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캐롤 / 찰스 디킨스
영국 런던에서 스크루우지와 마레는 오랫동안 함께 장사를 해 왔었습니다.
그러다가 친구 마레는 죽고,
마레의 장례식날 스크루우지는 빈틈없는 장사 솜씨로 큰 돈을 벌었습니다.
상점 입구에는 '스크루우지.마레 상회'라는 간판이 그대로 걸려 있습니다.
스크루우지는 굉장히 인색하였고, 남과 사귀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도 스크루우지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거지조차도 동정해 달라고 조르지 않았습니다.
일 년 중에서 제일 즐거운 크리스마스 전날 밤입니다.
늙은 스크루우지는 사무실에서 바쁘게 일했습니다.
날씨가 몹시 추워서 살을 에는 듯하였고, 사방에는 안개가 끼어 있었습니다.
부근의 사무실마다 불빛이 비쳤지만, 구두쇠 영감인 스크루우지는 불을 켤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스크루우지는 사무원을 감시하려고 문을 열어 놓았습니다.
사무실의 방난로에는 석탄 한 조각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석탄 상자는 스크루우지가 꼭 자기 방에 둡니다.
"아저씨, 성탄을 축하합니다."
조카가 뛰어들어오며 외쳤습니다.
"흥, 시시하게!"
스크루우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시시하다구요?"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고?
도대체 너에게 크리스마스를 축하할 여유 가 어디 있냐? 가난뱅이 주제에."
"아저씨는 크리스마스를 외롭게 보낼 필요가 있나요?
큰 부자이면서." 조카가 힘있게 말했지만,
스크루우지는 코방귀를 뀌었습니다.
"화내지 마세요, 아저씨.
크리스마스는 남에게 친절을 베풀고, 남을 용서 하고, 남을 도와 주는 즐거운 날입니다."
옆방의 사무원이 저도 모르게 박수를 쳤습니다.
스크루우지가 말했습니다.
"또 한 번 박수를 쳤단 봐라, 당장 내쫓을 테니까.
그건 그렇고, 너는 대단한 웅변가로구나. 국회 의원이 되지 못한 것이 이상하다."
스크루우지는 조카가 집에 초대하는 것도 물리쳤습니다.
조카가 돌아가자, 스크루우지는 두 손님을 맞았습니다.
두 사람은 의젓한 신사로서, 장부와 서류를 들고 스크루우지에게 인사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서류를 내밀었습니다.
"이건 뭡니까?"
"기부금 신청서입니다. 런던 시내만 하여도 부모 없는 불쌍한 고아가 수 천 명이나 되고,
의지할 데가 없는 노인들도 많습니다."
"고아원은 없소?"
"고아원도 많이 있습니다.
"양로원은요?"
"있고말고요."
" 나는 고아원과 양로원이 하나도 없는 줄 알았더니...... 그럼 안심했습니다."
"기부금은 얼마나 내주시겠습니까?"
"아무것도 쓰지 마시오."
"그럼, 익명으로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나는 빼 주면 좋겠소. 나는 크리스마스 따위는 축하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냥 돌아갔습니다.
스크루우지는 사무원을 돌려 보낸 뒤에,
단골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상점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스크루우지는 죽은 친구인 마레가 살았던 그 방에서 살고 있습니다.
어릴 때, 스크루우지는 가끔 이 집에서 마레와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를 하며 놀았습니다.
이 집은 낡아서 몹시 음침하였습니다.
다른 방은 사무실로 빌려 주고, 스크루우지 외에는 아무도 살지 않습니다.
스크루지가 문을 열려고 열쇠 구멍에 열쇠를 꽂자,
손잡이가 갑자기 누르스름하고 무서운 마레의 얼굴로 변했습니다.
스크루지가 자세히 바라보니까 마레의 얼굴은 어느 새 다시 손잡이로 변했습니다.
스크루지는 안으로 들어가서 촞불을 켯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스크루지는 문단속을 단단히 하고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이층 자기 방은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스크루지는 방문을 이중으로 잠갔습니다. 넥타이를 풀고,
잠옷을 입고, 슬리퍼를 신은 뒤에 난롯불 앞에 앉아
밤참인 죽을 먹을 생각이었습니다. 난롯불은 불길이 아주 약하여, 있으나 마나였습니다.
스크루지는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다가, 의자에 걸터앉았습니다.
이윽고 시계 종이 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스크루지는 무서웠습니다.
종은 처음에 조용히 울리다가, 차차 크게 울리더니,
나중에는 온 집 안의 종이 일제히 울렸습니다.
얼마 뒤에 종 소리가 멎었습니다.
그러자, 먼 지하실 쪽에서 대르럭대르럭 하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스크루지는 그 때, 도깨비 집에서 유령이 쇠사슬을 질질 끌고 나온다는,
어릴 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지하실 문이 '쾅' 하고 울렸습니다.
그러더니, 쇠사슬 소리가 아까보다 훨씬 더 크게 들려 왔습니다.
쇠사슬을 끄는 사람은 계단을 올라와, 방문 쪽으로 곧장 걸어오는 모양이었습니다.
"누가 유령 따위를 믿을 줄 알고."
스크루지는 이렇게 말했으나, 그것이 문을 뚫고 방 안에까지 들어오자 얼굴빛이 삭 변했습니다.
그것은 마레의 얼굴과 똑같았으며,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습니다.
질질 끌고 있는 쇠사슬은 허리의 둘레에서 꼬리처럼 내려와 발에 감겨 있었습니다.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나한테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허참, 별일이군."
스크루지는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음, 볼일이 많지.
이것은 틀림없는 마레의 목소리였습니다.
마레 의 유령은 의자에 걸터 앉았습니다.
유령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데, 머리털이나 옷 소매는 끊임없이 흔들렸습니다.
"자네는 왜 나를 보려고 하지 않는가?"
유령은 무섭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굉장히 무시무시하고 큰 소리를 내며 쇠사슬을 흔드는 바람에,
스크루지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의자를 꽉 잡았습니다.
스크루지는 얼른 무릎을 꿇고 말했습니다.
"유령님, 어째서 저를 괴롭히십니까?"
"욕심에 눈이 어두운 자여! 너는 나를 믿는가, 못 믿는가?"
"믿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왜 묶여 있습니가?"
"자기가 살아 있을 때 만든 쇠사슬로 자기를 묶고 있는 것이다. 네 쇠사슬은 굉장히 무거울 것이다.
스크루지는 자기의 몸에도 긴 쇠사슬이 휘감겨 있을 줄 알고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 욕심의 포로가 되어 묶이고,
이중으로 고랑을 찬 죄인이여! 인생은 한 번 그 기회를 잃으면, 아무리 오랫동안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여! 그 자가 바로 나였다."
유령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러나 자네는 훌륭한 사업가였지 않나?"
스크루지가 망설이며 말했습니다.
"사업이라고? 장사 따위는 인류를 사랑하는 일에 비하면, 큰 바다의 물방울 하나에 지나지 않아."
스크루지는 벌벌 떨기만 하였습니다.
"잘 들어! 내가 오늘 밤 여기에 온 것은,
너에게는 아직은 나 같은 운명에서 벗어날 기회와 희망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다."
"고마워."
"앞으로 이 곳에 세 사람으 유령이 나타난다."
유령이 말하자, 스크루지는 얼굴빛이 변했습니다.
"그것이 자네가 말한 나의 기회와 희망이란 말인가?"
"그렇다."
"나는 유령이 오지 않는 게 좋겠는데."
"그 유령의 말을 듣지 않으면, 자네도 나처럼 쇠사슬을 끌고 다니는 고된 길을 가게 되네.
내일 밤 1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첫 번째 유령이 나타날걸세."
"셋이 함께 와서 한 번에 끝낼 수는 없겠나?"
스크루지의 말을 유령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튿날 밤, 같은 시각에 두 번째 유령이 오고,
또 그 이튿날 밤은 12시의 마지막 종이 울릴 때 세 번째 유령이 올 거야.
나를 다시 만날 생각은 말게."
이렇게 말하고 유령은 돌아섰습니다.
유령이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창문이 조금씩 열리더니,
창가에 닿았을 때는 창문이 열렸습니다. 유령은 어둠 속으로 둥둥 떠서 사라졌습니다.
밤 1시에, 과연 첫 번째 유령이 나타났습니다.
종이 울리자 방 안이 환하게 밝아지고 침대의 커튼이 젖혀졌습니다.
스크루지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커튼을 연 유령을 마주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유령의 모습은 아주 기묘했습니다.
젊은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젊은이라고 하기엔 이상하게 노인처럼 보였습니다.
등까지 늘어뜨린 머리털은 늙은이처럼 희었지만,
얼굴에는 주름살 하나 없고 피부는 윤이 나서 젊은이처럼 보였습니다.
팔은 대단히 길고, 몸집이 듬직하였습니다.
하얀 반소매의 긴 웃옷을 입은 이 유령은, 허리에 반짝 반짝 빛나는 띠를 둘렀습니다.
"당신이, 여기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바로 그 유령입니까?" 스크루지가 물었습니다.
"그렇다네, 옛날의 크리스마스 유령이야."
"아주 오랜 옛날의?"
"아니, 너의 과거의 것이다."
유령은 큼지막한 손을 내밀어 스크루지의 팔을 잡았습니다.
"너의 행복을 위해서, 네 마음을 고쳐 주기 위해서 왔다. 일어나서 나와 함께 가자."
유령의 손은 여자의 손처럼 부드러웠지만, 도저히 뿌리칠 수가 없었습니다.
"창문 밖으로 나가면, 저는 떨어집니다."
"이렇게 하면,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유령은 스크루지의 심장 위에 손을 얹었습니다.
두 사람은 어느 새 벽을 뚫고 나가, 널따란 밭이 있는 시골 길로 나와 있었습니다.
런던의 거리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땅 위에는 눈이 쌓여 이있었고, 날씨는 맑지만 추웠습니다.
스크루지가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습니다.
"어어, 저는 이 고장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 여기서 살았어요."
"이 길이 생각나?"
"생각나다 뿐입니까, 눈을 감고도 걸을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부지런히 걸엇습니다. 다리와 교회,
구불구불한 강이 흐르는 시골 마을이 저 멀리 보였습니다.
그 때, 털이 수북한 망아지 두마리가 아이들을 태우고 오고 있었습니다.
망아지를 탄 아이들은, 마차와 짐수레 위에 탄 아이들에게 말을 걸고 있었습니다.
"저 아이들에게는 우리가 보이지 않아." 유령이 말했습니다.
스크루지는 그 아이들의 이름이 모두 생각났습니다.
낯익은 사람들을 만나자, 매우 반가웠습니다.
그 아이들이 지나가자, 스크루지는 눈물이 글썽 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골목길로 들어섰습니다.
발간 벽돌로 지은 저택이 나타났습니다. 집은 황폐해져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대청 마루를 지나, 집 뒤쪽에 있는 방으로 갔습니다.
방문이 소리 없이 열리자, 음산하고 길다란 방안이 보였습니다.
거기에는 쓸쓸해 보이는 한 소년이 걸상에 앉아, 거져가는 불 앞에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스크루지는 불쌍한 옛날의 자기 모습을 바라보며 울었습니다.
그 때, 허리때에 도끼를 꽂고 외국식 복장을 한 사나이가, 장작을 잔뜩 실은 당나귀의 고삐를 잡고
소년의 방 창 박에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40명의 도둑을 쳐부순 용감하고 정직한 알리바바의 모습이었습니다.
스크루지는 저도 모르게 외쳤습니다.
"아, 알리바바다! 어느 크리스마스날에 버림받은 저 외톨이 소년이 이 곳에 혼자 있을 때,
저 아저씨가 저런 모양을 하고 왔었어. 불쌍한 아이..."
스크루지는 옛날 소년 시절의 자기가 불쌍해져서 울었습니다.
"왜 울지?" 유령이 물었습니다.
".....어젯밤에, 내 사무실 입구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른 아이에게
무언가 주었으면 좋았을 걸 하고 후회가 돼서요."
"다른 크리스마스를 보세!"
유령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스크루지으 어린 모습은 훨씬 커졌습니다.
이번에는 소년이 책을 읽고 있는 게 아니라,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문이 열리더니 소년보다 훨씬 나이가 아래인 소녀가 들어왔습니다.
소녀는 소년의 목에 매달리며 말했습니다.
"나, 오빠 데리러 왔어. 함께 집으로 가."
"집에 가자고?
"그래. 아버지가 오빠를 집에 데리고 와도 좋다고 허락하였어. 그래서 기차를 타고 왔어.
무엇보다도 먼저, 이 세상에서 제일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축하해."
소녀는 오빠를 문 쪽으로 끌고 갔습니다. 오빠도 기뻐하며 따라갔습니다.
"스크루지 군의 짐을 내려놓고 오게."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교장 선생님이 나왔습니다.
스크루지는 교장 선생님과 악수를 하였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소년과 여동생을 고급 객실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 방에 걸린 지도도 추위 때문에 얼어붙은 것 같았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연한 포도주가 담겨 있는 병과 딱딱한 과자 덩어리를 가지고 와서
나누어 주었습니다.
두 아이는 교장 선생님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마차에 올라탔습니다.
마차는 물보라처럼 서리와 눈을 가르며 달렸습니다. 유령이 말했습니다.
"저 소녀는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오그라들 것처럼 약했지. 그러나 마음시는 상냥했어."
"그렇습니다."
"소녀는 결혼한 우 죽었지? 그리고 아이를 낳았을 텐데....."
"예, 하나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네 조카지?"
"그렇습니다." 스크루지는 부끄러운 듯이 대답했습니다.
둘이는 마을의 학교에서 금방 나온 것 같은데, 어느덧 도회지의 번화한 거리에 와 있었습니다.
그 곳에는 짐수레와 사륜마차가 앞 다투어 달리고, 매우 붐볏습니다.
마침 저녁때여서, 거리에는 휘황찬란한하게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유령은 어느 상점의 입구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그 곳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전에 여기서 일했었습니다."
스크루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두 사람은 상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털모자를 쓴 노인이 높은 책상 저 쪽에 걸터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
스크루지는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아, 폐지위그 영감남이에요.!" 노인이 고함을 쳤습니다.
"자, 모두들 오너라! 에비니저, 딕."
어엿한 청년이 되어 있는 예산ㄹ의 스크루지가, 친구 점원과 기운차게 들어왔습니다.
노인이 문을 닫으라고 하였습니다. 노인은 높은 책상 위에서 뛰어내리며 소리쳤습니다.
"자, 다 치우고 여기를 좀더 넓게 해라."
두 젊은이는 바닥을 쓸고 물을 뿌리고,
램프의 손질도 끝낸 뒤에 난로 앞에 장작을 쌓아 올렸습니다.
가게는 겨울 밤의 무도회에 어울리는, 따스하고 밝은 방이 되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나타나 높은 책상에 올라가더니, 곡을 연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페지위그 부인이 싱글벙글 웃으며 들어왔습니다. 귀여운 세 아가씨도 들어왔습니다.
그 뒤에는 6명의 젊은이와 상점의 젊은 남자와 고용인이 모두 들어왔습니다.
하녀는 조카인, 빵 굽는 직공을 데려왔습니다. 이 박에도 여러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모두들 즐겁게 춤을 추었습니다.
11시가 되자, 마침내 무도회가 끝났습니다.
페지위그와 그의 부인은 문의 양쪽에 서서,
돌아가는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상점의 두 젊은이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들은 상점 한 구석의 계산대 밑에 있는 침대로 기어들어갔습니다.
그 광경을 본 스크루지는 정신잃은 사람처럼 멍해졌습니다.
옛날의 자기와 딕이 건강한 얼굴을 저 쪽으로 돌렸을 때,
스크루지는 유령이 자기를 보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유령이 말했습니다.
"별것 아니군."
"뭐가 별것 아니에요?"
"저 주인은 이 세상의 돈 몇 파운드를 썼을 뿐이다.
기껏해야 3,4파운드일 것이다. 그까짓 돈을 썼는데, 뭘."
스크루지는 옛날 자기의 심정으로 되돌아가 말했습니다.
"유령님, 저 주인은 우리들을 행복하게도 할 수 있고 불행하게도 할 수 있습니다.
또, 저희들의 일을 가볍게 할 수 있답니다.
또, 저희들의 일을 가볍게 할 수도 있고 무겁게 할 수도 있으며,
즐겁게 할 수도 잇고 괴롭게 할 수도 있습니다.
저 주인이 준 행복은 큰 재산을 써 버린 만큼의 값어치가 있습니다."
유령이 자기를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스크루지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인데?"
".....우리 사무원에게 한두 마디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습니다.
"자, 이제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서두르자." 유령이 말했습니다.
이번에는 나이를 먹고, 전보다 의젓한 어른이 된 스크루지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그 얼굴에는 고생한 흔적과 욕심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어쩐지 초조해하고 무엇인가 탐내는 듯한 눈추리를 보니,
이미 마음 속에 욕심이 뿌리를 내린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스크루지는 상복을 입은 아름다운 아가씨 옆에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아가씨가 말했습니다.
"우리들이..... 약혼한 것은 퍽 오래 전이었어요.
그 때는 가난해도 참고,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부지런히 일하자고 했어요.
그런데 당신은 변했어요. 저의 사랑을 얻기를 지금도 바라시나요? 그럴 리가 없을 것입니다.
지참금이 없는 저를 택하시지 않겠지요. 그래서 저는 당신과의 약속을 취소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택한 생활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세요." 아가씨는 나가 버렸습니다.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헤어졌습니다.
"유령님, 이젠 더 보여 주지 마십시오."
스크루지가 반대하여도, 유령은 다음 사건을 강제로 보여 주려고 하였습니다.
어느 새 장면이 바뀌어, 그들은 어느 집 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 곳의 분위기는 아주 정겨워 보였습니다.
난로 옆에는 아름답고 젊은 아가씨가 걸터앉아 있었습니다.
전에 나타났던 아가시와 닮았으므로, 스크루지는 같은 사람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전에 그 아가씨는 나이 든 부인이 되어,
이 젊은 아가씨와 마주 앉아 있었습니다.
그 방에는 아이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아가씨도 아이들 틈에 끼여 놀았습니다.
아이들은 아가씨에게 달려들어 장난을 쳤습니다.
이 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아가씨는 옷차림이 엉망으로 흐트러진 채 문쪽으로 나가다가 들어오던 아버지와 마주쳤습니다.
아버지는 장난감과 선물을 배달원에게 들려 가지고 왔습니다.
이윽고, 환성이 터져 나오고 서로 배달원에게 덤벼들었습니다.
짐을 하나하나 풀 대마다 터져 나오는 놀라움과 기쁨의 소리!
얼마 뒤에, 아이들이 이층으로 올라가
잠들어서야 겨우 조용해졌습니다. 집주인이 딸을 다정하게 기대게 하고, 난로 옆에
걸터앉아 있는 모습을 스크루지는 유심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오늘 오후에 옛날의 당신 친구를 보았소. 누군지 맞혀 봐요." 남편이 말했습니다.
"스크루지 씨지요?"
"맞아, 그 사람의 사무실 창문 앞을 지나가다가, 안에 촛불이 켜 있어서 들여다보았지.
동업자인 마레 씨가 죽을 것 같다는 말을 들었어.
" 스크루지는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하였습니다.
"유령님, 다른 데로 데려가 주십시오.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스크루지는 어느 새 자기 침실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는 침대로 뛰어들자마자 잠들었습니다.
두 번째 유령은 옆방에서 나타났습니다. 시계가 밤 1시를 쳤을때, 불길 같은 빨간 빛이
옆방에서 새어들어, 침대 위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스크루지가 옆방 문의 손잡이를 잡는 순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목소리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들어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 곳은 스크루지의 방이었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랄 만큼 변해 있었습니다. 벽과 천장이 푸른 잎으로 뒤덮여 있어서,
마치 숲 속에 들어간 것 같았습니다. 또한, 예쁜 나무 열매가 빛나고 있었습니다.
또, 방바닥에는 칠면조, 거위, 산새, 닭, 돼지고기, 쇠고기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음식이 임금님의 옥좌 모양으로 높이 쌓여 있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으로 된 긴 의자 위에는 거인이 의젓하게 서있었습니다.
거인은 횃불을 들고 있다가, 스크루지를 비추기 위해 높이 쳐들었습니다.
"들어와! 나는 올해의 크리스마스 유령이다."
유령이 말하자 스크루지는 유령을 바라보았습니다.
유령은 흰 털가죽으로 단을 댄, 짙은 녹색의 부드러운 망토 같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올해의 크리스마스 유령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유령님, 마음이 내키는 곳으로 데려가 주십시오.
오늘 밤에도 저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배우고 싶습니다."
"내 옷을 잡고 따라오너라!"
두 사람은 눈 감작할 사이에 크리스마스날 아침의 큰길에 서 있었습니다.
거리는 크리스마스를 맞은 기쁨으로 들떠 있었습니다.
모두들 좋은 옷을 입고 즐거운 얼굴로 줄지어 큰길로 나왔습니다.
뾰족탑의 종소리가, 믿음이 깊은 남녀를 교회나 예배당으로 부르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뒷골목이나 샛길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음식의 재료를 갖고 빵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유령은 그들이 마음에 들었던지, 스크루지를 옆으로 끌어당기고는 빵집 문간으로 들어 섰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지나갈때마다 그들의 음식이 담긴 그릇 뚜껑을 열고,
그 위에 횃불에서 끄집어 낸 향표를 뿌려 주었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이 싸움을 벌일 때, 횃불에서 끄집어 낸 향료를 한두 방울 뿌려 주면,
금세 사이가 좋아지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령은 곧바로 사무원의 집으로 갔습니다.
일 주일에 단 15실링밖에 받지 못하는 스크루지의 사무원의 집으로 갔습니다.
유령은 횃불의 물방울로 그 가정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크라칫 부인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부인은 단정한 옷차림을 하고 식탁을 준비하기 위해 테이블보를 깔았습니다.
한촉에서는 아들이 감자가 익었는지 보려고, 냄비 뚜껑을 열고 포크로 찔러 보고 있었습니다.
조금후 크라칫 부인은 직장에서 돌아온 딸 마서에게 키스를 하고, 옷 벗는 걸 도와 주었습니다.
이 때, 아버지가 돌아오는 기척이 나자, 마서는 숨었습니다.
"마서는?" 아버지는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오지 못하나 봐요." 크라칫 부인이 말했습니다.
"크리스마스날에도 못 오나?"
아버지의 실망한 모습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었던지,
마서는 벽장 뒤에서 웃으며 뛰어나왔습니다. 보브는 딸을 반갑게 껴안았습니다
식사 준비가 끝나자, 모두 자리에 앉았습니다. 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자, 모두들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 하느님, 부디 저희 집을 축복해 주십시오! 아멘."
"아멘!"
가족들 모두 기도를 하였습니다.
식구들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크리스마스 음식을 실컷 먹었습니다.
식사가 끝난 뒤, 식탁을 치우고 난로를 청소하고 다시 장작을 지폈습니다.
모두 난로 앞에 반원을 그리고 둘러앉았습니다. 아버지인 보브가 말했습니다.
"스크루지씨, 당신의 건강을 빕니다."
그러자, 크라칫 부인은 얼굴이 빨개져서 소리쳤습니다.
"그 사람이 여기에 있다면, 마음껏 비꼬아 주겠어요."
"하지만 여보, 여기는 아이들 앞이야. 더구나 오늘은 크리스마스 인데....."
크라칫 부인은 비로소 건강을 빌어 주었습니다.
아이들도 어머니가 한 대로 스크루지에게 크리스마스를 축복하여 주었습니다.
사방은 어두워지고, 눈도 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스크루지와 유령은 밖으로 나와 길을 걸었습니다.
두 사람은 어느 새 질척질척한 땅에 와 있었습니다.
큰 바위가 무덤처럼 나뒹굴어져 있었습니다.
"땅 속에서 일하는 광부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한 오두막집 창문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 쪽으로 바삐 걸어갔습니다.
진흙과 돌로 된 벽을 통과하자,
많은 사람들이 타오르는 난로 둘레에 모여 앉아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들, 손자들과 함께 화려한 옷을 차려 입고 있었습니다.
스크루지는 유령의 옷을 잡고 날았습니다.
등대를 지나 바다 위를 날아서,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안에도 가 보았습니다.
모두들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고, 서로 인사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 웃음소리는 그의 조카의 것이엇습니다.
그는 어느 새 밝고 산뜻한 방 안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유령도 옆에서 싱글벙글 웃었습니다. 스크루지의 조카는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그러자, 스크루지의 외조카뻘 되는 그의 아내도 남편을 따라 웃었습니다.
"아저씨는 말이야, 크리스마스가 시시하다고 말했어.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스크루지의 조카는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스크루지의 조카딸은 아름답고 마음씨도 고운 부인이었습니다.
"아저씨는 부자이죠?"
"부자였댔자 아무 소용없어. 재산을 남을 도우는 일에 쓰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기의 생활을 즐겁게 하기 위해 쓰지도 않아."
" 아저씨는 정말 정이 떨어져요."
스크루지의 조카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저 아저씨가 불쌍해. 아저씨가 아무리 잘못해도 화내지 않을 거야.
비뚤어진 마음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아저씨 자신이니까."
스크루지의 조카는 말을 계속하였습니다.
".....아저씨가 우리들을 싫어하여 우리들과 즐겁게 놀지 않는 것은,
아저씨에게는 조금도 해가 되지 않아. 다만 유쾌한 시간을 잃고 있을 뿐이야.
나는 그 아저씨가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해마다 크리스마스에 아저씨를 초대할 작정이야.
불쌍하니까 말이야. 아저씨는 죽을 때가지 크리스마스를 나쁘게 말할지도 몰라.
그러나 해마다 '스크루지 아저씨, 안녕하십니까?' 하고 찾아가면 나중에 생각을 고칠거야.
어저께는 내가 하는 말에 아저씨가 몹시 놀랐어."
차를 마신 뒤에 노래를 부르고, 이어 벌금 놀이를 하였습니다.
손님들이 다 돌아갈 때까지, 스크루지는 그 곳에 있게 해 달라고
어린애처럼 유령에게 졸랐습니다.
""다른 놀이가 시작되었어요. 유령님, 30분만 더 있다가 가게 해주십시오.
" 스크루지는 유령에게 부탁했습니다.
새 놀이는 '예,아니오'라는 놀이였습니다.
스크루지의 조카가 어떤 일을 생생각하는 역을 맡았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알아맞혀야 합니다. 스크루지의 조카는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에,
다만 '예'라든가 '아니오'로만 대답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마침내 스크루지의 조카가 동물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동물로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동물이고,
가끔 으르렁대거나 코를 킁킁거리기도 합니다.
때로는 말도 합니다. 그리고 런던에 살고 있으며, 거리를 돌아다닙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끌려다니는 것도 아니고,
동물원에서 기르는 것도 아니며, 팔려 가서 죽는 동물도 아닙니다. 질문이 나올 때마다,
스크루지의 조카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알았어요!" 조카딸이 외쳤습니다.
"뭐야?"
"스크루지 아저씨!"
사람들은 박수를 쳤습니다. 스크루지의 조카가 말했습니다.
"아저씨 덕분에 재미있게 놀았으니까 아저씨의 건강을 축하하지 않을 수 없는 거야.
스크루지 아저씨, 축하합니다.!
"스크루지 아저씨, 축하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스크루지는 아주 즐거웠습니다. 유령이 조금만 기다려 주었다면,
비록 그들에게 들리지 않더라도 모두의 건강을 빌어 주었을 것입니다.
유령과 스크루지는 다시 여행을 계속하였습니다.
둘이는 여러가지를 보고, 많은 가정을 방문하였습니다.
유령이 환자 옆에 가면 신기하게도 병이 낫고,
고향에 있는 듯한 편안한 기분이 되곤 하였습니다.
유령이 괴로워하는 사람들 곁에 가면 그들은 희망을 가졌고,
가난한 사람들 곁에 가면 풍족한 마음이 되곤 하였습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스크루지의 모습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는데, 유령은 눈에 띄게 차차 늙어 갔습니다.
그러다가, 둘이 널따란 들판의 공터에 섰을 때는 유령의 머리털이 하얗게 변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유령님의 목수은 아주 짧습니까?" 스크루지가 물었습니다.
"이 세상에 나와 있는 동안의 수명은 굉장히 짧다. 오늘 밤으로 끝나 버린다."
바로 그 때, 종이 12시를 쳤습니다. 스크루지는 사방을 둘러보며 유령을 찾았으나,
온데간데없었습니다.
마지막 종 소리가 긑났을 때, 스크루지는 마레 노인의 예언이 생각났습니다.
눈을 들어 보니까, 머리에 천을 두른 유령이 이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눈을 들어 보니까, 머리에 천을 두른 유령이 이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유령이 바로 옆까지 오자, 스크루지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유령은 온몸을 까만 천으로 감싸고 있어,
앞으로 내민 한 팔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스크루지는 이 유령이 키가 크고 체격이 늠름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유령은 말도 하지 않고, 몸도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미래의 크리스마스 유령님 앞에 있는 거지요?"
스크루지는 떨면서 물었습니다. 유령은 대답도 하지 않고, 손을 들어 앞만 가리켰습니다.
"앞으로 일어나려는 사건을 보여 주시려는 거지요. 유령님?"
유령이 고개를 끄덕거린 듯, 옷의 위쪽이 약간 오그라들었습니다.
스크루지는 말을 하지 않는 유령이 무서워 다리가 덜덜 떨렸습니다.
"미래의 유령님! 저는 지금가지 만나 뵌 유령님 가운데서 당신이 제일 무섭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까지의 저와는 아주 다른, 다시 태어난 인간이 되어 살고 싶기 때문에,
유령님을 모실 작정입니다. 기꺼이 모시겠습니다. 말씀 좀 해 주십시오."
유령은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한 쪽 손이 두 사람의 앞을 가리킬 뿐이었습니다.
"데려가 주십시오! 밤은 빨리 깊어 갑니다. 이 밤이 저에게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유령은 스크루지 옆으로 왔을 때처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스크루지는 얼른 따라갔습니다.
그들이 길가로 나간 것이 아니라, 그들의 둘레에 거리가 와서 에워싼 것처럼 보였습니다.
두 사람은 분명히 거리 한복판에 있었습니다.
유령은 상인들이 몇 명 모여 있는 곳에서 멈추어 섰습니다.
유령이 손으로 그 쪽을 가리키고 있었으므로, 스크루지는 그 곳으로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다만, 그 사나이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턱이 크고, 뚱뚱한 사나이가 말했습니다.
"언제 죽었는데요?" 다른 사람이 물었습니다.
"어젯밤 같습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그놈은 죽을 만한 놈이 아닌 줄 알고 있었는데요.
" 또 다른 사나이가 말했습니다.
"정말 모를 일이야."
뚱뚱한 사나이가 하품을 하면서 말했습니다.
"도대체 자기 재산은 어떻게 했답니까?
한 사나이가 물었습니다.
"자기 동업 조합에 남겼겠지요. 나한테는 남기지 않았으니까요."
턱이 큰 사나이가 또 하품을 하면서 대답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농담을 듣고 크게 웃었습니다.
"장례식은 간단하겠군요."
"그의 장례식에 갈 사람은 없을 거요. 우리들이 참석해 줄까?"
"도시락이라도 나온다면 참석해도 좋지요."
한 사나이가 말하자, 또 한바탕 웃음 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는 결국 내가 제일 욕심이 없는 편이군요.
나는 검은 장갑을 끼는 장례식이나,
도시락이 나오는 장례식에는 가 본 일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누구든 간다면 나도 가도록 하죠.
뭐니뭐니해도 내가 제일 친한 친구였다고 할 수 있으니까요."
뚱뚱한 사나이가 이렇게 말하고 자리를 떴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슬슬 사라졌습니다.
유령은 다른 길로 성큼 성큼 걸어가서 두 사람을 가리켰습니다.
스크루지는 이 사람들이 서서 하는 말을 들으면, 아까 그 사나이들이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 두 사람도 그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큰 부자 상인이었습니다.
"안녕하시오?"
한사람이 말했습니다.
"오래간만이군요."
다른 한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그 구두쇠 영감이 드디어 죽었다더군요."
"그렇다는군요."
"춥지 않습니까?"
"크리스마스 때니까 추운 건 당연하지요. 스케이트 안 타시겠어요?"
"여러가지로 바빠서요. 그럼 안녕!"
이야기는 이것 뿐이었습니다.
스크루지는 유령이 왜 이렇게 시시해 보이는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처음에는 놀랐습니다. 여기에는 무엇인가 목적이 있는게 틀림없었습니다.
스크루지는 방금 두 사람이 한 이야기에서, 죽었다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스크루지는 사무실에서 자기의 모습이 보이는지지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자리에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스크루지는 별로 놀라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이제는 새사람이 되어 완전히 다른 생활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령은 어둠에 싸여 말없이 손을 내민 채, 스크루지 옆에 서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번화한 거리를 떠나, 시내의 쓸쓸한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길은 좁고 지저분했습니다.
그 곳에는 벌거벗은 사람, 술에 취한 사람 등 단정치 못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죄악과 가나에 찌들어 있었습니다. 구석진 골목에 어두컴컴한 가게가 한 채 있었습니다.
그 곳은 석붙이,누더기, 빈 병 따위를 사들이는 가게였습니다.
집 안의 마룻바닥에는 녹슨 열쇠, 못, 쇠사슬, 저울 등의 고철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습니다.
스크루지와 유령은 그 노인 앞으로 갔습니다. 그 때 마침 한 여자가 큰 보따리를 짊어지고
가게로 슬며시 들어왔습니다. 그 뒤를 다라서 또 한 여자가 똑같은 보따리를 메고 들어왔으며,
다 떨어져 가는 검은 옷을 입은 사나이도 들어왔습니다.
두 여자는 서로 마주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사나이도 두 여자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가게 주인인 조 할아버지는 사람들을 거실로 불러들였습니다.
거실이라는 곳은 누더기 커튼의 뒤였습니다.
맨 처음에 온 여자는 자기 짐을 방바닥에 내던지고, 으스대듯 의자에 걸터앉았습니다.
"이런 물건쯤 몇 가지 없어졌다고 표가 나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장본인은 죽어 버렸고....."
"그 지독한 영감쟁이가, 어째서 살아 있는 동안에 사람 구실을 못했지? 사람 구실만 했더라면,
죽어 갈 때에도 돌봐 줄 사람이 하나도 없진 않았을텐데..."
"천벌을 받은 거죠, 뭐."
"좀더 지독한 천벌을 받았으면 좋았을걸."
"조 아저씨, 그 보따리를 풀어 보고 값을 매겨 줘요. 남이 봐도 겁날 건 없으니까요."
여자들의 말이 끝나자, 검은 옷을 입은 사나이가 잽싸게 자기가 훔쳐온 물건을 꺼내었습니다.
그것은 값나가는 것이 아닌 도장 한두 개, 연필 통 한개, 커프스 단추 한 벌,
싸구려 브로치 한 개가 전부엿습니다."
조 할아버지는 그것들을 하나 하나 들여다보고, 값을 매기고, 분필로 벽 위에다 계산하였습니다.
다음은 딜바 아주머니 차례였습니다.
이 여자가 훔쳐 온 것은 시트와 타월, 옷가지 서너 벌, 옛날식의 은숟가락 두 개,
각설탕 집게 한개, 신 두세 켤레였습니다.
"나는 여자한테는 너무 비싸게 사서 늘 손해만 보거든."
조 할아버지가 계산을 끝내자, 이번엔 제일 먼저 온 여자가 나섰습니다.
"제 보따리를 풀어 보세요."
"음..... 이건 뭔가?"
조 할아버지는 꽁공 묶은 끈을 풀고는, 간신히 두꺼운 검은 천으로 싸인 것을 끌어 냈습니다.
"침대의 담요군! 설마, 죽은 사람을 침대 위에 뉜 채 담요를 송두리째 벗겨 온것은 아닐 테지?"
조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맞아요. 그게 왜 나쁘다는 겁니까?"
그 여자가 대꾸하였습니다. 스크루지는 소름 끼치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습니다.
스크루지는 무시무시하였습니다.
"유령님, 알았습니다! 저도 불행하게 죽은 그 사라머럼 될 것 같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스크루지는 말했습니다.
눈앞의 광경이 싹 달라졌습니다. 스크루지는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 섰습니다.
스크루지는 한 침대와 닿을 정도로 가까이 서 있었습니다.
그 침대에는 담요도 깔려 있지 않았고, 누더기 같은 시트를 뒤집어쓴 뭔가가 누워 있었습니다.
방 안은 몹시 어두웠습니다. 스크루지는
그 방이 어떤 방인지 궁금하여 사방을 둘러보았으나, 아무것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문 밖에서 한 줄기의 희미한 빛이 침대 위를 비추었습니다.
그 빛에, 사나이의 시체가 누워 있는게 보였습니다. 스크루지는 유령을 쳐다보았습니다.
유령의 손은 시체의 머리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시트를 아무렇게나 덮어 놓았기 대문에, 약간 들어올리거나
스크루지의 손가락이 닿기만 해도 얼굴이 보일 것 같았습니다.
스크루지는 그 시트를 벗겨 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유령님, 여기는 무서운 곳입니다.
여기를 떠나도, 유령님이 가르쳐 주시는 교훈을 잊지 않겠습니다.
자, 어서 다른 데로 가십시다."
스크루지가 이렇게 말해도, 유령은 아직도 그 머리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유령은 검은 옷을 날개처럼 펼쳤습니다.
그것을 다시 내리자, 대낮의 밝은 방이 나타났습니다.
그 곳에는 어머니와 어린애들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던 노크 소리가 났습니다. 부인은 달려가서 남편을 맞았습니다.
남편은 아직 젊은데, 고생에 찌든 나머지 기운이 없어 보였습니다.
"잘 되었어요? 아니면....." 부인이 물었습니다.
"잘 안 되었어."
"우린 이제 망했군요."
"아직 희망은 있어, 캐롤라인."
"그 사람이 마음을 누그러뜨려 주어야지나 희망이 있죠!"
"그 사람은 죽었어."
남편의 말을 듣고, 부인은 속으로 잘 됏다 싶었습니다.
" 한 사람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애정이 담긴 장면을 보여 주십시오."
스크루지는 유령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유령은 스크루지가 늘 걷던 길로 데리고 갔습니다.
두 사람은 가난한 보브 크라칫이 집으로 갔습니다.
전에도 유령과 찾아간 적이 있는 그 집에는, 어머니와 아이들이 난롯가에 모여 있었습니다.
전에도 유령과 찾아간 적이 있는 그 집에는, 어머니와 아이들이 난롯가에 모여 있었습니다.
집 안은 조용했습니다.
아이들은 책을 보고, 어머니와 딸들은 열심히 바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보브는 크리스마스 장식이 되어 있는 이층 방으로 올라갔습니다.
죽은 아들의 바로 옆에 의자가 있었습니다.
보브는 거기에 걸터앉았습니다. 딸들과 어머니는 아직도 바느질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이층에서 내려온 보브는,
스크루지 씨의 조카가 매우 친절하게 해 준 일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 분이 '무슨 도움이 될 일이 있으면' 하면서 명함까지 주셨어."
"친절한 분이군요."
크라칫 부인이 말했습니다.
"어쩌면, 피터에게 더 좋은 일자리를 구해 줄지도 모르겠어."
"어머, 피터는 좋겠다."
크라칫 부인이 이렇게 말하니까, 여동생 중의 하나가,
"그 다음에는 장가를 가서 다로 살게 되겠죠?" 하고 물었습니다.
"바보 같은 소리 마라!"
피터가 빙긋이 웃으며 대꾸하였습니다.
"언젠가는 말이야, 우리가 뿔뿔이 헤어져 살겠지. 그렇더라도,
저 가엾은 아기 팀을 아무도 잊지는 않겠지?"
"절대로 잊지 않아요. 아버지!"
모두 입을 모아 소리쳤습니다.
"나는 정말 기쁘다. 행복해!"
키가 작은 보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크라칫 부인이 보브에게 뽀뽀를 하자,
다음에는 딸드리 뽀뽀를 하고, 두 아이들도 차례차례 뽀뽀를 하였습니다.
스크루지는 그 광경을 보고 나서, 유령에게 말했습니다.
"어쩐지 우리가 작별할 시각이 가까워 온 것 같습니다.
아까 우리가 본, 침대에 있던 죽은 사람이 누구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미래의 크리스마스 유령은
아무 말 없이, 스크루지를 상인들이 모이는 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유령은 성큼성큼 걸었습니다. 스크루지는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 골목길은 제가 현재 장사를 하는 곳이고, 저의 집도 보입니다.
미래의 제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보여 주십시오."
유령의 손은 다른 장소를 가리켰습니다.
"저의 집은 저 쪽에 있습니다. 어째서 다른 곳을 가리키십니까?"
그래도, 유령은 다른 장소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스크루지는 자기 사무실의 창가로 달려가서,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곳은 그가 쓰던 사무실이었으나,
이제는 스크루지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구도 다르고,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도 스크루지가 아니었습니다.
스크루지는 다시 유령이 이쓴 곳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유령은 스크루지를 데리고 철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스크루지는 철문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그 곳은 묘지였습니다.
스크루지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하는 불행한 인간이 묻혀 있는 곳이었습니다.
유령은 무덤 하나를 가리켰습니다.
스크루지는 벌벌 떨며 그 쪽으로 갔습니다.
유령이 가리킨 묘석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었습니다.
'-에비니저 스크루지.' 스크루지는 무릎을 꿇고 외쳤습니다.
"그렇다면, 침대에 있던 그 시체가 바로 저란 말입니까?"
유령의 손가락은 묘석에서 스크루지 쪽으로 향해졌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스크루지는 유령의옷을 붙잡고 소리쳤습니다.
"아닙니다, 틀립니다! 유령님, 저는 이제 예전의 제가 아닙니다.
당신을 알기 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유령의 손이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친절하신 유령님! 제가 마음을 고쳐 먹고 새출발을 하면,
당신이 보여 준 여러 가지 환상을 바꾸어 버릴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유령의 손이 떨렸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크리스마스를 축하하고, 그 기분을 일 년 내내 간직하겠습니다.
이제부터는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여러분이 가르쳐 주신 교훈을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아아, 묘석에 새겨진 글자를 지울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스크루지는 온 힘을 다해서 유령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유령은 그보다 힘이 세엇습니다.
스크루지는 온 힘을 다해서 유령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러나 유령은 그보다 힘이 세었습니다.
스크루지는 자기의 운명을 바꾸어 달라는 최후의 기도를 하기위해, 두 손을 마주 잡았습니다.
바로 그 때, 유령은 오그라들고 사그라지더니, 마침내 침대 다리로 변하였습니다.
스크루지는 울며 웃으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스크루지는 옷을 입고, 춤을 추며 거실로 갔습니다.
교회에서 종 소리가 울렸습니다. 스크루지는 창가로 달려가서,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안개도 연기도 없엇습니다. 맑게 갠, 명랑하고 들뜬 분위기의 추운 아침이었습니다.
"오늘이 며칠이지?"
스크루지는 거리에서 서성거리는 소년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예요!"
"크리스마스! 저 유령들이 하룻밤 사이에 그 많은 일들을 보여 주었단 말인가?"
스크루지는 소년을 시켜 큰 칠면조를 사서, 이름을 밝히지 않고 보브네 집으로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수염도 깎았습니다. 마침내 스크루지는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거리에는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스크루지는 두손을 뒤로 잡고, 싱글벙글 웃으며 걸어갔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인사를 건넸습니다.
"영감님,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크리스마스를 축하합니다."
뚱둥한 신사가 이쪽으로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스크루지는 걸음을 빨리 하여 노신사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크리스마스를 축하합니다."
"스크루지 씨 아니세요?"
"그렇습니다. 어제 잘못한 것을 용서하십시요."
스크루지는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습니다. 노신사는 까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많이 기부금을 내주신다니,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스크루지는 그와 헤어진 뒤, 교회에 들렀습니다.
거리를 돌아다니며 분주하게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기도 하고,
어린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도 하고,
거지에게 말을 걸기도 하였습니다. 오후가 되자, 스크루지는 조카네 집을 찾아갔습니다.
스크루지의 조카딸은 그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으로 왔다. 들어가도 좋으냐?"
조카딸은 다른 누가 찾아온 것보다도 더 기뻤습니다.
스크루지는 정성어린 대접을 받았습니다.
이튿날 아침, 스크루지는 보브보다 먼저 사무실로 갔습니다.
보브는 문을 열고 들어오기가 바쁘게 의자에 앉아 펜을 움직였습니다.
"이제야 나오다니, 어떻게 된거야?"
스크루지는 여느때처럼 고함을 쳤습니다.
"죄송합니다. 어젯밤에 늦게가지 놀다 보니까....."
그러나 스크루지는 보브에게 가까이 가서, 그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네,
보브. 월급을 올려 주어서 자네 가족의 생활을 도와 주겠어 자, 얼른 불을 피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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