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아! 목동아~
이영백
가축 돌보는 아이를 “목동(牧童)”이라 부른다. 현대 시대가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개똥(?)철학으로 서당 다니면서 일상처럼 소를 키워야 하였다. 농촌의 목동이다. 시골에서 열한 마리 소를 먹이던 집은 그때 목장이 아니고서는 잘 없었다. 신학문 못하고 그날부터 내 의지와는 관계없이 저절로 목동이 되었다. “목동아!”라고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큰 머슴과 셋째 형은 소 두 마리를 몰고 칠십 리 길 먼 산에 나무하러 갔다. 중 머슴과 넷째 형이 두 마리를 몰고 삼십 리 길 중간 산에 나무하러 갔다. 이 네 마리는 큰 소이다. 아직 송아지 세 마리와 중소 네 마리는 집을 지켰다. 그들은 우리들이 끌고 나가 풀 뜯기어 먹여야 한다.
소 풀 뜯기려면 분담하여야 하였다. 나와 꼴머슴은 중소와 송아지 한 마리를 각자 책임졌다. 셋째 누나도 중소 한 마리와 송아지 한 마리를 몰고 나가 풀을 뜯겨야 하였다. 나머지 중소 한 마리는 엄마 몫이다. 이렇게 매일 소 풀 뜯어 먹이러 오후 세 시면 모두 나가야 한다. 그것도 나는 오전 서당에 다녀오고, 꼴머슴과 함께 나무 해다 놓으며, 소 몰고 빈수골로 간다. 죽은 사람을 초빈(草殯)하였던 골짜기가 “빈수골”이다.
오후 세 시가 되면 각자 맡은 소를 몰고 산에다 올려놓는다. 우리 집 소는 중소 두 마리 송아지 두 마리이다. 누나는 산으로 안 가고 도랑으로 몰고 나갔다. 엄마는 가장 가까운 집 둘레 언덕으로 나간다. 모두가 소 키우기에 지극정성을 다하여야 하였다. 소홀하면 밥도 못 먹고 큰일 난다.
소를 산에 올려놓고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린다. 지게에다 풋나무 한 짐 해다 받쳐놓고, 시간이 남아서 밀밭으로 가서 밀을 베어 온다. 불 피워 밀을 굽는다. 불에 굽힌 밀을 손바닥으로 비벼 입에다 털어 넣었다. 밀 서리하였다. 배고플 때 그렇게 굽힌 밀은 맛이 났다. 이제 어둑해지면 소들이 내려온다. 그때야 소를 찾아 끈 잡고, 풋나무 지게 지고 집으로 돌아온다.
목동도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하여야 하는데 한문 문장도 암송하여야 하였다. 목동은 그렇게 나의 새로운 직업이 되었다. 시간 내어 한문 문장을 외운다. 뜻 새기며 문장 외우는 것이다.
농촌에서 농사지으며, 소 먹이어 재산 늘이어야 하였다. 아, 목동아!
첫댓글 엽서수필 시대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