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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교회의 예배 회복을 바라며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 中 - 김남준 목사)
§ 1장 §
1. 예배, 신앙의 중심부
-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의 전형적인 표현으로, 공동체의 영적인 수준과 개인의 신앙 생활을 드
러냄.
- 진정한 의미의 예배는 주님의 고난이나 구속 사역에 대한 기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그
리스도의 중보를 통해 죄인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뵈옵는 것임.
- 하나님이 죄인들과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는 권세를 교회에 주심.
- 인간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 앞에 자신이 피조물이며 그분만을 경배해야 함을 떠올림.
2. 공적 예배의 중요성
- 타락 이후 인간은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예배를 상실하고, 숨어 버리는 존재로 전락함.
- 공적인 예배를 강조하는 성경.
- 예배는 편의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자 그리스도인의 '의무' 임 (히 10:24-25)
- 예배의 의무를 게을리함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고백하는 불신앙과 한 가지임.
- 육신의 일을 핑계로 예배를 소홀히 하면 영혼은 핍절하고, 은혜의 세계가 사라지며, 범사에 하나님
의 축복을 잃어버림 (학 1:5-6)
3. 약속이 있는 은혜의 수단으로서의 예배
- 하나님과의 만남인 예배를 통해 능력과 용기, 위로를 얻고 신앙을 지켜야 할 필연적인 의무감을 다
짐.
- 예배는 죄로 말미암아 어둠 가운데 있는 영혼을 진리의 빛으로 밝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을 갖
게 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참 모습을 인식하게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함.
- 예배를 통해 영혼의 목마름의 해갈과 안식을 얻고, 성령의 은혜를 통해 진리를 붙들고 험악한 세상
을 이길 능력을 공급해 주심.
4. 참된 예배의 중요성
- 하나님께서는 헛된 예배에 대하여 진노하시고 경고하심 (마 15:8-9)
- 형식적인 예배의 원인은 갈망 없는 신앙 생활, 잃어버린 신앙의 기쁨에 대한 소원 없이 세속적인 열
심만 있는 것임.
-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과 경외심이 사라질 때마다 참된 예배를 차가운 형식으로 대신하려 함.
5. 인간의 유일한 소망, 하나님을 만나는 것
- 하나님과의 만남에 기대를 갖는 간절한 마음을 가진 성도의 바람으로 예배는 시작되고, 그러한 바람
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마침.
- 주일이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게 해야 함.
- 예배의 수준을 능가하는 삶도 없고 삶을 능가하는 예배도 없음.
-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예배자를 찾으시며, 만나 주시고, 당신의 살아 계심을 경험하게 하심.
- 하나님을 만나기를 사모하며 간구해야 함.
* 우리는 예배하기 위해서 일주일을 삽니다. 또한 일주일을 살기 위하여 하루를 하나님 앞에 예배합니
다.
무엇보다도 예배와 설교를 통한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도움
을 구하고 거룩한 만남이 있는 예배가 되게 해 달라고 애타게 기도하십시오. 이러한 간구와 기도 없이
예배에 나와서 단지 은혜로운 설교를 듣기 원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설교자를 의지하는 것
입니다.
예배의 수준을 능가하는 삶도 없고 삶을 능가하는 예배도 없습니다. 예배는 삶 안에 갖히고 삶은
예배 안에 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간도 온 땅을
두루 감찰하시며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찾으십
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거룩한 만남을 주시고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예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성도들은 예배의 거룩함을 아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예배자의
가장 큰 제물이 하나님을 향한 상한 마음이며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심령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예배 가운데 하나님과의 만남을 사모하십시오. 시냇물을 찾기에 목마른 사슴
과 같이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길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영혼의 커다란 재앙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예배 가운데 임재해
주시기를 갈망하고 기대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 2장 §
1. 살아 있는 예배
- 죽어 있는 예배에 대한 선지자들의 경고 (사 1:10-15, 미 6:6-8)
- 예배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함은 성령의 역사의 부재 때문이고, 그 결과 신앙과 삶이
나뉨.
- 주님께서 강조하신 예배의 본질적 두 요소 : '성령과 진리 안에서' 예배드려야 함.
- 헬라어 성경에는 '영과 진리 안에서'라고 되어 있고, 이는 '성령'과 '진리'를 의미함.
- 참된 예배는 장소가 아니라 방식이 문제이며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예배자를 찾으심.
- 좁은 의미의 예배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의 삶이 넓은 의미의 예배임 (롬 12:1)
2. 예배에서의 성령의 사역들
- 가장 우선적인 사역 : 하나님에 대해 깨닫고 그 인격을 경험하게 하심.
- 무한한 질적 차이가 있는 하나님과 인간이 교통하게 하심.
- 진리를 경험하게 하심 : 늘 듣던 진리를 새롭게, 신적인 지식을 분명히 받아들이게 됨. 깨달은 진리
를 신자의 영적 상태와 삶에 적용하게 하심.
- 거룩한 정서를 경험하게 하심 : 경건한 열심을 회복하게 하시고 마음을 감화시키시며, 뉘우친 심령
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를 부으심. 자유한 심령으로 찬양을하게 됨.
- 하나님의 의와 심판에 대해 일깨우시며, 자신이 은혜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알게 하시고 죄를 깨
닫게 하심. 그와 함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회상하고 경험하게 하시며 구속하신 은혜에 감격하
게 하심.
- 은혜를 부어 주심으로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게 하심.
3. 예배의 원형
- 예배의 원형은 구약의 제사이며, 제사는 그리스도의 속죄를 바라본 일시적인 예배의 형태임.
- 속죄가 완성됨으로 제사와 신약의 예배는 동일하지 않음.
- 이방의 제사 개념은 뇌물에 가까운 반면, 하나님은 헌제자와 제사의 일치를 요구하심.
- 제사 현장에서 죽어 가는 제물의 죽음을 통해 인간은 죄로 인해 막힌 담을 허물고 하나님과의 만남
을 기대함.
- 하나님은 예배자를 만나 주심으로 죄를 사하시고 그 영혼에 자비와 은혜, 심령의 자유를 베푸심.
또한 성도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알게 됨으로 자기를 알고 회개하며 삶을 바치기로 결단
하게 됨.
4. 성령의 일하심을 구하라
- 예배에 성령이 임하시지 않으며 깨달음, 진정한 참회와 사죄의 확신 중 어느 것도 있을 수 없음.
- 성령 안에서 드리는 예배에는 자유가 있음.
- 좁은 의미의 예배나 넓은 의미의 예배 모두 성령의 일하심 없이는 드릴 수 없음.
- 신자는 예배가 불꽃처럼 드려지도록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함.
* 성령이 예배 가운데 역사하시지 않으면 깨달음도 없고 치유도 없으며, 진정한 참회와 사죄의 확신도 있을 수 없습니다. 모습이 경건해도 결국은 형식을 숭상하는 바리새인의 예배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성령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고서는 그 예배로 말미암아 감화를 받고 앞으로 한 주 동안을 험악한 세상 속에서 오직 믿음으로 싸워 이겨야겠다는 결의와 승리를 기대하며 교회당을 나서는 일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넓은 의미의 예배인 엿새 동안의 삶에서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며, 이렇게 실패한 삶 때문에 주일에 드리는 좁은 의미의 예배가 더욱 답답하게 되고 말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십시오. 예배다운 예배를 통해 만들어지는 교인은 여타의 인간적인 방법이나 프로그램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교인들보다 더욱 성경의 기대에 가까워집니다. 예배다운 예배가 드려지고 있다면 그 교회는 성도들로 가득 차게 되고 그 성도들은 하나님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고요한 침묵으로 드리는 무감각한 예배야말로 우리와 우리 시대 조국 교회에 진정한 신앙 부흥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가 불꽃처럼 드려지도록......"
§ 3장 §
1. 진정한 예배의 두 번째 요소 : 진리
- 하나님과의 만남은 항상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경험임.
-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과 존재에 관해 새로이 인식하고, 그것으로 삶에 대한 교훈을 얻음.
- 신자에게 신앙적인 체험이 "열(熱)이라며 진리의 '빛' 또한 절실함. 체험을 통한 진리가 우리를 붙
듦.
2. 진리,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한 다리
- 올바른 진리의 선포 없이는 예배다운 예배가 없고 하나님을 뵈올 수도 없음.
- 그와 함께 신자의 올바른 반응이 요구되며 성령의 축복이 있어야 함.
- 모든 설교의 유일한 원천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임.
3.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
- 성경은 진리 그 자체이나 그것이 전달될 때 오염될 수 있음.
- 설교가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갖기 위해서는 올바른 방식으로 성경 진리가 다루어져야 함.
- 따라서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순수한 말씀이어야 함.
- 설교자는 순수한 성경의 진리를 단순하고 평이한 방법으로 청중에게 이해시키는 설교 방식을 채택
함으로써 성도들의 예배가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해야 함.
- 리처드 백스터(Richard Baxter) : "가장 소박한 말이 가장 묵직한 문제들을 다룰 때 가장 유익한 웅
변이 된다."
4. 인격적이신 하나님
- 설교가 예배의 절정이라고 확신했던 청교도의 격언 : "모든 하나님의 은혜는 이해로부터 온다."
- 하나님은 물리적인 폭력이나 힘으로 백성들을 인도하시지 않으시며, 신중한 동의와 지성적 순종을
동반한 인격적인 승복으로 인도하심.
-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명백히 설교를 의미하며, 설교는 하나님의 심판과 위로를 담고 있음
- 신자는 순종함으로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함.
5. 진리의 회복 없이 예배의 회복은 없다.
- 성도들이 예배 가운데 정직한 복음 선포와 순수한 진리의 말씀을 들어야 함.
- 설교의 회복을 통해서만 예배 비로소 예배답게 됨.
- 신자는 순수한 말씀에 대하여 정직하게 반응해야 예배를 회복할 수 있음.
- 설교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신자의 의무이며, 설교자의 언변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야 함.
* 오늘날 조국 교회의 예배 위기는 단지 열정적인 찬양팀의 운영이나 전문적인 성가대의 운영 혹은 예배 순서의 현대적인 변화, 아름다운 실내 장식 들을 통해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의 회복 없이는 예배가 회복된 적이 없습니다. 교인들이 예배 속에서 정직한 복음 선포와 순수한 진리의 말씀을 듣게 되는 설교 회복을 통해서만 예배는 비로소 예배답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 속에서 순수한 진리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 4장 §
1. 삶과 나뉠 수 없는 예배
- 이스라엘 백성이 믿지 않는 이들과 구별됨이 오직 예배의 '행위' 뿐일 때 하나님은 진노하심.
- 바른 삶을 살지 못할 때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의 마음을 끌지 못함.
- 예배를 위해 살아가고, 삶을 위해 예배하는 그리스도인.
2. 예배자의 그릇된 행태들
- 삶에 대한 부담이나 고민 없이 예배에 참석하며 예배를 값싼 은혜의 도구로 여김.
-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바와 삶의 격차를 놓고 영혼이 깨어지지 않으며, 그에 대해 상한 심령으로 회
개하지 않음.
- 귀를 기울이지 않음. 자신의 틀로 말씀을 재단함. 설교자의 인격적인 흠을 빌미로 의무를 저버림.
- 진리로 말미암는 감격이 없다면 삶을 돌아봐야 함.
3. 실패자도 받으시는 하나님
- 죄인 됨을 자각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밖에는 의지할 것이 없다고 고백하는 이들의 예배를 기뻐
하심.
- 스스로를 죄인이라 여기는 사람들은 유일한 중보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됨.
-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함께 함. 실패 가운데 주님을 더더욱 찾고 사모하는 마
음은 예배를 통해 드러남.
- 고난과 핍박의 때에도 영혼이 진정한 사죄의 은총을 얻고 안식을 얻으며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있
는 기회가 되며, 하나님의 마음을 엿보는 시간이 됨.
4. 삶의 우선성
- 삶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경외감이 사라지자 예배라는 형식에 고통하시는 하나님 (렘 7:22)
- 예배에 참석하고 예배를 마칠 때 우리의 관심은 삶이어야 함.
- 성경의 진리를 알아 가는 것도 지식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의 실천을 위한 것이어야 함.
- 실천의 중요성 : 놀라운 기적으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계명을 먼저 주신 하나님, 그 후
에 성막과 제사에 대해서 지시하심.
5. 들어야 할 말씀
- 삶의 실천을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여야 함.
- 하나님께서 깨닫는 일을 예배의 중심에 놓으신 것도 우리로 행하게 하시기 위함임.
- 당신의 말씀을 듣는 자에게 축복을 약속하시는 하나님.
- 우리가 하나님의 종임을 인식하고 진리의 말씀에 귀기울이는 것이 참된 예배의 정신임.
* 하나님께서 깨닫는 것을 예배에 중심이 되게 하신 이유는 우리로 행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예배를 통해 무엇을 들으셨습니까? 설교를 통해 무엇을 깨달으셨습니까? 이제 여러분의 예배 태도를 바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이유이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는 이유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순종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축복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배 정신은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태도를 통해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당신은 예배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까?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당신의 태도는 어떻습니까?
정말 거룩한 감화를 기대할 수 있는 청취자의 태도입니까?
§ 5장 §
1. 예수님의 포도원 비유
- 악한 농부 : 복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들.
- 주인 : 모든 것을 예비해 놓고 (마 21:33) 농부들로 충분히 누릴 수 있도록 한 자비로운 주인(이스라
엘에게 가나안 땅을 허락하신 하나님).
- 충성된 종 : 설교자.
- 소작료 : 의와 공평을 추구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구별된 삶.
2. 설교자를 보내신 목적
- 설교자의 사명은 철저히 하나님과 연관됨.
- 설교자는 하나님께 보냄을 받은 선지자의 후예임 (눅20:10).
- 하나님께서 마땅히 받으실 소작료로서 백성들에게 의와 공평과 삶의 열매를 요구하심, 즉 은혜에는
계획이 있음.
-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설교자의 가장 우선적인 사명.
3.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과 타락한 인간
- 긍휼로 살아온 인간에게 의와 공평의 삶은 힘겨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의 제목임.
- 하나님을 떠난 인간 : 악한 농부, 내야 할 소작료만 생각했지 받은 은혜는 생각지 못함.
- 충성된 종이 죽임당하는 것을 보시면서도 (눅 20:12) 다시 종을 보내시고 결국에는 당신의 아들까지
내어 주심.
- 선지자들의 죽음을 통해, 선지자들을 부당하게 대우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이 세상을 한없이 사랑
하시는 하나님의 가슴 저미는 사랑을 볼 수 있음.
- 그 사랑으로 인해 당신의 종들이 매 맞고 능욕 당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알지 못하
는 무지한 자들에게 끊임없이 당신의 음성을 들려주고 싶어하심.
- 이것은 설교자의 소명과 연결할 수 있는데, 설교자의 소명이 고귀하기 때문에 하늘 나라에서 갚아
주실 것임 (행 7:55-56)
4. 예배자의 바른 태도
-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와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을 알아야 함.
-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진노와 책망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경험해야 함.
- 하나님의 사랑에 빚진 우리는 마땅히 예배를 드려야 함.
- 흠 없고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기억하고, 그 고난을 삶 가운데 경험해야 함.
5. 하나님의 사랑을 개달음
-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믿음을 지키며 살아갈 거룩한 힘을 설교를 통해 공급 받음.
- 예배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경험하는 시간이며, 설교자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기 우해 부름
받은 사람임.
- 예배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불타는 설교자를 필요로 함.
* 우리는 그 사랑에 감사하며 믿음을 지키며 살아갈 거룩한 힘을 설교를 통해 공급받습니다. 장차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찬란한 영광과는 비교돌 수 없기에 신앙을 따라 잠시 당하는 환난과 고난에 감사하는 마음도 예배를 통해 갖게 됩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그 사랑을 알지 못했더라며,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깨닫는 예배의 기쁨이 없었더라면, 찬양을 통해서 우리의 굳어졌던 심령이 하나님을 향하여 열리는 이 예배가 없었더라면, 우리의 돌같이 굳어진 심령이 깨지고 참회하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예배의 축복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벌써 하나님 곁을 떠났을 것입니다.
예배 시간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경험하느 시간 입니다. 설교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주기 위하여 부름을 받은 사람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예배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불타는 설교자를 필요로 합니다.
§ 6장 §
1. 회심치 못한 자들의 대표적인 욕망, 탐심
- 탐심은 인격에 영향을 미치고 신앙의 자유를 앗아감.
- 영적으로 잠든 가운데 가지게 되는 탐심은 자기만 사랑하게 하는 독버섯임.
- 헌금 생활에서 그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가 드러남.
2. 풍성한 연보
- 부유한 고린도 교회보다 가난한 마게도냐 교회가 넘치도록 헌금함.
- 마게도냐 교회가 일깨워 주는 것은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헌금함으로 시련을 당하고 환난을
당하는 삶이 헌금 생활과 아무 관련이 없을 수 있다는 것임.
3. 헌금 생활의 근간,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기쁨
-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기쁨으로 넘치도록 헌금한 마게도냐 교회 (고후 8:2), 기쁨의 근원도 하나님의
은혜임.
- 환난과 시련도 컸지만 그것을 능가하는 신앙의 기쁨이 있음.
- 만물이 주의 것 (시 50:7-12)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신자가 당신만을 의지한다는 사실을 보고 싶어하
심.
- 헌금도, 구제도, 재능을 드리는 기회도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짐.
4.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인생
- 헌금함을 돌리거나 헌금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세속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임.
- 물질은 정당한 방법으로 그것을 취한 이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농축한 것임. 물질 속에 하나님이 주
신 직업의 기회를 선용한 성실함이 담겨짐.
- 인생을 하나님께 드림 : 옥합을 깨뜨린 여인 (마 26:6-13)은 지난날 모든 인생을 부은 것임. 예수 그
리스도를 만나고 그녀의 삶의 가치와 사랑의 대상이 바뀜.
- 헌금에 담긴 고백 : 그리스도인은 물질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임.
5. 헌금 설교로 부흥한 교회
- 설교자가 돈을 위해 설교하면 성도들이 시험에 들 것이나, 복음이 요구하는 바를 따라 헌금에 대해
정직하게 설교한다면 오히려 교회는 부흥할 것임.
- 성도들이 성경적인 정신을 따라 순수한 동기로 연보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예배에 영향을 줌.
- 모든 섬김에 있어서 사람의 이름을 감추며, 교회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해야 함.
6. 헌금에 대한 세 가지 실천 원리
- 헌금의 액수에서는 힘대로 혹은 힘에 지나도록 하는 것이 좋음 (고후 8:3)
- 누구의 강요나 자신의 체면을 위해서 바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함
(고후 8:3-4).
- '자신'을 먼저 드린 헌금이어야 함 (고후 8:5). 자기 헌신과 자기 부인 : 그리스도의 모본을 기억함.
-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원하시며, 참된 예배 회복을 위해 참된 헌금 생활이 필요함.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하나님께 넘치는 연보를 한 마게도냐 교회를 기뻐하시는 것도 바로 그들이 드린 물질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그 연보를 통해서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드려진 것을 입증하였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만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물질은 우리를 위하여 있고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린다면 물질을 하나님 앞에 바치는 것은 얼마나 쉬울까요? 진정한 헌금 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참된 예배 회복을 위해 꼭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의 헌금도 불꽃처럼 드려져야 합니다.
§ 7장 §
1. 찬양이란 무엇인가
- 찬양은 예배와 마찬가지로 살아 계신 하나님과의 생생한 교제임.
- 찬양의 영적 원리 : 먼저 하나님의 성품과 행하신 위대한 일들에 대한 경험을 돌아봄.
-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 (출 14:22, 28-29)을 체험한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함.
- 하나님의 은혜의 현재적인 체험이 있을 때, 찬양은 마음의 중심에서 우러나옴.
2. 찬양은 부흥의 수단인가
- 찬양을 통해 감동을 주고, 변화를 불러일으키려는 시도의 유행 (과도한 악기의 사용, 심리적인 기법
의 응용)이 가진 오류를 경계해야 함. 찬양은 진리를 대체할 수 없음.
- 찬양을 드릴 때 규모와 자유가 조화되어야 함 (일정한 격식이 존중되어야 하며, 동시에 자유를 허락
해야 함).
- 찬양받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자세와 마음 가짐이 세속의 노래를 즐기는 것처럼 가벼워서는
안됨.
- 예배를 위한 찬양은 가사에 집중할 수 있는 거듭난 가락이어야 함.
- 회중 찬양이 중심이 되어야 함.
3. 찬양의 유익
- 찬양은 곡조가 있는 사락으로, 흥얼거리기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을 아시는 하나님의 신앙적인 배려
임.
- 하나님의 말씀을 향해 우리의 마음을 열게 함. 예배의 가장 우위적인 요소인 깨닫게 하심과 조화를
이룸.
- 우리의 예배가 고백과 함께 축제적 성격을 갖게 함.
- 특별히 가사를 암송하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찬양을 부르는 데 유익함.
4. 찬양의 이유
- 첫째, 하나님의 창조 (시 148:3-5) : 하나님께서 창조주 되심에 주목하게 하는 찬송은 당신이 계시하
시는 인간의 위치를 묵상하게 하는 힘이 있음. 결국 하나님의 존재의 거룩함을 찬송하게 됨.
- 둘째, 자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 (시 135:3-4) ; 하나님께서 자녀를 선택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을 찬양함 (영적인 순발력을 소유하게 됨). 동시에 이 시대를 향한 거룩한 소명을 받은 것임.
- 셋째, 구원의 은예(출 14:30-31) : 당신의 백성들을 위기 가운데 건지신 구체적인 구원 행동을 동반
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함.
5. 부흥을 위해 기도하가
-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조국 교회가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부흥을 경험하도록 기도해야
함.
- 교회가 부흥을 경험할 때, 노래가 변하여 찬양이 됨.
* 우리는 예배 중 하나님을 찬양하면서도 이 땅의 온 조국 교회가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위대한 은혜를 경험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마지못해 예배하던 성도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감격 속에서 경배하고, 단지 노래 부르던 교인들이 영혼의 고백으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예배 현장을 그리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이 땅에 거룩한 부흥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부흥을 경험할 때 그 노래가 찬양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8장 §
1. 다윗의 참회시
- 시편 51편에는 범죄 후 다윗이 겪어야 했던 정죄 의식과 하나님께 용서받음으로 거기서 벗어 나고자
하는 다윗의 소원이 기록되어 있음.
- 다윗의 마음이 변함 (잘못된 예배의 중심에 예배자의 삶이 있고, 예배자의 삶의 중심에는 마음이
있음).
-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고 여호와로 자기 나라의 기업을 삼았던 그의 한결같은 신앙의 마음이 변함.
- 범죄 가운데 당한 고통 (시 51:2-3) : 아름다웠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됨. 영혼의 고통, 죄의
속박.
2. 제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던 다윗
- 제사를 통해 범죄한 자들이 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을 기대하고 허물로 말미암아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가 복원되기를 희망하는 것은 당시 신학의 당연한 귀결이었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실패함 : 형식적인 제사 의식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음.
3. 영적 회복의 계기
- 하나님의 말씀 ; 나단 선지자의 지적 (삼하 12:7-12)을 통해 진리의 빛 아래 다윗의 죄가 밝히
드러남.
-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인식하고 허물을 뉘우치는 일이 불가능함.
4. 깨달은 진리
- 다윗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붙들고 처절히 씨름하며 깨달은 진리 :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하시나이다" (시 51:6)
- 당신의 자녀들의 영적 생활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이심으로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깨닫게 됨.
- 주님이 받으시는 것은 하나님 당신 때문에 상한 심령임 (시 51:17).
- 상한 심령 :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며 거룩한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신의
죄 된 모습을 발견하고 아파함으로 상처 받게 된 마음.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되는 것 이외에는 소망
이 없음을 깨달음으로 하나님만 바라보는 데서 비롯된 약해진 마음을 일컬음.
- 하나님께서는 죄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자를 만나 주심 (마 5:3, 시 34:18-19)
5.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키라
-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가장 사소한 범죄에도 진노하시지만 가장 악한 죄인들의 통회하는 심령을
멸시치 않으심.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먼저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임.
- 형식적으로 교회 생활 속에 묻혀 버린 하나님 자신을 향한 갈망을 회복하고 상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야말로 영적 회복의 지름길임.
* 참회의 기도 속에서 시인은 자신의 믿음을 하나님 앞에 고백합니다. "....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시51:17).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가장 사소한 범죄에도 진노하시지만 가장 악한 죄인들의 통회하는 심령을 차마 멸시치 아니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제사도 아니고 번제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게서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었습니다. 반복되는 형식적인 교회 생활 속에 묻혀 버린 하나님 자신을 향한 갈망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영적 회복을 위한 지름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제물보다 하나님의 사죄와 은총을 갈망하는 진실한 심령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느 이러한 갈망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자 하였던 다윗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고 상한 심령으로 바친 제사가 열납된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는 비록 한 순간 범죄하였으나 회개를 통해 더욱 순결해졌고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아는 지식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종교 생활로 신앙 생활을 대신하고, 영적 삶을 분주한 교회 생활로 대치하려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달라."
§ 9장 §
1. 주일과 아식일
- 주일이 안식일의 정신을 계승하여 구속사적으로 서로 신학적인 연관을 갖지만, 완전히 갖니는 않음.
- 구약에서도 안식일의 개념이 신학적인 진전을 보임 : 하나님의 천지 창조와 관련되어 제정된 안식일
은 쉼의 개념이 중심이었음 (창 2:1-2, 출 20:8-11). 이후 안식일에는 새로운 의미가 부여됨. 즉 안식일
은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구원받은 구속 사건을 기념하는 날임이 중시됨 (신 5:12-15).
- 구약의 안식일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백성들이 누리게 될 구속이 주는 신약의 안식을
바라봄. 나아가 고통이 없는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완전한 안식을 바라본 예표임.
- 주일과 안식일의 질적 차이 : 주일의 중심은 율법이나 제도나 인간의 편의가 아니라 '그리스도'
이심.
- 주일은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성도들이 그 은혜에 감격하여 기쁨으로 예배하는 날.
2. 주일과 영적인 부흥
- 단지 의무감이 아니라 주일에는 실제로 영적인 유익을 경험하며 예배의 축복을 누려야 함.
- 이 일을 위해 예배의 회복이 필요함.
- 목회자와 온 성도가 교회 부흥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만남이 있는 예배를 위해 정성을 쏟
아야 함.
3. 예수님의 경고
- 회칠한 무덤과 같은 외식에 대하여 (마 23:27-28) 경고하심. 회칠한 무덤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 사람들이 가장 혐오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는 것 같은 자드에게 내면의 변화를 촉구하심.
- 예배의 형식을 파괴한다고 해서 그 본질로 돌아가는 것은 아님.
4. 성수 주일의 고백이 가능했던 교회
- 참된 영적 은혜가 교회를 뒤덮는 일 없이는 고백과 삶이 괴리될 수밖에 없음.
- 교회가 죄로부터 각성하고, 영적으로 새롭게 깨어나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고 그분으로부터 오는
하늘의 영광과 참된 영적 기쁨을 소유하게 될 때 성도들의 마음은 그리스도로 충만해지고, 그리스도에
대한 가슴 벅찬 사랑과 삶이 예배에 가장 잘 드러남.
- 위와 같은 경험이 있을 때 성도들이 주일은 특별한 축복의 약속이 있는 날임을 확신하게 됨.
- 반대로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형식적이고 메마른 예배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못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임.
5. 영적인 상태를 직시하라
- 형식화되고 세속적으로 편의주의화 되어 가는 주일과 부러진 십자가 신앙에 안타까워하며 주일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함.
- 메마른 그리스도인의 가슴속에 거룩한 부흥을 주셔서 더 이상 거룩한 주일에 대한 논쟁을 할 필요도
없이 그 날의 거룩함을 예배를 통해 체험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그 날을 기대함 (시 126:1-3).
- 거룩한 주일은 오직 불꽃처럼 드리는 예배로만 가능함.
* 마른 땅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슴 속에 거룩하고 참된 부흥을 주셔서 사람들이 더 이상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를 논쟁할 필요없이, 그 날이 얼마나 거룩한 날인지를 예배를 통해 체험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제 마음은 그러한 날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쁘고 영광스러운 날이 참된 부흥을 통해 오리라고 기대하며 삽니다. 마치 시인의 노래처럼 말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시 126:1-3)
거룩한 주일은 오직 불꽃처럼 드리는 예배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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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