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서 본 ‘상윳따니까야(Saṃyutta Nikāya)’ 17강
낫티 뿟다사마 숫따
Natthiputtasama-sutta
아들과 같은 것은 없다 경(s1:13)
사왓티 니다낭
Sāvatthinidānaṃ. ~~ (생략)
1. 에까만땅 티따 코 사 데와따 바가와또 산띠께 이망 가탕 아하시.
Ekamantaṃ ṭhitā kho sā devatā bhagavato santike imaṃ gāthaṃ abhāsi.
1. 한 곁에 선 그 천신은 세존의 앞에서 이 게송으로 여쭈었다.
2. 낫티 뿟따사망 뻬망, 낫티 고사미땅 다낭,
Natthi puttasamaṃ pemaṃ, natthi gosamitaṃ dhanaṃ,
낫티 수리야사마 아바, 사뭇다빠라마 사라띠.
Natthi sūriyasamā ābhā, samuddaparamā sarāti.
2. 아들만큼 사랑스러운 것이 없고, 소떼만한 재산이 없으며,
태양만큼 빛나는 것이 없고, 바다는 흐르는 물 가운데 최상입니다.
바가와(bhagavā)
세존
3. 낫티 앗따사망 뻬망, 낫티 단나사망 다낭,
Natthi attasamaṃ pemaṃ, natthi dhaññasamaṃ dhanaṃ;
낫티 빤나사마 아바, 웃티 웨 빠라마 사라띠.
Natthi paññāsamā ābhā, vuṭṭhi ve paramā sarāti.
3. 자신만큼 사랑스러운 것이 없고, 곡식만한 재산이 없으며
통찰지혜와 같이 빛나는 것이 없고, 비야말로 흐르는 물 가운데 최상이다.
천신의 처음 게송은 ‘낫티 뿟따사망 뻬망(Natthi puttasamaṃ pemaṃ)’인데 낫티(Natthi)는 ‘없음’, ‘무(無)’, ‘비존재’, ‘부재’의 뜻입니다. 뿟따(putta)는 ‘아이’, ‘자식’, ‘아들’입니다. 뻬마(pema)는 ‘사랑’, ‘애정’입니다. 그래서 ‘아들만큼 사랑스러운 것이 없고’입니다. 다음에 낫티 고사미땅 다낭(natthi gosamitaṃ dhanaṃ)에서 고(go)는 ‘소’고, 사미따(samata)는 ‘모임’, ‘집합된’입니다. 그래서 고사미따(gosamita)는 ‘소떼’입니다. 다나(dhana)는 ‘재산’, ‘재물’, 부(富)입니다. 그래서 ‘소떼만한 재산이 없으며’입니다. 두 문장을 합치면 ‘아들만큼 사랑스러운 것이 없고, 소떼만한 재산이 없으며’입니다.
뿟따(putta)는 아들이란 뜻인데 여기서는 아들과 딸을 모두 포함한 뜻의 자식이라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사람들은 부모를 버리고 자식을 먹여 살리지 않더라도 반드시 자신은 살기 위해서 돌봅니다. 그러므로 어느 때나 자신을 향한 애정은 식을 줄을 모릅니다. 우리는 결국 자신을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착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을 부모님도 버리고, 아이도 버리고 자기 삶을 살아갑니다. 자식으로 고통을 안고 사는 사람도 있지만 본인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인도에서는 소를 신성시하지만 사실 소가 가장 큰 재산이었습니다.
다음 게송 ‘낫티 수리야사마 아바(Natthi sūriyasamā ābhā)’에서 수리야(sūriya)는 ‘태양’입니다. 아바(ābhā)는 ‘눈부신’, ‘빛나는’입니다. 그래서 ‘태양만큼 빛나는 것이 없고’입니다. 다음에 ‘사뭇다빠라마 사라띠(samuddaparamā sarāti)’에서 사뭇다빠라마(samuddaparamā)는 ‘바다’라는 뜻의 사뭇다(samudda)와 ‘최고’라는 뜻의 빠라마(paramā)는 합성어입니다. 다음에 사라띠(sarāti)는 ‘가다’, ‘흐르다’입니다. 그래서 ‘바다는 흐르는 물 가운데 최상이다’입니다. 두 문장을 합치면 ‘태양만큼 빛나는 것이 없고, 바다는 흐르는 물 가운데 최상입니다.’라는 뜻입니다.
이상은 천신이 부처님께 찾아와 게송으로 여쭈어본 내용입니다. 이에 대해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답변하셨습니다.
‘낫티 앗따사망 뻬망(Natthi attasamaṃ pemaṃ)’에서 앗따(atta)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얻음’, ‘가득한’, ‘완전한’, ‘음식’ 등의 뜻도 있지만 ‘자신의’, ‘자아와 관계된’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아따(atta)는 이러한 뜻이지만 이와 비슷한 아딴(attan)은 ‘자신’, ‘자기’, ‘나’, ‘아(我)’, ‘자아’, ‘영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자신만큼 사랑스러운 것이 없고’입니다.
다음에 ‘낫티 단나사망 다낭(natthi dhaññasamaṃ dhanaṃ)’에서 단나(dhañña)는 ‘곡식’, ‘곡물’, ‘풍부한’, ‘부유한’입니다. 그래서 ‘곡식만한 재산이 없으며’입니다. 두 문장을 합치면 ‘자신만큼 사랑스러운 것이 없고, 곡식만한 재산이 없으며’입니다.
천신은 부처님께 아들만큼 사랑스러운 것이 없다고 했는데 자신만큼 사랑스러운 것이 없다고 하셨고, 소떼만한 재산이 없다고 했을 때 곡식만한 재산이 없다고 바꾸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눈이 보이는 자식이 가장 사랑스럽지만 누구나 자신을 집착하기 때문에 자신을 가장 사랑하고 있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또 눈에 보이는 소떼가 가장 큰 재산인 것은 분명하나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곡식은 가장 현실적인 것입니다. 기근이 생기면 사람들은 금이나 은이나 가축을 팔아서라도 곡식을 가진 자에게 갑니다. 그러므로 ‘곡식만한 재산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라훌라가 부처님께 가장 중요한 것이 ‘첫 번째는 밥입니다.’라고 부처님의 질문에 대답했습니다. 사실 하루 이틀 굶으면 정신을 바짝 차리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게 되기도 하고 또 먹는 것 때문에 악하게 되기도 합니다.
다음에 ‘낫티 빤나사마 아바(Natthi paññāsamā ābhā)에서 빤냐(paññā)는 ’통찰‘, ’지혜‘라는 뜻인데 일반적으로 지혜라고 하는데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통찰지혜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지혜라는 단어는 많은데 빤냐(paññā)는 대상의 성품을 꿰뚫어서 아는 지혜를 말합니다. 그래서 통찰지혜는 존재의 성품인 무상, 고, 무아를 아는 지혜를 말합니다. 그래서 ’통찰지혜 같이 빛나는 것이 없고‘라는 뜻입니다.
다음에 ‘웃티 웨 빠라마 사라띠(vuṭṭhi ve paramā sarāti)에서 웃티(vuṭṭhi)는 ‘비’고, 웨(ve)는 ‘정말로’, ‘참으로’, ‘확실히’입니다. 그래서 ‘비야말로 흐르는 물 가운데 최상이다.’입니다. 두 문장을 합치면 ‘통찰지혜와 같이 빛나는 것이 없고, 비야말로 흐르는 물 가운데 최상이다.’입니다. 통찰지혜같이 빛나는 것이 없다는 뜻은 태양은 특정한 지역만 비출 뿐만 아니라 그것도 지금의 어둠만 몰아냅니다. 하지만 통찰지혜는 하나의 광명으로 수만의 세계(loka-dhātu)를 밝힐 수 있고 욕계, 색계, 무색계라는 삼계의 모든 암흑을 몰아냅니다. 그러므로 ‘통찰지혜와 같이 빛나는 것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비야말로 흐르는 물 가운데 최상이라는 뜻은 만일 비가 오지 않으면 큰 바다도 말라버리고, 비가 많이 내리면 광음천(Ābhassara)까지도 물바다가 됩니다. 그러므로 ‘비야말로 흐르는 물 가운데 최상이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두 문장을 합치면 ‘통찰지혜와 같이 빛나는 것은 없고, 비야말로 흐르는 물 가운데 최상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측량할 수 없는 겁인 아상카 갑빠(saṅkha kappa)가 달라지는 4가지 방식이 나오는데 불로 물로 바람으로 모든 천상과 인간세계까지 사라집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바람이 아니라 바람으로 인해 사는 생명이 사라집니다. 여기에 나오는 천신은 이런 것까지 알고 있는 욕계의 천신으로 보입니다. 디가 니까야에 지구가 멸망하면 인간이 색계 이선정의 세계인 광음천(光音天)으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인간이 광음천에서 내려왔습니다. 광음천의 천신이 지구에 내려와서 보니 지구가 젤리 맛입니다. 아이들이 먹는 과자처럼 맛이 좋아 욕심을 계속 내는 바람에 천상에 올라갈 힘이 사라지고 인간으로 남았습니다. 어떤 천신은 올라가고 힘이 부족한 천신은 남았습니다. 지구가 만들어지는데도 몇 겁이 걸립니다. 지금은 우리가 인간으로 살지만 위에서 내려온 천신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지구가 멸망하면 왔던 광음천으로 다시 간다고 하는데 아무나 가는 것이 아니고 갈 수 있는 사람만 갑니다.
딱딱한 것을 먹을수록 굳은 몸과 마음을 가집니다. 동물들은 인간보다 딱딱한 음식을 먹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맛있는 것 먹어도 씹어 먹지 못하면 오래 살지 못합니다. 천신들은 삐띠(pīti)를 먹고 삽니다. 삐띠(pīti)는 희열, 기쁨입니다. 희열과 기쁨으로 오온을 누리고 사는 공간이다 보니 천신을 나타날 때는 몸이란 말을 쓰지 않고 빛을 내면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아들에 비견하지 못함 경은 천신이 와서 부처님께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있습니다. 다 듣고 나신 후 부처님께서는 그보다 더 소중하고 최고인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바보 같은 질문을 할 때는 따끔하게 말할 때도 있고, 지혜를 가지고 질문을 하면 그에 맞게 설명하십니다. 부처님께서는 천신들에게 본인의 지혜와 근기에 따라서 다르게 설명하십니다. 여기에 나오는 천신들은 욕계천신들이고 욕계신들 중에서도 하층 천신들입니다. 색계 천신들이 부처님을 친견할 때는 수행에 관한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천신들이 불교적인 마인드가 없을 수도 있어서 부처님께서 그때마다 다르게 말씀해 주십니다.
천신의 첫 번째 말이 아들에 대한 사랑만큼 더 큰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들이란 남녀 모두의 자식을 말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붓다왐사 마눗사에서 ‘아이들만큼 큰 재산이 없다. 즉 최고의 재산이 자식들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천신에게는 좀 더 높은 단계의 가르침을 말씀하셔서 아들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현실을 깨우게 하셨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이 너무 힘들어 한다고 합니다. 아이들한테 서운한 말을 조금만 해도 어머니가 학교에 달려옵니다.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너무 소중하게 생각하다보니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뭐라고 말하지 못합니다. 모든 아이들이 다 소중한 것이 아니고 내 아이만 소중히 여깁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큰 애정을 줍니다. 자식과 관련하여 부첨님과 아버지 숫도다나 왕과의 일화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성도 후 처음으로 숫도다나 왕을 만나러 고향에 가셨을 때 많은 석가 족들이 출가를 했습니다. 부처님의 이복동생 난다는 결혼식을 올리고 왕자로 인정받는 날 출가합니다. 석가 족 엘리트들 대부분이 그때 부처님을 따라나서면서 출가했습니다. 라훌라와 난다가 출가하면서 숫도다나 왕은 너무 슬펐습니다. 왕권을 물려줄 사람이 없게 된 것입니다. 라훌라를 잘 키우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난다도 출가해 버리자 숫도다나 왕은 “부모와 자녀의 애정은 피부, 피, 세포 속에 쑥 들어가 있는 애정입니다. 그러니 부모의 허락 없이 출가시키시면 안 됩니다.”라고 얘기하니 부처님께서 “예”하고 바로 대답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테라와다에서는 부모의 허락 없이 출가할 수 없습니다. 부모 허락 없이 출가시킨 스님은 다시는 제자를 둘 수 없습니다.
비구가 재가자 중에서 돌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부모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숫도다나 왕이 돌아가실 때 머리를 만지면서 법문을 하셨는데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장례행렬 뒤를 따라 화장터까지 가셨습니다. 도리천에 가셔서 어머니께 설법하셨고, 또 이모에게 진 우유 빚을 갚을 수 있도록 법을 설해서 이모는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사리불존자도 어머니를 올바른 길로 제도하기 위해서 돌아가시기 1주일 전에 고향으로 가셔서 어머니에게 법을 설해서 어머니가 수다원 도과를 성취하였습니다. 목건련존자도 지옥에 가서 어머니를 제도하기 하기 위해 법을 설했습니다. 상좌부 전통에서는 비구가 부모님을 돌보 수 있습니다. 어떤 절에는 공양주처럼 절 일을 하면서 지내기도 합니다. 부모의 자식을 향한 애정은 끊을 수 없는 강한 관계이기 때문에 다섯 가지 죄 중에 부모를 죽이면 오역죄에 들어갑니다.
부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께 와서 공덕을 지으려고 기다렸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는 ‘부모를 보살펴라. 그러면 나한테 한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붓다위와 와다 붓다위다마따’라고 하셨는데 이는 ‘부처님 같은 어머니’ 부처님 같은 아버지‘라고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라훌라를 보는 마음으로 모든 중생을 바라보았다고 하십니다. 관세음보살님이 사무량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관세음보살이 바로 부모입니다. 자애경에 외아들을 키우는 자애심으로 모든 존재를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경장과 율장에 자식과의 애정에 관한 많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간들에게는 최고의 재산이 자식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통찰지혜 보다 더 빛나는 것은 없습니다.
경전 다음 게송을 살펴보겠습니다.
캇띠야 숫따
Khattiya sutta
왕족 경(S1:14)
사왓티 니다낭
Sāvatthinidānaṃ. ~~ (생략)
1. 에까만땅 티따 코 사 데와따 바가와또 산띠께 이망 가탕 아하시.
Ekamantaṃ ṭhitā kho sā devatā bhagavato santike imaṃ gāthaṃ abhāsi.
1. 한 곁에 선 그 천신은 세존의 앞에서 이 게송으로 여쭈었다.
2. 캇띠요 드위빠당 셋토, 바리밧도 짜뚭빠당
Khattiyo dvipadaṃ seṭṭho, balībaddo catuppadaṃ,
꼬마리 셋타 바리야낭, 요 짜 뿟따나 뿝바조띠.
Komārī seṭṭhā bhariyānaṃ, yo ca puttāna pubbajoti.
2. 왕족은 두발 가진 존재들 가운데 으뜸이고
황소는 네발 가진 것들 가운데 으뜸이며
소녀는 아내들 가운데 으뜸이고
장남은 아들들 가운데 으뜸입니다.
바가와(bhagava)
세존
3. 삼붓도 드위빠당 셋토, 아자니요 짜뚭빠당,
Sambuddho dvipadaṃ seṭṭho, ājānīyo catuppadaṃ,
숫수사 셋타 바리야낭, 요 짜 뿟따남아맛사워띠.
Sussūsā seṭṭhā bhariyānaṃ, yo ca puttānamassavoti.
3. 정등각 자는 두발 가진 존재들 가운데 으뜸이고
혈통이 좋은 준마는 네발 가진 것들 가운데 으뜸이며
순종하는 자가 아내들 가운데 으뜸이고
충실한 자가 아들들 가운데 으뜸이다.
캇띠야(Khattiya)는 부처님이 사용하신 빨리(pāli)어고, 이 단어를 브라흐만이 사용하는 산스크리트어로는 크샤뜨리야(Kṣatriya)라고 합니다. 크샤뜨리야(Kṣatriya)는 ’귀족‘, ’왕족‘, ’전사(戰士)‘ ’무사(武士)‘라고 합니다. 인도의 카스트계급 중에서 두 번째에 해당하는 왕족이며 무사계급입니다. 부처님은 크샤뜨리야(Kṣatriya) 계급이셨습니다.
본문 게송의 ‘캇띠요 드위빠당 셋토(Khattiyo dvipadaṃ seṭṭho)’에서 킷띠요(Khattiyo)는 ‘왕족’이고, 드위빠다(dvipada)는 ‘두 발을 지닌 존재’, ‘인간’, ‘사람’입니다. 셋토(seṭṭho)는 ‘최상의’, ‘뛰어난’, ‘으뜸’입니다. 그래서 ‘왕족은 두 발을 가진 존재 가운데 으뜸이다’입니다.
다음에 ‘바리밧도 짜뚭빠당(balībaddo catuppadaṃ)’에서 바리밧도(balībaddo)는 ‘황소’입니다. 짜뚭빠당(catuppadaṃ)은 ‘네 발을 가진 것들’입니다. 그래서 ‘황소는 네 발을 가진 것들 가운데 으뜸이고’입니다. 인도에서는 명절에 가장 먼저 소한테 음식을 먹입니다. 옛날에 한국에서도 농업위주 사회였기 때문에 소가 귀한 동물이었습니다.
다음에 ‘꼬마리 셋타 바리야낭(Komārī seṭṭhā bhariyānaṃ)에서 꼬마리(Komārī)는 ’소녀‘ ’처녀‘입니다. 바리야(bhariyā)는 ’아내‘, ’부인‘, ’처‘입니다. 그래서 ‘소녀는 아내들 가운데 으뜸이고’입니다. 다음에 ‘요 짜 뿟따나 뿝바조띠(yo ca puttāna pubbajoti)’에서 요(yo)는 ‘어느 것’, ‘무엇이라도’이고, 뿟따나(puttāna)는 ‘아들’이고, 뿝바조(pubbajo)는 ‘먼저 태어난 아들’, ‘장남’입니다. 그래서 ‘소녀는 아내들 가운데 으뜸이고, 장남은 아들들 가운데 으뜸이다.’입니다.
꾸마리(kumāri)는 ‘소녀’, ‘동녀’, ‘처녀’라는 뜻인데 지금도 인도에서 지역마다 어린 소녀인 꾸마리(kumāri)를 한사람을 뽑습니다. 지역에서 예쁜 사람을 뽑는데 이것은 힌두교 전통입니다. 꾸마리(kumāri)는 어리고 예쁘다는 뜻이 있습니다. 소년은 꾸마라(kumāra)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꾸마리(kumāri), 꾸마라(kumāra)라는 이름을 많이 좋아했습니다. 인도나 스리랑카에서는 이름을 보면 그 사람의 지역과 특성 등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꾸마리(kumāri)나 꾸마라(kumāra)는 카스트가 낮은 사람에게는 붙지 않습니다.
인도에서는 네 계급 중에 브라흐만, 끄샤뜨리야, 바이샤가 아닌 수드라는 의사가 치료할 때 환자의 손발이나 몸을 만지지 않고 대충 보고 치료합니다. 이름을 보면 출신을 알 수 있습니다. 인도가 카스트제도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났던 때는 붓다시대와 아쇼카 왕 시대였습니다. 수드라는 많은 돈을 준다고 해도 호텔에서 허락하지 않습니다. 수드라들도 그들의 사회 환경 속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한국 분들이 불쌍해서 돈을 주며 호텔가서 자라고 말해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중간 질문) 카스트 제도와 같은 비인간적인 사회제도를 가진 나라에 부처님이 태어난 것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 까요?
(중간 답변) 부처님이 되시기 전의 보살께서 도솔천에 계시면서 어디에 태어날 것인지 보십니다. 물질적으로 풍요하거나 편안한 곳보다 힘든 곳에 살아도 정신적으로는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행복만 있는 천상에서는 깨닫지 못합니다. 무상, 고, 무아를 느낄 수 없습니다. 당시 인도 사회는 카스트가 있고 빈부격차가 심하고 다양한 사상이 있었으며 무상하고 괴로운 사회였습니다. 부처님은 왕자로 태어났지만 강국도 아니고 약한 나라도 아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계급인 브라흐만으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왕자들은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정을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브라흐만 사람들은 늘 존경받는 사람이기 때문에 깨달은 자가 나오더라도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왕족 중에서 깨달은 자가 나오면 사람들이 많은 귀를 기울입니다. 나라를 다스릴 왕자가 이런 말을 하네, 하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도 할뿐만 아니라 신뢰도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선정수행이 강한 시대에 태어나셨습니다. 선정수행이 강해야 위빠사나를 잘 계발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다음 게송을 보겠습니다. ‘삼붓도 드위빠당 셋토(Sambuddho dvipadaṃ seṭṭho)’에서 삼붓도(Sambuddho)는 ‘원만하게 깨달은’, ‘올바로 깨달은’, ‘정각자(正覺者)’, ‘등각자(等覺者)’, ‘정등각자’입니다. 정등각자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 위없는 깨달음을 얻은 붓다를 말합니다. 드위빠당(dvipadaṃ)은 ’두 발을 가진 자들‘, ‘인간’이고, 셋토(seṭṭho)는 ‘최상의’ ‘뛰어난’, ‘으뜸’입니다. 그래서 ‘정등각자는 두 발을 가진 자들 가운데 으뜸이다’입니다.
다음은 ‘아자니요 짜뚭빠당(ājānīyo catuppadaṃ)’에서 아자니요(ājānīyo)는 ‘(말의)혈통이 좋은’, ‘고귀한’, ‘순종의’, ‘준마’, ‘잘 길들인 말’입니다. 짜뚭빠당(catuppadaṃ)은 ‘네 발을 가진 것들’입니다. 그래서 ‘혈통이 좋은 준마는 네발 가진 것들 가운데 으뜸이다’입니다. 두 문장을 합치면 ‘정등각 자는 두발 가진 자들 가운데 으뜸이고, 혈통이 좋은 준마는 네발 가진 것들 가운데 으뜸이며’입니다.
다음은 ‘숫수사 셋타 바리야낭(Sussūsā seṭṭhā bhariyānaṃ)’에서 숫수사(Sussūsā)는 ‘듣기를 원함’, ‘순종’, ‘복종’, ‘주의하여 듣다’입니다. 우리가 순종한다고 할 때 자기 말을 하는 것보다 남이 하는 말을 듣는 것을 말합니다. 숫수사(Sussūsā)는 순종을 해서 착하다는 것입니다. 이때 순종한다는 것은 잘 생겼든 못 생겼든 교육을 잘 받았다는 것입니다. 셋타(seṭṭhā)는 ‘최상의’, ‘뛰어남’, ‘으뜸’이고 바리야낭(bhariyānaṃ)은 ‘아내들’입니다. 그래서 ‘순종하는 자가 아내들 가운데 으뜸이다’입니다.
다음에 ‘요 짜 뿟따남앗사워띠(yo ca puttānamassavoti)’에서 뿟따남아사워uttānamassavo)는 뿟따남(puttānam)과 아사워(assavo)는 합성어입니다. 뿟따(puttā)는 ‘아들’이고 아사와(assava)는 ‘충실한’, ‘충성스러운’입니다. 그래서 ‘그러니까 어느 것보다 충실한 자가 아들들 가운데서 으뜸이다‘입니다.
본문에 천신의 게송에 ‘왕족은 두발 가진 존재들 가운데 으뜸이다’고 했는데 부처님께서는 ‘정등각 자는 두발 가진 존재들 가운데 으뜸이다’고 하셨습니다. 다음에 천신은 ‘황소는 네발 가진 것들 가운데 으뜸이다’고 했는데 부처님께서는 혈통이 좋은 준마는 네발 가진 것들 가운데 으뜸이다’고 하셨습니다. 혈통이 좋고 잘 길들여진 말이 더 뛰어나다고 하셨습니다. 이때의 천신은 왕족은 알았지만 정등각자에 대해 알지 못한 것을 부처님께서 깨우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천신은 ‘소녀는 아내들 가운데 으뜸이고, 장남은 아들들 가운데 으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가 아내들 가운데 으뜸이고, 충실한 자가 아들들 가운데 으뜸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속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보다 진실한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말씀이십니다. 일반적으로 장남의 역할이 중요한데 스리랑카에서는 막내가 복이 많고 아들 중에 최고입니다. 막내가 제사도 지내야 하고 재산도 물려받고 부모님도 모십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장남이나 막내가 더 중요한 것보다 이런 서열에 의하지 않고 자신이 충실한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충실한 아들은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고 자기가 할 일을 하면 이것이 효도하는 것입니다.
아자니야(ājānīya)는 혈통이 좋은 잘 길든 말입니다. 사실 말 가운데 최고 높은 카스트 말이 있습니다. 말에도 카스트라는 계급이 있습니다. 코끼리는 15카스트가 있습니다. 스리랑카에 코끼리가 있는 고아원에 가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스리랑카에는 7월 보름에 부처님 치아 사리를 모시고 1주일간 축제를 합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행렬 축제로 유네스코에 올라가 있는데 이 행사에 코끼리가 2~3백 마리가 나옵니다. 부처님 치아사리를 모신 코끼리는 발 2개, 손 2개, 코, 성기까지 6군데가 땅에 닿아야 합니다. 일반 코끼리는 5군데만 땅에 닿으면 됩니다. 일반 코끼리는 서로 만나면 춤추고 움직이고 정신이 없지만 부처님 치아사리를 모신 코끼리는 자세가 얌전하고 바릅니다. 이 코끼리는 딱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지금은 인도에는 코끼리가 5카스트 밖에 없습니다. 최고의 카스트 코끼리와 일반 코끼리의 차이점이 매우 큽니다. 낮은 카스트 코끼리가 위에 올라가면 공격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카스트인 가장 똑똑한 카스트 코끼리가 치아사리를 모시게 합니다. 똑똑한 사람에게 일을 시키는 것과 같이 똑똑한 코끼리에게 중요한 일을 맡깁니다. 저는 말은 탄 적이 없지만 코끼리를 타 본적 있습니다. 말은 자기 맘에 안 들면 무너뜨립니다. 코끼리는 싫으면 절대 자기 어깨에 올라오지 못하게 하고 일단 태우면 절대 떨어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코끼리는 긍정과 부정이 확실합니다.
옛날에 꾸따깐나(Kūṭakaṇṇa) 왕이 있었습니다. 이 왕을 모시는 굴라완나(Guḷavaṇṇa)라는 특별한 말이 있었습니다. 왕은 동문으로 나와 쩨띠야산에 갈 생각으로 깔람바 강가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그의 말이 강둑에 서서 물을 건너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왕은 조련사를 불러 ‘그대는 말을 잘 길들였거늘 어찌하여 이 말이 물을 건너려 하지 않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조련사는 ’왕이시여, 이 말은 잘 길들여졌습니다. 그러나 만약 물을 건너면 꼬리가 물에 젖을 것이고, 그러면 왕의 옷에 물이 튈 것을 마음속으로 두려워하여 건너지 않았습니다. 꼬리를 들어 주십시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말의 꼬리를 안전하게 감싸주자 말은 곧바로 강을 건너 건너편 이르렀다고 합니다. 일반 코끼리들은 높은 카스트 코끼리에게 고개를 숙입니다. 코끼리도 5온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물 중에서 최고의 동물을 아자니야(ājānīya)라고 합니다.
다음에 아내는 어린 소녀보다 말을 잘 듣고 순종하는 자가 으뜸이라고 하셨습니다. 말 잘 듣는 말은 착하다는 말입니다. 남의 말을 경청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순종하는 아내가 가정의 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으뜸으로 칩니다.
게송에서 보는 것처럼 천신들도 세속적인 생각만하고 부처님 앞에서 아는 척을 하려고 했는데 부처님께서는 불교적인 가르침은 아니지만 세속적 관념을 바꾸도록 가르침을 펴고 계십니다.
< 묻고 답하기 >
(질문 1) 천신들이 부처님께 질문을 할 때 잘난 척 하는 경향이 있어 보입니다.
(답변 1) 그렇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는 이런 천신에는 부처님이 더 세게 논파하여 반전시킵니다.
(질문 2) 옛날 어떤 수행자가 코끼리의 시봉을 받으며 수행했다는 말이 있던데 가능한 일인가요?
(답변 2) 부처님 당시 담마(Dhamma)를 중시하는 큰스님 한분이 작은 계율 하나를 어겼습니다. 이때 계율을 중히 여기는 쪽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며 스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계율을 중시 제자들끼리 내부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부처님께서 세 번이나 그러지 말고 정신차려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이들은 다툼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혼자 숲 속으로 떠나셨습니다. 이때 부처님께서 석 달 동안 혼자 안거를 보내셨는데 그 때 코끼리와 원숭이가 공양을 올렸다고 합니다.
동물들은 눈빛을 보고 안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싸울 때 눈빛을 보고 싸웁니다. 동물들도 눈빛이 강하면 도망가고 눈빛이 약하면 싸우려고 달려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이 법문하실 때 부처님의 눈빛을 보고 부처님이 나를 보고 있구나, 나를 가르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깨달은 사람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우리 절에 고양이 한 마리가 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을 보면 처음에 눈을 보고 있다가 경계를 풉니다. 뱀은 눈이 위로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옆에 가면 크게 보여서 두려움을 느끼고 공격한다고 합니다. 뱀이 한번 독을 쓰고 나면 하루 동안 쓸 에너지를 다 썼다고 합니다. 사람도 한 번 화를 내면 엄청난 에너를 소모합니다. 그래서 눈빛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코끼리는 눈빛으로 소통을 한다고 합니다. 동물들은 빛이 나는 색깔을 싫어합니다. 동물들은 검은색과 같이 어두운 색을 좋아해서 숲에 갈 때는 가사와 같이 밝은 색으로 염색한 옷을 입는 것이 동물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주석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눈빛 교감을 잘 하시는 스님들은 문제가 없겠지만 숲에서 수행할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홀로 3개월 동안 안거를 떠나신 후 남은 스님들은 신도들의 심한 질타를 받았습니다. 신도들이 공양을 올리지 않았습니다. 굶으면서 정신을 차리고 부처님께 가서 참회하고 부처님을 다시 모셔오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