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여행기-3
앙코르와트 관광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12시 50분에 찾은 곳은 시엠립의 도심에 위치한 ‘평양랭면관’. 북한 당국에서 직접 운영하는 아주 큰 식당이다. 처음 식당을 열 때는 200석이었으나 남한의 관광객이 필수코스로 찾으면서 하도 장사가 잘 되어 지금은 500석이란다. 오후 1시부터 시작하는 공연을 보기 위해 우리가 들어갈 때 드문드문 비었든 자리가 금방 다 찬다. 모두가 같은 말을 쓰는 한국인으로... 우리가 예약한 메뉴는 한정식이다. 냉면을 먹고 싶은 사람은 1인분에 7불을 따로 내야한다며 미리 신청을 받는다. 일행 모두가 두 사람 앞에 1인분씩 시킨다. 자리를 잡자 금방 나온 한정식은 4명 앉은 한 테이블에 찌개냄비 하나에 7-8종류의 반찬과 밥 한 양푼이 나온다. 반찬은 깔끔하다. 밥도 지금까지 먹었던 것과 다르게 윤기가 흐른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한국음식을 모두 맛있게 먹는다. 한참 맛있게 한정식을 먹고 있는데 추가로 시켰든 냉면 1인분을 두 그릇에 나누어 일행 모두에게 한 그릇씩 배달해 준다. 똘똘 말아버리니까 한 젓가락이다. 맛도 기대했던 것에는 미치지 않는다.
공연은 정확히 1시부터 시작이다. 별도의 가수나 배우가 나와 하는 줄 알았는데 모두가 이제껏 서빙을 하며 바삐 움직이든 북한에서 온 예쁘장한 여종업원들이다. 똑 같은 유니폼을 입은 채 혼자, 2-3명씩 또는 6-7명씩 교대로 무대에 올라서는 공연하고 내려서는 서빙을 반복한다. 공연하는 그녀들은 시종 생글생글 웃으며 멋들어지게 노래를 부르고 깜찍하게 춤을 추나 보는 필자는 그렇게 즐겁지가 않다. 왜 일까???
<평양랭면관 전경>
<평양랭면관 종업원의 공연>
중식을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올라 10여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동양최대의 호수라는 ‘톤레삽호수’다. 이 호수의 물은 우기에 메콩강의 물이 샤브강을 따라 역류해 만수를 이루었다가 건기에는 샤브강을 따라 다시 메콩강으로 유입된다고 한다. 시엠립은 이 호수의 최상류로 여기서 제트보트를 타고 5시간을 남동쪽으로 내려가면 메콩강과 합류하게 되고 이 나라의 수도 프놈팬이 거기에 있단다. 이 나라 수산물의 40%를 잡아 올린다는 톤레삽호수의 선착장 가는 제방 길은 완전 쓰레기장 같다. 그 옆에 다닥다닥 붙어 들어 선 마치 한국의 원두막 같은 집들은 이 나라 백성의 궁핍한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유람선을 타고 2분도 채 달리지 않아 뭍과 호수에 집들로 빼꼭하게 들어찬 시장인 듯한 곳을 지나니 시궁창 냄새가 진동을 한다. 1분여를 더 달리니 냄새는 멈추고 물속에서 자라는 나무들이 호수 양쪽으로 숲을 이룬다. 10여분을 더 달리니 호수가 아니라 끝도 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다. 이 망망대해에서도 겁 없이 고무다라이를 타거나 플라스틱물통을 붙잡고 유람선을 향해 뭔가를 사라며 외치는 꼬마들이 여럿 보인다. 선착장으로 돌아와 배에서 내리니 꾀죄죄한 꼬마들 대여섯 명이 우리 앞을 막아서며 아무 말도 없이 손만 내민다. 필자와 일행 몇 명이 사탕 등을 전부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니 버스를 탈 때까지 쫓아오며 고맙다고 인사한다. 우리도 저런 시대가 있었다고 생각하니 코끝이 갑자기 찡해온다. 버스에 일행이 막 오르려는데 이번에는 접시를 양쪽에 몇 개씩 든 한 무리의 꼬마들이 급하게 달려오며 앞을 막아선다. 내 앞에도 한 명이 막아서며 접시를 내민다. 접시 속에는 언제 찍었는지도 모르는 나와 마나님이 들어있는 사진이다. 손가락을 다섯 개 펴길래 사진이 별로라 아무 말 없이 차를 타려니 손가락을 세 개 내민다. 3천원을 주니 금방 다른 사람 앞으로 가 접시를 내민다. 여전히 손가락을 다섯 개 펴며...
<폰레삽호수의 수상가옥>
<폰레삽호수의 숲>
<선착장에서 유람선으로 10여분을 달려 온 폰레삽호수>
<폰레삽호수에서 3천원을 주고 산 사진이 담긴 쟁반>
톤레삽호수에서 나와 다음으로 찾을 곳은 12세기 후반 자야바르만 7세가 불교 스타일로 건립했다는 앙코르톰이다. 이곳도 앙코르와트와 마찬가지로 144평방킬로미터 외곽에 적의 공격이나 동물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100미터 폭의 해자로 둘러싸여 있는 요새란다. 이 안에는 타프롬사원, 문둥왕테라스, 코끼리테라스, 파푸온사원, 바이욘사원 등의 앙코르유적이 즐비하단다. 동서남북 사방에 문이 있고 동에는 승리의 문 하나가 더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일행을 태운 버스가 3시 조금 넘어 도착한 곳은 타프롬사원의 동문이다. 출입구 앞에서 표를 검사 받고 출입문을 통과하니 타프롬사원은 정글 상태로 보존되고 있어 주변 가까이에 있는 수목들이 사원의 벽과 기둥을 온통 휘감고 있다. 특히 800여 년은 되었다는 스펑나무가 자기 뿌리를 꿰뚫고 사원의 벽과 기둥을 휘감고, 뒤엉킨 뿌리는 육중한 사원의 구조물을 들고 일어나 마치 지옥의 사원을 연상케 하도록 망가뜨리고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라고 이름 붙여진 사원이 주인을 잃고 폐허가 된 채 나무로부터 파괴되고 있어 보는 필자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타프롬사원의 서문으로 빠져나와 버스를 타고 얼마 달리지 않아 도착한 곳은 코끼리테라스 앞의 광장이다. 높이 3m, 길이 300m의 코끼리테라스는 5개의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도록 되어있다. 벽면에는 3개의 머리를 가진 코끼리 상이 있고, 뒷면에는 5개의 머리를 가진 말의 부조물이 장식되어 있다. 코끼리 테라스의 중앙에 올라 광장 쪽을 보니 그 앞으로는 거대한 12개의 탑이 열병하듯이 서 있어 앙코르톰의 위용을 더한다.
코끼리테라스의 우측 모퉁이를 돌아 조금 걸어가 고개를 우측으로 돌리니 탑 위에 세워진 웅장한 건축물 하나가 나타난다. 외국사신을 영접하는 영빈관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고 왕실의 연회장, 결혼식장으로 주장하는 학자도 있단다. 이 뒤편 황금 다리를 건너면 옛 궁터란다. 여기서 좌로 방향을 틀어 150여m를 걸으니 앙코르톰 이전에 세워졌다는 43m 높이의 파푸온 사원이다. 현재 프랑스에서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라 입장 불가란다.
파푸온사원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조금만 걸으면 앙코르톰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는 바비욘사원이다. 200여 개의 얼굴로 구성된 54개의 탑에는 4방으로 4개의 신과 부처석상이 있고 탑 상단에는 연꽃이 염주알처럼 새겨져 있다. 또한 사원의 안팎으로 1,200미터에 달하는 부조물들이 있는데 톤레삽호수의 생활 및 베트남의 참족과 전투를 묘사한 것이란다. 부조물은 군인, 기마병, 음악가, 코끼리와 농경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남문의 양쪽 좌우에는 각각 54개씩 총 108개의 선과 악을 상징하는 신의 상들을 세웠으나, 태국의 씨암족들이 노획해가고 남겨진 것들은 목이 잘린 채 비극적인 역사의 한 시기를 보여주고 있다. 바비욘사원의 관람을 마치고 서문을 통해 나오니 땅거미가 서서히 내리고 있다. 6시 가까이 되었다.
<타프롬사원의 동문>
<나무뿌리에 파괴되어 가는 타프롬사원. 영화 인디애나존스에서 본 장면??>
,타프롬사원>
<타프롬사원>
<타프롬사원의 서문>
<코끼리테라스의 우측 전경>
<코끼리테라스의 좌측 전경>
<코끼리테라스 광장 끝에 서 있는 12개의 거대한 탑>
<영빈관, 연회장 등으로 추정하는 건축물>
<바푸온사원>
<동문입구에서 본 바이욘사원>
<바이욘사원의 탑 위에서>
<서문입구에서 본 바이욘사원>
다시 차에 올라 시엠립으로 향한다. 앙코르톰 지역을 벗어나 조금 달리니 도로 옆 벌판에 설치한 앙코르-경주세계문화엑스포장이 스쳐지나간다. 도심에 들어 왔지만 7시에 예약된 저녁식사 시간이 30여분이나 남았다. 잠시 이곳 특산품 가게로 갔으나 별로 살 만한 것이 없다. 담배나 한 갑 살까 싶어 가격을 보니 한국에서 한 볼에 25,000원 하는 ‘에세’가 10불이다. 인천공항의 면세점에서도 16불이나 하는 것을.. 그래서 두 볼이나 샀다.
저녁식사는 이 나라 전통무용인 압살라 공연을 보면서 하는 식당으로 이 나라 음식이 주 메뉴인 뷔페식이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차에 오르니 9시가 조금 덜 되었다. 캄보디아 여행에서 절대 빼 놓을 수 없는 발마사지 하러 가잔다. 5분도 걸리지 않아 도착한 마사지장에는 이미 만원이다. 20여분을 기다려 우리들에게도 자리가 돌아왔다. 이곳 마사지장도 태국과 마찬가지로 한 침상에 여러 명이 들어가는 공개된 장소다. 태국에서는 매트리스에 누웠는데 이곳에서는 안락의자에 앉는 것이 다르고, 태국에서는 모두가 여자 안마사가 맡았는데 이곳에서는 남자손님은 여자가, 여자 손님은 남자가 맡는 것이 다르다. 발마사지는 1시간가량 하는데 요금은 20불이다. 안마사의 팁은 1불이면 되나 한국 사람들은 거의가 2불정도 준단다.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고 호텔에 돌아오니 자정까지는 30분이 남았다. 여행기간 중 처음으로 제 날짜에 들어오니 어딘가 허전하다. 목포아저씨께 연락하여 술이나 한 잔 하려니 몇 호실인지를 모르겠다. 할 수 없이 호텔방 냉장고의 맥주 4개를 혼자 다 비우니 마나님은 이미 꿈나라고 나도 슬슬 졸음이 온다. 아침에는 또 버스를 4시간 이상 타고 프놈팬으로 이동해야하는 고단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으니 푹 자 둬야겠지...
<시엠립의 발마사지장 간판>