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강성 역사적 시조 강여상(姜吕尙)
32대 667년 제나라 강성(姜姓) 열전<5>
제나라 최초 쿠데타
기원전 862년 호공(胡公)이 군위 자리에 올라 산동성 박흥현 박고(薄姑)에서 수도를 옮길 기회가 오자 산동성 치박시 임치(臨淄)로 천도했습니다. 애공의 남동생 강산(姜山)이 호공(胡公)을 몹시 미워했습니다. 강산이 산동성 치박시 임치구 동북 10km 영구(营丘) 사람들을 이끌고 호공을 기습 병살하고 보위에 올랐습니다. 그가 헌공(獻公)입니다. 그 해에 호공의 자식 전부를 축출했습니다.
제나라 무공 10년, 기원전 841년 경신년(庚申年)은 서주(西周)의 원년(元年)입니다. 이때부터 중국 역사의 기년(紀年)으로 삼았습니다.
제나라 무공 25년(전 826년), 무공의 딸 신강(申姜)이 주나라 선왕에게 시집갔습니다. 선왕의 아버지 여왕(厲王)이 나라 사람들에 의해 쫓겨났을 때, 소공(召公)의 호가(虎家)에 숨어 있었다. 여왕이 죽자 귀국하여 즉위했다. 선왕의 비 강후(姜后)는 주나라 선왕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궁중 긴 골마루에서 겸손하게 나랏일을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왕후는 비녀와 귀걸이를 하지 않고 선왕에게
“왕이 여자에 빠지면 소첩에게 죄가 있사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선왕은 왕비의 말에 감동하고, 나라를 정성으로 다스려 여왕(厲王) 때 쇠퇴하던 주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무공 26년(기원전 825년) 제8대 무공이 죽고 그의 아들 무기(无忌) 여공(厲公)이 뒤를 이었습니다. 여공은 잔인한 폭군으로 민심을 잃었습니다. 예전에 헌공이 추방했던 호공의 아들인 중(重)이 제나라에 돌아왔습니다. 제나라 사람들은 그를 왕으로 옹립할 생각이었습니다. 호공의 아들 중과 함께 여공을 공격하여 죽였습니다. 호공의 아들도 전투에서 사망했습니다. 제나라 사람들은 여공의 아들 적(赤), 즉 문공(文公)을 왕으로 모시고 아버지 여공 공격에 가담한 70명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기원전 814년 진(晋) 목후(穆侯)가 제나라 왕녀 강씨를 왕비로 삼았습니다.
기원전 804년, 문공이 군위에 있은 지 12년 만에 죽고 그의 아들 성공(成公)이 뒤를 이었습니다.
기원전 794년 성공이 9년 만에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 장공(庄公)이 군위를 이었습니다.
장공(庄公) 24년(기원전 771년), 주나라 선왕(宣王)이 죽은 뒤 견융(犬戎)이 주나라 유왕(幽王)을 죽였습니다. 이때부터 망한 주를 서주(西周)라 했고, 주나라 왕가는 동쪽 낙읍(洛邑, 지금의 낙양)으로 천도(遷都)하면서 역사가는 동주(東周)라 합니다.
서주(西周)가 망한 후 진(秦)나라가 제후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장공 64년(기원전 731년) 장공(庄公)이 죽고 그의 아들 녹보(祿父)가 군위를 계승했습니다. 그가 희공(僖公)입니다.
희공 9년(기원전 722년)은 공자가 편찬한 춘추(春秋)의 기년(紀年)입니다.
희공 25년(기원전 706년), 북융(北戎)이 제나라를 공격했습니다. 정후(鄭侯)는 급하게 태자를 보내 구출했고, 제후(齊侯)는 자기 딸이 정나라 태자의 처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태자는
“정나라는 제나라보다 작아 저는 제후의 따님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라고 거절했습니다.
희공 32년(기원전 699년), 희공의 남동생인 이중년(夷仲年)이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의 이름은 공손무지입니다. 희공은 그를 매우 좋아하여 봉급과 식기, 의복, 음식 등 태자와 같게 했습니다.
희공 33년(기원전 698년)에 희공이 죽고 태자 제인(诸儿)이 군위를 계승했는데, 바로 양공(襄公)입니다.
양공(襄公) 원년(기원전 697년), 양공은 처음에 태자였을 때 사촌 공손무지와 싸웠지만, 그가 군위에 오른 후, 무지의 봉록을 줄였습니다. 무지는 양공을 매우 원망했습니다.
양공 4년(기원전 694년), 노나라 환공과 그의 부인이 제나라로 왔습니다. 제나라 양공(襄公)은 과거에 노나라 부인과 바람을 피웠습니다. 노나라 부인은 양공(襄公)의 이복 여동생으로 전공 때 노나라 환공(桓公)과 결혼했는데, 노나라 환공이 제나라에 왔을 때, 양공이 다시 그녀와 통정했습니다. 노나라 환공이 이 사실을 알고 부인에게 굉장히 분노했습니다. 부인은 제나라 양공에게 이 일을 알렸습니다. 제나라 양공이 노나라 환공과 함께 술을 마시고 그를 취하게 했습니다. 장사 팽생(彭生)이 노나라 환공을 수레 위에서 껴안았는데, 환공을 수레에서 내렸을 때는 이미 죽은 뒤였습니다. 노나라 백성은 이 일로 제나라를 공격했고, 제나라 양공은 팽생을 죽여 노나라에 사과했습니다.
양공 8년(기원전 690년), 제나라는 산동반도 중북부 발해 내주만의 서남 해안 지금의 수광시에 있던 기(紀)나라를 공격했고, 기나라는 제나라에 합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