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가회 공부방 강의
(4월 28일 경가회 공부방 에서는 행주 본당의 주임 신부님이시며 의정부 교구에서 청소년 교육과
스카우트를 지도하고 계시는 홍승권 신부님께서 미사와 강의를 해 주셨습니다.)
미사 중에는 요한 복음(15, 9-11)의 예수님 말씀---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에 대하여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는 계명준수라는 약속을 지켜야 하는데 이 약속은 강요된 약속일 때는 부
담이 될수 있으나 자발적인 약속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혼인성사때에 자유로운 약속임을 확인하
는 부분이 있는데 자유안에서 자발적으로 하는 약속은 자신과 상대방에게 기쁨이 되며 스스로 지
키려 한다면 이러한 약속은 우리를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본강의에서도 일본과 영국의 스카우트 단원들이 함께 캠핑훈련을 하였을때 영국의 소년들이 규칙
대로 제복을 입지 않은채로는 훈련장소에 안들어가는 모습을 소개 하면서 스스로 만든 약속을 지
키는 것은 그 약속의 준수가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의 약속에 있어
서도 즉 세례식 서품식 혼배성사 등 에서도 항상 "---를 원합니까?" 라고 자발적인가를 확인하는
절차가 있습니다. 계명이나 율법은 하느님이 우리에게 부담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행복
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학교 동문이면서 신앙으로 모인 단체 이므로 끝없는 졸업없는
모임이며 유교식 대로라면 먼저 죽으면 선배가 될것이지만 신앙안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계속되는
모임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서거하신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16세 새 교황님을 위하여
52회 동문들이 부른 아름다운 합창에 대하여 "여러분의 기도에 저를 맡깁니다"라고 하신 새 교황
님의 말씀속의 여러분은 바로 여기있는 여러분 인가 봅니다라는 해학적인 코멘트도 하셨습니다.
홍승권 신부님 께서는 모교인 동성 고교에서 6년간 종교학 과목의 교사생활을 하셨으며 그후
카톨릭 스카우트의 지도신부로서 다년간 활동 하셨는데 1907년 영국의 한 three star 장군(sir
Robert Baden Powell)에 의하여 창설된 boy scout에 대하여 설명하셨습니다. 그는 당시 해가
지지않는 나라였던 영국의 여러 식민지를 두루 다니다가 귀국한후 본국의 청소년들이 구걸과 도
둑질을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의 남은 여생을 청소년들과 영국의 미래를 위하여 바치기로 결심하
였습니다. 당시 영국은 1860년대의 산업혁명 이후로 도시화 가 진행되어 서민층의 부모들은 자녀
들을 돌보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위의 삼성장군은 자신의 군대생활 의 풍부한 경험 특히 자연
속에서의 경험을 글로 쓰기 시작하여 "소년들을 위한 스카우트 활동'이란 책을 내고 여러 계층의
소년들 20명을 모아서 그 책안의 program 에 따라 8박9일의 실험야영을 실시 하였는데 그 안
에서 소년들은 자발적인 role을 형성하였으며 실험은 성공적이었고 이 소문을 듣고 일년후 모인
아이들은 만명이나 되었으며 소녀들도 비슷한 방법으로 자발적인 단체를 만들었으므로 포웰경은
누이동생에게 이 girl guide를 맡겼으며 이 운동을 후에 미국에서 받아들여서 girl scout로 발전시
키게 된 것입니다. 이들 scout들의 목적은 하느님과 나라를 위하여 나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것으
로서 즉 절대적 가치와 국가에 대한 관계가 강조됩니다.
1909년에는 미국으로 전해졌고 동양에서는 1917년에 일본에 전래되었는데 1922년에 당시 일본에
유학하였던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들에 의하여 조선 스카우트 연맹이 설립되었고 1923년에는 월
남 이상재 선생이 총재가 되었습니다. 이때 종교적 요소가 약간 변질되었는데 1937년 탑골공원에
서의 스카우트 행사 때 단원들의 제복에 부착된 태극기 문양등 이 일본경찰의 의심을 받게 되어
활동이 금지 되었다가 해방이후 1946년 boy scout란 이름으로 재개되어 영향력 있는 지도자들에
의하여 지역적인 활동이 계속되었는데 1960년대에 당시 김종필 총리의 애호를 받아서 국가적 애
국심을 고취시키는 희망속에 적극적 지원을 받았고 청소년들의 선도, 보호, 육성, 학습 등의 교육
효과를 지향하며 스카우트 육성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활동은 16명에서 32명까지의
소년들이 한 명의 대장의 지휘하에 있는 것이 적당한 숫자이며 60-80년 대에는 국가의 지원으로
성장하였으나 당시의 서민층의 경제 상태에서는 활동에 필요한 비용이 문제가 되어 엘리트나 부
유층 교육의 모습을 띄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80년대에 와서 전두환 대통령때에 영국에서 기원된
스카우트 활동을 사대주의 라는 이유로 몰고 대신 청소년 연맹을 만들어서 민족적 내용으로 스카
우트와 겨루었으나 정권교체 후 지원중단으로 쇠퇴되었고 관리소홀로 불량단체로 전락되어 해산
되었으나 음성화되어서 지금의 일진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각 정권들이 자신들의 필요에 의하여
대처 하였으므로 이러한 결과가 초래되었고 사회적으로 이익이 없는 단체까지 탄생시키게 된것이
라고 합니다.
주일학교 교사들의 교육을 필생의 목적으로 삼았던 홍승권 신부님께서는 스카우트까지 맡게 되면
서, 지도하기 위하여 boy scout 교본을 공부하시면서 깨달은 바는, 창립초기 영국에서 사회의 민
주시민 양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이 스카우트 운동을 학교에서 분리하여 지역사회에 맡기는 것
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1958년 명동 성모소년대로 시작한 카톨릭 스카우트는 1992년에 단원
1000면 정도가 되었고 현재는 스카우트 프로그램에 의하여 3500명이 되었으며 홍신부님은 아이
들교육과 엄마들 교육을 병행하여 1시간의 교육으로 바뀌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신입단원
들을 만들어서 엄마들에게 넘겨주면서 앞으로 5만명의 단원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하시면서
스카우트활동과 함께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증가함을 보면서 끈기있게 노력하여 10만명 정도로 만
들어 심화교육을 시킨다면 믿음의 선교도 가능하며 조국과 민족과 교회의 미래가 스카우트라는
청소년 교육의 방법으로 이루어 질수 있다고 전망 하셨습니다.
(일견 스카우트활동이란 것이 우리 연령 대와는 무관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되었으나 미래에 있
어서의 우리 사회의 향상과 신앙선포에 있어서 힘있는 활력소가 될 수 있는 귀중한 것임을 일깨워
주신 홍승권 신부님의 진지한 강의에 감사드리며 하시는 일에 하느님의 큰 도움의 은총이 있으시
기를 기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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