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광(金三光)
김유신의 아들. 당(唐)나라에 살면서 좌무위익부중랑장(左武衛翊府中郞將)이 되어 당나라 장군 유인궤(劉仁軌)와 함께 고구려를 정벌하였다.
김원술(金元述)
김삼광의 아우이다. 일찍이 화랑이 되었다. 법민왕(法敏王 ; 문무왕)이 고구려의 백성을 받아들이고 백제의 옛 지역을 차지하니 당나라 고종이 크게 노하여 장수에게 신라군사를 토벌하라고 명하였다. 이때 왕은 장군 의복(義福)등을 보내어 대방(帶方) 들판에서 방어하였으나 패전하였다 원술이 싸워서 죽고자 하였으나 담릉(淡凌)이 만류하였다. 서울에 돌아오니 그의 아버지 유신이 “원술은 왕명을 욕되게 하였을 뿐 아니라 가훈 또한 저버렸으니 참(斬)하는 것이 가하다.”하였다. 왕이 용사(容赦)하였으나 원술은 부끄럽고 후회되어서 감히 아버지를 보지 못하고 전야(田野)에 숨어살았다.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께 뵈옵기를 청하자 어머니는 “부인은 삼종(三從)의 의가 있으니 자식의 뜻을 따르는 것이 마땅하나 원술은 이미 그 아버지에게 자식이 되지 못하였으니, 내가 어찌 그의 어머니가 될 수 있겠느냐”하고 마침내 보지 않았다. 원술이 탄식하면서 “담릉(淡凌) 때문에 죽을 기회를 놓쳤도다.” 하고 태백산으로 입산하였다 그 뒤에 당나라 군사가 와서 매소천성(買蘇川城)을 공격하니 원술이 전일의 부끄러움을 씻고자 힘껏 싸워 전공을 세웠으나 부모에게 용서받지 못하였다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겨 벼슬길에 복귀하지 않고 일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