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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은 급하게 병원으로 실려간다.
김주성이 그렇게 쓰러지자 새신부인 하은지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려간다.
영미는 남편을 병원으로 실려 보내고 아들 명섭과 현지를 함께 보낸다.
이제 아들이 신혼여행에서 막 돌아온 것이다.
남편에게는 현지를 딸려 보내고 나서 영미는 다시 집안을 수습한다.
“아가! 너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말그라!“
“어머님! 저희가 오자마자 아버님께서 그렇게 되셨는데..........“
“괘안타! 항상 몸이 아프고 병이 심한 어른이시다.
너희들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읍으니 아무 걱정하지 말그라!“
“그래도..........”
하은지는 마음이 불안하다.
“이제 네 남편이 따라 갔으니 곧 무슨 소식이 올 거이다.
설사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너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읍는 일이다.“
하은지는 그렇게 말씀을 해 주시는 시어머님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그것을 탈 잡으려면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서 생긴 일이라고 해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본디 네 시어른은 암수술을 받으신 분이시다.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있을지 항상 조마조마 하던 어른이니 네가 걱정할 일은 아무것도 읍다.
피곤할 테니 네 남편이 올 때까지 어서 들어가 쉬어라!“
영미는 그렇게 새색시를 방으로 들어가 쉬게 한다.
처음 남편의 병이 발병했을 때보다는 영미는 놀라지 않는다.
시집온 첫날 놀랬을 며느리를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영미는 뒤늦게 주성이 간 병원으로 간다.
이미 검사가 끝나고 입원실로 올라간 후였다.
“왜 그러는지 결과를 알았니?”
명섭은 어머니를 병실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어머니! 위암이 다시 재발을 하신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증상들이 있으신 것 같았는데 아마 말씀을 하지 않으셨던 모양입니다.“
“재발을 해?”
“다시 또 여러 가지 검사 결과를 보아야겠지만
더 이상의 수술은 환자 자신에게나 가족들에게나 힘든 일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
명섭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어쩌겠나? 이제 이곳은 저 사람에게 맡겨두고 우리는 일단 집으로 가자.
시집온 첫날부터 새아기가 을매나 놀랬을꼬?“
”그렇다고 병원을 어떻게 비우겠습니까? 제가 당분간 이곳에 있지요.“
“아이다.
그런다고 네 아부지의 병이 차도가 있을 것도 아니고 일단은 어서 집으로 가자.“
영미로서는 이제 남편보다는 아들의 삶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제는 아들의 세대인 것이다. 어차피 떠나야 할 사람은 떠나는 것이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영미는 병실로 들어가 현지를 만난다.
“자네가 수고를 해 주어야만 하겠네! 이 아이들 오늘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집안이 이렇게 된 것을 보고 얼마나 놀라고 상심했을지 걱정일세!“
“형님! 이곳은 아무런 염려마시고 어서 돌아가십시오.
형님과 명섭이 이곳에 계신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성은 이미 정신이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명섭 아부지. 내 갔다가 내일 다시 올게요.“
주성은 영미를 보며 눈으로 그러라고 말을 한다.
영미는 명섭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제야 하은주와 명섭은 옷을 갈아입고 시어머니인 영미에게 큰 절로 인사를 드릴 수 있었다.
“오자마자 이런 꼴을 보여서 미안타!
허지만 그리 신경 쓸 것은 읍다.“
“어머님! 송구스럽습니다.
아버님이 병환에 계신데 저희들이 결혼을 서두른 것만 같아 정말 죄송스러운 마음뿐입니다.“
하은주는 마음고생을 한 모양이었다.
“아가!
어차피 네 시아부지는 하루 이틀 사이에 완쾌하실 병이 아니시다.
이제 난 이 집안의 대부분은 너희 두 사람에게 맡길 생각이다.
조금은 더 있다가 짐을 지울 생각이었으나 네 시아부지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으니 내가 집안을 신경 쓸 수 없을 것만 같구나!“
“..................”
“아가! 서두르지 말고 하나씩 천천히,
그리고 부엌의 모든 것은 정이네와 의논해서 해 나가면 어려울 것이 없을 것이다.“
“네, 어머님!”
하은주는 마음가짐을 단단히 무장을 한다.
다음 날부터 영미는 병원에 있는 환자와 현지를 위해서 음식을 한다.
주성은 자신의 병이 위암이 재발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수술을 또 받는다 해도 가망이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이제 나이 육십도 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억울하다거나 너무 빠르다는 생각도 없다.
자신이 두 여인에게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새삼 생각을 하는 것이다.
아내는 아내대로 고통스러운 세월이었고 현지는 현지대로 힘들고 위축된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이제 주성은 모든 고통을 감당하리라 마음을 먹는다.
다행스럽게 다른 병이 아닌 암이라서 그나마 다행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병이라면 자신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마저도 놓칠 것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여보! 나 퇴원하고 싶어!“
주성은 영미를 보자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한다.
“그러다 통증이 더 심하믄 우얄끼꼬?”
“그래도 견딜 수 있어! 병원에서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소.“
영미는 의사와 상의를 하고 주성을 퇴원시킨다.
현지는 주성을 떠나려던 결심을 버려야만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에는 큰댁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현지였다.
그러나 남편이 위중한 것을 보고 차마 떠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신이 곁에서 그 모든 것들을 돌봐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주성의 병세는 더욱 악화되어간다.
입원과 퇴원을 번갈아 하는 동안 주성은 바싹 말라가고 있었다.
영미는 주성의 방에 며느리를 근접하지도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것은 며느리의 손으로 넘길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영미는 집안의 대부분의 권한을 명섭과 은주에게 맡기고 주성의 병간호를 맡는 것이다.
현지 혼자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힘든 고통들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이제 진통제도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었다.
“여보! 명섭 엄마!“
“왜요?”
주성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손을 내밀어 영미의 손을 잡는다.
“내가 당신을 너무 아프게 했소.
당신과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이 어찌되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는 생각뿐이오.“
”그래도 당신이 사랑하는 여인은 명지엄마뿐이잖아요.“
“아마....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책임감이었을 것이오.
나 때문에 젊은 시절 청춘을 허비하고 불쌍하게 평생을 살아온 그 사람에 대한 책임감이었을 것이오.
난 진정으로 사랑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드오.“
“................”
“당신에게도 명지엄마에게도 모두 죄를 지었소.
처음부터 명지엄마를 그렇게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후회가 들지만
그때는 그것이 사랑인줄 착각을 했던 것이오.“
“착각이 아니라 그때는 진정으로 그 사람을 사랑했었다고 말을 하는 것이 맞는 것일 겁니더!
모든 것을 돌아보면 착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그렇게 말을 하면 명지어미가 섭섭하지요.
당신 때문에 평생을 숨 한 번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그늘에서 고통과 번민을 안고 살아온 사람에게 할 말이 아니지 싶습니더!“
“그렇소! 그래서 그 사람을 떠나지 못한 것이었소.
불쌍하고 가엽고....... 내가 떠난다 해도 그 사람을 부탁하면 안 되겠소?“
”명섭 아부지! 그런 걱정을 하지 마소!
나도 그 사람이 한없이 불쌍하고 동생처럼 돌봐주고 싶은 마음입니더! 그라니 마음 편하게 하이소.“
“고맙소! 내가 그동안 당신을 너무 믿고 의지했던 것 같소.
마치 어머니에게 기대듯 당신에게 기대고 의지를 했던 것이오.
남편으로서 당신을 사랑하기보다는 내 편리한 대로 당신을 희생시키고 말았던 것이오.“
“새삼스럽게 무신?”
“당신 때문에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가 있을 것만 같소.”
“명섭 아부지! 이제 당신에게 말을 하지만 어무이가 돌아가시면서 명지와 명훈이에게 재산을 남겨주셨소.
어무이 앞으로 되어 있는 전답과 적지 않은 금붙이를 그 아이들 앞으로 남겨 놓으셨소.“
“면목이 없소! 평생을 내 손으로 번 돈을 당신 손에 단 한 푼도 쥐어주지 못하고
그런 욕심을 낸 내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오.“
“당신이야 다 같은 자식이니 왜 안 그렇겠소?
우리 명섭이와 명규나 마찬가지로 그 아이들도
당신의 소중한 자식들이고 이 집안의 핏줄들입니더!
그 아이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마이소.“
영미는 비로소 시어머님이 남겨놓으신 금붙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전답이야 그리 많지 않다고 해도 시어머니는 언제부터 준비를 하셨는지
상당한 금붙이를 그 아이들을 위해서 영미에게 맡겨두셨던 것이다.
모두가 당신의 자손인 것이다.
당신 핏줄을 이어받은 당신의 후손인 것이었다.
주성은 비로소 어머니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아, 어머니!”
주성의 얼굴에는 두 줄기의 굵은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 못난 자식을 위해서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셨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저 어머니를 원망한 못난 자식을 따뜻하게 반겨주십시오.“
주성은 그렇게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면서 가족들에게 사죄를 한다.
명섭은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가정을 가장 소중하게 돌보는 것이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책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기피하고 아버지라는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던 명섭은 아버지의 필요성조차도 인식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가장이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저버렸을 때 모든 것은
자신의 비참한 말로를 만들어 가는 것임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아버지는 남들과는 달리 두 가정을 가지고 살아왔으나 그 어느 쪽에서조차
진정으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권위와 사랑을 받지 못하고 그렇게 살아오셨던 것이었다.
부모에게 불효하고 아내로부터 가족으로부터 외면을 당하는
그런 삶을 살아오신 아버지의 모습이 쓸쓸하고 비참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주성은 혼절을 하고 깨어나기는 반복한다. 깨어나 정신이 조금 돌아오면 다시 현지의 손을 잡는다.
“미안해!”
“..............”
현지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못하고 무심한 눈으로 바라볼 뿐이다.
아픔도 아무런 감각도 없다.
그저 가슴이 답답하고 멍할 뿐이었다.
“내가 떠나고 나면 나라는 사람을 깨끗하게 잊고 당신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랄 뿐이야!
오랜 세월 너무 고생 많았고 그리고 수고했어!“
현지는 주성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이제 그가 뭐라고 하던 아무런 느낌도 없는 현지였다.
그렇게 반년을 버티던 주성은 마지막에 편안한 모습으로 잠이 든다.
이 세상을 떠나는 주성을 위해 아무도 통곡을 하는 사람이 없다.
마땅히 올 것이 왔다는 느낌만으로 그렇게 주성의 장례식은 조용하고도 조촐하게 지내는 것이다.
다만 명훈이만 서럽게 흐느낀다.
막내인 명훈이는 아직도 아버지의 정을 잊지 못하고 흐느낀다.
아무도 주성의 죽음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하는 사람이 없다.
모든 장례 절차가 끝이 나고 손님들이 물밀듯이 밀려나간 자리는 고요하다 못해 정적만이 감도는 기분이다.
현지는 몸을 가눌 수가 없이 힘이 든다.
그러나 이제는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짐을 꾸린다.
이제는 잠시라도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형님! 참으로 오랜 동안 신세를 졌습니다. 이다음 다음 생애가 있다면 형님께 지은 죄를 갚아드리겠습니다.“
“어디로 가려는가?”
“산사로 가려합니다.”
현지는 솔직하게 말을 한다.
“내 그럴 줄 알고 자네를 위해, 아니 내 집안을 위해 마련한 것이 있네!”
“............”
“자네는 이제 내 집안을 위해서 자네의 남은여생을 속죄하고 살아갈 생각이 없능가?”
“네! 여승이 되어 그 사람의 영혼과 이 집안 조상들의 영혼을 위해
남은여생 불공을 드리며 생을 이어가겠습니다.“
“그래! 그러는 것이 마땅한 도리일 것이야! 떠나는 것을 잠시 미루고 나와 함께 갈 곳이 있네!“
영미는 떠나려는 현지를 잡고 길을 나선다.
그렇다고 집에 있는 승용차를 타고 나서는 길도 아니다.
그저 걸어서 바쁜 것이 없는 여인네의 나들이처럼 그렇게 휘적휘적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그렇게 한나절을 족히 걸어서 도착한 곳은 조그만 암자가 있는 곳이다.
지은지 얼마 되어 보이지 않는 아주 깨끗하고 경관이 수려한 곳이다.
“이곳은?”
“그래! 내 집안을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를 한 것일세!
“이제 자네는 그동안 잘못 살아온 속죄를 이곳에서 하면서 이곳을 맡아주기를 부탁하네!”
“형님! 어찌 저 같은 죄인에게 이리 큰 은혜를 베푸십니까?“
“은혜가 아닐세! 이제 모든 조상님들을 이곳에 모실 것일세!
기제사나 명절을 모두 이곳에서 조상님들을 모실 것일세! 그것을 자네가 맡아주어야겠네!“
“제가 그럴 자격이 없습니다.”
“자격이야 갖추면 누구나 다 얻을 수 있는 것일세!
이제 자네는 진정한 수도자로서 공부를 하고 이곳으로 돌아오시게!
그때까지 이곳은 자네를 기다리고 있을 것일세!“
영미는 그렇게 현지가 진정한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의 세월이 걸린다 하더라도 현지는 반드시 이곳으로 돌아와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영미는 그때까지 집안의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현지와 함께 이곳에 머물 계획이었다.
사남매 모두에게 고루 재산을 나누어 주고 아무런 미련 없이 현지와 함께 부처님의 자비하심에 몸을 맡길 생각이다.
그리고 삼년이 지난 후 현지는 여승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
현지가 여승이 되어 돌아오는 것을 영미는 아무런 말도 없이 따뜻한 품으로 안아주는 것이다.
*****끝******
첫댓글 흥미진진하고 인간미 있는 소설, 덕분에 잘~~~ 봤네요.....감솨함다~~~~ 박순분 여사의 끔찍한 아들 생이 허무하네.... 허지만 며눌님은 훌륭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