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돌궐, 위구르로 이어진 유목제국의 탄생과 설화
<사진 1 : 톤유쿡의 남비>
6세기 중반 서쪽으로는 카스피해에서 동쪽으로는 만주서북부 지방에 이르는 광대한 유라시아를 제패한 유목민족이 출현했다. 이 제국을 건설한 사람은 스스로 "튀르크"라 불렀고 중국측 자료에는 "돌궐 (突厥) 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오늘날 터키(Turkey) 라는 나라의 이름도 그 어원을 보자면 바로 여기 "튀르크" 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돌궐제국은 서기 1세기 중반경 흉노가 물러난지 500년만에 초원에 유목민들을 대통합하고 출현한 국가였다. 그리고 흉노제국이 차지했던 영토 그대로 수복하였고 "아홀타이 회맹"을 부활시켰으며 서쪽에 압바스 칼리프 왕조, 동쪽의 당나라의 사이에서 아시아 세력의 양극화를 가로막았던 국가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료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돌궐" 이라는 부족은 원래 알타이 산맥 부근에서 유목하면서 철을 캐내어 몽골리아 초원의 맹주 유연(柔然)에게 공물을 바치던 미약한 부족이었다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문으로 된 사료에는 돌궐인의 조상 실화가 기록이 되있는데 거기에는 고난으로 점철된 그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가-1 사료>
성은 아쉬나(阿史那)로 처음엔 독립된 부락을 이루었으나 인 국의 공격을 받아 몰살당하였다. 이 때 10살 난 사내아이가 겨우 살아남았는데 적이 사내아이를 차마 죽이 지 못하고 발을 잘라 근처 풀밭에 버렸다. 그곳의 암늑대가 고기룰 먹여 그 소년을 길렀다. 소년이 장성하여 암늑대와 합하여 수태하게 되었다. 이 때 적의 왕이 소년이 아직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사람을 보내 그를 죽였다. 그 옆에 늑대 한 마리가 있어 같이 죽이려고 하니 늑대는 재빨리 도망하여 고창국의 북산으로 갔다. 산 속에 동굴이 하나 있어 그 곳에 기거하니 굴 안은 평지게 풀이 무성하였다. 또 주위가 수 백리이고 산에 둘러싸여 있었다. 늑대는 동굴에 숨어 아들 10명을 낳았으며 열 아들이 자라 밖으로 나가 부인을 얻고 자손을 낳으니 제각기 10개의 성씨를 가졌고 그 중 막내 아들이 아쉬나이다. 자손이 차츰 번성하여 수백 가 구를 이루었고 몇 세대를 지나 유연의 신하가 되어 알타이 산에 자리 잡아 철공으로 일했다. 1)
1) 출처. 르네 그루세 「투르크와 위구르의 역학적 관계」논문 참조 1971. 47~53p
이것은 돌궐 조상신화이다. 여기나오는 아쉬나가 돌궐제국의 카간을 배출하는 씨족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 아쉬나 " " 아사나" 라는 말은 고대 투르크어로 " 늑대 "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통상 " 낭생설화 (狼生設話) " 라고 불리는 전설은 돌궐만이 아니라 몽골인에게도 나타나고 있다.
<몽골비사> 에는 가장 첫 장에 "잿빛늑대"와 "흰빛사슴" 이 만나서 아이를 낳고 그 후손 가운데 칭기즈칸이 출현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초원의 강인함의 상징인 늑대를 토템으로 숭배했던 유목부족의 관습에서 나오는 설화이고 늑대의 자손이라는 것을 부족민에게 주입하여 민족성을 끈질기고 단결하게 만드는 것이 유목민의 설화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사진 2 : 초원의 늑대>
오늘날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서쪽으로 400km 떨어진 곳에 체체를렉이라는 도시가 있다.
현지어로는 " 꽃이 만발한 고장" 이라는 뜻인데 이 도시는 항가이라는 이름의 산맥이 북사면에 있고 해발 1700m 비교적 고지대에 있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봄이 되면 이 도시에 아름다운 야생화가 만발하고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사진 3 : 체체를렉의 전경>
이 도시의 중앙에 박물관이 있고 정원 한 가운데에 높이 2.45m의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다.
<사진 4 : 체체를렉 민속박물관>
<사진 5 : 2.45m 비석>
비석의 기단 부분에는 거북이 모양을 조각한 귀부(龜趺 : 거북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 가 있다.
이수 (首 : 뿔 없는 용의 모양을 아로새긴 형상) 에 해당되는 부분은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는데 흔히 이수에 새기는 용은 보이지 않고 대신 어린 아이가 늑대의 젖을 빨아먹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사진 6 : 비석의 문자 (소그드 문자) >
이 비석의 삼면에는 모두 중앙아시아에서 사용되던 "소그드 문자" 가 새겨져 있고 마지막 한 면에는 인도에서 사용되던 "브라흐미 문자" 가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은 원래 체체를렉 근교애 위치한 "부구트 산" 에서 발견되어 옮겨진 것이기 때문에 통상 "부구트 비" 라고 부른다.
이 비문을 판독한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여 제작연도는 대체로 580년대이며 비석은 당시 이 지역을 지배했던 돌궐왕족에 속하는 마한 테킨 (Mahan Tegin) 이라는 인물의 기념비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돌궐제국의 지배집단은 자기들 조상이 늑대의 젖을 먹고 살아남은 "아사나" 의 후예로 믿고 있었기 때문에 이처럼 비석의 머리부분에 자신들의 뿌리를 보여주는 내용을 부조 해 넣은 것이다라고 볼 수 있다.
늑대와 아이가 조각된 것은 퀼테킨 (qiltegin) 이라는 왕자의 비석 상단에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아사나 일족이 모두 믿고 있었던 설화라고 볼 수 있다.
" 깨어있는 푸른역사 삼태극 http://cafe.daum.net/mookto
- 삼태극 전문 학술위원 서울사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