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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공업단지가 첨단 디지털단지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구로공단은 1960년대부터 섬유·봉제·가발·전기 등 경공업을 중심으로 수출 한국을 이끈 대표적 공업단지였다. 그러나 이제 첨단 정보기술(IT) 인프라를 구축한 테크노산업 단지로 다시 태어났다.
이곳의 가장 큰 무기는 '작지만 강한' 강소(强小) IT벤처기업들이다. 디지털단지가 조성된지 11년 동안 매년 1000여개 기업들이 모여든 게 이미 1만개를 돌파했다.
극세사(極細絲)로 만든 섬유제품으로 세계 시장을 석권한 웰크론사, 3D 전자부품 검사장비 생산실적 세계 1위인 고영테크놀러지사…. 이들 업체를 포함한 작은 업체들이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힘을 결집, 한국 경제의 새로운 심장 역할을 하고 있다. 수출액이 이미 2조원을 넘겼고, 연간 매출액도 10조원을 넘어섰다.
구로디지털단지가 이처럼 작지만 강한 IT벤처기업을 키워 'IT산업의 심장부'로 탈바꿈에 성공한 비결은 정부의 과감한 규제 완화 정책에 있었다. 구로공단은 1988년 전자제품 수출 호황을 마지막으로 다국적기업들이 빠져나가고, 국내 기업들도 사양산업인 섬유·봉제공장들을 폐쇄하면서 공동화(空洞化)·슬럼화됐다. 이 지역을 살리기 위해 시도한 게 바로 아파트형 공장이었다. 정부는 1996년 수도권에 공장 증설을 막던 수도권 공장 총량제에서 아파트형 공장을 제외시켰다. 공기업에만 허용하던 아파트형 공장 건설을 민간사업자에게도 풀었다. 제조업체만 입주를 허용하던 것을 지식·정보통신산업 같은 서비스 분야 업체에도 문호를 개방하도록 법을 바꾸었다.
그 결과, 아파트형 공장 건설 붐이 일어났다. 10여층 대형 건물에 기업들이 들어 와 사무실·연구소, 생산·조립 공장 등으로 이용할 공간을 마련했다. 건물 내에 은행·식당·편의점·사우나·문구점 등 각종 편의시설을 두어 24시간 근무할 여건도 갖춰 놓았다. 최근에는 호텔식 인테리어와 중앙보안관제시스템, 중소 회의실을 포함한 각종 비즈니스 시설을 제공한다. 한 나라 수도(首都)에 1만개 기업이 모여들게 한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누구도 감히 생각 못할 '도시 안의 산업도시'를 지은 것이다.
이렇게 되자 서울 테헤란로에 있던 벤처기업들도 이곳으로 몰려왔다.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강남의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했던 기업들엔 새로운 기회의 땅이었다. 서울시도 공공자금에서 아파트형 공장 분양 대금의 70%까지 저리(低利)로 융자해 이들의 발길을 재촉했다. 취득·등록세와 재산세, 종합토지세 경감 등의 세제혜택도 이들을 불러 모았다. 이렇게 동종(同種) 기업들이 모여들면서 원자재나 부품 공급 등 물류조달비용이 대폭 절감되고 개별 중소기업이 하기 힘들던 교육·복지사업도 여러 기업이 공동으로 벌이게 됐다. 협력업체를 찾거나 인력 확보도 쉬워졌다. 정부의 탈(脫)규제정책과 세제지원으로 기업들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구로디지털단지는 노후화·슬럼화된 공업단지를 정비해 '굴뚝 없는 공장'으로 리모델링한 대표적 성공사례이다. 반월·시화 등 노후화된 산업단지나 대도시 내 공업지역 정비에도 아파트형 공장 같은 도시 재생의 모델을 이식시켜야 한다.
테헤란로 닮아가는 서울디지털단지…상가도 주택도 '들썩'
21일 오전 11시 40분 서울 구로구 구로동 디지털단지로 사거리 인근. 15~20여층 규모의 아파트형공장이 사방 빽빽이 들어선 이 곳에 도착하자마자 수천여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 이들과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주변을 거니는 사람들이 엉켜 사거리는 북새통이었다. 고급 일식집과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비롯해 스타벅스·커피빈·탐앤탐스 등 커피전문점은 아파트형공장 건물마다 있었고, 종로·강남·여의도 상권에서나 볼 수 있는 식당 전단지를 배포하는 아주머니들도 이 사거리만 10명이 넘었다.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이 곳은 쇠퇴해가던 서울 산업화의 상징 구로공단이었다.
이 곳은 중소업체 10만개 이상을 수용하는 아파트형공장 밀집지역 ‘서울디지털산업단지’다. 서울 구로·가산동에 198만2000㎡ 규모로 조성됐으며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등록된 상주 근로자 수만 14만명에 이르는 서울 최대 IT산업단지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이 지역 상권이 심상치 않다. 해가 갈수록 단지에 입주하는 업체가 늘어나고, 근무자 수도 10만명을 넘어서면서 3대 오피스 상권인 종로·강남·여의도에 준하는 상가·점포가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권리금·보증금·임대료도 매년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 “거기 구로공단 아냐?”…“모르시는 말씀”
“장사 시작한 지 2년 됐는데 월 매출이 많진 않아도 계속 오르고 있어요. 인기를 얻어서 그런 것보다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확 늘었다네요” -서울 구로구 구로동 G 설렁탕
최근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일대의 상권이 주목받고 있다. 상주·유동인구는 종로·여의도·강남에 이어 4번째를 차지할 만큼 늘어나고 있지만, 권리금·임대료 등은 훨씬 싸기 때문이다. 현재 산업단지 일대 상권은 점점 확대되고 있으며, 상권을 구성하는 점포들의 수준도 서울 강남 테헤란로와 비슷하다.
상가가치를 나타내는 권리금은 지난 2008년 부동산 경기 침체 이전 시세를 이미 회복했다. 상가전문 정보업체 점포라인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9년 이 일대의 평균 점포 권리금은 3.3㎡당 180만4917원으로 2008년에 비해 58만8332원(24.58%) 감소했지만, 지난해 188만1343원으로 반등했고, 올해는 이미 상반기에만 95만7179만원(50.87%)이 늘었다. 상반기 기준으로 구로구 권리금은 서울 25개구 중 금천구와 강북구에 이어 세번째로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올해 초 개업했다는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사장은 “권리금은 3억원 정도 들었고, 보증금 1억원에 매달 임대료로 550만원 정도 내고 있다”며 “많이 오르긴 했지만 아직은 강남 테헤란로에 비하면 손님 수는 비슷한데 가격 측면은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 테헤란로 공인에 따르면 대부분 나와있는 중소형 점포는 권리금 5억~10억원, 보증금과 임대료는 각각 3억원과 1500만~1700만원 수준이다.
최근 이 지역은 오피스텔과 원룸 신축이 증가하고 있다./허성준 기자 huh@chosun.com
상가정보연구소 박대원 소장은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예전 구로공단이 있었던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아직도 남아있지만 지금은 여의도나 준 강남 상권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며 “다만 아직도 상권이 형성되는 중이기 때문에 디지털단지 세부지역별 유동인구 경로를 잘 파악한 후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 사람 몰리고 상권 좋아지니 오피스텔·원룸도 봇물
상권이 확대되고 수준도 높아지다 보니 인근 주택 시세도 상승세다. 이전까진 공장 등 혐오시설이 많고 치안이 좋지 않다는 의식이 있어 주택 시세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었다. 그러나 LG전자·코오롱 등 대기업의 연구소와 IT(정보기술), 디자인 등 다양한 중소·벤처 기업이 고층의 아파트형공장에 입주하면서 생활환경이 좋아졌다.
인근 공단 공인 관계자는 “코오롱빌란트를 비롯해 지금도 아파트형공장 건설이 진행 중이어서 상주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며 “수요에 비해 가격은 타 지역과 비슷한데, 이는 오피스텔이나 원룸 신축이 활발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다는 오피스텔 46㎡형은 보증금 1000만원, 임대료는 55만~65만원 사이가 시세며 원룸은 16.5㎡형이 보증금 1000만원에 임대료가 35만원 수준이다.
아파트 전세도 오름세다. 삼성래미안과 두산위브는 69~70㎡형이 2억2000만~2억3000만원 선이지만 매물이 동난 상태다. 경남아파트와 한솔자이도 99㎡~102㎡가 2억6000만~2억8000만원이지만 매물을 찾기 어렵다. 중앙 공인 사장은 “이번 이사철에 전세를 재계약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6000만원 이상 올려줬다”며 “전세난도 전세난이지만 이 지역 인근이 살기가 좋아져서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또 인근 벤처 공인 사장은 “전세가 없으면 일주일이나 한 달 정도 기다리다가 금천구 쪽으로 빠지는 편”이라며 “전세금이 대폭 오르는 바람에 매매로 전환해버리는 수요가 최근 많다”고 전했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114 이호연 팀장은 “구로·가산 등 서울디지털산업단지 쪽의 출퇴근 수요 덕분에 인근 광명·시흥 등의 주택시세도 덩달아 오름세”라고 분석했다.
첫댓글 겉보기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속내는 쌓여가는 채무로 고민하는 소기업들이 많다. 재정지원으로 신축건물을 저렴하게 분양받을 수 있어 다행인데 무한경쟁에서 최고만이 생존할 수 있는 환경에선 어쩔 수 없이 2등부터는 소외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지식인들이 몰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개발에 몰두하는데 수고한만큼의 댓가를 보장받을 수 없으니 정리할 수 없는 자들이 오늘도 잠못 이루고 고민하는자가 많을 것이다.
일부 성공한 경우만을 바라본다면 오산일 것이다. 이곳도 경기활성화를 위해 재정을 쏟아부은 곳이고 인생의 전부를 건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끝까지 보살펴서 다수가 소망을 이루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