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이 육군 7사단이던 1958년 5월부터 1961년 8월 장충동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공관으로 이주할 때까지 가족과 함께 거주하던 집. 1930년대 신당동 일대에 문화주택 단지가 조성되었는데 지금은 이 집이 유일하게 남아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1년 이곳에서 우리나라 현대사의 큰 전환점이 된 5.16을 계획하였습니다(서울 등록 문화재 제412호)
안마당에서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과 함께. 날씨가 엄청 더워 얼굴이 생선처럼 익혀진 상태입니다
조선초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의 명을 받아 새로운 도읍지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다 이곳 근처에서 백발노인에게서 '북서쪽으로 십리를 더 가면 도읍지가 될 만한 터가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지금의 경복궁을 정했다는 설화가 전해져 옵니다.
무학대사가 주석했다는 종남산 무학봉 안정사(일명 청련사)터 석벽에 새겨진 약사여래. 서울 하왕십리998번지에 있었으나 2008년 이 땅을 팔고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로 이전하였다고 합니다. 이곳은 현재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 옛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한양을 보호하기 위한 비보 사찰은 동쪽의 안정사(=청련사), 서쪽의 백련사, 남쪽의 삼막사, 북쪽의 승가사가 있습니다
행당동의 먹자 골목을 걷고 있습니다. 마침 저녁 시간이라 양쪽에서 울려퍼지는 맛있는 음식 냄새에 배가 무척 고팠습니다
왕십리 문화 공원 내에 있는 고산자 김정호 동상 앞에서. 김정호가 제작한 '경조오부'라는 지도에는 동상 앞길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이를 기리기 위해 동상 앞길을 고산자로라고 명명하고 동상도 세웠다고 합니다
왕십리역 광장에 세워진 김소월상. 김소월(본명 김정식)은 이곳에서 하숙을 하면서 배재학당을 다녔다고 합니다. 어느날 친구가 찾아왔다 돌아가는데 마침 비가 왔는데 그 아쉬움을 쓴 시가 시비에 있는 '왕십리'라는 시입니다. 시비는 왕십리 시에 있는 '천안 삼거리의 실버들'과 '산마루에 걸린 구름'린 싯구를 현대적 조형 언어로 형상화하여 석재로 제작했습니다.
시를 잘 쓰게 해달라고 기운을 얻기 위해 김소월 시인 동상 앞에서. 박수호 시인님과 함께 찰칵
왕십리역 광장에서 참가자들과 마지막 작별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오늘로써 올해 서울 골목 기행을 마치고 9월부터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서울 골목 여행을 하면서 골목 골목에 스며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몸으로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면서 시적 감흥을 많이 받았습니다. 너무나 재미있고 뜻있는 여행이었습니다.
첫댓글 더웠지만 별 더운지 몰랐던 골목 탐사였습니다.
6회까지 중에서 가장 골목길다운 곳이었습니다.
신당, 행당 시장에 들렀을 때 그곳에서 꼭 맛보아야할 것을 지나친 일이었습니다.
그 아쉬움이 이 골목길을 가장 골목같게 하였습니다.
왕십리라는 이름이 정겨운 것은 김소월의 왕십리 때문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