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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바람의 전설
2019. 4. 18. 22:56
경기고 60회 졸업 55주년 기념 음악회박세복 퍼옴 /화동 옮김
지난 1월의 어느 날이었다. 벨이 울려 전화기를 드니 귀에 익은 명규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오페라 한 번 출연하지 않을래?” 으잉? 오페라라니? 이게 무슨 소리야? 경기고 60회 선배들이 졸업 55주년을 맞이하여 기념음악회를 한다는데, 2부 순서로 오페라를 공연하고 오페라의 합창 순서에 우리도 낄 수 있다는 것이다. 명규가 낚시 하나는 제대로 던졌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그 동안 색소폰, 오카리나, 사진을 배우고, 히말라야 트레킹, 스킨 스쿠버, 탠덤 스카이 다이빙, 초경량 항공기 등에 도전하였다. 이러한 것을 잘 아는 명규가 오페라 공연 미끼를 던지면 내가 덥석 물 것이라고 짐작을 한 것이리라.
그리하여 나처럼 명규의 미끼를 문 동기들 13명이 음악 연습을 위하여 매주 수요일 명규와 함께 청담동 새하늘교회에 모였다. 동기 오병준 목사가 흔쾌히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를 우리들에게 연습공간으로 내준 것이다. 그런데 우리끼리 모여 도토리 키재기를 한다고 음악이 늘겠는가? 60회 정순남 선배가 오셔서 지휘를 하며 우리의 노래를 다듬어나가신다. 정선배님은 서울음대를 졸업하시고 유학 가셔서 일반 유학생들과는 달리 컴퓨터음악을 전공하셨다. 그리하여 예술에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접목시켜 음악에 미술을, 아날로그에 디지털을 조화시키며 작품 활동을 하시는 멀티미디어 예술가로 명성을 날리셨다. 연습을 계속해가면서 이번 음악회 취지도 알게 되었다. 음악가이신 정선배님이 60회 동기회장으로 취임하시면서 졸업 55주년 기념 음악회를 기획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1부 순서에 동문 합창과 클라리넷, 피콜로 등의 연주를, 2부 순서에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공연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처음에 아마추어에 프로들이 찬조하는 음악회인 줄 알았더니, 합창을 하는 60회 선배와 우리 72회 이외에는 전부 프로들이 하는 것이었다. 오페라에 나오는 합창은 우리와 남양주 시립합창단이 같이 하는데, 이것도 나는 처음에는 남양주 시민들로 이루어진 아마추어 합창단과 같이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남양주 시립합창단원은 다들 성악을 전공하고, 게 중에는 유학까지 갔다 온 음악가들로서 엄격한 오디션을 통하여 선발된 전문 합창단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전문 합창단이 하는 것 잘 따라가기만 하여도 되지 않겠는가? 어쩐지 연습하는 동안 정선배님이 오페라 합창을 1부 합창보다 신경을 덜 쓰시는 것 같다고 하였더니(^.^;;), 남양주 시립합창단이란 든든한 백이 있었구나.
우리가 1부 순서에 발표하기로 한 곡은 종소리(Chim Chim Cher-ee), 자비하신 예수여(Pie Jesu),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Luna Liena) 이렇게 3곡이다. 다들 익숙한 곡이라 나는 중간에 참여하였지만 금방 따라잡을 수 있었다. 2부 순서에 하는 오페라 합창은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와 합창과 축배의 노래인 ‘scena coro e brindisi’이다. 이 노래들도 많이 들어본 노래인데, 문제는 이태리 원어로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1부 순서의 곡은 우리가 악보를 들고 합창을 하는데, 오페라 합창은 연기도 해야 하므로 악보를 들고 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뜻도 잘 모르는 이태리어를 외어서 노래하려니 영 가사가 입에 붙지 않는다. 어쨌든 연습을 거듭해나가면서 엉성하기만 하던 우리의 노래도 정순남 마에스트로에 의해 다듬어져나간다. 그리고 처음 우리 동기들끼리만 연습을 하다가, 공연이 가까워오면서는 60회 선배들과 같이 화음을 맞춰나간다. 참! 60회 선배 졸업 55주년 기념음악회에 어떻게 우리 72회가 끼게 되었을까? 작년에 72회 송년회에서 급조된 72회 합창단이 노래를 하였는데, 이 때 우리 노래를 다듬어주고 지휘해주신 분이 바로 정순남 선배님이시다. 그 때 정선배님이 명규에게 이번 음악회에 우리보고 같이 하지 않겠냐고 하신 것이다. 뭐~ 띠동갑도 동갑은 동갑이니까, 동갑내기끼리 합창을 하는 것이지.^^
이렇게 하여 급조된 합창단 이름은 6072 합창단이다. 다 60회, 72회이지만 한 분만 예외이다. 여기에는 61회 최인용 선배도 참여하시는데, ‘61’까지 이름에 넣으려니 너무 길어져 6072라고 하였다. 최선배님도 흔쾌히 동의하시고... 공연 3주 전에 팜플렛이 나왔다. 팜플렛 첫머리에 정선배님이 60회 동기회장으로서 인사말을 실었다.
화동 언덕에서 철없이 뛰어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5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꿈과 호기심이 많던 파릇파릇한 소년들이 이제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올드보이가 되어 있는 세월의 흐름을 인정하면서도 무언가 아쉬움을 갖고 있음은 우리 모두 마찬가지이겠지요. 졸업 후 제각각의 삶을 열심히 살았던 우리 친구들이 이제는 사소한 것들은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한자리에 모여서 학창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시절로 되돌아가 같이 노래 부르고 그림을 그려보는 음악회와 미술전시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비록 육신은 약해졌지만 정신과 열정은 더욱 풍부해지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육신은 약해졌지만 정신과 열정은 더욱 풍부해지고 있다는 말씀에 내 마음이 꿈틀한다. 70 중반이면 누가 뭐래도 육신이 약해진 할아버지다. 그렇지만 정신과 열정은 더욱 풍부해지신 선배님들! 그렇기에 이런 큰 공연도 하시는 것 아닌가? 나도 선배님들 나이에 정신이 육신을 따라 약해지지 않도록 더욱 나 자신을 단련하고 단련하여야겠다. 한편 인사말에도 나오듯이 이번에 선배님들은 졸업 55주년을 기념하여 음악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과천시민회관 전시실에서 미술전시회도 여신다. 이번 전시회는 현역으로 뛰시는 60회 선배와 은퇴 후 미술을 시작한 선배, 그리고 60회 동문 가족과 선후배들이 같이 작품을 나누는 전시회이다. 전시 작품에는 이중섭 미술상 수상 작가인 고 최경한 선생님 작품도 있다. 60회 선배님들은 최경환 선생님에게 중1 때부터 6년간 실기 뿐 아니라 미술사와 미술 이론 전반에 대해 교육을 받아, 60회는 특히 미술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회라고 한다. 나는 이 전시회도 꼭 보려고 하였는데, 아쉽게도 보질 못하였다. 공연 전날과 당일의 리허설 때에는 틈이 나지 않아 공연 끝나고 보려고 하였는데, 아! 글쎄! 공연이 6시 넘어 끝나니, 전시실도 문을 닫아버린 것이 아닌가! 이런 뜻깊은 전시회를 보지 못한 것이 정말 안타깝다.
자~ 이제 공연장도 예약하고 팜플렛도 나오고...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 와서 못하겠다고 꽁무니를 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여 이제부터는 연습에 땡땡이도 치지 않고, 부족한 부분은 평소에도 한 번 정도는 흥얼거려본다. 연습하는 데 있어 정선배님 혼자서 지휘봉만 열심히 휘둘러서는 안 되겠지? 피아니스트 김연선씨와 서승진씨가 반주자로 우리를 도와주었다. 김연선씨는 60회 김경중 선배의 따님이다. 아버지 명령도 있었겠지만(?) 바쁜 일정에도 나와주었다. 김연선씨는 우리 반주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클라리넷 김은형과 합주를, 또 피콜로 조장휘씨와 함께 합주도 한다. 서승진씨는 우리 72회 동기 권순엽의 아내이다. 그리고 경기 동문이다. 후후! 경기여고를 졸업하였다는 얘기이다. 이번에 합창하는 동기들이 카톡방을 개설하였는데, 서여사는 – 표현이 좀 진부하기는 하지만, 카톡방에서 그렇게 부른다. - 카톡방에 노래마다 파트별로 피아노 반주를 녹음하여 올려주어, 우리가 평소에도 부족한 부분을 연습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참고하라며 유투브를 뒤져 우리가 부를 노래와 오페라 관련 영상들을 올려주었다. 그뿐인가? 매번 샌드위치며 과일, 사탕 등 간식거리를 준비하여 새하늘교회에 제일 먼저 와서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그리하여 지금 친구들은 송덕비 하나 세워주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공연을 1주일 앞두고서는 남양주 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 고성진 선생이 와서 우리 합창을 다듬어주었고, 또 이번 오페라 연출을 총지휘하는 오영인 선생도 바쁜 시간에 틈을 내어 오셔서 우리의 무대 복장 및 무대에 나와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에 대해 말씀을 해주셨다. 고성진 선생은, 남양주 시립합창단과 우리가 마지막 리허설 전까지는 각자 따로 연습하기에, 두 합창단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 오신 것이다. 고성진 선생은 우리가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잘 한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는 많이 부족한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실망을 시켜주지 않으려고 각자 좀 더 연습을 하긴 했지만, 리허설 때 보니 확실히 많이 부족한 것을 느끼겠다. 우리가 하는 두 번의 합창 다 서두에 무대 입장하면서부터 부르는 부분이 있는데, 지휘자를 볼 수 없으니 정확한 시점에 노래를 시작하지 못하겠다. 그런데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프로 합창단원들이 하는 것 따라가면 되는 것이다. 사실 남양주 시립합창단원들의 성량이 우렁차서 이들만으로 오페라 합창을 꾸려가도 전혀 지장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농부들 숫자가 어느 정도는 채워져야 하니까 우리도 필요할 테이고, 또 우리가 제멋대로 합창을 방해하지 않고 이들을 따라가며 노래를 불러도 오페라 공연에 지장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 고성진 선생도 우리가 많이 부족한 것을 알면서도 연습 더 하자고 하지 않은 것이리라. 아니다. 이번 오페라는 경기 60회 졸업 55주년 기념 공연으로 선배들이 주관하는 것이니까, 우리는 합창단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기념 공연의 주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영인 선생도 합창할 때 우리보고 무대 뒤편에서 서성거리지 말고, 무대 앞쪽으로 나오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제 공연 전날의 리허설 시간으로 넘어가자. 참! 그전에 특별한 출연자 한 분 얘기하고 가야겠다. 여성 합창단 중에는 남양주 시립합창단에 소속되지 않은 아마추어 합창단원이 한 분 있다. 한예선 건국대 교수인데, 음악을 사랑하고 앞으로 음악과 함께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어, 우리 동기 소개로 뒤늦게 합류한 것이다. 낯선 남자 합창단에 스스로 홀로 찾아온다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그런 열정이라면 한교수님의 제2의 인생은 음악으로서 풍부해질 것임이 틀림없겠다. 덕분에 우리는 연습할 때에도 여성 합창 부분을 들으면서 우리가 나올 부분을 대비할 수 있어 좋았다.
공연 전날 리허설을 위하여 오후 1시에 과천 시민회관 대강당으로 들어가는데, 음악 소리가 들린다. 고성진 선생 지휘 하에 베아 앙상블(Vea Ensemble)이 한창 연습을 하고 있다. 정식 공연을 할 때에 듣는 음악도 좋지만, 이렇게 리허설 때 듣는 음악도 색다르고 의미가 있구나. 1부 합창 리허설을 위하여 무대에 오른다. 정선배님은 무대에 들어오고 나가는 순서와 동선을 체크하고, 공연시 우리 각자가 서야 할 위치도 조정하신다. 그리고 언제 악보를 들고 내리는지도 점검하시고 노래 연습에 들어간다. 그러나 오페라 리허설 때문에 우리가 불러야 할 3곡을 한 번씩 부르고, 부족한 부분만 약간 보완 연습한 후 무대를 나가야만 한다. 무대 뒤편 대기실로 돌아온 우리는 얼른 농부 복장으로 갈아입고 남양주 합창단원들과 합류하여 오페라 리허설로 들어간다.
무대 뒤편으로 오페라 배경이 되는 이태리 마을의 영상이 뜨고 있다. 이번 무대를 디자인하고 영상을 작업한 이는 다름 아닌 정순남 선배님이시다. 예술에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접목시킨 멀티미디어 예술가이고 전에도 오페라 영상 작업을 오래 하셨기에 무대 디자인과 영상 작업도 직접 하신 것이다. 열정이 넘치는 선배님이시라 남한테 맡기지 않고 직접 하신 것이지만, 사실 60회 동기회장으로 예산 아끼시려고 직접 하시는 것도 있지 않을까?^^ 오영인 감독은 객석 중앙에서 마이크를 잡고 총지휘를 하고 있다. 노련한 감독의 입에서 나오는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카리스마가 있어, 한 마디 할 때마다 무대가 제대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 리허설을 하면서 보니 역시 프로는 다르다. 주요 배역을 맡은 성악가들은 다 외국 유학까지 갔다와 대학교나 예술원에서 후학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러니 오페라 출연 경력은 말할 것도 없는데, 산뚜자 역을 맡은 소프라노 이현정은 무려 200여회나 오페라에서 주역을 맡았다고 한다. 나는 내일 공연에서는 객석에서 차분히 이들 성악가의 노래를 감상할 수 없으므로, 합창 순서 기다리는 동안은 무대 뒤편에서 이들의 노래와 연기를 감상한다. 참!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에 대해서도 약간의 설명이 있어야겠구나. 팜플렛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90년대 새마을호 기차에서 정차 역마다 들었던 짧은 바이올린 선율의 간주곡을 기억하시나요? 1890년 이탈리아 26세의 청년 마스카니가 작곡한 이 오페라의 이름은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번역하면 시골의 기사도인데, 부활절 하루 동안 시칠리아에서 벌어지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배신의 드라마를 격정적이면서도 아름다운 멜로디와 하모니에 담아 들려줍니다. 오늘 공연은 경기 6072합창단이 프로들과 함께 무대에 섭니다. 100년이 흐른 후에도 바래지지 않은 인간의 삶, 사랑의 의미를 잠시 인생이란 여행의 정차역에 머무르듯 오페라를 음미하시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번에 오페라 연습하면서 나도 당연히 관련 유투브 영상을 보았고, 그 중에는 정명훈 지휘자가 지휘하는 간주곡도 – 영상에 보니 객석에는 트럼프 대통령도 있더라 – 들어보았다. 처음 곡이 흐르니, “아! 이 곡이구나!”하였는데, 이 간주곡이 새마을호 정차역에서도 흘러나왔는지는 몰랐네. 사실 이번 공연에 이 오페라가 선정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큰 이유가 공연시간이다. 이번 공연이 오페라만 공연하는 것이 아니기에, 2시간 넘게 소요되는 일반 오페라를 올릴 수는 없어서, 단막 오페라를 채택한 것이다. 그리고 젊은이들의 사랑과 배신의 드라마이니 노래를 감상하는 것에 더하여 극의 재미도 느낄 수 있으니 이번 공연에는 딱 알맞은 오페라이리라.
2019년 4월 13일, 드디어 60회 졸업 55주년 기념공연이 열리는 날이다. 목욕재계하고 목소리도 가다듬고 1시에 공연장에 도착하였다. 4시 공연이 시작하기 전까지 또다시 마지막 연습을 한다. 아무래도 오페라 연습이 주가 되는데, 우리는 1부 공연에 첫 순서로 나서야 하기 때문에 연습에서는 농부 복장으로 갈아입지 못한다. 합창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에서 우리는 여성 합창단의 합창 후 한 번 더 노래를 하고 퇴장해야 한다. 그런데 첫 번 노래를 부르고 몇 명이 퇴장하는데 나도 생각 없이 따라 나갔다가, 오감독님에게 한 소리 듣는다. 말은 부드럽게 하시지만 공연을 불과 몇 시간 앞두고도 이런 잘못을 저지르는 행동에 속이 끓어올랐을 것이다. 결국 두 번째 합창곡 ‘scena coro e brindisi’를 부르면서 입장할 때 오감독님의 역정이 터져 나왔다. 우리가 무대 위에서 우왕좌왕하니까 진행을 맡은 분들에게 불호령이 떨어진 것이다. 우리한테 직접적으로 야단을 칠 수 없으니까, 애꿎은 진행자들이 야단을 맞은 것이다. 그래도 그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그리고 우리 때문에 야단맞은 진행자 여러분! 죄송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낯익은 여자합창단원을 만났다. 어제 리허설에서 봤지만 긴가민가하여 그냥 지나쳤는데, 오늘은 그냥 지나칠 수 없어 “혹시 신반포교회...”하니, 알아본다. 바로 내가 몸담고 있는 신반포교회 호산나 찬양대의 앨토 솔리스트였던 천민정씨였다. 결혼하면서 남편 따라 다른 교회로 갔는데, 여기서 만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어째 결혼하고 몸이 불었다 했더니, 본인이 임신중이라고 자백한다. 임신중임에도 이렇게 공연에 나왔구나. 천민정씨! 같이 오페라 공연에 나올 수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건강한 아기 순산하시기 바랍니다!
이윽고 우리 1부 합창 연습을 위해 다시 무대에 섰다. 지휘하러 나오시는 정선배님이 무척 피곤해 보이신다. 정선배님은 우리 지휘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번 공연을 총책임지고 섭외, 무대디자인, 영상작업, 팜플렛 제작 등 모든 것을 다 하시느라고 정신이 없으신 것이다. 살도 빠지신 것 같다. 시간이 없어서 우리는 준비한 곡을 한 번씩밖에 못 부르는데, ‘자비하신 예수여’ 마지막 부분에서 실수를 하였다. 테너 2가 두 마디를 통째로 빼먹은 것이다. 보통은 한 사람이라도 나오면 얼른 다른 테너2가 따라 나올 텐데, 이 순간은 다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테너2 모두가 이를 놓쳤다. 그런데 다른 파트의 소리는 나와서인지 정선배님이 눈치를 못 채신다. 알고도 모른 척 하신 건가? 지금 정선배님은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쳐야한다는 압박감에 지휘에도 집중이 안 되시는 모양이다. 아무튼 공연을 마치고 긴장이 풀리면 정선배님이 앓아누우실까봐 걱정이다.
시계의 초침은 어김없이 돌고 돌아 이제 시간은 4시를 얼마 앞에 두고 있다. 이번 공연의 주무를 맡은 동기 상훈이가 이제야 이름표를 들고 온다. 우리는 이번에 교복을 입지는 않으나, 교복에 달았던 명찰은 지금 입고 있는 곤색 윗도리에 붙이기로 한 것이다. 명찰은 마름꼴 모양에 지그재그로 박음질을 한 모양새를 본 떠 종이로 만들었다. 비록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달던 명찰을 흉내낸 것이지만, 오래간만에 보는 짝퉁 명찰에도 감회가 새롭다. 학교 다닐 때 우리 학교 명찰은 다른 학교와 남달랐다. 보통 명찰이 직사각형 모양인데, 우리 학교 명찰은 마름모형이었다. 다이아몬드 모습으로 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다이아몬드가 빛난다고 바느질도 지그재그로 박아 다이아몬드가 빛이 나는 모양새를 하였다. 가슴에 명찰을 붙이고 드디어 우리는 무대로 출격한다. 자리를 잡고 호흡을 가다듬고 지휘자 정선배님을 바라본다. 이윽고 정선배님의 지휘봉이 움직이고 우리는 한 눈 팔지 않고 정선배님의 지휘에 집중한다. 우리가 집중해서인가? 3곡을 다 부르는 동안 생각보다 화음도 잘 맞고 실수도 별로 없었다. 물론 남양주 시립합창단과 같은 프로 합창단에 기준을 맞춘다면 형편없는 합창이었겠지만, 우리들 수준에서는 그래도 선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순서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와 농부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정선배님이 들어오시며 웃으면서 한 말씀하신다. 우리가 안 좋은 습관이 있다고... 안 좋은 습관이라니? 막판 연습 때까지도 완전치가 않아 정선배님 애를 태우더니, 실전에 와서 잘 했다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신 것이다. 그런데 왜 습관이란 용어를 쓰셨을까? 사실 우리 경기맨은 예전부터 실전에 강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기에 정선배님도 ‘습관’이란 용어를 쓰신 것이리라. 예전에 고1 들어가자마자 교련 감사(?)에 – 그때는 군사독재 시절이라 고교생들도 총 들고 훈련을 받았다 - 대비하여 훈련을 받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도 선배들이 경기맨은 실전에 강하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었고, 결국 그 전통에 따라 실제 교련 감사를 잘 받았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해외 나가느라 참석을 못하였지만, 작년 송년 음악회 때도 그 전통을 고수하였다. 그러니 이번에도 정선배님 입에서 ‘안 좋은 습관’이란 말이 나온 것이리라. 1부가 끝나고 중간 휴식 시간(Intermission) 때 연주회를 보러 온 몇 몇 분을 만났는데, 그 분들도 우리 연주가 화음이 잘 맞아 듣기 좋았다고 말씀해주셔서, 우리는 흐뭇한 기분으로 2부 오페라에 대비할 수 있었다.
1부에 우리 합창이 끝나고 난 이후에는 클라리넷 김은형과 피아노 김연선이 같이 하는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애가(Cantilene for Clarinet and Piano), 피콜로 조장휘, 피아노 김연선이 같이 하는 하얀 티티새(Le Merie Blanc for Piccolo and Piano op. 161)가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카리테스 앙상블(클라리넷 김태선, 바이올린 김혜령, 비올라 이준서, 첼로 배기정)의 클라리넷 4중주(Clarinet Quartet No. 1 in E flat major)의 우아한 선율이 대강당을 휘감아 돌았다. 대부분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실력 있는 연주자들이고, 특히 플릇을 연주하는 조장휘씨는 우리보다 2년 후배인 경기 74회로 경기 OB 밴드 전 지휘자이다. 그리고 클라리넷 김태선과 피아노 김연선은 60회 김경중 선배의 딸이고, 솔로로 클라리넷을 부르는 김은형도 역시 김정구 선배의 딸이다. 이 정도면 경기 60회 졸업 55주년 기념음악회에 걸맞는 음악회이리라. 다만 아쉬운 것은 우리는 합창 순서가 끝나고도 2부 준비하느라 이들의 연주를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정선배님이 촬영기사를 고용하여 연주회를 찍게 하였다니, 나중에 동영상이 나오면 그걸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중간 휴식시간에 로비로 나가서 공연을 보러 온 동창들과 지인들과 사진도 찍고 얘기를 나누다가 다시 무대 뒤편으로 왔다. 2부 공연이 시작된다는 차임벨이 울리고 이윽고 오페라의 서곡이 시작된다. 얼마 안 있어 여성 합창단이 무대에 나가면서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의 여성 파트를 부른다. 여성 합창단의 노래가 끝나면 바로 남성 합창단이 나가면서 남성 파트를 부른다. 그런데 몇 사람의 남성 합창단원이 말릴 사이도 없이 여성 합창단원이 나갈 때 같이 나간다. 그렇다고 객석에서 관객들이 보고 있는데 나가서 끌고 들어올 수도 없고... 당연히 먼저 나간 사람들은 우리 6072 합창단원이지 남양주 합창단원일 리는 없다. 먼저 나간 분들은 우리가 뒤따라 나오지 않으니까 자기들이 잘못 나온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러나 무대 뒤에서 보니 다들 자연스럽게 행동하고 있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오페라를 그전에 눈여겨 본 관객이 아니라면, 관객들도 잘 눈치챌 수는 없지 않을까? 그러나 일반 오페라 단원이 그랬다면 오페라 끝나고 특별 얼차려 받을 일인데, 그래도 오감독님은 우리가 이번 공연의 주빈이라고 배려해주신다.

다음 합창곡 ‘scena coro e brindisi’를 부르기 까지는 시간이 많이 있어, 우린 무대 뒤에서 담소를 나누거나, 모니터를 통해 지금 한창 무대 위에서 열연을 펼치고 있는 주연 성악가의 연기를 본다. 그러다가 무대로 나가는 입구 어둠 속에 서서 직접 무대를 감상하면서 자기 순서를 마치고 무대 뒤로 들어오는 성악가를 살랑살랑 박수를 치며 맞이하기도 한다. 기다리는 6072 합창단원에게선 한결 여유가 있다. 이미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를 부르면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또 남양주 합창단의 실력을 보아 따라만 가도 문제가 없겠기에 긴장이 덜해진 것이다. 이윽고 우리 합창 순서가 되어 나간다. 원래 ‘scena coro e brindisi’는 성당에서 부활절 미사를 보고 난 후 부르는 것이라 나들이옷으로 좀 더 잘 차려입어야겠지만, 오감독님은 거기까지는 요구하지 않았다. 그래도 진선이처럼 열성적인 합창단원은 농부들이 멜 만한 목걸이를 메어 변화를 주었다. 이윽고 뚜릿뚜와 알피오의 결투로 뚜릿뚜가 살해되면서 오페라는 끝난다. 오페라에선 둘의 결투 장면은 안 나오고, 무대 뒤에서 뚜릿뚜가 죽었다는 고함 소리만 나온다. 고함 소리는 무대 옆에서 대본을 들고 진행을 보는 여자 단원 한 분이 질렀다. 이 분은 연습 때 고함 소리가 약하여 오감독님이 몇 번 다시 시키고, 보다 못한 산뚜자가 시범을 보여주었는데, 그래서인지 공연에서는 실감나게 소리를 지른다. 그나저나 오페라에 목소리만 출연한 것이네.^^

마지막 커튼콜에서는 6072 합창단이 먼저 나가고, 뒤이어 남양주 시립합창단원이 나와 인사를 한다. 그리고 오페라 주역들이 하나, 둘씩 나오는데 산뚜자가 마지막으로 나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는다. 그리고 고성진 지휘자가 무대 위로 올라와서 베아 앙상블 단원들을 일어서게 하여 같이 인사를 하고 마지막에 정선배님이 무대 위로 올라와서 인사를 하였다. 아! 처음 시작할 때만 하여도 과연 우리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정선배님의 열정으로 모두 무사히 마쳤다. 선배님들과 친구들의 얼굴에도 해냈다는 뿌듯함이 함박 피어오르고... 마지막으로 무대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고 옷을 갈아입고 로비로 나가니,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준다. 그리고 아래층 식당으로 내려가 공연을 찾아준 가족, 동문, 친구 등과 함께 뒤풀이 저녁식사를 한다. 정선배님은 통 크게 공연을 보러 온 모든 사람들도 같이 식사를 나누자고 하신다. 우리 다 같이 건배!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특히 이 모든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하신 정순남 선배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오페라에 참여할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졸업 55주년을 맞이하는 60회 선배님들!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열정을 가지시고 건강하게 60주년, 70주년 계속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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