 등등이 있는가 하면 그냥 자기 마음에 편하게 지은 박씨
네밥집, 초두부집, 장남이네꼬치집, 재일음식집, 동해횟집, 초가삼간 등도 있다. “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 ” 이란 말이 있다. 이곳에서 사 는 우리는 이렇듯 천하의 산해진미를 맛보며 인생의 참맛을 즐기고 있다.
우리들은 이처럼 향기로운 맛을 즐기며 사는 외에 그보다 더 아
름다운 멋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우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고장은 공기가 좋고 기후가 좋아 여 름이면 너무 덥지 않고 겨울이면 너무 춥지 않아 인류가 거주하기 가장 좋은 도시에 속했고 주위환경이 아름답고 관광지가 많으며 웅 위하고 기이한 로산, 해발고가 높고 일출을 보기에 이름난 태산이 가까우며 또 삼면으로 푸른 파도 출렁이는 황해가 있어 전국에서 꼽 히는 10대 관광도시로 그 위상를 자랑하고 있다. 더우기 청도바다는 국제요트경기장으로 설정 되였고 2014년에는 청도에서 세계원예박 람회를 열기로 되여있다.
우리 집이 자리잡고 있는 성양구는 청도에서도 생태환경에 대한 보호와 록화, 미화가 뛰여나게 잘되였다. 그 옛날 허허벌판이였던 이곳에 지금은 고층건물이 수풀처럼 일떠섰고 널직하고도 그림처럼 아름답게 장식된 큰길들이 가로세로 쭉쭉 뻗었다. 4-5월은 성양이 제일 아름다운 계절이다. 여느 아파트 단지에나 길량켠이나 크고 작 은 광장과 공원에나 모두 얼마나 많은 나무를 심었는지 모른다.집을 나서면 온갖 록음의 세계가 우리 앞에 펼쳐져 우리의 두눈을 시원 하게 해주고 몸과 마음을 마냥 즐겁게 해준다. 그 중엔 프랑스에서 들여온 오동나무가 제일 많고 다음 탑송을 바탕으로 한 사철푸른 소 나무가 많으며 은행나무, 벗나무, 목련나무, 버드나무, 동백나무,대나 무, 귤나무… 등등 나무의 가지수가 얼마나 많은지 많은 나무들은 아직 그 이름도 알지 못하고 있다. 옛날에는 소나무만 사철 푸른 줄 알았는데 기실은 10가지도 넘는 나무들이 추위를 이겨내며 겨우내 그 푸른 빛을 잃지 않아 도시의 품위를 높히고 도시의 공기를 조절 하고 도시의 오염을 제거하며 겨울의 색채를 아름답게 해준다.
몇년전 일본에 갔을 때 그곳의 생태환경에 대한 보호와 도시 록 화 미화를 보고 감개무량했었는데 지금 우리가 사는 이곳은 일본에 못지 않을 뿐만아니라 도시의 미화면에서는 일본을 초월하는 것 같 다. 일본은 주위가 주요하게 록색으로 단장되였지만 우리 이곳은 나 무잎의 색갈만 해도 연록색, 심록색, 노란색, 자주색, 빨간색 등오색 이다. 멀리서 보면 마치 오색이 찬연한 꽃세계 같다. 뿐만아니라 원 예사들이 나무들을 얼마나 깔끔하고 멋지게 다듬어 놓았는지 어떤 나무들은 우산을 펼쳐든 소녀같기도 하고 어떤 나무들은 리발을 한 씩씩한 사나이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나무들은 길다란 생머리를 그대 로 폭포처럼 풀어 헤친 아가씨들같다. 더구나 이곳에선 꽃나무를 많 이 심었는데 4월이되면 꽃들이 일제히 만개하여 우리를 황홀하고 도 향기로운 꽃세계속에서 살게한다. 3월말쯤되면 제일 먼저 샛노란 개나리꽃이 떨기떨기 피여나는데 마치 반짝이는 별처럼 우리에게 상큼한 봄내음과 빛나는 미소를 선사한다. 잇따라 목련꽃과 벗꽃이 화사하게 피여난다. 그중에서 목련꽃은 흰색과 연한 핑크색의 커다 란 꽃을 피우는데 이상한것은 식물의 섭리대로 먼저 잎이 피고 후에 꽃이 피는것이 아니라 먼저 꽃이 피고 후에 잎이 자라난다는것 이 다. 벗꽃도 잎은 크게 보이지않고 백설같은 흰색이거나 연한 핑크색 갈의 꽃들이 얼마나 화사하고 호함지게 피여나는지 마치 부풀어오른 솜꽃을 그대로 다닥다닥 매달아 놓은것 같다. 성양의 중성로, 장성로, 춘양로나 덕양로같은 거리에는 눈뿌리가 아찔할 정도로 이런 꽃나무 들을 심었는데 그 길로 다니는 행인들이나 차량들은 마치 꽃세계의 선경속에서 노니는것같다. 옛날에 광주시를 꽃도시라고 교과서에서 소개했었는데 나는 우리가 사는 이곳이 광주에 못지지 않는 꽃도시 가 아닌듯 싶다. 그리고 봄에 일찍 피는 꽃도 진달래뿐인 줄 알았는 데 이렇게 많은 꽃들이 쌀쌀한 초봄에 벌써 피여나 우리의 환경을 미화하고 우리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니 그 아름다움에 감개가 무량하고 그 강인한 성품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꽃들 이 지게 되면 련이어 라이락크, 장미꽃, 해당화, 동백꽃, 은행꽃… 등 이 울긋불긋 피여나 우리를 사철내내 아름다운 도화원속에서 살게 한다.
먹거리도 많고 경치도 일품이지만 다양하고 문화적인 생활속에 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느끼며 보람있게 사는 것이 더 멋있다는 것 이다.
우리는 고향을 멀리멀리 떠나 왔어도 이곳 청도지사에서 꾸리는 《흑룡 강신문》, 《연변일보》 등 우리말 신문들을 볼 수 있고 이런 신문들에서 여러가지 정보들을 입수할 수 있을 뿐만아라 그리운 고향소식도 알수있고 한국에 있는 우리 동포들의 현황도 료해할 수 있다. 이런 신문외에도 청도시 조선족로인협회에서 꾸리는《꽃노을》잡지도 볼 수 있고 또 《청도타운》, 《산동베스트》,《상가로》 등 잡지 를 무료로 접할 수 있어 가지각색의 광고, 여러가지 소식들을 제 때에 알수 있고 또 인간의 철리를 깨우쳐주는 시가, 소설, 평론들도 경상적으로 읽을수 있다.
다음 차원이 높은 각종 문화적인 활동이나 모임에 참가할수 있다. 례를 들면 청도조선족과학인협회에서 주최한 중앙당교 조호 길 교수의 《중국의 개혁개방과 그 전망》에 대한 전문강좌 , 한국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학장이신 박영렬교수의 《한중협력시대의 신 경영전략》에 대한 전문 강좌, 한국 이상구 의학 박사의《뉴스 타트 생명운동과 질병치유》에 대한 전문강좌… 등 금쪽같은 새로운 리론들을 청취할수 있었는데 마치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에 나 왔을 때처럼 안계가 확 넓어지고 사상을 단정히 하게 되고 미래에 대한 지향과 과학적인 삶을 사는데 크나큰 편달로 되였다. 이외에 도 고상하고 우아한 소프라노의 개인 콘서트, 유명한 교향악단의 멋진 기악연주회,주현미, 현철, 김수미 등 한국 톱가수들의 음악회, 연변가무단의 정채로운공연, 청도시 진달래예술단의 공연 등 차원 이 높고 기교가 높은 문예연출도 직접 감상할 수 있어 우리 민족 의 흔상능력을 높히고 내함을 풍부히 하며 자질을 제고하는데 도 움이 되였다 그리고 우리 이곳에서는 청도조선족과학문화인협회, 청도조선족기업인협회,청도조선족향우회, 로인협회, 여성협회,교원 친목회 ,조선족탁구협회 등 조선족들이 직접협찬하고 꾸리는 각종 협회들이 있어 많은이들이 자기의 경력과 취향에 맞는 협회에 참 가하여 인생의 내용을 풍부히 하고 거기에서 서로 소통하고 협력 과 친목을 기하며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우리 청도에는 조 선족 기업인만 천여명이 되는데 청도시 조선족기업협회 김창호 회 장, 월드옥타청도지사장 남룡해 사장, 성양기업협회 정광모 회장 등 많은 기업가들이 치렬한 상업경쟁의 선두에서서 국내는 물론 한국, 일본, 그리고 동남아각국에 상품들을 수출하며 우리 민족 경 제의 기반을 튼튼히 하고 있다. 이들은 20여년간의 신근하고 억척 스러운 분투로 이 땅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던것이다. 과연 조선민족의 제 3대들이 이곳에 와서 입지를 굳히고 피타는 노력으로 삶의 터전을 마련하지 않았던들 오늘 청 도시 조선족의 대량집거가 가능할 수 있었겠는가! 내가 참가한 《청도시 조선족교원 친목회》는 김광수 회장을 위수로 130여명의 회원 을 가지고 있는데 정월보름 윷놀이, 《3.8여성절》 기념활동, 《어버이 날》 맞이 활동,《7.1》경축활동, 《교사절》축하모임,《국경 절》 경축활동, 송년회 등 모임을 가지고 시랑송, 속담풀이,시사 강좌, 전문지식 강좌, 민족교육에 대한 토론, 문예연출, 오락유희 등 다양한 활동들을 진행하여 고향을 떠나 자식들을 따라온 퇴직 교원들의 만년생활을 풍부히 해주고 있다. 청도시조선족향우회에서 2년에 한번씩 주최하는 조선족운동회는 그야말로 가관이다,《오상 컵》,《서란컵》 운동회를 보면 운동장의 사면에 몇만명의 관중들이 꽉 차고 치치할시, 오상,서란 녕안, 해림, 밀산, 계서,동녕,가목사, 길림시, 교화, 화룡, 도문, 안도, 등 대표팀이 호호탕탕 주석대 앞 을 지나는데 그야말로 자그마한 올림픽대회를 보는 듯하다. 그리고 수백명이 참가한 로인협회의 집체무 표현, 조선족소학 교학생들의 태권도 표현, 교원친목회의 사물놀이 표현 등은 모두 기교가 높고 정채로와 관중들의 절찬을 받았다. 운동이 시 작되면 자기팀을 응 원하는 북소리, 꽹과리소리가 요란하고 관중들의 응원함성이 하늘 땅을 진감한다. 그리고 운동장의 응원석 곳곳에서 아리랑,노들강변 등 우리 민족의 노래가락이 울려퍼지고 아름다운 민족복장을 입은 이들이 덩실덩실 춤을 춘다.
그렇고보면 그 옛날 일제의 등쌀에 못이겨 쪽박을 차고 두만 강을 건너와 물줄기를 따라 정착하여 화전을 일구고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게 살던 우리 민족이 오늘 청도와 같은 아름다운 도시에와 으
리으리한 층집에서 번쩍이는 자가용을 몰고 다니며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당의 옳바른 개혁개방 정책과 시장경제의 혜택이 아니겠는가!
타향도 정이들면 고향이라는 말이 있다. 비록 우리는 우리의 태줄을
묻은 옛 고향을 떠나 산동반도라는 생소한 곳에 정착했고 또 고소비
과소비, 의료보험, 민족교육 등 면에서 아직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 이 많지만 당의 옳바른 정책 아래 근로하고 인품 좋은 이곳 인민들
과 어깨겯고 우리의 신근한 노력으로 튼튼한 경제기반을 수립하고 우리 민족의 고유하고 찬란한 문화를 고수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면 우리의 생활은 더욱 보람차고 더욱 향기롭고 더욱 멋들어 질 것이 다. 우리 선조들이 세세대대 꾸어 오던 행복한 생활의 꿈은 바야흐 로 여기에서 그리고 전국의 방방곳곳에서 피여 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13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